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호

美 이라크 침공은 ‘실패한 전쟁’

정보망·판단력·재건계획 不在, 성급한 이라크군 해산으로 자승자박

  • 글: 김재명 분쟁지역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입력2004-10-26 16: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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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 정책은 무엇이 잘못됐나. 미군 전사자 1000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이라크 주둔 美 해병중장마저 “군사적 강공책은 이라크 민심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볼멘소리다. 미국의 비판적 분석가들이 지적하는 이라크 사태의 문제점을 정리했다.
    美 이라크 침공은 ‘실패한 전쟁’
    이라크 침공 19개월이 지났지만 상황은 좀체 안정을 찾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라크인들의 반미 저항도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격렬해지고 있다. 바그다드 함락 1주년. 지난 4월 이후 이라크 주둔 미군은 시아파 수니파 가릴 것 없이 이라크 전역에서 펼쳐지는 소규모 전투로 고단하기 그지없다.

    바그다드 동부 사드르시티와 시아파 최대성지 나자프에선 강경 시아파 이슬람 성직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를 따르는 무장세력 마흐디군이, 바그다드 서부 팔루자에선 박격포와 RPG(로켓추진 유탄발사기), AK-47 등으로 무장한 강경 수니파 저항세력들이 거의 날마다 교전을 벌이고 있다.

    미 중부군사령부의 집계에 따르면, 이라크 저항세력은 9월 한 달 동안 무려 2300차례나 공격을 벌였다. 하루 평균 80차례다. 미군의 바그다드 함락 1년을 맞아 저항세력의 대대적인 공세가 이어졌던 지난 4월의 하루 평균 120회 공격에 비해선 줄어들었지만 이라크 주둔 미군이 겪는 육체적 고통과 심리적 긴장감은 더 높아지고 있다.

    저항세력의 거점, 수니 삼각지대

    현재 이라크 주둔 미군은 13만8000명. 이들은 연합군과 더불어 주로 도시 외곽의 주요 거점에 진을 치고, 이라크 반미 저항세력의 움직임에 대응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점과 점 또는 선과 선으로만 이어져 있을 뿐, 이라크 전역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바그다드 동쪽 빈민지역인 알 사드르 시티(인구 250만~300만명)와 동쪽 팔루자(인구 30만명)를 비롯한 이른바 ‘수니 삼각지대(바그다드-라마디-티크리크를 잇는 수니파 지역)’는 올해 4월부터 미군의 통제권에서 벗어나 미군 작전차량조차 함부로 들어가기 어려운 지역이 됐다. 저항세력들이 지배하는 곳은 수니 삼각지대의 팔루자, 라마디, 바쿠바, 사마라 일대다.



    수도인 바그다드조차 타 지역에 비해 안정됐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군과 이라크 임시정부 청사가 있는 티그리스 강변 5㎢ 넓이의 ‘그린 존(Green Zone)’이나 바그다드 중심부에도 차량폭탄, 시한폭탄, RPG(로켓추진 유탄발사기)가 날아드는 상황이다. 바그다드 시내와 공항을 잇는 준고속도로엔 기습공격과 지뢰폭발 위험으로 늘 긴장이 흐른다.

    이라크 주둔 미 지휘관들은 “우리는 저항세력의 공격에 한번도 패한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베트남전이나 알제리독립전쟁(1954~62년)에서도 미군과 프랑스군은 전술적으론 대부분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전략적 승리다. 이라크에서 미군은 침략군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민심을 끌어안지도 못했다. 이라크 저항세력은 군사적으론 미군을 이길 수 없어도 정치적으론 미국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계획한 ‘후세인체제 붕괴 이후 이라크 재건일정’에 따르면, 2005년 1월 총선을 실시해, 제헌의회를 구성하고 2006년 1월엔 말 그대로 정통성을 갖춘 합법적인 이라크 정부가 정식 출범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처럼 수니 삼각지대를 장악하지 못한다면 전국적인 투표행위 자체가 어려워진다. 이는 정부의 합법성 확보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뜻한다. 후보자가 납치·살해되거나 투표함을 탈취당할 가능성도 크다. 두 차례나 대통령선거 일정을 미루다 10월에야 불안한 선거를 치르는 아프가니스탄처럼 되지 않으란 보장이 없는 것이다.

    음울한 이정표

    음울한 이정표(road map). 이는 지난 9월7일 이라크전쟁에서의 미군 사망자가 1000명을 넘어서자, 미국 언론들과 민주당이 사용한 비판적 용어다. 부상자도 7000명에 이르는 상태다(미 국방부 공식 통계로는 6916명). 2003년 3월20일 이라크 침공이 시작돼 부시 대통령이 ‘주요 전투 종료’를 선언하며 승리를 환호했던 시점(2003년 5월1일)까지 전사한 미군병사는 총 138명. 시간이 흐르면서 이라크 침공전쟁은 미국이 뒷마당으로 여기는 중남미 소국(이를테면 파나마, 그레나다 등)에 대한 침공처럼 간단한 게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침공은 또 다른 희생을 낳았다. 9·11 뒤 미국의 아프간 침공과 뒤 이은 이라크 침공에서 빚어진 오폭, 미군의 용어로는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로 이미 수만명의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라크 사람들의 정확한 피해 상황이 미군에 의해 공식 발표된 적은 없다. 다만 ‘인권 감시’나 ‘이라크바디카운트’ 등 인권단체들이 집계한 자료를 보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사망한 이라크군은 약 5000~6000명,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는 적게는 1만4000명, 많게는 1만8000명에서 3만명으로 추산된다.

    걸핏하면 벌이는 공습도 문제다. 한 예로 지난 9월초 미 해병대원 7명이 차량폭탄으로 숨지자 미군은 바로 다음날 대규모 공습을 벌여 이라크인 100명 가량이 죽었다. 미군 당국은 “무장세력을 다수 사살했다”고 발표했지만, 팔루자 현지주민들은 희생자 상당수가 어린이와 노약자를 포함한 비무장 민간인이라고 분개한다.

    지난 4월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미군의 팔루자 공습도 큰 논란거리다. 유엔 이라크 특사 라크다르 브라히미도 미군의 팔루자 공습을 팔루자 주민들에 대한 ‘집단 징벌(collective punishment)’이라고 비난했다. 팔루자 공격의 주역인 미군 3성 장성조차 미군의 팔루자 강공책엔 비판적이다. 지난 3월부터 미 제1해병원정사단장으로 이라크 서부지역을 맡아오다 최근 물러난 제임스 콘웨이 중장도 “미군의 이라크 강공책은 이라크 민심을 미국으로부터 더욱 멀어지도록 만들 뿐”이라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콘웨이 중장은 미 제1해병원정사단장으로 부임하자마자 팔루자에서 미 경호업체 직원 4명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사건이 벌어지자 “지금 우리가 공격해 들어가면 수니파 이라크인들로부터 보복성 공격이라는 비난을 받을 테니, 먼저 민심을 수습하자”며 “미 해병대의 팔루자 공격에 반대의견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 중부군사령부의 이라크 현지 지휘관인 리카르도 산체스 중장은 팔루자 공격을 명령했다(이라크 주둔 미군장성들 사이에선 부시 대통령이 직접 공격명령을 내렸다는 얘기가 나돈다).

    사마라 공습은 ‘집단 징벌’

    미군은 10월 들어 저항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고 있다. 2005년 1월 총선을 원만하게 치르는 데 걸림돌이 될 지역들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다. 그 첫 목표가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100km 떨어진 곳에 있는 사마라다. 나흘에 걸친 공습과 군사작전에서 민간인을 포함한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뒤 미군 지휘부는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나 사마라 공습은 미군이 주장하듯 ‘정밀타격(precision strkies)’이 아니었고, 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냈다. 이라크 친미 임시정권의 가지 야와르 대통령마저 이례적으로 미군 공습을 사마라 주민들에 대한 ‘집단 징벌’이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미 군사전문가들도 팔루자와 사마라에 대한 미군 공습을 비판하면서, 베트남전 당시 농촌지역에서 이들은 벌인 미군 작전의 실패를 상기시켰다. 미군의 강공책으로 상황은 일시적 안정을 찾은 듯 보이지만, 수니파 민간인들의 높은 사상률(死傷率)과 미군의 무차별 가옥 파괴는 2005년 1월 선거에 대한 보이콧으로 이어질 것이라 내다본다. 군사적 강공책이 치안에 반드시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10월초 발표된 이라크의 한 여론조사 결과는 그런 우려가 현실적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라크 리서치 전략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8%가 선거 때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지난 7월 같은 조사에서 92%의 응답자가 투표하겠다고 말한 것과 비교해 24% 떨어진 것이다.

    “터널 끝이 안 보인다”

    아흐메드 찰라비 이라크국민회의 의장을 비롯, 미 국방부에 선을 댄 이라크 망명자들은 “미군이 이라크 국경을 넘기만 하면 이라크 국민들이 장미꽃을 들고 환영할 것”이라며 이라크 평화는 쉽게 찾아들 것이라 주장했다.

    슈퍼 파워 군사대국인 미국의 힘을 신봉하는 부시행정부 안의 네오콘 강경파들도 전쟁을 쉽게 여겼다. 바그다드가 침공 3주 만에 함락되자, 그런 믿음은 현실로 나타나는 듯했다. 미국이 처음 이라크 행정책임자로 내세웠던 제이 가너 장군(예비역)이나 한 달 후 그의 뒤를 이은 외교관 출신의 폴 브레머 3세는 이라크 다수 민중들이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바그다드로 부임해왔다.

    워싱턴의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인 미 전략국제문제센터(CSIS)의 ‘전후(戰後)재건 프로젝트팀’ 부소장인 프레드릭 바톤이 지난 9월말 미 외교협회에 증언한 한 자료에 따르면, 부시행정부는 이라크 침공 뒤 일어날 혼란에 대해 아무런 대비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바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전인 2003년 1월 ‘현명한 평화, 전후 이라크 재건을 위한 행동전략’이라는 이름의 27쪽짜리 보고서를 작성했다.

    美 이라크 침공은 ‘실패한 전쟁’

    티그리트-라마디-바그다드를 잇는 수니 삼각지대.

    이 보고서에 따르면 바톤은 1989년 미국의 파나마 침공 사례를 참고 삼아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의 이라크 안정을 위해 1만5000명의 특수훈련된 비전투 요원들을 적어도 18개월 이상 이라크 곳곳에 투입해야 하며, 이와 관련해 50~60억달러의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고 부시행정부에 건의했다. 그러나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이런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혼란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문가들이 꼽는 부시행정부의 실패원인 가운데 하나는 정보판단 착오다. 미국은 바그다드 점령 뒤 거의 1년 동안, 이라크 반미 게릴라들은 민족주의 성향을 지닌 이라크인이 아니라 알 카에다를 비롯한 외국세력일 것으로 간주했다. 이들은 반미 게릴라들이 많아야 5000명쯤 될 것으로 보고 이라크 민중에게 인기도 없을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달랐다. 미 제82공수사단이 수니 삼각지대에서 붙잡은 게릴라 용의자 3800명 가운데 외국 국적자는 50명뿐이었다. 이들도 알 카에다 요원들이 아니라, 알 카에다와 아주 느슨하게 연계된 알 자르카위 세력이거나 일반 아랍인이었다. 게다가 이라크 현지인들은 반미 게릴라 세력이 적어도 1만5000명에서 3만5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군과 연합군은 이라크군의 도움 없이 스스로 저항세력을 누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라크 정보기관원들을 활용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미국인 정보망을 이라크 안에 구축하려 한 것도 실패요인으로 지적된다. 미 국방부 관리 출신으로 현재 전략국제문제센터의 선임연구원인 앤터니 코즈먼은 ‘변명하기 어려운 실수’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미군 정보당국은 베트남전 당시의 경험을 무시하고 그런 불가능한 일을 시도했다”고 비판한다.

    이라크군 해산은 결정적 오판

    언어소통에 문제가 있고, 해당 지역의 정치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미국인이 독자적인 정보망을 구축하고 스스로 올바른 정보분석을 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후세인 시절 악명 높은 정보기관원들 가운데 ‘기술자’들이 독자적으로 꾸려가는 정보조직을 파트너로 삼아 정보망을 구축했더라면, 반미 게릴라 진압이 훨씬 손쉬웠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라크 전문가들이 이라크 안정과 관련해 미국의 결정적 실책으로 한결같이 꼽는 것은 다름아닌 2003년 5월 이라크 군 해산조치다. 사담 후세인의 친위부대인 특수공화국수비대(2만명 규모)는 그 정치적 성격 때문에 해산돼야 했겠지만, 나머지 이라크 군부대도 덩달아 해산한 건 문제가 있는 조치였다.

    그 무렵 이미 40만 이라크군은 공중분해 상태였다. 바그다드가 함락된 4월10일경 이라크 군인들이 영내에 남아 어슬렁거리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장교는 장교대로, 사병은 사병대로 각자 자신의 개인화기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일부는 수니 삼각지대에서 반미 게릴라로 변신했다.

    이라크 현지취재 때 만났던 이라크군 대령 출신의 함자 나짐 알마무리(44·자동차 수리점 경영). 그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바그다드에서 북동쪽으로 60km 떨어진 바쿠바시 외곽의 한 연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4월10일 바그다드가 함락된 뒤 사령부와 연락이 끊겼다. 우린 전쟁에 졌다고 판단해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만약 이라크군 해산령이 없었다면, 우리 직업군인들은 생계를 위해서라도 이라크 정부군으로 남아 미국의 이라크 전후 안정과 재건 과정에 참여해 사회 안정에 기여했을 것”이라 말했다.

    펜타곤의 오판은 미군과 연합군이 이라크군의 도움 없이도 이라크 저항세력을 제압할 수 있다고 여겼던 데서 비롯됐다. 그로 인해 미국은 반미 저항세력을 진압하는 데 동원할 이라크군조차 재조직하지 못한 채 지난 1년을 보냈다. CSIS 선임연구원 앤터니 코즈먼은 앞서 본 ‘변명하기 어려운 실수’란 보고서에서 “이라크인들로 구성된 보안병력이 이라크 치안을 독자적으로 꾸려나가려면 2006년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전망했다. 그때까지는 미군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분석이다.

    펜타곤이 이라크군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본격적인 양성에 나선 시점은 2004년 봄. 이라크 전역에서 유혈투쟁이 거세져 미군 사상자가 늘어나던 즈음이다. 그 과정에서 일부 이라크군은 미군이 걱정했던 대로 ‘충성도’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짧은 훈련과정을 거쳐 팔루자에 투입됐던 병력은 “같은 이라크인들끼리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도중에 되돌아갔다.

    그 무렵 상당수 이라크군과 경찰이 무단으로 근무지를 이탈했다. 펜타곤의 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2일부터 16일 사이 2주 동안 북부 이라크 지역(바쿠바, 티크리트 포함)의 탈영률은 30%, 바그다드와 인근지역은 49%, 중남부 이라크 지역(나자프, 알 쿠트 포함) 30%, 이라크 남서부 지역(팔루자 포함)의 탈영율은 무려 82%에 이르렀다. 지난 4월 팔루자 공세를 강화하면서 이라크인들로 구성된 이른바 ‘팔루자 여단’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상태다.

    팔루자 여단이 미군으로부터 넘겨받았던 800정의 AK-47 소총과 27대의 픽업 트럭은 팔루자 저항세력 손에 넘어갔다. 일부 군인들은 저항세력에 가담, 팔루자 주변을 지키는 미 해병을 공격하는 데 나섰다.

    민병대 해산 흡수 잘 될까

    알라위 총리의 이라크 임시정부 지휘권 안에 있는 이라크 보안병력들은 규모, 훈련의 질, 장비 면에서 반미 게릴라에 맞서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라크군의 낮은 사기도 문제다. 봉급이 낮은 데도 원인이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자신들을 ‘점령군인 미군의 하수인’이라고 비난해온 저항세력의 공격목표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이는 이라크 임시정부 관리들도 마찬가지. 저항세력은 그들을 친미 하수인이라 여기며 공격 목표로 삼았고, 지난 18개월 동안 모두 101명의 이라크 관리가 목숨을 잃었다.

    알라위 총리가 이끄는 이라크 임시정부는 미국의 도움을 얻어 병력 증원과 군사장비 증강을 추진중이다. 미 제101공수사단장 출신의 데이비드 페트라우스 중장이 지난 6월부터 새 이라크군 훈련을 총지휘하고 있고, 이라크 전역의 민병대를 정규 병력으로 흡수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현재 추산되는 이라크 민병대 숫자는 약 10만명. 이 가운데는 ‘페시 메르가’라 불리는 쿠르드족 민병대 5만명과 다와(Dawa)를 비롯, 이라크 각 정파들이 거느린 사설 무장요원들이 포함돼 있다.

    2004년 6월 미군 당국은 이라크 9개 정파로부터 2005년 1월까지 90% 이상 무장해제하기로 약속받았다. 완전 무장해제 합의 시점은 2005년 10월. 미군은 이들 민병대의 60% 가량이 이라크 보안군(군, 경찰, 쿠르드지방정부군 등)으로 변환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쿠르드 지역의 민병대나 다와 등이 과연 스스로 무장해제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이라크 전문가들은 사설 무장세력들이 이라크를 내전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군벌들의 존재가 한 국가의 진정한 통일과 민주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라고 지적되는 아프가니스탄과는 상황이 다르지만, 사설 무장조직이 허약한 친미 중앙정부의 골칫거리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녔다.

    현재까지 확보된 이라크 보안병력은 이라크 정규군 4만9000명, 경찰 18만명(일반경찰 8만8000명, 시설경비대 7만4000명 등)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군사훈련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반미 게릴라들을 진압하기엔 역부족이다. 새 이라크군은 경보병 수준이라 보면 된다. 이라크 보안병력은 필요한 무기의 40%, 차량 30%, 통신장비 25%만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문제점은 이라크 보안병력 재건을 위한 미국의 재정지원 속도가 느린 탓이기도 하다. 펜타곤 자료에 따르면 2004년 회계연도에 배당된 이라크 원조금액 184억달러 가운데, 보안병력 재건 관련 예산은 약 30억달러. 이 가운데 2억2000만달러만 투입됐다(7월 현재). 이라크군 재건과 관련, 펜타곤이 그리는 가이드라인은 “이웃 국가들을 군사적으로 위협하지 않고, 국내 치안에 기여하는 최소의 병력”이다.



    이라크전에 희생된 미군 수가 1000명을 넘어서자, 부시 미 대통령은 “희생된 모든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라크전을 완수해 궁극적으로 미국이 승리하는 길뿐”이라고 주장했다. 11월 미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부시 후보가 믿는 건 단 하나, 미국 유권자들의 맹목적인 애국심이다. 여러 여론조사 지표는 미국인 다수가 “공화당 부시후보가 민주당 케리 후보에 비해 ‘테러와의 전쟁’을 잘 이끌 적임자”라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폴 크루그먼 교수(프린스턴대 경제학)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부시는 9·11 테러에 대한 미국인의 공포를 자신의 재선을 위한 선거전략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미군이 과연 언제 이라크를 떠날 수 있느냐도 큰 관심거리다. 부시행정부는 이라크에 선거를 통한 합법적인 정부가 들어서는 2006년부터 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부시행정부는 미군을 이라크에서 철수시키는 ‘이라크 출구전략(exit strategy)’이 없다”고 비판한다. 2006년부터 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겠다는 공약은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의 득표전략상 나온 것일 뿐, 이라크의 불안정한 치안상황을 고려할 때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공화당 중진인 존 맥케인 상원의원은 “미국이 이라크에 군사적으로 적어도 10~20년 동안 개입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워싱턴의 분석가들은 이 의견에 대체로 동조하는 모습이다.

    한편, 미 네오콘 매파들의 속내는 (대선전략상 지금은 입을 닫고 있지만) 이라크 치안 안정을 빌미로 이라크 장기주둔을 바랄 가능성이 크다. 네오콘에게 있어서 이라크는 석유자원 확보는 물론이고, 이미 친미정권이 들어선 아프간과 더불어 이란을 협공하는 전진기지다. 더 넓게는 미국의 세계 지배 패권의 전략적 요충지다. 네오콘의 집합처이자 미 석유재벌의 우군이기도 한 미국기업협회(AEI)가 “이라크에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위기론을 증폭시키는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올 봄 들어 미군이 이라크 전역에 걸쳐 14개에 이르는 반영구적(enduring)인 군사기지를 세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미군의 장기주둔 가능성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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