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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칠레 FTA 6개월, 불안한 農心

포도농가 4곳 중 한 곳 “농사 그만 짓겠다”

한-칠레 FTA 6개월, 불안한 農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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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칠레 FTA가 발효되자마자 포도와 복숭아 농가의 폐업 신청이 잇따르고 있다.
  • 자동차, 휴대전화 업체는 수출증가에 쾌재를 부르지만 과수농가는 안절부절이다. 목돈 챙기고 밭 갈아엎겠다는 과수 농가들의 속사정은.
한-칠레 FTA 6개월, 불안한 農心

칠레산 포도가 낮은 관세로 국내시장에 들어올 경우 ‘사 먹겠다’고 응답한 사람이 80%에 이르러 국내 포도농가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칠레’가 우리나라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지난 2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에 반대하는 성난 농민들이 국회 앞으로 몰려들면서부터다.

국회는 비준안을 세 차례 무산시킨 끝에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나서야 마지못해 통과시켰다. 신문과 방송은 온통 한-칠레 FTA 관련 뉴스로 뒤덮였다. 비로소 칠레는 우리와 상당히 밀접한 국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간 한국과는 정치, 경제 어느 분야에서도 협력관계가 많지 않았던 지구 반대편의 나라 칠레가 한국인의 안방에 들어앉은 것이다.

효과는 이내 나타났다. 한-칠레 FTA 협상 과정에서 칠레가 세계적인 포도 강국임이 국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알려지면서 칠레산 와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이다. FTA 체결 이후 칠레산 레드 와인 수입이 3배 이상 늘어났다. 칠레산 와인 수입이 양적으로 늘어난 것은 그렇다치고 이해하기 힘든 것은 칠레산 와인이 ‘와인을 좀 아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기호품인 것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 칼리나 카베르네 쇼비뇽이나 칼리나 카르메네르 같은 칠레산 와인 이름 한두 개쯤 외지 못하면 와인 애호가 축에도 끼지 못하는 형편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정작 동네 삼겹살집에서 구워먹는 냉동 삼겹살이나 호프집 과일 안주에 들어있는 붉은색 포도가 칠레산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최근 들어서는 대형 할인점 수산물 코너마다 ‘칠레산 홍어’ 매장이 들어서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물론 칠레산 농수산물이 국내 소비자의 냉장고에 들어찬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 상호 관세 철폐를 기본으로 하는 FTA의 영향이 칠레산 저가 농산물의 수입 증가만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FTA의 직접적인 효과는 관세 즉시철폐의 혜택을 본 국산 자동차, 휴대전화 등 주요 공산품의 대칠레 수출 증가로 나타났다.

대칠레 수출 품목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자동차의 경우 지난해 16만대를 수출한 데 이어 올해 7월까지 이미 12만5000대를 수출해 지난해에 비해 50%가 넘는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FTA 체결 이전에는 2003년 초부터 무관세를 적용받은 유럽연합(EU)과 2002년 말부터 무관세를 적용받은 아르헨티나산 제품때문에 한국산이 밀리는 양상이 나타났으나 이제는 이들 제품에 맞서 치열한 시장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수출 감소세를 벗어나지 못하던 무선전화기는 한-칠레 FTA가 발효된 4월 이후 수출량이 2배 이상 뛰었고 컬러TV도 7월까지 이미 7100여대를 수출해 2003년 한 해 수출 물량에 육박하는 실적을 거뒀다. 전자제품 전체의 올해 대칠레 수출 실적은 지난해보다 90% 이상 증가한 1억50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주요 수출기업은 이번 FTA를 중남미 시장 비중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로 보고 현지 시장점유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전략 마련에 분주하다.

무역적자 심화는 원자재 가격 탓

그런데도 FTA 발효 이후 대칠레 무역적자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 FTA가 발효된 4월1일부터 8월말까지 5개월간 대칠레 수출은 2억5400만달러, 수입은 7억8200만달러를 기록해 무역수지 적자가 5억2800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년간 대칠레 수출이 5억1700만달러, 수입 10억5800만달러로 5억41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FTA 체결 후 5개월간의 적자규모가 지난해 1년치 적자에 이미 육박한 셈이다. 언론에서 한-칠레 FTA 체결 후 한국이 ‘밑지는 장사’를 했다고 지적한 것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대칠레 무역적자의 내용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이 ‘밑지는 장사’의 원인을 FTA에서 찾는 것은 무리라는 게 분명해진다. 최근 대칠레 무역적자의 가장 큰 원인은 다름 아닌 칠레산 구리에 있다. 동괴(銅塊), 동광 등 칠레산 구리 제품은 대칠레 수입의 76%를 차지하는 최대 수입 품목. FTA가 발효된 지난 4월 이후 7월까지 칠레산 동괴의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1% 늘어났지만 금액 기준으로는 무려 113%나 증가했다. 동광의 경우는 4~7월 수입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 줄어들었지만 수입금액은 오히려 60% 가까이 늘어났다. 세계적인 원자재 수급난으로 인한 구리 제품의 가격 상승이 대칠레 무역적자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말이다.

애초 한-칠레 FTA가 체결되면 국내산 과일이 가장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포도 복숭아 키위 등 칠레의 수출 경쟁력이 큰 품목의 경우 정부가 아예 폐업을 신청받아 과수농가에게 보상금을 주기로 해 칠레산 과일의 수입이 얼마나 증가할 것인지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졌다.

특히 칠레의 최대 생산 품목인 포도는 미국계 다국적기업들의 선진화된 유통망을 배경으로 막강한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내 포도 농가들이 한-칠레 FTA 발효 이후 칠레산 포도 수입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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