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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분석

한국의 ‘조폭경제’

룸살롱에서 벤처까지 ‘비계’와 ‘깍두기’들이 못 먹는 건 없다

  • 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한국의 ‘조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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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폭들이 그늘을 빠져나왔다.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주먹’들이 회칼 대신 계산기를 품고 다닌다. 그들이 건넨 명함엔 ‘회장’ ‘고문’ ‘관리이사’ 직함이 선명하다. 몸 담은 ‘비즈니스’도 각양각색. 돈이 되는 곳엔 어디에나 그들이 있다. 기업인으로 위장한 조폭들이 우리 경제를 흔들어댄다.
한국의 ‘조폭경제’
건설, 건축, 조경, 인테리어, 벤처, 투자자문, 광고기획, 파이낸스, 경호용역, 폐기물 처리, 직업소개소, 자동차업무 대행, 의류 판매, 생수 납품, 수산물 유통, 숙박업, 요식업, 장례업, 찜질방, 양화점….

‘업종별 전화번호부’의 목차를 베껴놓은 게 아니다. 전국 지방경찰청들이 파악하고 있는 관내 ‘관리대상’ 조직폭력배들의 다채로운 사업 유형이다.

조폭들의 ‘비즈니스’ 영역이 이렇듯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겉보기엔 어느 것 하나 남 부끄러울 게 없는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경제활동이다. 유흥업소나 노점상에게서 ‘보호비’를 갈취하는 전통적 수입원은 ‘양아치’들에게 넘겨줬다. 회칼을 휘두르며 집단 난투극을 벌이는 일도 드물다. 피 흘려가며 싸우지 않아도 큰돈을 만질 수 있는 기회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 출신으로, 23년간 조직폭력배 수사를 전담해온 서울 송파경찰서 안흥진 경위는 요즘 조폭들의 특성을 ‘기업화’ ‘지역화’ ‘세계화’로 요약한다. 즉 ▲법망을 피하기 위해 합법적인 기업 형태를 갖추고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며 ▲‘토착형 주먹’들이 지역 연고를 기반으로 이권을 장악하고 ▲일본의 야쿠자 등 외국 폭력조직과 연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

“1990년 ‘범죄와의 전쟁’ 이후 조폭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조직끼리 잔혹한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다. 대규모 조직들이 와해된 데다, 우리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이들의 돈벌이 수단도 다양해져 세력다툼의 여지가 줄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회사를 앞세우고 기업인 행세를 하면서 갖가지 이권에 개입한다. 건설, 벤처, 금융, 부동산 등 돈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이젠 돈을 뜯으러 가는 게 아니라 직접 돈을 벌러 간다.”

조폭들도 ‘구조조정’



‘전국구 조폭’으로 불리던 양은이파, 서방파, OB파 등 이른바 호남 3대 패밀리는 1980년대 이후 두목들의 유고(有故)로 인해 기세가 크게 꺾였다.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씨는 1980년 초 범죄단체구성 혐의로 체포돼 15년간 옥살이를 했고, 1995년 출소한 뒤에도 몇차례 더 구속과 수감을 반복했다. 서울시경 관계자는 “조씨는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서 거의 두문불출하고 있다. 어쩌다 한번 골프를 치러 나가는 게 전부다. 인터넷 만화 사이트를 운영해 돈을 좀 벌었다고 하는데, 돈을 잘 쓰지 않아 추종세력도 별로 없다. 이제 50줄로 접어든 옛 부하들과 뭔가를 도모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조씨의 근황을 전했다.

서방파 두목 김태촌씨는 1986년 호텔 사장 피습사건으로 징역 5년, 보호감호 10년형을 선고받았다. 1989년 폐암 판정을 받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으나 1990년 범죄단체 조직혐의로 구속돼 재수감됐다. 내년 출소 예정이지만, 보호감호형이 보태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청송교도소에서 형을 살며 한 달에 한 번 마산교도소를 오가며 폐질환 치료를 받고 있다.

조씨와 김씨가 구속된 후 한때 호남 주먹계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던 OB파 두목 이동재씨는 1988년 반대파 조직원들로부터 도끼 등으로 난자당해 거의 불구가 된 몸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런 마당에 1990년 노태우 정부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조폭 검거에 나섰다. 274개파 1421명의 조폭이 구속됐다. ‘수괴급’만도 25명이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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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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