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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교육혁신위 갈등에 표류하는 ‘백년대계’

물 건너간 대선공약, 6修 끝에 나온 ‘대입 개선안’…

  • 글: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교육부-교육혁신위 갈등에 표류하는 ‘백년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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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종잡을 수가 없다.”
  • 교육계 인사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공교육 정상화’ ‘참여와 자치 강화’라는 초기의 개혁과제는 자취를 감추고, ‘대학의 산업화’ 같은 경제논리만 강조되고 있다. 교육정책의 혼선 뒤에는 ‘이상주의’ 교육혁신위원회와 ‘현실주의’ 교육인적자원부의 거듭된 충돌이 있었다.
교육부-교육혁신위 갈등에 표류하는 ‘백년대계’
“교육혁신위원회는 교육정책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운용할 인프라를 갖추지 못했다. 핑크빛 이상만 있고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정책안을 주장함으로써 되레 교육부 정책의 발목만 잡았다. 두 주체가 시각차를 좁히려 노력했으나 정책방향을 잡기 어려웠다.”(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사가 무능하며 이기적이라고 전제한다. 그래서 교사별 평가를 기본으로 하는 무시험 대입전형의 도입을 두려워한 것이다. 교육부는 오랜 세월 방대한 기구를 유지해온 타성에 젖어 쉽게 변하려 들지 않는다.”(교육혁신위원회 관계자)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주도하는 두 기관의 관계자가 상대를 보는 시각이다.

지난해 국립대 공동학위제, 국정교과서 검정제 폐지, 교육이력철 도입 등을 놓고 번번이 의견이 엇갈린 두 기관의 ‘파워 게임’은 일단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의 승리로 끝났다. 교육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가 마련한 일련의 개혁 ‘초안’들이 본회의에서 논의되지도 못한 채 교육부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것.

오는 7월 2기 혁신위 출범을 앞두고 정부의 교육개혁 방향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획기적인 개혁이 기대되던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이 예상과 정반대로 가고 있어서다. 취임 초기 ‘공교육 바로 세우기’를 강조하던 노 대통령이 이제는 “대학도 산업”이라며 경제 부문의 논리를 교육정책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 혼선은 노무현 정부의 교육개혁 의지를 상징하는 혁신위가 대통령 직속기구로서 제 구실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교육정책 구현의 삼각편대인 교육부, 혁신위, 청와대가 정책 조율에 난항을 겪으며 교육개혁이 실종됐다는 분석이다.

2003년 7월31일 혁신위는 교육정책의 입안과 집행을 독점할 만큼 비대해진 교육부의 권한을 견제하는 기구로서 힘찬 첫발을 내딛는다. 노 대통령은 당초 이 기구가 관료 주도의 교육정책 추진에서 비롯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고, 일선 교육주체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함으로써 교육개혁의 선봉장 노릇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혁신위의 인적 구성은 과거의 대통령 직속 교육자문기구들과 뚜렷이 구분된다. ‘중앙’의 교수들과 정당 활동 경력이 있는 인물들을 배제하고 ‘새 얼굴’들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노 대통령이 ‘회심의 카드’로 택한 인물이 당시 경남 거창 샛별중학교 교장인 전성은 혁신위 위원장이다. 한국 대안교육의 대표주자로 불리던 그는 1980년대부터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교육개혁에 대한 의견을 나눠왔다. 그의 발탁은 현장경험과 교육개혁에 대한 의지를 높이 산 것이었다.

나머지 21명의 위원도 ‘지방대 출신 개혁세력’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경북대 교육학과 김민남 교수(전 혁신위 선임위원)를 비롯한 지방대 교수가 10명, 교장·교사 출신이 6명, 서울 소재 대학교수가 2명, 그 외 3명이 혁신위 위원으로 선발됐다.

김영삼 정부의 교육개혁위원회는 한국교육개발원 출신 학자들과 서울 소재 대학의 교수들을 대거 배치했으나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김대중 정부의 새교육공동체위원회는 교사와 학부모를 그저 구색 맞추기용으로 끼워넣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대중 정부의 2기 교육자문기구인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는 인적 개발을 앞세워 산업·노동계의 주장을 대변하는 기구로 전락했다는 오명을 썼다. 이에 반해 대안학교 관계자, 현장의 교사와 학부모, 지방대 교수를 주축으로 한 혁신위는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출발했다.

그러나 이렇듯 ‘순진한’ 계산은 결과적으로 혁신위를 무력화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초기 정책안을 마련한 이종태 전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위원은 초기 혁신위 인사의 한계를 이렇게 지적했다.

“혁신위 인사의 암묵적 원칙 중 하나는 바로 ‘서울 명문대 출신 인사는 배제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교육정책을 주도해온 명문대 인맥을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인물들이 바로 중앙 네트워크를 거의 갖지 못한, 개혁 성향의 지방대 교수들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들은 정책 입안에 대해 감을 잡지도, 일반 교육계 인사들과 소통하지도 못했다. 개혁을 꿈꾸는 소수의 자기만족적 논의에 그치고 만 것이다.”

혁신위의 ‘정치력’ 부재도 도마에 올랐다. 서울시교육청 안승문 교육위원(교육개혁시민연대 정책실장)은 “전성은 위원장은 훌륭한 교육자이지만,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 공통된 개혁 논의를 이끌어내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순수한 개혁의지와 도덕성만으로 ‘노회한’ 교육부 공무원들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 중심주의’는 극복돼야 하지만, 전국 네트워크가 없는 혁신위 위원들이 교육계 갈등을 조율하며 정책을 입안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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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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