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호

삼성과 검찰, 그 미묘한 관계

“대선자금 수사팀 ,‘이학수 구속·삼성 구조본 압수수색’의견 제시”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5-08-25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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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파일 연루 검사, 인사조치한다”
    • 남기춘 검사와 삼성의 氣싸움
    • “잘나가는 검사 상당수가 ‘삼성 장학생’”
    • 검찰 인사가 삼성 인사에 영향?
    • 각종 연고, 언론과 검찰 내부 평가 기준으로 만든 ‘검사 명단’
    • 검찰 관계자, “주식·전환사채 편법증여 적극 수사해야”
    삼성과 검찰, 그 미묘한 관계
    “이미삼성이 국가기관을 접수했다. 삼성의 비정상적인 지배구조가 가능한 것은 정부가 눈감아주기 때문이다. 국세청도 금감원도 검찰도….”

    삼성에 비판적인 한 변호사의 탄식이다. 삼성의 위력을 새삼 실감케 한 이른바 X파일 사건은 정(政)경(經)언(言) 유착관계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X파일에 따르면 삼성은 정치권의 협박에 의해 마지못해 자금을 건넸다기보다는 대통령후보들을 선별 지원하는 등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그늘’과는 딴판으로, 삼성은 국부(國富) 창출의 일등공신으로 한국경제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삼성의 상품 가치는 세계 21위이며 지난 한 해 동안 삼성전자 한 기업이 벌어들인 돈만 해도 11조원에 이른다. 10대 기업에서 차지하는 매출과 순이익 비중은 각각 30%가 넘는다. 경제 기여도에 비례해 사회 전반에 대한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정치 문화 교육 스포츠 등 삼성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영역은 거의 없다. 우리 사회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키워드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대한민국에서 삼성과 더불어 공화국 소리를 듣는 또 하나의 집단은 검찰이다. 검찰의 힘은 수사권과 기소권에서 나온다. 검찰이 우리나라 권력기관 중 가장 힘이 세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청와대의 권력은 실속이 없어졌고, 군사독재정권 시절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던 국정원(안기부, 중앙정보부)과 기무사(보안사)의 위세는 한풀 꺾인 지 오래다. 탄탄한 정보력을 자랑하는 경찰은 검찰의 지휘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삼성과 검찰, 두 ‘공화국’ 중엔 어느 쪽이 더 셀까.



    “언제부터인가 삼성의 막강한 로비력에 검찰이 밀리는 형국이다. 단지 수사권이 없을 뿐이지 삼성의 가공할 정보수집력, 인맥과 자금력은 검찰을 압도하고 있다.”

    검찰 특수통 출신인 최용석 변호사의 조심스러운 분석이다. X파일 사건은 바로 이런 삼성과 검찰 관계의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돈이 전달됐는지 여부를 떠나 삼성의 고위 임원과 언론사 사주가 전현직 검찰 고위간부들의 이름을 꼽으며 ‘떡값’ 액수를 논의하는 광경은 놀랍기만 하다.

    MBC 보도에 따르면 X파일 녹취록(1997년 9월 이학수 삼성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나눴다는 대화)에 등장하는 전현직 검찰간부는 모두 10명으로 그중 실명이 언급된 사람은 5명이다. 대다수 언론이 이 숫자대로 보도했지만, ‘조선일보’는 최근 그 대상자를 7명으로 수정 보도했다.

    “검찰 최고의 엘리트들”

    ‘신동아’가 입수한 X파일 녹취록에도 10명이 아니라 7명이 등장한다. 그중 실명이 거론된 사람은 4명. 4명 중 당시 현직 검찰간부는 법무부 모 고위간부, 모 지청 차장, 모 지검 부장 3명이다. 법무부 고위간부는 나중에 장관을 지냈다. 나머지 두 사람은 현재 검찰 고위직에 몸담고 있다. 4명 중 유일한 전직인 모 변호사는 과거 정권에서 장관을 지냈다.

    그밖에 녹취록에는 직책만 언급됐으나 누군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세 사람이 있다. 당시 모 지검장, 모 지검 차장, 대검 모 간부가 그들. 이중 대검 간부는 아직 현직에 있다.

    7명 중 한 명을 빼고는 모두 서울의 명문 K고 동문이다. 지방 명문고 출신인 나머지 한 명은 장관을 지낸 모 변호사의 친척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7명 중 4명은 요직으로 꼽히는 법무부 모 부서장을 역임했다. 이들은, 모 지검장의 표현대로라면 “검찰 주류인 K고 출신 중에서도 가장 잘나갔던 검사들”이다. 모 지청장도 이들에 대해 “검찰 최고의 엘리트들”이라며 “그만한 인재가 없다. 다들 실력도 좋고 명망이 높던 사람들”이라고 평했다.

    녹취록에 나오는 금품 액수는 500만원(두 사람에 대해 언급), 2000만원, 4500만원, 5000만원이다. 이중 2000만원과 5000만원은 ‘배분용’이다. 녹취록엔 ‘자기도 쓰고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주라’는 의미의 대화가 담겨 있다. 또 겹치는 사람이 없도록 조율하는 내용도 있다. 말하자면 ‘아무개는 내가 만나 건넬 테니 따로 할 필요 없다’는 뜻이다.

    녹취록엔 또 전년에 전달했다는 ‘떡값’ 액수도 언급돼 있다. 이 얘기를 한 사람은 ‘떡값’ 액수를 전년보다 1000만원 줄이자고 제안한다. 검찰 간부들에 대한 ‘떡값’ 전달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 관행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모 검사장을 언급하며 지금(추석)은 하지 말고 연말에 하는 게 좋겠다는 취지로 말한다. ‘떡값’이 명절뿐만 아니라 연말에도 전달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아무개한테 얼마를 줘서 (뭔가를) 정리하겠다’는 뜻의 표현이다. 이에 대해 특수통으로 분류되는 검찰의 한 고위간부는 “‘정리한다’는 표현은 (삼성이) 연루된 사건을 해결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대상자들에게 확실히 주자’는 의미로도 읽히는 부분이다.

    녹취록에 등장하는 전현직 검찰간부 중 일부는 “절대 돈을 받은 적이 없다”며 억울해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신망이 두텁고 평판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현직 모 고위간부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여기는 검사가 적지 않다. 서울 K고 인맥이 아닌 그가 포함된 것에 대해 검찰 고위직을 지낸 친척 형인 모 변호사 때문이라는 동정론도 있다. 대검의 한 간부는 “친척간인 두 사람은 홍씨 집안과 친척관계”라며 “인맥이라기보다는 개인적 친분 차원에서 거론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8월3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X파일 녹취록에 등장하는 전현직 검찰간부 10여 명을 특가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수뢰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수사는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수뢰죄 적용도 힘들지만 공소시효도 거의 지났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검 중간간부는 “아무리 봐도 뇌물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공소시효는 물론 징계시효도 지났기 때문에 감찰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 검사들은 “‘떡값’은 대가성이 없는 돈”이라며 “지금이야 문제 삼지만 당시만 해도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고 대상자들을 옹호하기까지 했다.

    그렇긴 해도 검찰이 이 문제를 그냥 덮어버리기엔 여론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다. 대검 고위간부는 “녹취록에 등장하는 검사들 처리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며 “어떤 법을 적용하느냐가 관건인데 판단이 쉽지 않다”고 곤혹스러워했다. 대검 중간간부는 “진위를 떠나 적절치 않은 행위가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며 “여론 때문에 그냥 넘어가지는 못할 것이다. 수사나 감찰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사실관계는 확인할 듯싶다”고 검찰 분위기를 전했다. 모 지방검찰청의 중견간부는 “공소시효 때문에 수사도 감찰도 안 된다면 할 수 있는 건 인사조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떡값’의 진실은?

    X파일 사건이 터진 직후 참여연대는 이학수 부회장과 홍석현 주미 대사를 특경가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혐의로 고발했다. 만약 이 부회장의 혐의가 인정된다면, ‘2002 대선자금’ 수사에 이어 다시 한번 이 부회장과 이건희 회장과의 관계가 세인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대선자금 수사 당시 대선후보들에게 금품을 전달한 것에 대해 자신의 독자적인 집행이었다며 이 회장이 사건에 연루되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했다.

    그런데 녹취록에는, 대선자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안 되는 검찰 떡값을 주는 것도 이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다. 만약 녹취록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부회장은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큰돈은 임의로 쓰고 작은 돈은 회장의 지시를 받아 사용했다는….

    이학수 부회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여러모로 인연이 있다. 먼저 부산상고 동문으로 이 부회장이 1년 선배다. 나이도 같다. 똑같이 1946년생이다. 또한 두 사람 다 경남 출신이다. 대선 전 노 대통령이 어느 자리에선가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으로 이 부회장을 꼽았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그는 2002년 대선 당시 여야 정치권에 불법 정치자금 385억원을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는데, 지난 5월 석가탄신일 특사 때 사면 복권됐다. 385억원 중 한나라당에 건너간 돈은 340억원(채권 300억원), 노무현 캠프에 전달된 돈은 30억원(채권 15억원)이다. 나머지 15억원(채권)은 김종필 당시 자민련 총재에게 건네졌다.

    검찰은 ‘대선 당시 정치권에 제공한 돈은 회사 돈이 아니라 회장 개인 돈으로, 회장의 지시 없이 부회장이 임의로 사용했다’는 삼성측 주장을 받아들여 이건희 회장에게는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이에 대해 특수통인 모 검찰간부는 “대선자금 수사 때 삼성을 봐준 면이 있다”고 ‘삼성 봐주기’ 의혹에 공감을 나타냈다. “오너 모르게 그런 용도로 돈을 썼다는 건 상식에 어긋난다”는 것. 하지만 이 간부는 “증거법상 한계로도 볼 수 있다”며 “고문을 허용한다면 모를까, 당사자(이 부회장)가 끝까지 부인하는 데야 어쩌겠나. 다른 압박수단이 있던 것도 아니고. 아마도 (이 회장의)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수사팀의 ‘고충’을 헤아리는 듯한 얘기를 덧붙였다.

    ‘당신은 누구 편이냐’

    삼성과 검찰, 그 미묘한 관계

    ‘삼성 봐주기 수사’ 논란에 휩싸인 검찰.

    대선자금 수사 당시 삼성은 이 회장이 검찰에 불려가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안대희 현 서울고검장이 이끌던 당시 대검 중수부가 강경한 태도를 견지한 까닭이다. 삼성 경영진에 대한 변호는 국내 최대 법무법인인 김&장이 맡았다. 김&장 삼성 변호인단에는 이종왕 변호사가 포진해 있었다. 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실장(사장급)인 이 변호사는 안대희 중수부장, 노무현 대통령과 사시 17회 동기로, 노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시절 친하게 지낸 동기모임이라는 이른바 ‘8인회’ 회원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에서 삼성 관련 수사를 맡은 부서는 대검 중수부 1과였다. 당시 중수1과장이던 남기춘 현 서산지청장은 강직한 성품에 우직한 수사를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안대희 고검장이 원칙주의자라면 남기춘 지청장은 강골이다. 검찰 정보통인 한 변호사는 “삼성은 남기춘 검사를 의식해 이학수 부회장이 조사받으러 갈 때 남 검사의 사시 동기인 김용철 변호사가 수행케 했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남 검사가 딱딱하게 나오는 바람에 망신을 당했다”고 귀띔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간부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김 변호사에게 확인 결과 이는 사실이었다.

    “일종의 해프닝이었다. 이학수 부회장이 출두할 때 함께 갔는데, ‘선임계를 안 냈으면 들어오지 말라’고 하더라. 그래서 못 들어갔다. 나는 삼성 소속 변호사일 뿐이지 사건을 수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 검사 스타일이 그렇다. 좀 세련되지 못하고 수사방식이 매끄럽지 못해서 그렇지 괜찮은 검사라고 생각한다. 검사가 원칙대로 수사하겠다는 걸 누가 막을 수 있겠나.”

    광주일고 출신인 김 변호사는 1997년 8월 삼성에 법무팀 이사로 입사했다. 현직 검사가 삼성 임원이 된 첫 번째 사례다. 1990년대 중반 전두환 비자금 수사에 참여한 특수통으로 쌍용그룹의 ‘사과상자 비자금’을 찾아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삼성은 김대중 정부 때 그의 호남 인맥을 적극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삼성에서는 검찰 조사 문제를 두고 법무팀과 재무팀 사이에 견해 차이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간부의 전언.

    “삼성은 수사 초기 김 변호사를 활용하려다 실패했다. ‘검찰과 잘 얘기해보라’고 김 변호사를 협상 테이블로 내보내면서 그에게 사실관계를 정확히 얘기해주지 않았다. 검찰은 김 변호사에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왜 나왔느냐’ ‘당신이 대표성이 있냐’고 핀잔을 줬다. 회사로 돌아간 그는 경영진에 ‘사실대로 빨리 털어놓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가 ‘당신은 누구 편이냐’고 공격당했다고 한다. 양쪽에 치인 것이다. 그 사건 이후 삼성 내에서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고 한다. 지난해 그가 삼성에서 퇴사한 배경엔 그런 사정이 있다.”

    실제로 구조본 법무팀장(전무)으로 이학수 부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던 김 변호사는 그 일로 ‘조직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비판을 받은 후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된 업무에서 배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김 변호사는 ‘검찰 수사에 협조할 건 협조하면서 타협해야 한다’는 유화론을 폈다. 반면 이 사건을 수임한 변호인단은 ‘강공’을 주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끝까지 버티고 피해야 한다는 것. 결과적으로는 변호인단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이 부회장이 불구속 기소되는 선에서 수사가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외국에 머물던 이 회장은 조사 한번 받지 않았다. 삼성으로서는 선방이었다.

    “옷 벗고 외국 나갈 생각도”

    이와 관련, 당시 수사팀이 상부에 ‘이학수 구속, 삼성 구조본 압수수색’을 건의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얘기가 있어 흥미를 끈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수사팀은 상부의 삼성 처리방침에 반발했다”며 “이학수 부회장을 구속하고 삼성(구조본)을 압수수색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위에서 허락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철 변호사에게 확인한 결과 이 검찰 간부의 얘기는 대체로 사실인 듯싶었다. 김 변호사는 다른 질문에 대해서는 거의 입을 닫았지만 이 문제만큼은 자신이 아는 대로 설명해줬다.

    “남기춘 검사가 밀어붙였던 건 맞다. 그는 끝까지 ‘이학수 구속’을 주장했다. 수사팀이 압수수색을 하려 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남 검사가 강공을 폈던 건 삼성(구조본) 사람들이 다 안다. 그가 사시 동기였기 때문에 그게 나한테는 나쁜 영향을 끼쳤다.”

    남기춘 서산지청장은 이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삼성 수사팀에 속했던 한 검사는 “무슨 뜻으로 물어보는지는 알겠는데, 당시 일에 대해 외부에 얘기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고 에둘러 답변했다. 대선자금 수사를 지휘한 안대희 서울고검장은 휴가중이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지난해 봄 대선자금 수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검찰 주변에는 남 지청장이 수사 막바지에 삼성 처리와 관련해 지휘부와 갈등을 빚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검찰 간부는 “의사결정 과정에 수사팀과 지휘부의 의견이 다를 수 있다”며 “내가 듣기로 남 지청장은 그때 무척 괴로워하며 옷 벗을 생각까지 했다. 훌훌 털고 외국에 나가고 싶다고도 했다”고 전했다. 남 지청장은 이에 대해서도 “내가 대답할 성질의 질문이 아닌 것 같다”고 비껴갔다.

    대검 중수부에서 이학수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 구속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검찰의 처분을 무조건 비판할 수만은 없다. 이와 관련, 수사통인 검찰 간부의 의견이 귀를 잡아끈다.

    “재벌기업의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수사에는 상반된 두 시각이 있다. 하나는 기업을 피해자로 여기는 시각으로, 가급적 기업을 보호하는 쪽으로 수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상 뇌물을 준 쪽은 구속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런 논리를 뒷받침한다. 다른 하나는 정의를 세우는 것이 우선이라는 시각이다. 나 같은 사람의 생각이다. 대선자금 수사 당시 청와대를 비롯해 사방에서 경제 걱정을 했다. 재벌을 수사하면 기업이나 경제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하는데, 사실 오너가 불안한 것이지 기업이나 경제가 불안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차피 이건희 회장을 기소하지 못할 형편이었다면 ‘총대를 멘’ 이학수 부회장이라도 구속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정경유착 범죄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에서라도…. 그랬다면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을지 모른다. 물론 나라면 그렇게 했을 거라는 거지, 그 길만이 옳다는 건 아니다.”

    “‘삼성 장학생’ 소리 듣는다면 영광”

    X파일 사건 이후 검찰 주변에서는 ‘삼성 장학생’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나돈다. 말 그대로 삼성에서 관리하는 검사라는 뜻이다. ‘삼성 장학생’은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일까. 만약 사실이라면 어떤 식으로 관리하는 것일까. 먼저 검사들의 얘기부터 들어보자.

    “‘삼성 장학생’ 얘기가 나올 만도 하다. 삼성에 근무하는 변호사들이 검찰 근무 연고를 바탕으로 검사들에게 접근하는 게 사실이다. 나만 해도 같이 식사도 하고 때로 골프 초청도 받았다. 나는 물론 ‘삼성 장학생’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요즘 풍토에서 ‘삼성 장학생’ 소리를 듣는다면 영광스러운 일 아닌가.”(서울중앙지검 간부)

    “상당수 있을 것이다. 삼성과 가까운 검찰 간부들이 후배들을 개인적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보인다.”(지방 지청장)

    “솔직히 이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 요즘 ‘우리는 관리도 못 받냐’는 농담을 하곤 한다. 그런 연결고리를 끊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대검 간부)

    “X파일 내용만으로 삼성이 검사들을 관리한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삼성의 조직적인 관리라기보다는 학연에 따른 친분관계가 아닌가 싶다.”(지방 지검장)

    “삼성에 근무하는 지인이 몇 명 있긴 하지만, 평소 연락도 잘 안 한다. 그런데 검사장 승진 때 삼성에서 집으로 난을 보냈는데, 이건희 회장 명의더라.”(수도권 지검장)

    검찰 밖에서는 이보다 훨씬 구체적인 얘기가 나돈다. 삼성 사정에 밝은 한 법조계 인사는 ‘삼성 장학생’의 실체에 대해 “당연한 걸 왜 묻나. 다 아는 얘기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에 따르면 ‘삼성 장학생’은 특별한 현상이 아니라 일반적인 현상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심지어 이런 말도 했다.

    “‘삼성 장학생’은 검찰은 물론 국세청, 언론에도 있다. 또 대한민국 국회의원 중 삼성 돈 받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나. 잘나가는 검사 중 상당수가 ‘삼성 장학생’이라고 보면 된다. 명절이나 승진 때 인사하는 건 기본이다.”

    삼성 주변에서는 “임직원의 인적 네트워크가 워낙 잘 구축돼 그룹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나서지 않더라도 저절로 관리가 된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인적 네트워크와 관련, 삼성의 고위간부는 “차장급 이상 간부는 해마다 한 차례씩 각계 주요 포스트에 있는 지인의 인적사항을 일정한 양식의 리스트에 적어낸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지인의 생일이 닥치면 상부에서 연락이 와 ‘선물’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고 한다. 당사자가 동의하면 보내주는데, 지인의 직위나 직급에 따라 보내는 사람의 명의가 다르다. 보통이면 팀장, 주요 인물이면 사장, 거물급이면 회장 명의로도 보낸다는 것. 반면 승진이나 경조사는 본인이 챙겨 위에 알린다. 그러면 회사 차원에서 ‘성의’를 표시한다고 한다. 이 간부는 “검사들의 경우 구조본 법무팀에서 관리한다”며 “검사장급 이상이면 회장 명의로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망 총동원

    삼성과 검찰, 그 미묘한 관계

    MBC가 최초 보도한 X파일 녹취록 사본.

    검찰 고위간부는 삼성의 검찰 인맥 관리와 관련, “내가 알기로 돈을 주는 경우는 드물다”며 “X파일 녹취록에 나온 사례는 예외적인 것”이라고 의문을 표시했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삼성 주변의 얘기를 취합하면 돈보다는 주로 상품권이나 캐러비안베이 입장권, 콘도 이용권 등 뇌물 성격이 약한 것을 건넨다. 골프 부킹이나 삼성병원 검진·입원시 편의를 봐주는 등의 가벼운 혜택도 있다.

    위 검찰 간부는 이에 대해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이해해야지 그것이 마치 검사들의 일반적인 모습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재벌기업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검사도 많다.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체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그 회사에 몸담은 지인이 밥을 산다거나 골프를 치자고 할 때 나 같은 경우 ‘당신 회사 돈으로 하는 것이라면 싫다’고 거절한다. 물론 그런 접대를 싫어하지 않는 검사도 있다. 검사들의 해외연수 때 삼성 현지 주재원이 도움을 준다는 얘기도 있던데, 나도 연수를 다녀왔지만 현지에서 삼성 직원의 코빼기도 본 적이 없다.”

    삼성 관련 정보가 많은 모 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 인사가 삼성 인사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검찰 간부 인사에 따라 임원 임기가 연장되거나 ‘죽은’ 임원이 살아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어떤 임원이 아는 사람이 대검 중수부장이 되면 그 임원의 임기가 연장된다. 알다시피 삼성의 임원 연봉은 억대~수십억대다. 연임하면 그만한 수입이 재보장되는 것이다. 그러니 ‘목숨 걸고’ 뛰는 것이다.”

    삼성의 막강한 정보력은 바로 이런 끈끈한 인적 네트워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삼성의 정보 수집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정보세계’에서 상식이다. 특정 사건이 생기면 삼성이 검찰의 동향을 누구보다 신속하게 파악하고 때로 수사 줄거리까지 입수한다는 것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수사정보에 관한 한 언론사보다 삼성이 빠르다는 것도 오래 전부터 언론계에 나돌던 말이다.

    대부분의 대기업이 그렇지만, 특히 삼성에서는 모든 사원이 정보요원이라는 말이 있다. 강제사항은 아니지만 사원들은 기자들처럼 평소 일상적인 정보 보고서를 제출한다. 임원급 이상의 경우 자기 인맥에 관한 정보를 ‘의무적으로’ 보고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기업정보에 밝은 한 변호사의 말이다.

    “삼성 가족이 20만이다. 이들이 다 직간접으로 정보를 수집한다면 그 양이 얼마나 되겠나. 거기다 각국에 진출한 해외지사를 통해 해외정보도 수집한다. ‘중앙일보’에서는 고급정보가 흘러들어온다. 외곽조직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 양도 만만찮다. 검찰, 언론, 국세청 등에 있는 ‘삼성 장학생’들을 통해 양질의 정보가 수시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삼성이 ‘관리’한다는 검사는 몇 명이나 될까. 법조계와 삼성 주변을 취재하는 과정에 ‘검사 명단’이 있다는 삼성 관계자의 증언을 접할 수 있었다. 삼성 간부들과의 학연·지연 등 각종 연고와 언론과 검찰 내부 평가 등을 고려해 만든 명단으로 기수별로 몇 명씩 포함돼 있는데, 주로 부부장급 이상 간부라고 한다.

    삼성이 검찰 인맥관리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는 현직 검사를 꾸준히 영입하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참여연대 자료에 따르면 삼성과 인연을 맺은 법조계 출신 인사는 모두 59명. 그중 검사 출신이 28명으로 가장 많다. 그밖에 판사 22명, 변호사 6명, 헌법재판소 재판관 출신이 3명이다.

    “‘콜’ 하면 갈 사람 많다”

    특기할 만한 것은 최근 들어 현직 검사를 영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에서 나오자마자 입사한 이들은 예외 없이 상무급 이상의 특급 대우를 받고 있다. 이른바 세풍(稅風)수사를 이끌었던 서우정 전 서울지검 특수1부장의 경우 부사장으로 입사했다. 적게는 수억원대에서 많게는 수십억원대 연봉에 일부는 스톡옵션까지 받는 것으로 알려진 그들이 삼성의 검찰 인맥 형성 및 대(對)검찰 정보력 강화에 어떻게 기여할지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외부 인사 영입은 어느 기업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삼성처럼 현직 검사가 몰리는 기업은 없다. 오로지 삼성만이, 삼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올해 처음으로 현직 검사(부장검사급)를 영입한 모 재벌기업의 간부는 “검사를 영입해보니 삼성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겠더라. 겨우 한 명인데도 검찰 인맥이 쫙 형성되더라”고 털어놓았다.

    현직 검사의 삼성 진출 현상에 대해 검찰 내에선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시대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추세다. 서울중앙지검 중견간부는 “현직 검사를 그대로 갖다 쓰는 것은 순수하게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기업에 대한 검사들의 인식이 바뀐 데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긍정적 시각에서는 기업에 들어가 국익 창출에 기여한다는 점, 자신의 상품가치를 평가받는다는 점, 정부 기관보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더 좋다는 점, 공직보다 융통성이 있고 장래 발전성이 있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반면 부정적인 시각으로는, 기업은 범죄 가능성이 상존하는 잠재적 피의자이므로 수사기관에 몸담았던 사람이 들어가기에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에 지나친 윤리의식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의 검사 영입을 부정적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지금 삼성에서 ‘콜(call)’ 하면 갈 사람 많다. 안 불러줘서 그렇지.”

    검사 신분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고액 연봉과 스톡옵션, 복지 혜택…. 이 간부가 꼽는 삼성행의 매력이다. 다만 ‘바람막이’로 활용될 경우 효용가치가 떨어지면 퇴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모 지청 고위간부는 “얼마 전 삼성측으로부터 괜찮은 검사를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부장급 이상은 부담스럽다며 부부장급으로 대상을 국한했는데, 나중에 슬쩍 “혹시 직접 오실 생각은 없냐”고 떠보더라는 것.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어 거절했다”는 이 간부는 “삼성에서 부를 때 검사들이 쉽게 응하는 데는 경제적 이유가 크다”고 말했다.

    “이것저것 다 합하면 연 수입이 열 배쯤 차이가 난다고 한다. 나올 때도 보상이 있다. 삼성에 몸담았던 모 변호사가 고액 연봉과 스톡옵션 등으로 수십억원을 모았다는 소문도 있다. 다른 변호사들이 허탈해하더라. ‘돈 쓰는 품이 다르더라’며.”

    대검 관계자가 전하는 검찰 기류는 ‘심각’하다. 그에 따르면, 예전엔 기업체에 간다고 하면 만류했는데 요즘은 다들 축하해주는 분위기라는 것. 특히 6~7년차 이하의 검사들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경제적인 문제와 더불어 조직에 대한 실망감, 검사직에 대한 소명의식과 긍지가 약해진 점 등이 주된 원인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분석이다.

    검사의 삼성행을 뭐라 할 수는 없다. 검사에게도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왠지 개운치는 않다. S검사, L검사 등 삼성 관련 수사를 했던 검사가 옮겨간 경우엔 더욱 그렇다. 대검 관계자에 따르면 이는 공직자윤리법 취업제한규정의 허점이기도 하다. 국세청 등 일반 행정기관 종사자들은 퇴직 후 취업제한을 받는 데 비해 수사기관 종사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규정이 없다고 한다. 수사통인 대검 고위간부는 “삼성으로 가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모 검사처럼 삼성과 관련된 수사를 하다가 옮겨간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의 지속적인 검사 영입은 삼성과 검찰의 유착의혹을 부추기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참여연대는 삼성 관련 사건 수사를 맡았던 검사들과 삼성에 근무하는 검사 출신 임원들과의 학연·지연·근무연을 분석한 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수사는 의지다”

    삼성을 대상으로 한 고소고발사건이 기소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검찰이 삼성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비판의 주요 근거로 거론된다. 올해 들어서만 네 건의 사건이 무혐의 처리됐다. 삼성 SDI 부당노동행위 고소사건, 삼성 SDI 노동자 불법 위치추적 고소사건, 이재용씨의 삼성생명 계열사 주식 헐값 인수 고발사건, 2002년 대선 관련 재벌총수 정치자금법위반 고발사건 등이 그것이다. 그에 앞서 삼성전자 계열사 주식 헐값매각 고발사건(2004), 5대 재벌 부당내부거래 고발사건(2004), 삼성 SDS BW(신주인수권부 사채) 저가발행 고발(2000) 및 고소사건(2001)도 하나같이 무혐의 처리되거나 각하됐다.

    삼성 관련 형사사건 중 검찰이 기소한 것으로는 이재용씨에 대한 에버랜드 CB(전환사채) 저가발행 고발사건이 유일하다. 2000년 5월 법학교수 43명이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에버랜드 임원들을 배임죄로 고발한 이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2003년 12월 분리기소로 마무리됐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지검 특수2부는 이건희 회장 부부에 대해서는 참고인중지 결정으로 사실상 수사대상에서 배제하고, 허태학 에버랜드 전 사장 등 일부 임원만 기소함으로써 ‘꼬리 자르기식 기소’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게다가 2004년 6월, 대선자금수사 때 삼성을 ‘괴롭힌’ 남기춘 검사가 특수2부장으로 부임한 직후 사건이 금융조사부로 넘어가 또 다른 의혹을 낳았다.

    검찰이 삼성 관련 사건들을 무혐의 처분하면서 내세운 이유는 이렇다. ‘증거가 없다’ ‘범인을 찾기 힘들다’ ‘경영상 불가피했다’ ‘고의성이 없었다’…. 이에 대해 검찰 특수통 출신 변호사는 “논리는 만들어내기 나름”이라며 “수사는 의지다. 검사가 어떤 의지를 가졌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꼬집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박근용 팀장은 “삼성 수사의 본질적인 문제는 검찰이 처음부터 수사에 대한 부담을 안고 관련법을 소극적으로 적용해 아예 법원의 판단을 구할 기회조차 차단한다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언급한 삼성 관련 사건 중 4건이 참여연대가 고발한 사건이다. 박 팀장은 “재벌기업들 중 유난히 삼성을 물고 늘어지는 이유가 뭔가”라는 질문에 “유난히 삼성이 지배구조 승계와 관련해 무리수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삼성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다. 청와대 관계자도 “현재 삼성의 유일한 관심사는 이재용 후계구도 안착”이라고 단언했다.

    삼성과 검찰, 그 미묘한 관계

    언론개혁국민행동 회원들이 7월23일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앞에서 X파일과 관련,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주미 대사 구속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삼성이 최근 공정거래법 11조(계열 금융기관의 의결권 제한)에 대해 위헌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 중 하나다. 동일 계열 금융기관의 다른 회사 주식 소유를 제한하는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24조 개정안 논란도 마찬가지. 법안을 발의한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은 최근 재정경제부가 금산법 개정안에 소급적용을 금지하는 부칙을 끼워 넣은 데 대해 “삼성 봐주기”라고 비판한 바 있다. 공정거래법 11조나 금산법 24조가 삼성과 관련해 논란에 휩싸인 것은 두 법이 삼성의 지배구조 및 승계구도의 핵심인 삼성생명과 삼성카드 지분구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왜 삼성을 못 죽여 안달이냐”

    ‘삼성 봐주기 수사’ 논란에 대한 검사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대검의 한 간부는 일련의 삼성 관련 사건이 대부분 무혐의 처분된 것과 삼성의 막강한 검찰 인맥의 관련성에 대해 “전혀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봐야 할 것”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수사통인 서울중앙지검 간부는 “삼성 사건이라 두드러져서 그렇지, 무혐의 처분은 흔한 일”이라면서도 “주식이나 전환사채의 편법증여에 대해서는 적극 수사해야 한다”고 원칙론을 폈다.

    반면 경제논리에 동의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모 지검장은 “똑 떨어진 증거가 없으니 기소를 안 한 것이지 유착해서 그랬겠느냐”면서 “삼성은 단순한 기업이 아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을 검찰이 죽여서야 되겠냐. 대승적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수사의 융통성을 내세웠다.

    모 지청장도 “왜 그렇게 삼성을 못 죽여 안달이냐.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삼성에 고마움을 느낀다. 한국을 먹여 살리고 세계에 나가 한국의 존재를 알리는 유일한 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삼성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강조했다.

    한국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삼성과 검찰. 두 집단이 앞으로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따라 한국사회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와 관련, 서울중앙지검 간부의 다음 얘기는 귀기울일 만하다.

    “돈을 가진 자가 권력까지 쥐는 건 매우 위험하다. 그런 점에서 삼성과 검찰은 상호 견제하고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삼성과 검찰의 유착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검찰의 존재가치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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