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호

교육부-교육혁신위 갈등에 표류하는 ‘백년대계’

물 건너간 대선공약, 6修 끝에 나온 ‘대입 개선안’…

  • 글: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5-04-22 11:5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종잡을 수가 없다.”
    • 교육계 인사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공교육 정상화’ ‘참여와 자치 강화’라는 초기의 개혁과제는 자취를 감추고, ‘대학의 산업화’ 같은 경제논리만 강조되고 있다. 교육정책의 혼선 뒤에는 ‘이상주의’ 교육혁신위원회와 ‘현실주의’ 교육인적자원부의 거듭된 충돌이 있었다.
    교육부-교육혁신위 갈등에 표류하는 ‘백년대계’
    “교육혁신위원회는 교육정책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운용할 인프라를 갖추지 못했다. 핑크빛 이상만 있고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정책안을 주장함으로써 되레 교육부 정책의 발목만 잡았다. 두 주체가 시각차를 좁히려 노력했으나 정책방향을 잡기 어려웠다.”(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사가 무능하며 이기적이라고 전제한다. 그래서 교사별 평가를 기본으로 하는 무시험 대입전형의 도입을 두려워한 것이다. 교육부는 오랜 세월 방대한 기구를 유지해온 타성에 젖어 쉽게 변하려 들지 않는다.”(교육혁신위원회 관계자)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주도하는 두 기관의 관계자가 상대를 보는 시각이다.

    지난해 국립대 공동학위제, 국정교과서 검정제 폐지, 교육이력철 도입 등을 놓고 번번이 의견이 엇갈린 두 기관의 ‘파워 게임’은 일단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의 승리로 끝났다. 교육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가 마련한 일련의 개혁 ‘초안’들이 본회의에서 논의되지도 못한 채 교육부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것.

    오는 7월 2기 혁신위 출범을 앞두고 정부의 교육개혁 방향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획기적인 개혁이 기대되던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이 예상과 정반대로 가고 있어서다. 취임 초기 ‘공교육 바로 세우기’를 강조하던 노 대통령이 이제는 “대학도 산업”이라며 경제 부문의 논리를 교육정책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 혼선은 노무현 정부의 교육개혁 의지를 상징하는 혁신위가 대통령 직속기구로서 제 구실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교육정책 구현의 삼각편대인 교육부, 혁신위, 청와대가 정책 조율에 난항을 겪으며 교육개혁이 실종됐다는 분석이다.



    2003년 7월31일 혁신위는 교육정책의 입안과 집행을 독점할 만큼 비대해진 교육부의 권한을 견제하는 기구로서 힘찬 첫발을 내딛는다. 노 대통령은 당초 이 기구가 관료 주도의 교육정책 추진에서 비롯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고, 일선 교육주체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함으로써 교육개혁의 선봉장 노릇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혁신위의 인적 구성은 과거의 대통령 직속 교육자문기구들과 뚜렷이 구분된다. ‘중앙’의 교수들과 정당 활동 경력이 있는 인물들을 배제하고 ‘새 얼굴’들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노 대통령이 ‘회심의 카드’로 택한 인물이 당시 경남 거창 샛별중학교 교장인 전성은 혁신위 위원장이다. 한국 대안교육의 대표주자로 불리던 그는 1980년대부터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교육개혁에 대한 의견을 나눠왔다. 그의 발탁은 현장경험과 교육개혁에 대한 의지를 높이 산 것이었다.

    나머지 21명의 위원도 ‘지방대 출신 개혁세력’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경북대 교육학과 김민남 교수(전 혁신위 선임위원)를 비롯한 지방대 교수가 10명, 교장·교사 출신이 6명, 서울 소재 대학교수가 2명, 그 외 3명이 혁신위 위원으로 선발됐다.

    김영삼 정부의 교육개혁위원회는 한국교육개발원 출신 학자들과 서울 소재 대학의 교수들을 대거 배치했으나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김대중 정부의 새교육공동체위원회는 교사와 학부모를 그저 구색 맞추기용으로 끼워넣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대중 정부의 2기 교육자문기구인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는 인적 개발을 앞세워 산업·노동계의 주장을 대변하는 기구로 전락했다는 오명을 썼다. 이에 반해 대안학교 관계자, 현장의 교사와 학부모, 지방대 교수를 주축으로 한 혁신위는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출발했다.

    그러나 이렇듯 ‘순진한’ 계산은 결과적으로 혁신위를 무력화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초기 정책안을 마련한 이종태 전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위원은 초기 혁신위 인사의 한계를 이렇게 지적했다.

    “혁신위 인사의 암묵적 원칙 중 하나는 바로 ‘서울 명문대 출신 인사는 배제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교육정책을 주도해온 명문대 인맥을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인물들이 바로 중앙 네트워크를 거의 갖지 못한, 개혁 성향의 지방대 교수들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들은 정책 입안에 대해 감을 잡지도, 일반 교육계 인사들과 소통하지도 못했다. 개혁을 꿈꾸는 소수의 자기만족적 논의에 그치고 만 것이다.”

    혁신위의 ‘정치력’ 부재도 도마에 올랐다. 서울시교육청 안승문 교육위원(교육개혁시민연대 정책실장)은 “전성은 위원장은 훌륭한 교육자이지만,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 공통된 개혁 논의를 이끌어내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순수한 개혁의지와 도덕성만으로 ‘노회한’ 교육부 공무원들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 중심주의’는 극복돼야 하지만, 전국 네트워크가 없는 혁신위 위원들이 교육계 갈등을 조율하며 정책을 입안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 출범 전 대통령직인수위는 최종 보고서에서 ‘교육개혁과 지식문화 강국의 실현’이라는 국정과제를 설정하고 ‘참여와 자치를 통한 교육공동체 구축’ ‘공교육 내실화와 교육복지 확대’를 정책 실현의 핵심 기치로 내세웠다. 이 두 과제를 추진해갈 중심축으로 설정한 것이 혁신위였다. 인수위 보고서는 “교육혁신기구를 대통령 직속 법률기구로 상설화한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주요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교육부, 정당, 청와대와 협의해 교육개혁을 주도해야 할 혁신위는 기본적인 주요 정책과제조차 설정하지 못했다.

    혁신위는 출범 초기, 교육개혁을 위한 방대한 밑그림을 그렸다. 문제는 그 논의가 참여정부의 대선 공약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다음은 박도순 혁신위 선임위원의 회고다.

    “전성은 위원장을 비롯한 혁신위 위원들은 초·중·고등 공교육의 정상화를 목표로 교육의 전체 시스템을 바꾸길 꿈꿨다. 현행 교육제도의 완전한 수술 없이 개혁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수위는 대선 공약을 일단 완전히 제쳐놓았다.

    출범 초기 노 대통령은 혁신위에 대입제도 개선안과 사교육 대책을 만들어보라는 두 가지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혁신위는 ‘사교육 대책을 만들 의지도, 만들어낼 역량도 없다’며 대통령의 지시를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았다. 혁신위는 당면 이슈나 현안이 아닌, 학벌주의· 경쟁 타파 등을 위한 근본적인 제도 변화에 골몰해 있었다.”

    이렇듯 혁신위는 출범 후 독자 행보를 택했다. 중앙 집중에 따른 지방교육의 소외와 교육력 저하, 관료행정 중심 구조의 폐해로 인한 학교 단위의 교육기획력 상실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장기 발전 방안과 농어촌 교육, 실업교육 및 특수교육, 교과서 제도 등을 주요 과제로 설정한 것.

    인수위 시절 정책 작업에 참여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만중 대변인은 “혁신위가 초기에 설정한 과제는 취지는 좋았지만 노무현 정부의 주요 공약이나 인수위의 과제와 거리가 멀었고, 교육개혁세력과 국민의 요구에서 벗어난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개혁의 동력을 얻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국립대 공동학위제 논란

    혁신위와 교육부의 충돌이 가시화한 것은 안병영 교육부총리 체제가 들어서면서부터. 노무현 정부와 ‘코드’가 맞던 윤덕홍 교육부총리 시절엔 두 조직의 갈등이 거의 표출되지 않았다. 이는 두 조직의 정책 입안이 본격화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2003년 말 ‘안병영 교육부’가 출항하면서 두 조직의 진검승부가 시작됐다. 비대해진 교육부의 권한을 줄이는 것이 혁신위의 목표인 만큼 두 기관의 갈등은 일면 당연했다. 그러나 두 교육주체가 서로 불신하고 자기 주장을 고집함으로써 교육정책 운영은 난항을 겪었다.

    첫 충돌은 지난해 3월 혁신위가 국립대 공동학위 수여제 추진 계획을 밝히면서 불거졌다. 혁신위가 “대학교육 경쟁력 제고를 위해 서울대 등 전국 26개 국립대간 공동학위제를 도입하고 교수도 공동 선발해 3~5년 주기로 순환근무를 하게끔 하자”고 제안한 것. 이를 통해 중·고교 교육이 정상화하고, 지방대학이 발전하며, 학벌주의가 완화된다는 것이 혁신위의 논리였다.

    그러나 안 부총리는 이에 대해 “학벌주의는 타파해야 하지만, 좋은 대학에 가려고 노력하는 분위기는 권장해야 한다”며 “서울대 폐지를 전제로 한 국립대 공동학위 수여제는 시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올해 첨예한 쟁점으로 떠오른 교사평가제에 대해서도 교육부와 혁신위는 교사평가를 누가 하는지를 놓고 이견을 내놨다. 혁신위는 “새로 설립할 제3의 기관에서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교원평가 특별추진팀을 가동한 교육부는 “교육당국이 주도하는 교사평가제를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굳혔다. 논란 끝에 4월부터 시범운영되는 초·중·고 교원평가제는 능력개발형 평가체제로, 교육부 주도하에 학생·학부모까지 참여하는 다면평가 형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우선 결정된 상태다.

    교과서 검정제와 자유발행제를 놓고도 뚜렷한 시각차를 보였다. 교육부는 국어와 국사 과목 국정교과서를 폐지하고 검정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한 반면, 혁신위는 사전 통제 성격을 지닌 검정제 대신 자유발행 이후 사후 규제로 하는 견해를 표명했다. 혁신위가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주장하는 배경에는 ‘교사들이 교육기획을 할 수 있게 하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 국가가 주도하는 교육과정이 아니라 개별 교육주체의 특성을 반영한 교육기획력을 강조해 교육의 자율성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두 조직의 승패가 극명하게 갈린 것은 지난해 8월을 뜨겁게 달군 교육이력철 논란이다. 2003년 말 혁신위가 2008년도 이후 대입제도 개선안 마련을 위해 ‘대학입학제도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 교육부도 별도의 대입특위를 꾸려 입시안 마련에 나섰다. 두 기관의 관계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한 대입특위는 결국 혁신위가 입시 개혁의 핵심으로 제시한 수능의 자격시험화와 교육이력철을 통한 학생선발안을 모두 폐기했다.

    교육이력철이란 교사가 직접 교육과정을 구상하고 평가기준을 만든 뒤 이에 따라 학생의 성취를 기록하는 서류. 혁신위 안(案)대로라면 여기에는 해당 과목 점수뿐 아니라 학생이 수업시간에 보인 반응, 특수한 재능과 능력에 대한 종합평가가 면밀하게 기록된다. 수능은 자격시험으로 이용하고, 대학은 학생 개인의 능력·특기·인성 등 모든 사항이 기록된 이 서류를 통해 학생을 선발하게 하겠다는 것. 전국 단위의 한줄 세우기 경쟁체제를 개혁하겠다는 혁신위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혁신위 안(案)은 “교육이력철이 기존의 학교생활기록부와 다를 것이 없다”는 교육부의 반박에 밀렸다. ‘교장선출보직제와 학교자치 연대’ 김대유 공동대표(서울 서문여중 교사)는 “교육이력철이란 발상은 신선했지만, 혁신위는 교사평가의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현실적인 실천방안을 먼저 만들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초 대입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는 혁신위와 교육부 관료의 충돌을 몸소 겪은 인물. 이 교수는 평행선을 그리는 두 교육주체의 팽팽한 대립이 안타까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렇게 논의가 안 되는 회의는 처음 봤어요. 교육부와 혁신위 모두 교육기회 평등과 수월성 확보라는 같은 목표를 지향하고 있건만,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자기네 방법론이 옳다고만 주장하니…. 이러다간 교육정책을 ‘개악’하는 데 일조할 것 같아 얼마 안 돼 위원회를 나왔어요.”

    지난해 교육이력철 폐기가 결정된 뒤에는 수능등급제를 확정하는 과정에 갈등을 빚었다. “평가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수능 점수를 9등급으로 분류하고 1등급은 상위 4%로 제한하자”고 주장한 교육부와 ‘수능 5등급제, 1등급 상위 7%’를 내건 혁신위가 팽팽히 맞섰던 것.

    두 조직의 입시안 경쟁은 청와대가 사실상 교육부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혁신위의 완패로 끝났다. 수능의 비중을 줄여 9등급제로 전환하고 내신(학생부)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교육부 주도의 ‘2008 대입제도 개선안’이 6번 연기 끝에 지난해 10월 말 발표됐다.

    이 과정에 혁신위의 핵심 이론가로 교육이력철 구상을 주도한 김민남 혁신위 선임위원이 사표를 냈다. 김 교수의 사임과 함께 혁신위의 초기 개혁 색채도 흐려졌다. 김 교수의 후임으로 임명된 인물은 박도순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혁신위에서 유일한 서울 소재 대학교수인 그의 임명은 ‘비(非)서울, 개혁세력 중심으로 교육부의 아성을 무너뜨리겠다’던 초기 혁신위의 목표에서 분명 벗어난 것이었다.

    지난 1월 김진표 교육부총리 취임 이후 교육부와 혁신위는 아직은 표면적으로 갈등을 드러내지 않았다. 현재 혁신위는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실업고 중 특성화고교를 2004년 현재 64개에서 2010년까지 200여 개로 늘리고, 직업 전문교육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내 직업교육 혁신안’을 만들었다. 예산 확보 문제로 관계부처간 이견을 조율하느라 최종안 발표가 늦어진 상태.

    교육 분야의 사각지대로 분류돼온 직업교육을 활성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혁신위와 교육부가 이례적으로 공감해왔다. 교육관련 시민단체들은 “혁신위가 소외계층의 교육기회 확대에 관심을 갖는 것은 나무랄 수 없지만, 힘 빠진 혁신위가 정작 첨예하게 대립하는 교육 현안에 대해서는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념 대립에 지친 盧정부

    이렇듯 혁신위를 중심으로 한 참여정부의 교육정책 운영이 실효를 거두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교육공약을 만드는 데 참여한 한국교원대 엄기형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초·중등 공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비전 제시와 교육 리더십 확보가 부족한 것에 아쉬움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교육에 대한 청와대의 무관심을 반영하는 한 일화.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청와대에는 김영삼 정부나 김대중 정부 시절에 있던 교육 관련 수석 비서관조차 없었다. 교육부, 혁신위, 교육계 전반의 의견을 조율하고, 청와대의 교육철학을 전달하려면 관련 비서관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노 대통령은 처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책 난맥상이 거듭되자 지난해 4월 사회정책수석 밑에 교육문화비서관직을 신설했지만, 대학교수의 타이틀을 단 교육부 관료가 이 자리에 오면서 다양한 분야의 의견수렴이라는 본래 목적은 빛이 바랬다.

    한 교육계 인사는 노 대통령의 교육 리더십 부재에 대해 “인수위 초기부터 교원노조를 비롯한 여러 교육단체의 과잉 정치세력화로 인한 이데올로기 대립이 워낙 극심해서 노 대통령이 교육 부문에 대해 지레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됐고, 때문에 교육에 대한 관심도 멀어진 듯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노 대통령의 교육관은 그간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공교육 정상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5년 임기 동안 교육부 장관과 함께 가겠다”고 공언한 노 대통령이 이제는 경제관료 출신을 교육부총리 자리에 앉히고, 교육에 산업논리를 적극 끌어들이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로 인해 혁신위는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안승문 교육위원은 “과거의 교육개혁기구들은 비록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공고히 하는 등 교육개혁을 호도했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대통령의 지원에 힘입어 강력하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가령 김영삼 정부의 교육개혁위원회는 자문기구에 불과했지만 김 대통령의 확고한 지원 아래 정책 입안을 주도하면서 학교운영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나름의 실적을 남겼다.



    오랫동안 축적해온 노하우와 방대한 인력을 보유한 교육부가 혁신위와의 정책 대결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과거 대통령 직속 교육자문기구의 출현으로 인해 정책집행기관으로 전락할 뻔한 교육부가 절치부심 해왔다는 것. 다음은 ‘함께하는 교육시민의 모임’ 김명신 대표의 분석이다.

    “김영삼 정부의 교육개혁위원회는 ‘5·31 교육개혁안’을 발표하는 등 정책 연구와 입안에서 강력한 주도권을 쥐었어요. 그러자 교육부는 자기네 입지가 줄어들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처음으로 갖게 됐습니다. 이후 교육부는 교육정책 입안에서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인적·물적 인프라 확보에 주력해 왔어요.”

    상식적 인사, 열린 의사소통 필요

    그간 아이디어 생산에만 골몰해온 혁신위가 교육개혁의 적기를 놓쳤다는 것이 교육계 인사들의 중론. 그러나 지금이라도 처음 강조했던 ‘참여와 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교육 관계자들의 바람이다.

    ‘교장선출보직제와 학교자치 연대’ 김대유 공동대표는 “노무현 정부의 공약인 교육자치 문제는 혁신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학교운영위원회 민주화를 위한 학생회·학부모회·교사회의 법제화, 사학운영 민주화, 교장 임용제도의 다양화, 대학 서열구조 완화 등 국민에게 약속한 교육개혁과제 이행에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만중 전교조 대변인은 “혁신위의 재구성 문제는 노무현 정부 교육부문 시스템의 난맥상에 대한 진단과 종합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과제”라면서 “특히 정책기획위원회, 지방분권혁신위원회, 혁신위 등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 직속기구간 교육부문 과제에 대한 역할과 위상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교육시민단체들은 혁신위가 구상해온 정책 방향까지 매도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교원대 엄기형 교수는 “이제라도 이 정부의 교육정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교육정책의 두 주체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당면과제”라고 말한다.

    “혁신위의 역할은 교육정책의 큰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방향을 정책으로 만들어내려면 교육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혁신위는 교육부를 불신했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교육부는 타성에 젖긴 했지만, 현실적인 정책을 만들어내는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데 능하다. 혁신위의 이상을 설득하고 공유하도록 만든다면 정책수립이 보다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교육&학술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