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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분석

범죄심리 전문가들의 ‘유영철 스터디’

독특한 善惡체계, 과대망상증 가진 사이코패스

  • 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범죄심리 전문가들의 ‘유영철 스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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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특한 선악체계와 과대망상증을 가진 반사회적 성격장애자’. 범죄심리 전문가들은 유영철을 이렇게 진단한다. 연쇄살인은 살아오면서 쌓인 그의 분노가 폭발한 것으로 읽힌다. 무엇이 그를 엄청난 분노로 몰아갔을까.
범죄심리 전문가들의 ‘유영철 스터디’
누가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진다. “간질 발작을 일으킨 적이 없다”고 했다가 “간질 때문에 학창시절에 많이 괴로웠다”고 털어놓는다. 처음 마주한 사람에게 자신의 잔혹한 범행수법을 자랑스럽게 늘어놓는다. 사체에서 간과 뇌수를 꺼내 먹었다는 것도 스스로 털어놓은 얘기다. “사체를 잘라 믹서기에 넣고 갈아봤는데 생각보다 잘 갈리지 않았다”는 것도 그가 먼저 꺼낸 말이다. “26명을 죽인 게 맞다는 데도 왜 사체를 못 찾는 거요?” 오히려 수사관들을 질책한다. 수사관들은 오로지 그의 ‘자유로운’ 입만 쳐다보고 있는 꼴이다.

죄책감 따위는 전혀 없다. 잔혹한 범행수법을 늘어놓을 때는 숫제 ‘무용담’을 들려주는 분위기다. 그런 그도 딱 한 번 자신에게 놀란 적이 있다고 한다. 사체를 절단하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봤는데 ‘하하하’ 웃고 있었다고 한다. 자신은 살인을 저지르고 사체를 절단하는 일을 담담하게 여긴다고 생각했었다. 순간 섬뜩했다고 한다.

“그건 내가 아니었어. 뿔 달린 악마였어….”

26명을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연쇄살인범 유영철. 상식 밖의, 윤리 밖의 그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여성은 몸을 함부로 놀리지 말고 부유층은 각성하길 바란다”는 엉뚱한 자기합리화 너머에 감춰진 진짜 범행동기는 무엇인가. 일면식도 없는 노인과 윤락여성들을 ‘사냥감’으로 택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끔찍한 범행이 온 천하에 알려졌는 데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심리의 실체는 무엇인가.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 범죄 프로파일링을 담당했던 존 더글러스는 “연쇄살인범은 모든 강력범 중에서 가장 예측 불허하고,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인성을 가졌다”고 말했다. 유영철은 그저 그렇게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고만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인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연쇄살인사건 수사를 전담한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이동호 부장검사)는 8월13일 기소에 앞서 유영철의 범행동기를 밝히려 했다. 이를 위해 검찰은 기소 하루 전날인 8월12일 4∼5명의 심리학·정신의학 전문가와 유영철의 면담을 주선했다. 검찰이 궁금해한 것은 유영철이 비정상적인 정신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는지와 스스럼없이 범죄행각을 밝히는 진술의 진실성 여부였다. 짧은 면담시간 동안 그의 정신적·심리적 상태를 명확하게 진단하는 데 한계가 많았지만,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는 아니며, 반사회적 성격장애 징후를 보였다”고 의견을 모았다.

유영철을 직·간접적으로 관찰한 범죄심리 전문가들은 그를 전형적인 사이코패스(psychopath)라고 진단한다. ‘정신병질자(精神病質者)’라는 뜻의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성격의 소유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이코패스는 자제심, 양심, 도덕성 등 통제기제(control mechanism)가 미약해 순간적인 충동으로 반도덕적·반사회적 행위를 저지른다. 이 같은 사이코패스는 범죄자, 마약중독자, 알코올중독자, 신경증환자 중의 일부에서 발견된다. 특히 연쇄살인범들의 대표적인 공통점 중 하나가 사이코패스라고 하는데, 미국 연쇄살인범의 90% 이상이 이에 해당한다.

한림대 조은경 교수(심리학)는 사이코패스의 특징으로 네 가지를 꼽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 ▲죄의식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함 ▲애정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함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음이 그것이다.

“사이코패스의 이런 특성은 주변 사람, 심지어 가족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이중성을 들키지 않게 철저하게 관리하거든요. 이러한 특성은 자기 내부에 잠재되어 있다가 범행을 통해서야 비로소 밖으로 드러납니다.”

사이코패스들은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유영철이 ‘신창원과 싸워서 이겼고, IQ 140이 넘는다’고 말한 것도 자신의 이미지를 과대 포장한 것이다. 물론 현실세계에서는 사실이 아니다. 이들은 또 ‘나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영철이 황산성 변호사에게 변론을 맡기고 싶다고 한 것도 한때 범행 대상으로 삼은 상대가 자신을 두려워할 것이고 따라서 얼마든지 자기 목적대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의 발로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타인에 의해 과대망상이 깨질 경우 사이코패스는 행동에 변화를 보인다. 유영철은 경찰이 자신을 무시하는 말을 할 때마다 극렬하게 달려들었는데, 이러한 행동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조 교수는 “유영철이 자백을 시작한 것은 경찰이 과대망상을 허무는 ‘어떤 말’을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코패스는 비윤리적·비도덕적 행위에 대해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스스로 정한 ‘선’과 ‘악’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일반인의 도덕적 기준과는 거리가 멀다. 유영철과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는 이 독특한 ‘선’의 영역 바깥에 존재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유영철은 이들을 해친다고 해서 자책하지 않는다. 반면 “너를 배신했다는 아내와 애인은 왜 죽이지 않았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유영철은 “어떻게 한때 사랑했던 사람들을 죽여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스스로 정한 ‘선’의 범주를 결코 넘지 않는 행동패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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