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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취재

한국 과학수사 현주소

시체 속 구더기, 파리 돼서야 법의학자 손에

  • 이은영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한국 과학수사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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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년 만에 문 닫은 현장감식 실습장
  • 유영철 사건 실마리는 해머에서 발견된 피해자 유전자
  • 법의관 현장감식 제도화해야
  • 시체 볼 줄 모르는 일반 의사가 검안서 작성
  • 국과수 부검의 19명이 한 해 6000건 부검
  • ‘파리로 범인 잡는’ 법의곤충학자, 국내에 딱 한 명
한국 과학수사 현주소
“시체농장만든다면 찬성할래요?”

국내 과학수사의 현주소를 취재하겠다고 서울경찰청을 찾은 기자에게 현장감식 전문가 박상선 반장이 밑도 끝도 없이 던진 말이다.

“미국에는 시체농장이란 게 있어요. 시체 부패를 연구하는 곳으로 법의인류학연구소라고 합니다. 테네시 주립대학이 운영하는데 학교 근처 숲을 통째로 사용해요. 여기엔 무덤 발굴과 사체복구용으로 기증받은 진짜 시체들이 있습니다. 미국에선 과학수사관이나 FBI 요원이 되려면 누구나 여기서 교육을 받아야 해요. FBI 증거복구팀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문 채취, 혈흔 및 유골 분포 분석, 무덤 탐지 능력에 대한 평가시험을 치릅니다.”

박 반장에 따르면 테네시 시체농장은 “사망 후 피부 색깔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등 시체가 부패하는 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현장감식 실습장”이다.

테네시 시체농장은 2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이곳에서는 사체 부패 연구 외에도 물속에 버려진 시체가 얼마 만에 물에 뜨는지, 시체가 썩는 과정에 어떤 곤충이 생기는지, 시체가 부패하면서 인근 토양과 식물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등에 대해 연구한다. 현재 시체 200여 구가 있는데, 100% 기증받은 시체들이다. 절반은 사망 당시 그대로, 절반은 부검 후에 옮겨진 시체인데, 부패 연구를 위해 숲 곳곳에 자연상태 그대로 방치했다가 1년 후 뼈만 앙상하게 남은 유골들을 실내 연구실로 옮겨 보존한다고 한다.

미국의 범죄수사 TV 드라마 ‘CSI’는 과학수사의 진수를 보여준다. ‘CSI’는 ‘Crime Scene Investigation’의 약자로 범죄현장수사를 뜻한다. CSI 요원들은 범죄현장 감식 전문가이자 화학자, 곤충학자, 인류학자이다.

미국의 경찰은 과학수사를 위해 수년간 CSI식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국립 과학수사학교만 하더라도 400여 시간이 넘는 현장실습 훈련을 강행한다. 전문지식이 부족해 단서가 유실되고 증거물이 훼손되어 미제(未濟)사건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훈련과정은 시 당국의 예산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범죄현장 감식요원을 키우기 위해 주(州)에서 특별예산을 편성하기도 한다. 테네시 시체농장은 연방정부에서 어렵게 따낸 100만달러의 자금으로 자선교육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경찰의 실태는 어떨까. 박 반장의 설명이다.

“일선 경찰서 형사들 중에서 현장감식 수사관을 선발해요. 이들은 과학수사기법 2주, 감식전문기술 3주 교육을 받습니다. 몽타주 그리기, 최면, CCTV 분석, 범죄분석 등을 세부적으로 배워요. 하지만 미국처럼 현장실습장에서 체험학습을 하는 건 꿈도 못 꿔요. 현장감식 실습장도 없어진 걸요. 조직이 커지면서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거죠.”

한국에 현장감식 실습장이 생긴 건 2000년. 경찰청이 서울 마포에 있는 광역수사대 건물 내부에 신설했는데, 중고 가전제품과 가구 등을 지원받아 사건현장을 재현했다. 하지만 30평 남짓한 현장실습장은 4년 만에 마약수사대에 넘겨졌다. 지금은 서울 휘경동에 있는 수사보안연구소를 현장감식 실습장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장소도 좁고 시설도 보잘것없어 실습용으로는 부적합하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국 233개 경찰서에 700여 명의 과학수사관이 활동하고 있다. 박 반장은 “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걸음마 수준”이라면서 “과학수사관이 된 후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고 아쉬워했다. 교관도 없고 교관이 있어도 교육받을 여건이 안 된다는 얘기다.

서울시내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현장감식 요원은 3~7명이다. 하지만 현장감식 업무에 전념하는 요원은 거의 없다. 형사과에 소속된 이들은 살인사건뿐만 아니라 절도사건 현장에도 출동한다. 하루에 10∼15회 출동하므로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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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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