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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논란, 비상 걸린 공정거래위

규제 집착 ‘고무줄 잣대’로 불공정 시비 자충수

  • 글: 송성훈 매일경제 경제부 기자 ssotto@mk.co.kr

정체성 논란, 비상 걸린 공정거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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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2건 중 1건은 법원에서 ‘퇴짜’를 맞고 있다. 기업들이 과징금 부과에 불복해 소송을 내는 비율도 크게 늘고 있다. ‘말발’이 먹히지 않는 ‘경제 검찰’ 공정위의 위기와 고민.
정체성 논란, 비상 걸린 공정거래위

공정위 내부에서는 학자 출신의 강철규 위원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대기업 정책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문제가 없으면 변화가 있을 수 없고, 비판 없이는 개혁도 없다.”10월 첫 번째 월요간부회의에서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 국장들을 모아놓고 강조한 말이다.

강 위원장의 이런 언급에는 최근 들어 언론의 뭇매를 맞으며 흔들리는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염려도 담겨 있지만 이를 계기로 삼아 공정위 본연의 책무를 되돌아보자는 의미가 강했다는 게 회의에 참석한 간부의 전언이다.

과징금 처분에 대한 공정위의 패소율이 갈수록 높아져 공신력이 추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때만 해도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는 것이 공정위 주변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대법원이 영창악기 부도와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대해 잇달아 공정위에 패소판결을 내리면서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이유야 어떻든 공정위에게 9월은 어느 때보다 뼈아픈 한 달이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해야 할 공정위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들었을 때는 조직의 정체성이 흔들릴 만큼 최악의 위기상황이었다”며 “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보도 태도를 보인 언론에도 많이 실망했다”고 언론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위기’와 ‘정체성’이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공정위를 흔들고 있는 것일까. 공정위에 대한 비판이 시작된 것은 9월초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된 ‘2003년도 공정거래위원회 소관 세입세출결산 및 예비비 지출승인의 건 검토보고’에 나타난 패소율 통계가 알려지면서다.

과거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처분에 불복해 해당 기업들이 제기한 소송 18건 가운데 10건(일부패소 3건 포함)에 대해 지난해 대법원이 기업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패소율이 55.6%에 달한다는 얘기로, 소송 2건 중 한 건은 공정위 과징금 부과가 잘못됐다는 판결을 받은 셈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만 해도 30%에 그치던 패소율이 2002년 47.1%, 지난해 55.6%로 최근 3년동안 가파르게 상승했다. 일부패소를 제외한 완전패소만 따져봐도 2001년 20%에서 지난해 38.9%로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처럼 공정위의 조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업들이 과징금 부과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과징금 처분을 받은 기업 가운데 소송을 제기한 기업의 비율은 2001년 32.9%에서 지난해 43.2%로 크게 높아졌다. 패소율이 높아지면서 공정위 처분에 대한 신뢰성도 크게 떨어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강철규 공정위원장은 이에 대해 “지난해 패소율이 높아진 것은 그야말로 일시적 현상으로 공동행위 합의추정 조항의 해석과 관련한 소송이 지난해에 집중되면서 벌어진 것”이라며 “올들어 과징금 관련 소송에서 공정위는 단 한건도 패소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공정위 패소율 56%

그러나 강 위원장의 해명대로 패소 사태가 법리적 해석 차이에서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일련의 법원 판결로 인해 공정위의 공신력이 크게 떨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공정위에 대한 비판에 불을 붙인 것은 영창악기 부도사태였다.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인수에 대해 업계에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이뤄진 인수합병을 공정위가 나서서 막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도 인가해야 마땅한 사안을 놓고 공정위가 글로벌화 추세에 역행하는 폐쇄경제 시대의 사고방식을 고집하고 있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공교롭게도 인수가 무산된 영창악기가 끝내 부도사태를 맞으면서 비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업계 관계자들은 “멀쩡한 기업을 공정위가 부도로 몰고 간 셈”이라며 “질 낮은 심판 때문에 얼룩진 스포츠 경기처럼 공정위의 무리한 판단이 기업회생과 경영합리화라는 커다란 이익을 저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비난했다.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되레 소를 죽여버렸다는 비판이 집중된 것이다.

이어 추석연휴 직전에 내려진 대법원 판결은 공정위에 대한 일련의 비판에 쐐기를 박았다. 1999년 삼성SDS가 신주인수권부사채(BW) 230억원어치를 이건희 회장의 장남 재용씨 등 삼성관계인 6명에게 시가보다 싸게 팔았다는 이유로 공정위가 삼성에 부과한 과징금 158억원에 대해 대법원이 부당하다는 취지의 확정판결을 내린 것이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공정거래를 저해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가 부족했다는 이유를 들었고, 이에 따라 공정위의 무리한 판결이 또다시 도마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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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성훈 매일경제 경제부 기자 ssotto@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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