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호

한국판 ‘목사관 살인사건’ 미스터리

시반(屍班) 없는 사체로 발견된 목사 부인…의혹투성이 남편은 1심 무기징역, 3심 무죄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입력2006-02-15 16: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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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판 ‘목사관 살인사건’ 미스터리
    부부라는 관계는 참 묘하다. 죽고 못 살아 결혼해 살을 비비며 지내다가도 한눈을 팔아 상대의 가슴에 못을 박고, 그러다 틀어지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살해됐을 경우 수사기관이 가장 먼저 의심하는 것도 그 배우자다.

    1995년 6월에 벌어진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외과의사인 남편 이씨는 자신의 병원을 정식으로 개원하는 날 아내와 딸을 잃고 그 자신도 ‘사회적 죽음’을 당했다. 그는 사건 발생 80여 일 만에 아내와 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씨는 한 번도 범행을 자백하지 않았고, 직접적인 증거도 없었다. 다만 이씨에게 불리한 정황과 증언이 있었을 뿐이다. 이때문에 법원의 판단도 극과 극을 오갔다. 2심은 증거 불충분으로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1998년 11월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이를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 이씨는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모의 화재 실험을 하고, 외국의 법의학자를 동원하는 등 대한민국 강력사건 사상 가장 뜨거운 법의학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 사건은 2003년 2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8년여 간의 지리한 법정 공방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비슷한 사건이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서 일어났다. 2001년 6월25일. 저녁식사를 마치고 텃밭에 들렀다 교회에 다녀오겠다며 외출한 목사 부인 김씨(사망 당시 52세)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이른 새벽, 집에서 멀지 않은 다리 밑 풀밭에서 김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남편인 목사 K씨는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돼 사건 발생 1년10개월 만에 구속, 1심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과연 이들 부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내의 외출



    2001년 6월25일 월요일 오후 8시40분에서 8시50분 사이, 제주시 화북동 H아파트 주차장에서 서성이던 K목사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A씨 부부를 만난다. K목사는 이들에게 “화요예배 모임으로 외출한 아내가 돌아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9시 무렵, K목사는 A씨의 집으로 찾아가 A씨의 아버지에게 오후에 아내를 본 일이 있느냐고 묻고는 “오늘이 월요일인데 화요일로 착각했다”고 말하고 돌아간다. K목사는 10시20분경 다시 A씨의 집을 찾아가 “신고해야겠다”며 인근 파출소 위치를 물었고, A씨는 K목사가 당황해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아 자신의 차로 파출소에 데려다주던 중 부인 김씨가 집을 나간 시각이 오후 8시30분경이라는 말을 듣고 파출소에 신고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에 차를 돌렸다.

    집으로 돌아온 K목사는 자신과 아내가 다니는 B교회에 전화해 C목사의 처 D씨에게 아내의 행방을 물었다. 10시40분경 집으로 찾아온 D씨에게 K목사는 아내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K목사는 그 뒤로도 자신이 간사로 있는 신학교 관계자들과, 평소 연락이 뜸했던 처제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아내와 연락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아내의 행방이 묘연하자 11시 5분 전쯤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아내가 교회에 갔는데 귀가하지 않고 있다고 알리고, 병원에 후송된 환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A씨 집을 찾아가 파출소에 신고했다고 말한다. 그때가 11시경이다. 11시30분경 K목사 집에 C목사 일행이 다녀간 다음, 자정 무렵 K목사는 승용차를 몰고 나갔다가 돌아와 C목사 집에 전화를 걸어 D씨에게 “(아내가) 혹시 다른 교회에서 기도 드리다가 잠이 들었을지도 모르니 날이 밝으면 다시 한번 찾아보자”는 취지의 말을 한다.

    다음날인 6월26일 새벽 5시10분경, B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마친 K목사는 C목사와 함께 김씨를 찾아 나선다. K목사가 차를 세운 곳은 자기 집에서 1km가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제주시 도련동 삼화교(橋). K목사는 C목사에게 자신이 삼화교 서쪽 소로를 찾아볼 테니, 삼화교 남쪽의 좁은 길을 살펴보라고 한 후 헤어진다.

    K목사는 잠시 뒤에 도착한 D씨와 함께 C목사가 간 방향을 향해 길 아래 냇가 쪽을 살피며 가고 있었다. 앞서 가던 D씨가 뒤돌아보니 K목사가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키고 있었고,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든 D씨가 마침 맞은편에서 수색을 마치고 돌아오던 남편 C목사를 불러 확인한 결과 김씨의 시신이 포대자루에 덮여 있었다. 5시30분경이다.

    정숙한 목사 부인의 처참한 최후

    40kg들이 조곡용 1호 포대에 덮인 김씨는 하늘을 향해 누워 있었다. 체크무늬 바지에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양말을 신지 않은 채 하의와 팬티가 반쯤 벗겨져 있었다. 왼발은 신발이 벗겨진 채였고, 오른발은 신발 끈과 덮개 사이에 살짝 끼워져 있었는데, 신발바닥은 흙이 묻어 있지 않고 깨끗했다. 목 앞쪽 7군데에 손이나 손가락에 의해 형성된 듯한 액흔(縊痕)이 발견됐으며, 눈 언저리에는 안경 테두리에 눌린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K목사 일행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 조사 결과 김씨의 몸에서 강간이나 추행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직장(直腸) 온도는 오전 7시54분에 30.1℃, 8시54분에 29.6℃, 9시54분에 29℃로 측정됐다. 직장 온도는 사망 직후부터 계속 떨어지기 때문에 사망시각 추정에 중요하다는 게 법의학자들의 의견이다. 1시간 간격으로 3회 이상 잰 다음 온도 하강률을 구해 역산하는 방식으로 사망시각을 추정한다.

    시신에서 시반(屍班)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시반은 시신에 생기는 반점이다. 사람이 죽으면 혈액순환이 멎고, 중력 때문에 자연스럽게 낮은 곳으로 피가 가라앉아 고이게 된다. 이때 피가 몰려 있는 피부가 적혈구 때문에 암적갈색을 띠는데, 이것을 시반이라고 한다. 시반은 대체로 사망 후 30분이 지나면서부터 생기기 시작한다. 시체가 누운 상태로 발견됐다면 등이나 엉덩이, 허벅지 아래쪽, 종아리 등에 시반이 있을 것이고, 엎드려 있는 상태에서 발견됐다면 가슴, 배, 허벅지 위쪽, 무릎 등에 시반이 있게 된다. 김씨의 사체에 시반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뒤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부검 결과 사인은 액살(縊殺·목 졸라 죽임)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부압박 질식사. 김씨의 위에는 참깨, 참외씨 같은 음식물의 일부가 그대로 식별되는 상태로 가득 차 있었다.

    장성한 아들과 딸을 둔 어머니, 깔끔하고 정숙하며 자존심이 강했던 목사 부인이 누구에 의해 어떤 연유로 이처럼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됐을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부부 중 한 사람이 변사자로 발견되면 수사 관례상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오르는 사람이 그 배우자다. K목사는 사건 발생 직후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을 때 컴퓨터로 성서 번역작업을 하던 중, 8시10분경 아내가 텃밭에 들렀다가 기도를 하고 오겠다면서 집을 나간 후 밤늦도록 귀가하지 않자 염려되어 찾아다니다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일 뿐 살해하거나 사체를 유기한 바 없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검찰은 부인 김씨를 집에서 살해하고, 강간범에 의해 살해당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사체를 인근 풀밭에 유기한 혐의(살인 및 사체유기)로 2003년 2월5일 목사 K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그해 4월17일 서울 모처에서 체포했다. 검찰이 K목사를 범인으로 확신하는 데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목격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정황 증거와 간접 증거만 있을 뿐이다.

    흙이 묻지 않은 신발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풀밭에서 발견된 김씨가 집 안에서 살해됐다고 검찰이 단정하는 근거는 첫째, 풀밭에서 사체가 있던 곳만 풀이 누워 있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살해됐다면 김씨가 반항하며 움직여 주변의 풀까지 짓눌렸을 텐데, 사체가 놓인 곳만 풀이 누워 있었다는 것은 누군가 숨진 김씨를 풀밭에 가만히 내려놓았음을 의미한다는 것.

    둘째 근거는 사체가 비교적 깨끗하다는 점이다. 만약 현장에서 반항했다면 가로 방향의 불규칙한 찰과상이 남아야 하는데, 김씨의 사체에는 등 부위에 선상의 찰과상 7개만 확인됐다. 셋째 근거는 신발이다. 김씨의 사체가 발견됐을 당시 맨발인 상태에서 왼발은 신발이 벗겨지고, 오른발은 신발 끈과 덮개 사이에 살짝 끼워져 있었다. 신발바닥엔 흙이 묻어 있지 않았다. 검찰은 피해자가 제 발로 걸어왔다면 신발에 흙이 묻지 않을 수 없는데다, 오른발이 신발 끈과 덮개 사이에 끼워져 있던 것은 범인이 어둠 속에서 억지로 신발을 사체의 발에 끼워 넣으려 한 흔적이라고 주장했다.

    넷째 근거는 사체의 얼굴에 남은, 안경에 눌린 자국이다. K목사가 경찰 조사에서 진술한 바에 따르면 숨진 김씨는 평소 안경을 착용하고 다니지 않으며, 작은 글씨를 보거나 강의를 들을 때만 안경을 사용한다. 따라서 실내에서 안경을 착용하고 있다가 살해당한 것이라는 추정이다. 사체가 있던 현장에서 안경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섯째 근거는 사체의 옷차림이다. 숨진 김씨와 같은 교회를 다닌 교인 2명과 김씨의 여동생이 진술한 바에 따르면 김씨는 평소 기도하러 다닐 때 늘 치마를 입은 단정한 옷차림이었다. 그런데 사체 발견 당시 김씨는 반팔 티셔츠에 바지 차림, 맨발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이런 점들로 미뤄보아 김씨는 실내에서 살해당한 후 사체가 발견된 장소로 옮겨졌으며 범인이 마치 강간범이 그곳으로 끌고 가 살해한 것처럼 위장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그런데 김씨가 외출하는 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고, 오로지 K목사의 진술뿐인 상황에서 몇 가지 정황이 김씨가 외출했다고 하는 K목사의 진술 자체를 의심하게 한다는 게 검찰의 논리다.

    먼저 검찰은 K목사의 진술에 따르면 부인 김씨가 외출한 시각은 오후 8시10분경인데, 불과 30∼40분 만에 아내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고 불안해하면서 이웃과 교인, 친지들에게 알리며 찾아 다녔다는 점이 수상쩍으며, 주일(일요일) 바로 다음날인 월요일을 화요일로 착각했다는 점, 화요예배가 오후 9시20분경에 마치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그 전부터 김씨를 찾아 나선 것도 납득할 수 없으므로 모든 것이 알리바이를 만들어 내거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한 행동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컴퓨터 작업 흔적 없어

    그리고 아내가 외출할 당시 자신은 컴퓨터로 성서 번역을 하고 있었다고 했는데, 컴퓨터 하드 디스크를 분석한 결과 K목사가 말한 시간대에 컴퓨터 작업을 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뒤로 K목사가 “번역 노트와 컴퓨터 화면을 대조했을 뿐 컴퓨터로 작업하지는 않았다” “컴퓨터 책상에서 독서를 했다” 등으로 진술을 번복한 것은 성서 번역을 하고 있었다는 진술 자체는 물론, 그때 피해자가 외출했다는 진술 또한 허위임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결국 K목사가 집에서 부인 김씨를 죽인 뒤, 외출해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허위로 알리바이를 만들고, 사람들 눈을 피해 사체를 집 밖에 유기했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K목사가 부인을 살해할 만한 동기가 있었을까. 검찰은 사건 당일 K목사가 숨진 김씨로부터 여자 문제를 추궁 당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969년 여동생의 중매로 김씨와 결혼한 K목사는 강원도와 서울 지역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동안 여신도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김씨와 자주 다퉜고, 특히 1989년경부터 1996년경까지 신도인 유부녀 E씨와의 각별한 관계 때문에 이혼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K목사 부부가 1997년 가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 정착한 것도 자녀들이 이혼을 만류하자 김씨가 이혼하지 않는 조건으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도로 내려가자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K목사는 제주도에 내려와서도 E씨와 전화 연락을 계속했고, 두어 차례 만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사건 당일 아침 김씨가 “전화국에 가서 시외전화 통화내역을 확인해봐야겠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김씨보다 먼저 전화국에 가서 문제가 될 만한 통화내용의 삭제를 요구하다 뒤따라온 김씨에게 발각돼 말다툼을 한 것이다.

    통화내역에서 드러난 사실

    K목사는 경찰 수사 초기 단계에 이 같은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경찰의 추궁에 뒤늦게 “서울에서 목회활동을 할 당시 여신도이던 E씨와 몰래 전화통화를 해온 일로 오전에 아내와 잠시 말다툼을 벌이긴 했지만 곧 오해가 풀렸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K목사가 살해 동기를 감추기 위해 일부러 사실을 숨겼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K목사의 집 전화와 사건 당일 아파트 인근 공중전화의 통화내역을 근거로 K목사와 김씨의 다툼이 저녁 때까지 극렬하게 계속됐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날 오후 K목사 부부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이웃의 진술도 보태졌다.

    K목사는 오전 11시경 유부녀 E씨에게 전화를 걸어 “처가 당신 집 전화번호를 알았으니 전화를 받지 말라”고 했고, 오후 5시15분경 집 밖 공중전화로 다시 전화를 걸어 “처가 칼을 갖고 달려든다, 당신이 살고 있는 집으로 가려고 한다”고 했으며, 오후 6시16분에 “서울에서 잠시 살 방을 얻을 돈이 필요하니 돈을 만들어봐라”고 했고, 6시20분에 다시금 돈을 보내달라며 독촉했고, “왜 여동생 집으로 전화를 했느냐, 처가 나온다, 전화 끊자, 걱정하지 말라”며 전화를 끊었다.

    K목사가 E씨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시각은 오후 8시27분이다. 집 전화로 “처가 누그러진 것 같으니 돈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처가 전화를 하여 돈을 보내준 사실이 있느냐고 물으면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해라”는 내용을 전했다. 이밖에도 E씨는 법정에서 오후 4시34분과 5시44분에 K목사 부인 김씨가 건 것으로 추정되는 전화를 받았으나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고, 다만 4시34분에 걸려온 전화에서 K목사와 김씨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오후 5시40분에서 6시 사이에 K목사와 같은 아파트 4층에 사는 F씨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엘리베이터 바로 옆에 있는 K목사의 집에서 부부가 크게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이러한 정황을 근거로 검찰이 추정하는 사건 시나리오는 이렇다.

    ‘목사생활을 하면서 여신도들과의 이성문제로 자주 다투던 중, E씨와의 관계로 부부 사이가 심각해지자 결국 이성관계 단절 수단으로 제주도에 내려왔는데, 그 뒤로도 계속해서 남편이 E씨와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의심한 김씨가 사건 당일 아침 시외전화 사용 명세를 조회해보겠다고 했다. 그러자 K목사가 김씨 몰래 전화국에서 시외전화 사용명세 중 특정부분이 삭제가 가능한지 문의하다가 아내에게 들켰고, 이에 소정의 후원금을 받아 왔을 뿐 남녀관계는 전혀 아니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김씨는 그 말을 믿지 않고 계속 화를 냈으며, K목사는 다급해져 공중전화로 E씨에게 방 얻을 돈을 보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김씨가 그 광경을 목격했고, 더욱 화가 치밀어 심한 말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여색(女色)을 밝히는 K목사의 위선적 행태를 더는 묵과할 수 없다는 취지로 모종의 극단적인 언사를 했고, K목사는 위기감에 휩싸여 걷잡을 수 없는 살의가 생겼다. 결국 아내인 김씨의 목을 손으로 힘껏 졸라 그 자리에서 사망케 하고, 사체를 아파트 인근 인적이 드문 곳에 옮겨놓고 주변 사람들을 유기 장소로 유인해 사체를 찾도록 함으로써, 외출한 김씨가 강간범에게 살해당한 것인 양 위장한 것이다.’

    한밤중 혼자 차를 몰다

    한국판 ‘목사관 살인사건’ 미스터리

    수사기관에 따르면 직접적인 증거나 목격자를 확보하기 어려운 밀폐된 공간에서의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검찰은 K목사가 E씨에게 공중전화를 걸다 김씨에게 들킨 오후 6시20분과, 다시 집 전화로 E씨에게 전화를 건 오후 8시27분 사이에 안경을 쓰고 있던 김씨의 얼굴을 압박하며 목을 졸라 죽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직장 온도 하강률에 따른 역산방법에 의하면 사망 추정시각은 오후 9시경이나, 오차 범위가 심하고 변수가 많아 직장 온도 하강률만을 근거로 사망시각을 추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음식물 소화 정도를 근거로 한 사망추정 시각은 감정 불능이라 정확한 사망 시각을 추정할 수 없지만, K목사가 오후 8시27분에 집 전화로 E씨에게 전화를 걸어 “처가 누그러진 것 같으니 돈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한 것은 우발적으로 김씨를 죽인 뒤, 자신이 김씨와 심하게 다툰 것을 알고 있는 E씨를 의식해 안심시키기 위한 가장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8시40분에서 50분 사이, 주차장에서 서성이다 A씨 부부를 만났을 때는 이미 자신의 승용차 뒤 트렁크에 사체를 옮겨 놓고 난 다음이며,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외출한 아내가 돌아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고, 지인들에게 김씨의 행방을 수소문했다는 것이 검찰의 추정이다. K목사가 A씨 부부를 만났을 당시 그의 차는 그가 거주하는 209동 바로 앞인 210동 뒷베란다 주차장에 승용차 앞쪽이 베란다 쪽을 향한 채 주차되어 있었다. 자동차를 1층 자신의 집 입구에 후면 주차해놓은 상태에서 차 트렁크에 재빨리 사체를 실은 다음 전진해 210동 뒷베란다 쪽에 주차해 놓고서 A씨 부부를 만났을 거라는 게 검찰의 좀더 구체적인 설명이다.

    K목사는 수사기관에서 오후 10시40분과 자정 무렵 혼자서 승용차를 운전하고 다니며 김씨를 찾아다녔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리고 사건 직후 그의 승용차 트렁크가, 물건들이 안쪽으로 밀려 있을 뿐 텅 비어 있었다는 점, 죽은 김씨의 체구가 작다(키 155cm)는 점을 감안할 때 검찰은 K목사가 김씨를 살해한 후 승용차 트렁크에 옮겨놓고, 위 시간대에 승용차를 운전해 사체를 유기할 장소를 물색하다가 새벽에 풀밭에 사체를 유기했을 것이라 추정했다.

    검찰은 정황 증거 외에 몇 가지 간접 증거를 확보했다. K목사는 수사 초기, 사건 당일부터 그 다음날 새벽까지 풀밭이나 텃밭에 들어간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그의 승용차를 조사한 결과 승용차 바퀴에서 식물을 채취했는데, 감정 결과 사체 발견 장소에서 자라는 바랭이와 같은 것으로 판명됐다. 또한 시체를 덮은 포대자루가 아파트 관리사무소 지하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것과 동일하다는 경비원의 진술을 확보했다. 아파트 지하창고에 재활용품을 모아두는데, K목사가 가끔 지하창고에서 쓸 만한 물건을 구해가곤 했다는 진술도 더해졌다.

    “자연사한 것으로 믿고 싶다”

    검찰은 사건 발생 후 K목사가 보인 행동 또한 아내를 잃은 남편이 보이는 일반적인 행태와는 거리가 멀어서, 그를 범인으로 확신했다고 기록했다. 통상 아내가 강간범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될 경우 분노하면서 수사기관에 범인을 꼭 잡아달라고 당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K목사는 “아내가 자연사한 것으로 믿고 싶다”고 말했고 장례식장에서도 오열하거나 절망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검찰은 K목사의 집 전화를 감청하는 과정에서,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났을 무렵 K목사가 천주교 신부에게 전화를 걸어 “기독교 신도인데, 신부님께 죄를 고백하려고 한다. 마음이 고통스러워 고백하고 싶다”고 말한 것이 포착됐다. 수사망이 좁혀오는 것에 대한 부담과 죄책감으로 인해 비밀이 보장되는 고해성사를 하려 한 게 아니냐는 게 검찰의 추론이다.

    K목사가 김씨 사후 2개월여 만에 다른 여자를 소개받아 동거생활을 시작하고,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도피한 것도 검찰이 심증을 굳힌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K목사는 사건이 검찰에 송치된 후 제주지방검찰청에서 몇 차례 조사를 받았는데, 검찰에서 2003년 2월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거주지를 옮기고, 구속 전 피의자 신문기일에도 불출석한 채 도피생활을 했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지 2개월 만인 2003년 4월 체포될 당시, 그의 거처에서는 여장(女裝)에 쓰인 것으로 짐작되는 가발과 팬티스타킹, 치마와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목사관 살인사건’이 발견됐다.

    ‘목사관 살인사건’은 목사관 내에서 정부(情婦)의 남편을 살해한 젊은 화가가 자신이 용의선상에 있을 것을 예상, 범행시간대에 다른 장소에 있었다는 허위 알리바이를 만들어놓고 자수한 후 수사기관으로 하여금 그 알리바이를 확인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법망을 거의 빠져나갔으나 결국 용의주도한 범인임이 밝혀진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이 소설 속의 범인과 K목사의 행태가 매우 유사한데, 이 책 3군데에 ‘포스트 잇’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K목사가 소설을 정독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K목사는 검찰에서 중고책방에서 책을 구입했을 뿐, 책을 읽은 적도 없고 ‘포스트 잇’은 누가 붙였는지 모른다며 검찰의 주장을 부인했다.

    1심 재판부, “집에서 살해된 후 유기”

    검찰이 수사한 바는 여기까지다. 검찰은 K목사에게 무기징역형을 구형했다. 그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진다면 처를 살해했고, 그 사체를 유기했으며, 한 번도 범행을 자백하지 않고 오히려 법망을 피해 도망쳐 다녔으니 죄를 뉘우쳤다는 정상 참작의 여지도 없을 것이다.

    1심 재판부(제주지방법원 형사2부)는 이와 같은 검찰의 주장을 대부분 인정하고, K목사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그의 동거녀는 범인을 도피시킨 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김씨가 2001년 6월25일 오후 6시20분부터 다음날 오전 5시30분 사이에 타살된 것이 확실한 이 사건의 경우 김씨가 K목사의 주장대로 외출했느냐 여부가 관건이고, 김씨가 외출하지 않았다면 K목사가 김씨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전제한다. 그런 다음, K목사의 진술을 제외하면 외출한 김씨를 목격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 사체의 상태, 김씨가 외출했다고 한 시각 직후 K목사가 보인 행태, 김씨가 월요일에는 교회에 가지 않는 점, 두 사람이 격렬히 다툰 점 등에 비추어 김씨가 외출하지 않고 K목사와 함께 집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K목사의 범행 후 정황 및 사체 발견 경위까지 더해보면 K목사가 김씨를 살해한 다음 사체를 유기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사체를 집에서 승용차로 옮긴 시각에 대해 검사의 추론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K목사가 오후 8시27분 E씨와 전화 통화하기 전 김씨를 살해하고 승용차 트렁크에 사체를 옮긴 뒤 주차장에서 A씨 부부를 만났다고 했는데, 재판부는 여름이어서 사람이 많이 지나다닐 때라 사람들 눈을 피해 사체를 자동차 트렁크에 옮기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며 검사의 주장을 반박했다.

    또한 사체에서 시반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도 검사의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만약 K목사가 김씨의 사체를 자신의 승용차에 실어 놓았다가 새벽녘에 다리 밑 풀밭에 옮겨 놓은 것이라면 사체가 장시간 트렁크 속에 있었으므로 시반이 형성되기에 충분한 조건인데, 김씨의 사체에서는 시반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검찰의 추정과는 다른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의 사망시각을 정확히 추정할 수는 없지만, 피해자는 피고인과 함께 있다가 사망했다. 피고인은 주차장에서 A씨 부부를 만나기 직전, E씨와의 통화내용을 보면 8시27분에 집 전화로 E씨에게 전화를 걸어 “집사람이 전화해 돈을 보내준 사실이 있느냐고 물으면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해라”고 말한 사실이 있는 바, K목사가 김씨가 집을 나간 줄 알고 안심한 채 E씨와 통화하다 들켰다면 그 직후 김씨를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 당황하여 집 앞 주차장에 나가 뒤처리를 고심하며 서성거리다가 A씨를 만난 것이고, 사체는 집 안에 숨겨놓았다가 모든 사람이 잠든 새벽녘에 이 사건 사체 발견 장소에 유기한 것으로 못 볼 바 아니다.’

    그럴 듯한 추론이다. 그러나 범인을 잡고, 그가 범인이 확실하다는 논리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검찰의 임무이고, 검찰이 유죄의 증거라고 제시한 것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재판부의 임무라고 할 때, 재판부가 충분한 증거 없이 검사와 다른 취지로 새로운 논리를 제시해가며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한 것은 다소 공격적인 판결이라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격렬히 싸우면서 함께 저녁식사?

    2심 재판부(광주고등법원 제주부)는 1심과 대조적으로 K목사가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는지, 제3자의 범행 가능성은 전혀 없는지 매우 세밀하게 따져보았다. 결론적으로는 “검사가 제출한 여러 가지 유죄의 간접 사실 내지 정황을 인정할 수 있는 간접 증거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그 종합적 증명력이 공소사실을 진정한 것이라고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이 인정할 정도에 이르렀다고는 볼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K목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 판결문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범행 동기에 대해 김씨가 강한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으리라는 점은 짐작이 가지만, E씨와의 불륜현장을 목격한 것도 아니고, 다만 전화통화 사실만이 드러난 만큼 적절한 해명이나 사과가 있었다면 김씨의 감정도 수그러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보았다. K목사는 사건 당일 오후 5시20분부터 5시30분 사이에 김씨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고 했는데, 극도로 흥분된 상태로 싸움을 계속하면서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고, 오히려 어느 정도 싸움이 진정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에서 부부가 함께 식사했다는 K목사의 진술을 사실로 전제하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김씨의 위 내용물에서 생식으로 추정되는 액성 음식물(깨, 참외씨 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또한 검찰의 주장대로라면 범행은 극히 우발적인 것인데, 전과가 전혀 없는데다 목사인 K씨가 범행 직후 E씨에게 전화를 하고, 아파트 단지 내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승용차 트렁크에 사체를 옮겨놓거나 집안에 사체를 감춰두고 주차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태연히 김씨의 행방을 묻는 등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고 조작하려는 치밀하고도 대담한 수법을 보였다는 것이 재판부로서는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판 ‘목사관 살인사건’ 미스터리

    도피 중이던 K목사의 은신처에서 추리소설 ‘목사관 살인사건’이 발견됐지만 K목사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사체 현상을 갖고도 검사의 주장에 몇 가지 의문점을 제기했다. 먼저 직장 체온 하강률로 추정한 사망시각(오후 8시30분∼9시30분)이 김씨가 텃밭에 들렀다가 기도하고 오겠다면서 집을 나간 8시10분경과 배치되지 않으니 김씨가 K목사와 함께 집에 있는 동안 살해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사망 추정시각이 6시30분∼7시30분으로 나왔다면 김씨가 8시10분경에 나갔다는 K목사의 진술이 거짓이고, 함께 집에 있을 때 살해됐다고 의심해볼 여지가 있지만, 사망추정시각이 K목사가 이야기한 김씨의 외출시각 이후이므로 K목사가 아닌 제3자에 의해 살해됐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는 이야기다.

    2심 재판부는 또 원심에서 피해자가 외출했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K목사의 진술 외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했으나, 사망 추정시각에 김씨가 집 이외의 다른 장소에 있었다는 것, 즉 김씨가 집에서 나갔다는 것을 피고인인 K목사가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각에 김씨가 K목사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검사가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한다고 분명히 못박았다. 그렇게 볼 때 검사가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김씨가 반드시 K목사와 함께 있다가 살해당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3자의 음모(陰毛)와 모발

    김씨의 사체에서 시반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도 쟁점이 됐다. 김씨의 부검을 맡은 하창원 당시 한라의료원 해부병리과장, 제주대 강현욱 교수(법의학)의 진술에 따르면 사체에서 시반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것은 사체가 발견된 시각으로부터 1∼2시간 이내에 옮겨졌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시반은 사후 30분이 지날 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한다. 사후 4∼5시간 이내에 자세변화가 있으면 처음에 생긴 시반이 사라지고 다른 부위로 이동하며 그 부위에서 서서히 시반이 형성된다. 사후 8∼10시간이 지난 후 사체의 자세변동이 있으면 처음 생긴 시반의 일부는 남고 변경된 체위의 아래쪽에 또다시 새로운 시반이 형성된다.

    그런데 1심 재판부가 추론한 대로 사체를 집 안에 보관했다가 새벽녘에 승용차로 옮겼다거나, 검사의 주장대로 오후 8시40분 이전에 승용차 트렁크에 실어뒀다가 다음날 새벽에 유기했다면, 질식사로 사망한 경우 시반 형성이 빠르게 진행되고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강현욱 교수의 진술을 근거로 할 때, 사체에 조금이라도 시반이 생겼어야 옳다는 게 2심 재판부의 판단이다.

    검찰은 법의학자의 진술을 근거로 K목사가 승용차에 피해자를 싣고 이리저리 유기 장소를 물색하러 다니는 동안 그 요동으로 트렁크 안의 피해자 사체에 자세 변화가 있었기에 시반이 형성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2심 재판부는 그와 같이 심한 움직임이 있었던 승용차의 트렁크에서 다른 사람의 모발이나 음모(陰毛)가 발견됐지만 피해자의 모발이나 음모는 전혀 발견되지 않은 점은 설명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모발과 음모에 대해 부언하자면, 경찰이 K목사의 승용차 트렁크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모발과 음모가 발견됐는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검사를 의뢰한 결과 김씨가 아닌 제3자의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차 트렁크에서 어떻게 제3자의 음모가 나올 수 있었을까. 검찰측도 황당해했다는 후문이다. 검찰이 승용차 트렁크를 사체 운반 수단으로 전제해놓고도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재검증을 의뢰하지 않은 것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2심 재판부는 검찰이 K목사를 범인으로 단정한 나머지 초동수사 단계에서 간과한 작은 부분까지 지적하며 제3자의 범행일 수도 있다는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검찰은 김씨의 발에 어설프게 끼워진, 흙이 묻지 않은 운동화가 김씨가 집 안에서 살해됐음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사체 발견 당시 피해자의 모습이나 현장 상황에 비춰보면, 범인이 피해자를 마치 실내에서 살해한 것처럼 보이게 피해자를 사체발견 장소에 유기한 것으로 볼 수는 있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신발이 피해자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며 검찰의 허를 찔렀다. 또한 검사의 주장대로 살해 직전까지 격한 다툼이 계속됐다면 김씨가 안경을 착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사체의 얼굴 부위에 남은 안경흔(痕)을 설명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으로 남는 것은 K목사가 재판 과정에서 “처가 신발을 구겨 신는 습관이 있어 신발이 벗겨졌을 수 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는 점. K목사의 이러한 진술은 신발이 김씨의 것임을 전제한 것이고, 만약 신발이 낯선 것이라면 수사기관에서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K목사가 왜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어쨌든 검찰과 경찰로서는 이번 판결로 인해 형량이 무거운 형사사건의 경우 초동수사 단계에서부터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까지 꼼꼼하게 확인해야 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2심 재판부는 K목사의 행동이나 진술에 일관성이 없거나 거짓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고, 여러 가지 정황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부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자신을 용의자로 의심하는 듯한 수사관들의 질문에 스스로 개인적인 치부나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정황을 처음부터 털어놓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고, 사건 당일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거나 피해자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는 관계인들의 진술은 극히 주관적인 것이어서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고해성사, 도피행각

    또한 고해성사 관련 문의나 김씨 사망 직후 동거를 시작한 점, 도피행각 등은 극도의 상실감과 삶의 의욕을 잃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범인으로 몰려서 벌어진 일련의 일들이라는 K목사의 해명이 거짓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추리소설 ‘목사관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읽었다고 단정할 근거가 없으므로 결국 이러한 사정만으로 K목사를 유죄로 인정하거나 유죄인정의 결정적인 정황으로 삼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간접 증거들에 대해서도 K목사를 유죄로 인정하는 정황으로 삼기에 부족하다는 게 2심 재판부의 판단이다. 피해자의 시체를 덮고 있던 포대가 반드시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지하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K목사가 범인이라고 인정하는 정황으로 삼기에는 부족하다는 것. 또한 K목사의 승용차에서 채취한 식물이 사체 발견 장소에서 자라는 바랭이와 같은 종류의 식물로 판명됐다고 하더라도, 그 바랭이가 반드시 사체 발견 장소에만 자라는 것도 아니어서 이것만으로 K목사가 사건 당일 사체 발견 장소에 갔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 같은 내용을 종합하여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일부 신빙성 없는 진술 및 의심스러운 행적과 실내에서 살해된 것처럼 보이도록 유기된 사체가 피고인을 따라나선 이들에 의해 발견된 점 등이 피고인이 범인이라고 의심할 수 있는 여러 정황을 포함하고 있으나, 그러한 정황만으로는 피고인이 범인이라고 단정하기에 의문점이 많을 뿐만 아니라 제3자의 범행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난해 12월9일 대법원 제2부(주심·김용담 대법관)는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이 사건 간접 증거들을 종합해 보더라도 이 사건 공소 사실의 진실성에 관한 합리적인 의심이 배제될 정도에 이르렀다고는 볼 수 없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한 조치는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간다”며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K목사는 사건 발생 4년6개월 만에 아내를 죽였다는 누명을 벗게 됐다.

    “굉장히 의심스러운 7.5 사건”

    대법원의 이정석 공보관은 이번 판결에 대해 “엄격한 증거주의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정석 공보관은 이번 사건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 판결문이 완성되기 직전 인사이동을 해 판결문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2004년 광주고등법원 제주부 재임 당시 이 사건을 실질적으로 담당한 판사였기 때문이다. 무기징역형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한 실질적 주인공이다.

    이 공보관은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K목사의 행동에 수상한 부분이 많고 진술도 엇갈리는 등 판결을 내리기에 난해한 부분이 많은 이 사건을 신중하게 판단하기 위해 저녁시간 때에 K목사 부부가 살던 아파트 단지에 여러 차례 가봤다고 한다. 그 결과 “아파트 동과 동 사이가 매우 가깝고, 시야가 트여 있어 사람 눈에 띄지 않고 시체를 차에 옮겨 싣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사건이 발생한 여름엔 단지 내에 왕래하는 사람이 많고, 창문을 열어둔 집도 적지 않았을 것이어서 피고인이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사체를 승용차에 옮기기는 불가능했으리라는 것.

    그럼에도 K목사가 범인일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이 공보관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법관이 어떻게 유죄와 무죄를 판가름하는지 엿볼 수 있다.

    “1에서 10까지 있다고 할 때, 보통 8을 넘어가면 유죄라고 본다. 그렇게 봤을 때 7.5 정도의 사건은 굉장히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고 살해 동기도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인이라고 단정하기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는 경우다.”

    7.5인 사건과 8.5인 사건의 경우 아주 비슷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로 무죄와 유죄로 갈린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쯤에서 K목사의 근황이 궁금할 수 있다. 그와 몇 차례 전화 통화가 성사됐다. 현재 서울 모처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처음엔 “기도를 해본 뒤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끝내 만남을 미뤘다. 그에겐 이번 사건과 법정 공방이 영원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일 지도 모르겠다. 대법원 판결 직후 K목사는 검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검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을 담당한 검사는 할 말이 많은 듯했지만 “대법원 판결이 난 이상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며 사건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K목사는 누명을 벗었지만 김씨의 억울한 죽음은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범죄의 형태가 갈수록 지능화하고, 가족에 의한 직접 혹은 청부 살인도 늘고 있다. 범인이 현장에 지문을 남기거나 은신처에 피해자의 피가 묻은 옷을 숨겨놓는 식의 지극히 고전적인 사건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법원, 철저히 소극적이어야”

    “그런데도 법원에서는 간접 증거를 인정하지 않고 직접적인 증거만 요구하니 살인사건의 경우 초동수사 단계에서 유력한 용의자로부터 자백을 받지 않는 한, ‘끝났다’고 봐야 한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들린다. 더욱이 가족이 범인으로 의심될 경우 유족들이 수사에 비협조적이기 때문에 특히 애를 먹는다고 한다. 유족은 가족간의 내밀한 사정을 잘 알기에 심증은 있지만 가족 중 누군가가 범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이정석 공보관에게 “직접 증거나 목격자를 확보하기 어려운 밀폐된 공간에서 가족에 의한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법원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단호하게 “법원은 철저히 소극적이어야 한다”고 답했다.

    “형사재판만큼은 법관이 아무리 조심해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철저히 소극적이어야 한다. 설혹 심정적으로 유죄로 의심된다고 하더라도 형사재판의 경우 일단 유죄가 선고되면 그 형량이 무겁기 때문에 판사는 더욱 엄격한 증거를, 다시 말해 직접 증거이거나 간접 증거라도 증명력이 아주 높은 것을 요구하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판사들 사이에 “사실인정에 대해 자신 없어 하는 법관이 안전한 법관이고, 확신에 찬 법관은 위험하다”는 말이 회자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공소를 제기한 살인사건이 무죄로 판결날 경우 검사들은 유가족들로부터 “진범을 꼭 잡아달라”는 애원을 듣곤 한다. 밤마다 꿈에 피해자가 나타난다는 가족들의 눈물 어린 애원을 듣지 않기 위해 검사들로서는 7.5 수사의 부족한 0.5를 법관의 심증으로 채우려고 할 게 아니라 철저한 초동수사와 수사 과학화로 채워야 할 터인데, 범죄가 갈수록 지능화하는 것에 비하면 과학 수사를 위한 여건이 이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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