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호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 술자리 파문 정밀 분석

등장인물 16명 제각각 딴소리… ‘대구판 라쇼몽’,‘음모·거짓말·말 바꾸기 칵테일’에 與·野·檢 동반 망신

  • 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ee@hk.co.kr

    입력2005-10-24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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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국회 국정감사가 낳은 최대 이슈 중 하나이자 전 국민을 씁쓸하게 한 ‘블랙 코미디’,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 술자리 파문의 이면을 파헤쳤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 술자리 파문 정밀 분석
    ‘라쇼몽(羅生門).’ 1950년 구로자와 아키라가 감독한 일본 영화다. 사건이 벌어진 배경은 녹음이 우거진 숲속. 사무라이 A가 아내 B와 숲속 길을 걷고 있었다. 낮잠을 자던 산적 C는 B의 얼굴을 보고 그녀를 차지할 속셈으로 그들 앞에 나타난다. 속임수를 써 A를 포박하고 C는 욕망을 채운다.

    잠시 뒤 숲속 길에 들어선 나무꾼은 가슴에 칼이 꽂힌 채 숨져 있는 A를 발견하고 관청에 신고한다. C는 곧 체포되고 행방이 묘연했던 B도 불려와 관청에서 신문이 벌어진다.

    C는 말한다.

    “내가 속임수를 썼고 B를 겁탈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A와 정당한 결투 끝에 그를 죽인 것이다.”

    B의 진술은 다르다.



    “내가 당한 후 남편을 보니 싸늘하기 그지없는 눈초리였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나를 경멸하는 눈초리여서 내가 정신이 나가 남편 A를 죽였다.”

    무당의 힘을 빌려 강신(降神)한 사자(死者) A는 또 다른 진술을 한다.

    “내 아내 B가 나를 배신했지만 오히려 C가 나를 옹호했다. 나는 자결했다.”

    ‘A의 죽음’이라는 한 사건을 놓고 현장에 있던 삼자의 말이 다 다르다. 진실은 무엇인가. 죽은 A를 발견해 신고한 나무꾼의 진술이 이어진다.

    “B가 싸우기 싫어하는 두 남자를 부추겨 결투를 붙여놓고 도망쳤고, 남은 두 남자는 비겁하고 용렬하기 짝이 없는 개싸움을 벌였다.”

    사건은 더욱 오리무중으로 빠진다.

    주 의원 “욕설, 한 번만 했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 술자리 파문을 둘러싼 진실 게임은 영화 ‘라쇼몽’의 이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9월22일 밤 대구 J호텔 지하 칵테일 바에서 술자리가 벌어졌다. 이 지역 출신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을 비롯, 국회 법사위 소속 국회의원들과 정선태 차장검사 등 대구지검 검사들이 모여 있었다. 대구지검 국감 뒤풀이 자리였다.

    다음날인 23일부터 폭언 성희롱 논란이 벌어진다.

    “주 의원이 술집 여사장 현모씨에게 폭언하고 성희롱했다.”(오마이뉴스)

    “안 했다. 검사가 그랬다. 오마이뉴스는 김대업뉴스다.”(주 의원)

    “한나라당에 사과한다.”(검찰)

    “이건 대구 보궐선거를 앞둔 음모다.”(한나라당)

    “주 의원이 폭언했는지 잘 모르겠다.”(열린우리당)

    “주 의원이 폭언했다.”(열린우리당)

    “주 의원이 심하게 폭언했다.”(술집 여사장)

    단 하나의 사건을 놓고 증언은 제 각각이다. 여야 정치권, 언론, 검찰 등 점잖은 분들이 말이다. 누구 말이 맞는가. 우선 각자의 주장에서 해설은 빼고 ‘팩트’만 추렸다. 그후 각 주장의 공통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인지 한 눈에 들어오도록 했다. 먼저 당사자 주성영 의원의 말부터 들어보자.

    “대구지검 국감을 마치고 동료 의원들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지검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후 숙소인 J호텔로 와 1층 칵테일 바에서 1차 술자리를 가졌다. 술을 마시다 주호영 의원(한나라당)이 평소 알고 있던 현모 사장을 만났다며 지하로 내려가자고 했다. 현 사장은 대구 OO대 정치아카데미 과정 동문으로 나도 잘 아는 사이다. 현 사장이 지하에 L바를 개업했다고 했다. 팔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 11시께 동료 의원들, 검찰 간부들과 함께 지하 1층 L바를 찾았다. 그런데 자리가 마련돼 있지 않았다. 한참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호스트’로서 다른 동료 의원들 보기가 미안했다. ‘야, 씨팔 준비가 다 됐다더니…’라고 한마디 했다. 누구를 보고 한 말은 아니다. 현 사장이 홀에 부랴부랴 자리를 마련했고 일행이 앉았다.

    이후엔 별문제가 없었다.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밤 12시20분쯤 술값을 계산하려고 카운터 쪽으로 갔는데, 정선태 검사가 카드를 들고 있었다. 이미 계산된 것으로 알고 일단 가게를 나와 주호영 의원과 함께 다른 술자리로 향했다. 그게 전부다.”

    여사장, “술자리 내내 폭언했다”

    이번엔 ‘폭언 피해자’ 현 사장의 얘기다.

    “술을 빌리러 1층으로 올라갔다가 주호영 의원을 만났다. 개업한 이야기를 하고 ‘한번 가게에 들러주세요’라고 했더니 ‘오늘 주성영 의원과 함께 오겠다’고 했다. 몇 시간 뒤 10여 명이 한꺼번에 왔다. 두 분만 오는 줄 알고 있었기에 순간 당황했다.

    그런데 주성영 의원이 뜻밖에 욕을 했다. ‘이, 씨팔 이따위로 해놓고 손님을 초대했나?’라고. 놀랐다. 자리를 마련하느라 경황이 없었다. 거듭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래도 욕을 했다. ‘니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입을 놀리냐, 저리 꺼져!…’ 나에 대한 폭언은 술자리 내내 이어졌다. ‘비켜라 근처에 얼쩡거리지 마라.’

    정치아카데미에서 알게 된 주성영 의원은 나를 늘 ‘후배님’ ‘동기님’이라며 존대했다. 그런데 이날은 180도 달랐다. 술집을 한다고 그렇게 욕을 하느냐는 생각에 참을 수 없는 모욕감과 자괴심이 들었다.

    술자리가 끝나갈 즈음 술에 취한 대구지검 정선태 검사가 계산을 하겠다며 왔다. ‘너 처녀냐? XXX 트는 데 얼마냐?’라고 말했다. 받아넘기려 웃으며 ‘10억’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깎아주면 안되냐, 1억?’이라고 했다.

    그때 의원들이 나갔고 정 검사도 따라나섰다. 정 검사가 다시 말했다. ‘어떤 남자든 1억 안 주는 남자하고 OO하면 구속시켜버린다.’

    이들을 보내고 가게로 내려오는 순간 분에 겨워 눈물이 쏟아졌다. 가게에 있던 이모 전무에게 울며 하소연했다.”

    ‘오마이뉴스’는 다음날인 23일 오후 5시30분께 처음으로 술자리 폭언 사실을 보도했다. 이날 열린우리당 대구시당측의 제보를 받은 오마이뉴스 기자는 대구MBC 기자, 매일신문 기자 등과 함께 사단이 벌어진 L바를 찾았고, 현씨를 인터뷰한 뒤 기사를 게재했다.

    다음은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첫 기사 요지다.

    “주성영 의원은 대구지검 국감이 끝난 뒤 밤 11시30분쯤 일종의 룸바인 대구 모호텔 지하 L칵테일 바에서 동료 의원 A씨를 비롯해 대구지검 간부검사 B씨 등 일행 10여 명과 술을 마셨다. 특히 주 의원이 직접 폭탄주를 만들어 일행에게 권했다고 한다.

    주 의원은 이날 ‘대접이 왜 이러냐’며 칵테일 바의 서비스를 시비 삼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칵테일 바 사장 H씨는 ‘주의원이 술을 마시는 도중 계속적으로 여성 성기를 비유한 욕설을 하면서 추태를 부렸다’면서 ‘세상에 태어나 그런 욕설은 처음 들었고 차마 말로 옮기지도 못할 정도로 성적 모욕감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주 의원은 동석한 여성 종업원 2명에게도 ‘XXX 닥쳐라’ ‘XX년’ ‘X 같은 년’ 등 심한 욕설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그 밖에 더 심한 욕을 계속했으나 차마 내 입으로 전하지 못하겠다’며 더 이상 언급을 피했다.

    당시 술자리에는 대구지검 간부검사 B씨도 동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B검사는 사건 다음날인 23일 오전 H씨에게 전화를 걸어 주 의원 행동에 대해 대신 사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희롱’ vs ‘김대업뉴스’

    ‘대구 라쇼몽’에는 또 다른 목격자들도 등장한다. 우선 현씨의 선배로 개업 인사차 L바를 찾았다가 의원들의 술자리를 지켜본 모 제약업체 전무 이모씨가 있다. 이씨는 술자리가 파한 뒤 현씨의 하소연을 고스란히 들었다. 그러나 이씨는 이후 주 의원측의 입장에 선 증인이 된다.

    현 사장의 친구 어머니인 허모씨, L바의 실질적 주인이자 오락실 사장인 서모씨, 서씨의 후배인 이모씨도 등장한다. 특히 이씨는 대구 동구을 재선거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한 이강철 전 청와대 수석의 측근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술자리에 동석한 한나라당 주호영·김성조, 열린우리당 정성호·이원영·선병렬·최용규 의원 등 국회 법사위 의원들도 증인이다. 이 10명의 증언도 엇갈리기는 마찬가지다. 주성영 의원, 현 사장, 정선태 검사, 한나라당 지도부, 열린우리당 지도부, 오마이뉴스까지 합하면 등장인물 16인의 말이 다 제각각인 것이다.

    취재 결과 사실관계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수렴된다. 첫째, 주성영 의원은 허공에다 욕 한번 한 것뿐인가, 아니면 지속적으로 심하게 폭언을 한 것인가. 둘째, 누군가 보궐선거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사건을 키운 음모인가, 아닌가.

    첫 번째 쟁점은 ‘주성영 진영’과 ‘오마이뉴스 진영’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 현재로선 진실 규명이 거의 어려운 상태다. 사건은 양 진영의 신뢰도에 상처를 입히는 쪽으로 전개됐다. 두 번째 쟁점인 음모론에 대해 살펴보자.

    이 사건을 처음 오마이뉴스에 알린 제보자는 열린우리당 대구시당으로 확인됐다. 열린우리당 대구시당 이재관 공보팀장은 “40대 익명의 여성에게서 제보를 받아 기자들에게 알렸다”고 말했다.

    사건화한 과정이 현 사장 → 익명의 40대 여성 → 열린우리당 → 오마이뉴스의 순서를 밟았다는 얘기다. 결국 익명의 40대 여성은 ‘술자리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던 일을 일파만파 증폭시킨 매개체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 40대 여성은 누구인가.

    현 사장은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인 23일 낮 12시쯤 고교 친구의 어머니인 허모씨와 통화한다. 여행용 가방을 빌리려고 전화한 친구 어머니 허씨에게 현 사장은 전날 밤 일어난 일을 하소연 삼아 털어놓는다.

    현 사장은 허씨와 통화한 뒤 전날 자신에게 성희롱 발언을 한 정선태 검사를 만나러 나간다. 그리고 정 검사를 만나고 오후 3시쯤 가게로 돌아왔고, 그 얼마 뒤 기자들이 들이닥친다. 현 사장이 전날 밤 상황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얘기를 털어놓은 대상은 허씨가 유일했던 것.

    주성영 의원측은 그래서 허씨를 문제의 제보자로 지목했다. 허씨가 열린우리당 대구시당과 대구여성회 쪽에 이 사건을 알렸다는 것이다. 현 사장이 열린우리당 대구 동구을 재선거에 출마한 이강철 후보와 절친하다는 주장까지 했다. 하지만 허씨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23일 낮 12시에서 오후 1시 사이에 현 사장과 통화를 했다. 굉장히 흥분한 상태로 ‘술자리에서 두 사람이 자신을 모독했다’고 말했다. 문제삼을 거라고 하기에 ‘술집을 계속하려면 손님들 이야기는 문제삼지 않는 것이 좋다’고 달랬다. 이강철 후보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다. 나는 제보하지 않았다. 다만 전화통화를 하는 도중에 택시를 타고 갔기 때문에 통화 내용을 택시기사가 들었을 것이다. 통화가 끝난 뒤에 국정감사 끝나고 국회의원들이 술을 먹어 이런저런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택시 기사와 주고받은 일은 있다.”

    그러나 제보자가 택시 기사일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열린우리당 대구시당측도 제보자가 ‘40대 여성’이라고 했다. 주성영 의원측에 따르면 익명의 제보자가 처음 제보한 내용은 “주성영 의원이 술집에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성희롱을 했고 심지어 소변까지 봤다”는 것이다. 제보자는 미궁에 빠졌다.

    현 사장의 최초 인터뷰도 의문투성이다. 현 사장은 술자리가 벌어진 다음날인 23일까지 정선태 검사와 주성영 의원에 대해 분개했다. 목격자 이모 전무는 “현 사장이 화를 낸 대상은 분명히 정 검사였다”고 말했다.

    음모론의 핵심 ‘검사 뺀 것’

    그런데 현 사장은 오마이뉴스 등 언론사 기자들 앞에선 주 의원만 문제삼았다. 현 사장은 기자들에게 “주 의원이 내게 욕을 심하게 했다. XXX, 개 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쌍욕이 다 나왔는데…. 성적인 모멸감보다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꼈다”고 했다. 비난의 화살을 모두 주 의원에게 돌리는 증언을 한 것이다. 현씨는 이후 MBC ‘PD수첩’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기자들이 묻는 질문의 모든 주어(主語)가 주 의원이었기 때문에 정 검사는 거론하지 않았다”고 했다. 기자들이 질문을 잘못한 것일까.

    이에 대해 주 의원측은 현 사장이 ‘모종의 압력’을 받은 상태에서 기자들과 만났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압력을 행사한 사람들로 L바의 실질적 주인인 오락실 사장 서모씨, 그리고 이강철 후보의 보좌역으로 알려진 이모씨, 그리고 친구 어머니 허모씨를 지목했다. 이 같은 의혹 제기는 결국 음모론으로 이어진다.

    “알아도 모르고, 몰라도 모르고”

    한나라당은 27일 이런 정황을 바탕으로 이 사건을 대구 동구을 재선거를 앞둔 열린우리당측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대구지검 정선태 차장 검사가 술자리가 끝난 뒤 현 사장에게 자신이 부적절한 발언을 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한 직후다. 한나라당과 주 의원이 주장하는 음모론의 요지는 이렇다.

    “현 사장이 처음 사건을 주변인들에게 털어놓자 한 주변인이 이 사건을 이강철 후보측에 알린다. 이 후보의 측근이모씨가 달려온다. 이씨는 이 사건을 언론에 알리는 일을 조정한다. 대구 동구을 재선거를 앞두고 이 사건이 호재라고 생각한 것이다. 정 검사 부분은 놔두고 주 의원만 부각하기로 한다. 처음 기자들 앞에서 현 사장이 ‘전날 사단을 일으킨 당사자가 주 의원’이라고 증언한 사정은 이 때문이다. 현 사장으로선 주변에서 거절 못할 압력을 받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관련자들은 일제히 부인하고 나섰다. 서 모 사장은 “나는 현 사장이 언론 등에 문제삼겠다고 하자 ‘장사에도 도움이 안 되니 입을 다물라’고 했다. 주 의원 부분만 확대하라고 했다는 한나라당 주장은 어처구니가 없다. 이강철 후보의 측근에게 압력 받은 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강철 후보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모씨도 항변한다.

    “현 사장은 23일 처음 봤다. 당시 서 사장을 만나러 갔다가 현 사장과 (서 사장이) 얘기를 나누는 자리에 합석했으며 그 자리서 주 의원 폭언 얘기를 들었다. 10여 분 뒤 기자들이 현씨를 찾아오기 시작하자 자리를 떴다. 그게 전부다.”

    한나라당이 음모론을 제기하자 당시 술자리에 참석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다음날인 28일 “주 의원이 여러 차례 현씨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했다”며 뒤늦게 태도를 바꿨다. 오마이뉴스는 이를 두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그동안의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은 갈수록 오리무중으로 빠지면서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음모론의 실체에 대한 현 사장의 말은 여운을 남긴다. 현 사장은 ‘PD수첩’과 한 인터뷰에서 음모론에 대해 “양당의 정치싸움이 될 수 있다. 알아도 모르는 거고, 몰라도 모르는 것이다”고 했다.

    “주 의원이라서 사건화”

    “주성영 의원이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었다면 이번 사건이 이처럼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얘기가 있다. 술과 관련해 그의 가슴팍엔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다.

    1991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 의원은 당시 춘천지검 검사였다. 일행과 회식을 하던 주점으로 시청 공무원이 들이닥쳤다. 주점 주인을 상대로 영업시간 위반행위를 문책하는 시청 공무원과 주 의원 간에 시비가 붙었다. 폭행사건이 일어난다.

    몇 달 뒤 주 검사는 또다시 술과 관련해 구설에 오른다. 음주운전을 하던 주 검사는 경찰의 검문에 불응해 달아났고 추격전 끝에 체포된다.

    전주지검 공안부 검사로 재직하던 1998년 9월에는 유종근 전북도지사와 함께한 술자리에서 유지사 비서실장의 이마를 술병으로 내리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는 이 때문에 대전지검 천안지청으로 전보 발령됐다.

    주 의원은 “상당 부분 과장되고 왜곡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흘러흘러 전해지는 그의 주사(酒邪) 전력은 끈질기게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처음 기사를 보도한 오마이뉴스가 포커스를 맞춘 것도 “주사 전력이 있는 한나라당 의원이 또 사고를 쳤다”였다. 여기에 “한 번이든 백 번이든 국회의원이 욕설을 내뱉는 것은 잘못됐다” “피감기관과 뒤풀이 악습을 재연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비판이 보태진 것이다.

    주 의원의 독특한 캐릭터도 한몫했다. 그는 거침없고 직설적이다. 그리 길지 않은 의정 경력은 ‘소신 발언들’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그가 처음 주목받은 것은 국회 개원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한 발언 때문이다. 그는 연단에 올라 “나는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찍었다”고 서슴없이 말해 한나라당 의원들을 놀라게 했다.

    지난해 10월 국가인권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선 ‘기생층’ 발언으로 시선을 모았다. 그는 인권위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에 국가보안법 피해조사 연구용역을 준 것을 문제삼아 “쓸데없는 세금낭비” “그래서 사회적 기생 계급이, 기생층이 점점 증가하는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시민단체의 공분을 샀다.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도 이색적 표현을 하며 데뷔했다. 지난해 10월28일 사전 배포한 국회 대정부 질문 원고에서 주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과 여권 내 386 정치인들을 안데르센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과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를 뒤섞은 패러디로 비난했다. 이전에 없던 시도였다. 열린우리당 386의원들이 다음날 주 의원에게 사과를 요구하자 그는 도리어 ‘풍자와 우화도 이해하지 못하는 편협하고 메마른 386’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 “386은 품격 있는 유머도 모르냐”고 일갈했다.

    지난해 12월8일 국회 본회의에서 주 의원의 직설적 성격은 또 한 번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는 한 인터넷 신문 기사를 인용, “이철우 열린우리당 의원이 북한 노동당원으로서 1992년 현지 입당하고 당원 부호 ‘대둔산 820호’를 부여받고 지금까지 암약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는 “공안 검사 경력의 직감으로 간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당내 갈등 사안에 대해서도 그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한나라당 혁신안을 놓고 소속 의원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진 지난 8월31일 연찬회에서 주 의원은 의원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연단으로 올라가 “혁신안은 조기 전대를 감춰놓은 ‘트로이 목마’로 사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엔 술자리 파문이 터진 것이다.

    오마이뉴스와 한나라당, 해묵은 대립

    주성영 의원 술자리 사건이 커진 이유는 사건 폭로자인 오마이뉴스와 한나라당의 오랜 악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2002년 5월, 대선을 7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오마이뉴스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아들들의 병역비리 관련 보도를 했다. 이른바 ‘병풍(兵風)’ 폭로다. 폭로의 당사자는 병역 브로커 출신 김대업씨다.

    결국 이회창 후보의 대선 패배에 상당한 영향을 준 이 폭로는 대선 후 3년이 지난 뒤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한나라당 처지에선 ‘버스 지나간 뒤’였다. 그전부터도 오마이뉴스와 한나라당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양측이 틀어진 결정적 계기가 됐다. 사석에서 만나면 오마이뉴스에 대한 적대감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한나라당 의원이 많다.

    2000년 초 창간된 오마이뉴스가 2002년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는 것은 한나라당엔 주지의 사실로 통한다. 지난 5월 대법원은 한나라당이 병풍 보도와 관련해 김대업씨와 오마이뉴스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김대업씨에 대해 5000만원, 오마이뉴스에 대해 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확정판결을 내렸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최근 비공개회의에서 “오마이뉴스로부터 아직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돈만큼은 반드시 집행할 것이다”라고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지난해엔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과 오마이뉴스 간에 한판 전쟁이 벌어졌다. 이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해 7월 오마이뉴스는 전 대변인의 베스트셀러 저서인 ‘일본은 없다’가 자신의 글을 표절했다고 주장하는 재일 르포 작가 유모씨의 인터뷰 가사를 실었다. 전 대변인은 8월말 오마이뉴스 등을 상대로 5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전 대변인은 “유씨가 표절 의혹과 관련된 허위 사실을 오마이뉴스에 제공했고, 오마이뉴스는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채 악의적으로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전 대변인은 오마이뉴스의 반론권 보장 제의를 거부한 채 곧바로 소송에 착수했다.

    오마이뉴스는 “전 의원은 공당의 대변인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발행된 단행본의 표절 의혹에 대해 검증을 받아야 한다”며 굽히지 않았다.

    같은 해 8월엔 한나라당이 연찬회에서 공연한 연극물이 오마이뉴스에 보도되면서 한나라당이 한동안 여론의 공세에 시달리기도 했다. 전남 구례에서 열린 연찬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직접 연극에 출연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을 폄훼하고 성적으로 비하한 대사가 나온 대목을 오마이뉴스가 적나라하게 공개한것이다. 이 공연을 관람한 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오마이뉴스 보도 전까지는 공연에 대해 그다지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국감 최대 이슈로 떠오른 까닭

    술자리 사건을 통해 한나라당과 오마이뉴스 간의 갈등은 극으로 치닫고 있다. 주 의원은 10월4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대구시 여성회 관계자 등을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주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는 “오마이뉴스를 김대업뉴스”라고 규정한 뒤 “오마이뉴스를 해체시키겠다”고 말했다. 주 의원측은 “나는 폭탄주를 만들지 않았고, 성희롱 발언을 하지 않았는데도 오마이뉴스는 충분한 사실 확인 없이 그런 일들이 있었던 것으로 악의적으로 보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엄청난 분량의 후속 기사를 쏟아내며 보도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사건이 감정대립으로 흐르면서 진상규명의 길은 더욱 멀어지게 됐고 이는 관련자들이 목소리를 더욱 높이는 결과만 낳았다. 차분히 처리될 수도 있었던 이 사건이 국정감사의 최대 이슈 중 하나로 부각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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