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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 취재

‘제3의 性’ 여기자의 세계

사체부검 후 내장탕 점심, ‘취업’ 미끼로 포주 취재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제3의 性’ 여기자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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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드라마 제작자가 말했다. “여기자를 주인공으로 삼는 건 여러모로 유리하다. 어떤 분야의 남자주인공과도 만나게 할 수 있으니까.” 또 누군가 말했다. “여기자는 ‘기생’이다. 다양한 취재원과 만나 대화를 주고받고 정서를 교감할 수 있으니까.” 여기자들은 반발할지도 모르겠다.
  • “극도로 남성중심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제3의 性’ 여기자의 세계
“집창촌성매매 여성을 취재할 때였어요.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면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보험설계사인 친구의 고객 중에 성매매 여성들이 있었어요. 친구에게 그들과 술자리를 갖게 해달라고 부탁했죠. 그리고 저도 성매매 여성인 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일하면서 겪은 온갖 에피소드가 쏟아져 나오는데, 저도 어색하지 않게 구색을 맞추느라 고생했죠. 적당히 추임새도 넣어가면서…. 덕분에 생생한 기사를 쓸 수 있었지만 그때 만난 ‘동료’ 여성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월간지 4년차 기자)

“가축경매가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엉터리로 이뤄진다는 비판기사를 쓴 적이 있어요. 그 후 한동안 전화공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칼 쓰는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느냐’는 협박에 등골이 오싹해졌어요. 발신자 번호가 뜨지 않는 전화는 자동적으로 받지 않게 하는 이동전화 서비스에 가입했습니다.”(주간지 5년차 기자)

“한동안 회사에서 화주(火酒)가 유행했어요. 국장이 먹으라고 하는데, 여자라고 ‘빼고’ 싶진 않았어요. 꾹 참고 마셨는데, 불붙은 술이 입가로 흐른 거예요. 턱 부위를 크게 데었죠. 의사가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다쳤냐’고 묻더군요. 사실대로 말했더니 ‘무슨 회사가 그렇게 군기가 세냐’며 혀를 내두르더군요.”(일간지 2년차 기자)

“전화기를 두 개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100% 업무용이죠. 사회부에 있다 보니 기자임을 밝히지 않고 위장취재를 하기로 해요. 그때는 업무용 전화를 쓰죠. 그런데 1만원, 2만원씩 충전해서 쓰는 일명 ‘선불폰’이었어요. 대개 전화를 개통할 수 없는 신용불량자들이 사용하는 것인데, 충전하러 갈 때마다 무척 곤혹스럽죠. 이동통신사 직원들의 눈길이 묘하거든요.”(월간지 5년차 기자)

“경찰서를 돌며 수습기자를 할 때였어요. 캡(언론사 사회부 경찰팀장)이 사체 부검을 보고 오라고 지시했어요. 형사들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실에 들어갔는데, 포르말린 냄새가 지독하더군요. 사체의 표정 없는 얼굴, 갈라져 나온 내장, 식도에 걸린 짬뽕 국수가락…. 시체 같은 건 죽어도 못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시체를 ‘탐구’하려는 나 자신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그리고는 형사들이랑 내장탕을 먹으러 갔습니다.”(주간지 3년차 기자)

일반인이 생각하는 여기자상(像)은 흔히 ‘명예남성’과 ‘팜 파탈’ 두 가지 유형이다.

명예남성형은 척박하고 터프한 기자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성성을 완전히 버리고 남성과 똑같이 일한다. 선머슴처럼 짧게 자른 머리에 검은색 가죽점퍼와 청바지를 입고, 대부분 ‘노처녀’로 남성 못지않게, 아니 더 악랄하게 취재원을 ‘조진다’. 팜 파탈형은 이와 정반대다. 화사한 외모와 트렌치코트로 상징된다. 취재를 위해서라면 남성 취재원을 ‘유혹’하는 일을 비롯, 꽤 비윤리적인 일도 감당해낼 수 있다.

제3의 유형도 있다. 일에는 관심조차 없이 그저 기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채 연애와 결혼에만 열정을 쏟는 경우다. 로맨틱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다.

‘명예남성’도 ‘팜 파탈’도 아니다

하지만 세 유형은 모두 실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 90% 이상이 환상이다. 2004년 방영된 MBC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방송국 기자 이신영(명세빈 분)이 그나마 실제에 근접한다. 매일같이 데스크한테 ‘쪼이고’ ‘물 먹을까’ 전전긍긍하며, 아이템 찾기에 골몰하고, 좌충우돌하지만 일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 못지않은…. 물론 이신영처럼 항상 곱게 화장을 하고 하이힐에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채 작은 토드백을 들고 취재 다니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언론계에도 여풍(女風)이 거세게 불었다. 그 전까지는 각 언론사가 생색내듯 매년 1∼2명의 여기자를 뽑았지만, 이 무렵부터는 5∼6명을 뽑았다. 2000년을 넘어서서는 대다수 언론사가 수습기자의 절반 가까이를 여기자로 뽑았다. ‘중앙일보’는 여기자를 더 많이 뽑은 해도 있다. KBS의 경우 현재 여기자 수가 90여명에 이르고 금녀구역으로 여겨지던 정치부에도 5명의 여기자가 근무하고 있다.

한국외대 전진양 교수에 따르면 대한민국 최초의 여기자는 1920년 9월 ‘매일신보’에 입사한 이각경씨다. 당시 이씨의 직함은 ‘부인기자’였다(‘시사저널’ 1992년 9월17일자 전진양 교수의 글에 의한 것). 그 동안 최초의 여기자로 알려져온 최은희씨(1924년 ‘조선일보’ 입사)보다 4년 앞섰다. 고 최은희씨는 일제시대에 가장 고통받던 서민 여성들의 삶을 주로 취재한 선구적인 여기자이자 여성운동가였다. 여기자에게 주어지는 상인 ‘최은희 여기자상’은 최씨가 평생 절약해 저축한 원고료를 기금으로 1983년 제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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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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