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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분석

인간인가, 살인도구인가…병사들이 겪는 전쟁심리학

자살률 높아지고 60일 이상 전투 땐 98%가 정신적 상처

  • 글: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인간인가, 살인도구인가…병사들이 겪는 전쟁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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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은 스무 살 안팎의 어린 병사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 컴퓨터 전쟁게임처럼 재미있을까.
  • 그렇지 않다. 이라크 주둔 미군 병사 상당수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힙합 음악을 즐겨듣던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받는 엄청난 스트레스의 뿌리는 무엇인가.
인간인가, 살인도구인가…병사들이 겪는 전쟁심리학
“너희들은 무기가 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면서 기도하는 전쟁목사(minister of war)가 될 것이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너희는 토해낸 오물(puke)에 지나지 않는다. 너희는 지금 인간이 아니다. 해병은 로봇을 바라지 않는다. 두려움 없는 킬러를 원한다.”

영화 ‘풀 메탈 재킷’(Full Metal Jacket, 1987)에서 머리를 빡빡 깎은 채 긴장해 서 있는 신참 훈련병들에게 교관이 외치는 말이다. 반전 성향이 짙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이 영화에서 미국의 평범한 젊은이들이 살인병기로 변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영화의 무대는 베트남전쟁이 한창인 1960년대 후반,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패리스섬에 있는 해병대 훈련소.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들어왔다. 취침에 앞서 훈련병들은 1인용 침대에 누운 채 ‘받들어 총’ 자세로 일제히 기도문을 외친다. “총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다. 이것은 나의 목숨이다. 내가 없으면 총은 쓸모가 없다. 총이 없으면 나도 쓸모가 없다. 나를 죽이려는 적을 내가 먼저 죽여야 한다. 나와 나의 총은 조국(미국)을 지킨다. 우리는 적을 지배하는 주인이다.”

갓 입소한 뚱보 ‘파일’은 턱걸이 한 번을 제대로 못하는 ‘고문관’이다. 번번이 훈련교관으로부터 지적을 받고, 그 때문에 단체기합을 받게 돼 동료들의 눈총이 따갑다. 그러나 8주간의 훈련과정이 끝날 무렵, ‘파일’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눈빛부터 달라졌다. 훈련조교는 말한다. “파일은 다시 태어났다.” 무엇으로? ‘살인병기’로. 그러나 베트남으로 파병되기 직전 ‘파일’은 사고를 친다. 훈련교관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고문관’에서 새로 태어난 ‘살인병기’는 자신이 변한 것에 갈등을 느꼈고, 그렇게 만든 교관을 증오했을 것이다. ‘파일’은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이라는 1960년대 혼돈의 시대가 낳은 희생양이자 부산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의 침공에 맞서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위대한 모국(母國)을 지키자”는 구호를 외쳤다. 이렇듯 정치지도자들이나 군사령관들은 국가방위의 대의(大義)를 강조하면서 평범한 젊은이가 전선에서 ‘효과적인 살인병기’로 바뀌길 요구한다.

전쟁심리학의 측면에서 본다면 ‘어떻게 내가 사람을 죽이나’ 하는 감상주의자에서 ‘내가 죽지 않으려면 먼저 적을 죽여야 한다’는 ‘공격적 현실주의자’로 변신하는 과정이 군사훈련이다. 병사로 하여금 국가가 요구하는 폭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전선에 투입하는 것이 훈련의 목표다. 여기에 거부감을 갖는다면, 극단적으로는 영화 ‘풀 메탈 재킷’의 ‘파일’처럼 충동적이든 아니든 사고를 치게 된다.

영국의 사학자 조안나 버크(런던대 교수)는 ‘살해의 친숙한 역사 : 20세기 전쟁의 얼굴을 맞댄 살해’(1999년판)에서 시민사회의 모범적인 신사가 전쟁에서는 열렬한 살인자(killer)가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가학적이고 잔인한 남성, 증오와 유혈을 바라는 남성보다는, 사랑과 연민 같은 감정에 쉽게 흔들리는 보통 남성이 오히려 전투에서 가장 위험한 킬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버크는 여러 보기를 들어가며 강조했다. 우리 인간은 감성을 지녔기에 눈앞의 적을 죽이는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감정을 아주 강하게 느끼게 된다는 분석이다.

이라크 파병 미군의 높은 자살률

미 펜타곤(국방부)은 밝히기를 꺼리지만, 이라크 파병 미군의 자살률이 높고 많은 장병들이 심각한 정신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병사들의 자살이 줄을 잇자 펜타곤은 미군의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 특별조사단을 파견했을 정도다. 미 국방부 보건담당 차관보 윌리엄 윈켄워더에 따르면 2003년 말까지 집계된 이라크 파병 미군 중 자살자 숫자는 21명(육군은 18명), ‘정신질환’ 판정을 받고 후송된 병사는 596명이다. 이들 가운데 몇 명은 이라크에서 미 노스 캐롤라이나 포트 브래그 기지로 돌아온 뒤 아내를 죽이고 자살했다. 우울증으로 워싱턴 월터 리드 육군병원에 입원해 있던 두 명의 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일어났다.

미 연방정부기구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자료에 따르면, 미국인의 자살률은 평균적으로 10만명당 10.5∼11명 수준. 2001년에는 10.7명, 2002년에는 10.9명이었다(참고로 한국은 10만명에 2명꼴). 윈켄워더 차관보가 밝힌 이라크 파병 미군의 자살률은 일반적인 미국인 자살률보다 20%포인트쯤 높은 10만명당 13.5명. 이 통계수치는 현재 조사중인 자살 사건들을 뺀 것으로, 따라서 실제 자살률은 이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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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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