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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K 태풍의 눈, 김경준·이보라 가족사

“자식 성공 위한 집념과 희생, 청빈한 공직생활 … 내 자식이 왜?”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BBK 태풍의 눈, 김경준·이보라 가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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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릴 적 미국으로 건너가 명문대를 졸업하고 변호사와 펀드매니저가 된 성공한 이민 1.5세대.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한 에리카 김·김경준 남매는 어쩌다 지금의 악몽 같은 소용돌이에 휩쓸렸을까. 쉬 잦아들 것 같지 않은 이 소용돌이에 발을 담근 또 한 사람, 이보라씨는 어떤 인물인가. 끝 모를 BBK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대는 세 사람과 이들을 안타깝게 지켜보는 가족의 사연을 취재했다.
BBK 태풍의 눈, 김경준·이보라 가족사
1995년 발간된 에리카 김 자서전 ‘나는 언제나 한국인’은 이미 절판된 지 오래다. 국회도서관에서 이 책을 대출받아 읽는 동안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에리카 김(한국명 김미혜·44)이 갓 서른을 넘긴 나이에 펴낸 자서전은 10여 년 뒤 닥칠 시련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스물여섯 살에 ‘코넬대· UCLA 출신 미국 변호사’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거머쥔 에리카 김의 앞날은 창창해 보였다.

결과적으로 ‘일찍 터뜨린 샴페인’이 돼버린 자서전은, 공교롭게도 30년 넘게 한국에 살다가 미국으로 건너간 한 이민자의 ‘산산조각 난 아메리칸 드림’으로 시작된다. 친딸을 성폭행하고 학대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은 전직 목사의 이야기다. 에리카 김이 항소를 진행했으나 결국 84년형을 언도받자 남자는 성탄절 새벽에 자살하고 만다. 영어도 못하고 툭하면 가게 일을 시켜대고 점심 값 몇 달러에도 인색한 수전노 아버지와, 영어가 완벽한 자녀 사이에 깊게 파인 골이 끔찍한 파국을 초래한 것.

에리카 김은 “한가족 안에서 완전히 다른 두 개의 문화가 끊임없이 충돌하며 빚어낸 극단적인 삶의 모습. 그것은 단순히 한 개인의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 현재 이곳에서 살고 있는 모든 한국인이 끌어안아야 할 바로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했다.

‘창백하고 과로에 지친 얼굴’

2007년 겨울을 뜨겁게 달군 ‘BBK 사건’의 당사자 에리카 김과 김경준 남매 가족은 어땠을까. 알려진 대로 김씨 남매는 1970년대 초, 에리카 김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두 사람 밑으로 막내동생 경모씨가 있었으나 1999년 병으로 세상을 떴다. 에리카 김은 자서전에서 “1970년대 초 우리나라는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고,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했던 젊은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무작정 짐을 꾸리는 것이 한동안 열병처럼 번지던 시기였다”며 “우리 부모님도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기보다는 그런 이유에서 이민을 결정했던 것 같다”고 밝히고 있다. 에리카 김의 외삼촌, 이모 등 외가 식구들이 먼저 미국으로 건너간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에리카 김의 자서전에 따르면 아버지 김세영씨와 어머니 한영애씨는 각기 연세대와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김경준씨의 장인 이두호씨는 “사돈이 평안북도 선천(宣川) 출신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고, 사부인은 경기여고-이화여대로 이어지는 당대 최고의 명문 코스를 밟은 청주 한씨”라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이민 가기 전까지 “정원 가득 나무들이 있고, 동생들과 술래잡기를 할 때 곧잘 숨었던 장독대가 있던 효창동” 집에 살았으며, 아버지 김씨는 한국에서 육체노동을 해본 적 없고, 어머니 한씨는 식모를 쓰는 전업주부였다. 하지만 미국 정착 초기 김씨는 주유소에서, 한씨는 공장에서 일했다. 김씨 가족이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은 건 주류판매점(Liquer shop)을 운영하면서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에리카 김이 인용한 막내 경모씨의 글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이 새로운 땅은 내 부모님의 가치를 모두 발가벗겨버렸습니다. 두 분의 한국 명문대 졸업장은 이 나라에서는 별반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가끔 소리를 죽여 우셨고 아버지는 미소를 잃으셨습니다. 청결하고도 단아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빛이 바래고 푸석푸석해졌습니다. 그 옛날의 아름답고 포근한 얼굴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단지 창백하고 과로에 지친 얼굴만이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는 날로 수척해지고 연로해지십니다. 그분의 얼굴은 이제 한국에서의 영민함을 잃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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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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