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호

네티즌 여론, 대중의 지혜? 난폭한 포퓰리즘?

  • 이 설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입력2008-08-10 14: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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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방적이고 폭력적이며 때로는 독단적이다.’ ‘허위 정보와 무책임한 의견이 넘쳐난다.’ ‘원하는 정보와 듣고 싶은 의견만 골라 본다.’…
    • 이외에도 인터넷의 ‘결함’으로 지적될 만한 항목은 많다. 그러나 수많은 ‘결함’에도 인터넷은 여전히 여론 생산의 이상적인 모델로 통한다. 개인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정보와 의견을 취합해 전파하는 매체로서 인터넷만한 게 없다.
    • 얼마 전 우리는 새삼 이 같은 인터넷의 위력을 봤다. 바로 촛불집회다. 인터넷을 통해 결집한 개인들은 처음으로 기존 권위에 대항할 만한 힘을 과시했다. 이를 두고 두 가지 시각이 공존한다.
    • 하나는 온·오프라인을 종횡무진하는 합리적인 다중(多衆)을 봤다는 것, 다른 하나는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우매한 대중(大衆)을 봤다는 것이다.
    • 이렇듯 인터넷은 ‘야누스의 두 얼굴’로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왔다.
    네티즌 여론, 대중의 지혜?  난폭한 포퓰리즘?
    황우석 교수 사건을 기억하는가. 그렇다면 ‘브릭(BRIC)’이라는 이름도 기억하는가. 2005년 겨울 대학과 정부, 그리고 자본의 결탁은 믿기 힘든 뉴스를 탄생시켰다. 세계적 기대를 모은 줄기세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 방송 프로그램이 그 사실을 지적했을 때 첫 반응은 “믿기 힘들다”였다. 그리고 “전문적인 영역은 전문가들의 목소리로만 반박될 수 있다”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이때 관련 논문 등 시시비비의 검증을 주도한 웹사이트가 있었다. 바로 젊은 연구자들의 모임인 ‘브릭’이었다.

    주목할 부분은 이 사이트에서 지식이 생산되고 유통된 ‘과정’이다. 사이트에 처음 문제 제기를 한 이는 익명의 아이디(ID)로 글을 올렸다. 이 글은 다른 익명의 누리꾼들에 의해 재가공됐다. 틀린 부분은 수정을, 부족한 부분은 보완을 거쳐 글의 내용은 신뢰도와 정확도를 더해갔다. 그렇게 완성된 ‘의견’은 인터넷 망을 따라 널리 퍼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인터넷에 형성된 집단지성을 보았다”고 평가했다. 비록 동종업계 종사자들이라지만, 소수 전문가보다 다수의 여러 견해가 현명한 판단을 낳았다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인터넷을 생활화했다. 이는 모든 영역에서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변화의 바람은 미디어와 정치 분야에서 가장 거셌다. 과거에는 이슈를 만들고 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특권을 언론과 정당만 가졌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펜, 아니 키보드를 두드린다. 자기 의사를 직접 전달하고 영향을 줄 수단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다 이슈가 생기면 뜻 맞는 이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함께 행동한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종횡무진하는 새로운 ‘권력’의 출현이다. 2008년 한국의 여름을 달군 촛불집회가 그 역사를 열었다. 광화문의 거대한 컨테이너 장벽에 맞선 촛불의 행렬은 세계 어디에도 참조할 교과서가 없는 새로운 현상이었다.

    “촛불을 누구의 돈으로 샀느냐?” “배후는 없다.” “촛불집회의 배후는 양초공장 사장이다.” 항간에는 촛불집회의 배후를 놓고 한동안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진보와 보수진영이 최종으로 지목한 ‘배후’는 인터넷이었다. 촛불집회 참가자의 상당수는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회원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의견을 개진하고, 그것을 토대로 행동에 나섰다.



    촛불집회를 열렬히 지지하던 인터넷 여론은 그러나 순간 돌변했다. 6월 중순 이후 촛불시위는 대중 동원에 한계를 보였고, 촛불시위 관련 기사에 대한 부정적인 댓글이 부쩍 늘었다. 이와 함께 ‘인터넷 여론은 과연 합리적인 것이었는가’에 대한 반성도 뒤따랐다.

    이 글은 “인터넷 여론은 과연 믿을 만한가”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다. 사회과학 계열의 대학교수 10명에게 기자가 작성한 ‘촛불집회와 인터넷 여론’주제의 설문을 보내 얻은 답변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Q1 : 이번 촛불집회는 온라인에서 형성된 커뮤니티가 현실공간에서 강력한 정치 결사체의 기능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촛불집회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시겠습니까?

    “세계 정치사에 획을 긋는 사건이자 새로운 패러다임의 형성이다.”(한나라당 김형오 의원) “좌파가 주도하는 거리의 비이성적 굿판이다. 촛불집회가 천민민주주의로 치닫고 있다.”(한나라당 주성영 의원) “촛불집회는 위대하지만 끔찍한 포퓰리즘적 행태다.”(작가 이문열)

    지식인이 아닌 대중이 주도한 촛불집회의 성격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크게 “온라인에서 토론을 벌이다 이슈가 형성되면 직접행동에 나서는 ‘군중의 지혜’를 봤다”는 긍정적 의견과 “제한된 정보와 소수가 선동하는 파시즘적 행태”라는 우려가 엇갈린다.

    “한마디로 ‘아날로그 정부와 디지털 시민의 격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촛불집회에서 디지털 매체는 누리꾼 간 정보의 교류와 소통, 여론 형성, 대중 동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폭넓게 활용됐다. 그 뿐만 아니라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시민들의 정서와 행동방식에도 온라인 문화의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이를테면 지도부 없는 시위과정에서 집단지성의 원리가 읽혔고, 장기간 지속된 집회도 지칠 줄 모르는 시민들의 참여는 웹2.0에서 말하는 ‘롱테일의 법칙’이 적용된 현상으로 보인다. 또 유연하고 무정형적인 시위 행렬은 하이퍼링크적 흐름을 꼭 닮았으며, 시민들이 직접 만들어 들고 나온 피켓에 적혀 있는 직설적이면서도 재치 있는 문구들은 게시판 댓글을 연상케 한다. 이른바 ‘닭장차 투어’나 ‘신호등 시위’에서도 놀이와 저항이 화학적으로 결합된 온라인 문화의 특성이 배어 있다. 결국 온라인을 통해 형성돼 있던 누리꾼들의 고유한 문화가 전통적인 오프라인 시위 양상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것이다.

    이에 반해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아날로그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수평적인 쌍방향 소통을 원하는 시민들에게 수직적인 일방향 소통만을 보여줬으며, 괴담론과 배후론에 매몰돼 시민들의 새로운 모습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촛불집회는 정부와 시민 사이에 엄청난 디지털 격차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 계기다.”(민경배·경희사이버대·사회학)

    “촛불집회의 어떤 부분에서 ‘온라인에서 형성된 커뮤니티가 현실공간에서 강력한 정치결사체로’ 되는 현상을 보았는가? 만일 그것이 다음의 ‘아고라’라고 한다면, 아고라는 ‘청계광장’이나 ‘서울시청 광장’과 같은 토론이 이뤄지는 공간이었다. 마치 런던의 하이드파크에 온갖 논객이 모여들어 떠드는 것과 같다.

    이번 촛불집회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이뤄진 집단관계의 속성이 현실 공간에서 유사하게 재현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한국인의 집단행동 패턴을 잘 보여줬다. 특히, 대세가 형성되면 내용과 상관없이 그것을 따르고, 심지어 그 대세의 기본 속성을 그대로 수용하는 성향을 보여줬다.

    촛불집회의 성격을 제대로 규정하려면, 이 집회가 이뤄진 현상에 대해 좀 더 분명하게 관찰된 사실을 언급해야 할 듯하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촛불집회는 ‘일어난’ 현상보다 ‘보고 싶어하는’ 현상만 보려는 상황이 됐다.”(황상민·연세대·심리학)

    “인터넷을 매개로 몇몇 개인이 특정 사건을 이슈화하고, 이에 동조하는 자발적 대중을 동원·조직해 현실사회에서 집단 움직임으로 발전시킨 사례는 사실상 이전에도 있었다(예컨대 미선·효순 양 사건). 그러나 이번 촛불집회는 그 규모나 참여주체의 다양성 등의 측면에서 이전 사례들을 뛰어넘은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상기할 점은, 인터넷 커뮤니티가 촛불집회를 ‘야기했다(cause)’기보다는 이를 ‘가능하게 했다(enable)’라고 말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읽고 이로 인해 새로운 의견을 ‘형성’해 실제 행동으로 옮긴 경우도 있겠지만, 그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견해를 다른 사람의 글을 통해 확인하고 ‘강화’한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사람들이 자신의 믿음, 태도와 합치되는 정보를 선호하고 동일한 정보라도 자신의 신념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음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인터넷에 의견을 묻다”

    네티즌 여론, 대중의 지혜?  난폭한 포퓰리즘?

    개방과 소통을 특징으로 하는 인터넷은 기존 미디어를 대신하는 여론 생산 매체로 성장했다. 이런 인터넷 여론을 두고 ‘집단지성’이라는 견해와 ‘포퓰리즘’이라는 견해가 엇갈린다.

    커뮤니티를 통해서는 두 가지 성격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바로 사안과 관련된 사실(fact)과 사안에 대한 여론의 향방(opinion climate)이다. 두 가지 중 후자가 더 큰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한다. 다만 그렇게 공유된 현실인식이 대중적 실천으로 발현되는 데 있어 매체 특성이 기여한 바가 크다. 인터넷이었기에 집회 장소, 시간 등에 관한 구체적 정보가 대규모로 빠르게 확산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쇠고기 수입’과 같은 구체적 이슈에 대한 견해를 바탕으로 탄생한 ‘온라인 커뮤니티’는 일반적 의미의 정치결사체와는 구별돼야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구성원 간 상호의존성이 약하고, 조직의 경계가 불분명하며, 이슈 자체의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명멸한다. 반면, 일반적 의미의 정치 결사체는 보다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정치적 가치와 신념에 따라 형성돼 개인의 자아 정체성을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서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실제 다른 사회적 이슈로 촛불집회의 의제를 확대했을 때 상당수 참여자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애초에 그들이 공유한 가치가 특정 사안에 국한된 것이었기 때문이다.”(이은주·서울대·언론학)

    Q2 : ‘인터넷 여론’을 기반으로 한 촛불집회를 놓고 ‘직접 민주주의의 출현’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위험한 포퓰리즘’이라는 부정적인 견해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IT강국인 한국에서 최초로 등장한 ‘인터넷 여론’의 폭발적인 영향력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는 무엇입니까? 인터넷 여론은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심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까요?

    “앨빈 토플러를 비롯한 미래학자들은 정보사회가 다양성과 참여도를 넓힌 새로운 민주주의로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은 인터넷이 등장한 뒤 대의(代議) 민주주의를 대신하여 직접 민주주의에 가까운, 시민 모두가 참여하는 참여 민주주의와 네트워크형 수평사회가 오리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직접 민주주의의 이상적 모델로 삼아온 그리스 도시국가와 비교할 때,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인구도 훨씬 많은 현대사회에서 단지 인터넷의 등장이라는 기술적 가능성에만 주목해 이들의 예견처럼 직접 민주주의가 현실화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강원택, ‘한국정치 웹2.0에 접속하다’ 중에서)

    “양면성이 있다. 정치란 직업적인 엘리트가 전문지식을 활용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보는 엘리트(대의)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는 촛불집회를 중우(衆愚)정치로 볼 것이다. 반면 엘리트 민주주의가 ‘인민에 의한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본령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관점에서는 직접 민주주의의 출현으로 볼 것이다. 결국 자신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신념이나 믿음에 따른 해석이다. 어느 것이 옳다고 단정할 순 없다.

    문제는 해당 정치공동체가 인터넷 여론을 민주주의의 심화, 발전으로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양성하느냐, 아니면 그것이 민주주의에 위험하다는 해석을 유포시켜 억압하느냐에 달렸다. 그리고 이런 이중적 해석은 민주주의의 해석을 둘러싼 투쟁을 구성할 것이다.”(강정인·서강대·정치학)

    “노무현, 이명박은 정당이 만든 대통령이 아니다. ‘노사모’와 ‘경제 대통령’ 등 인터넷 여론을 통해 등장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처럼 온라인 공간의 수많은 공동체가 우리 시대 정치·경제 질서를 바꾸고 있다. 새로운 조직과 방식으로 움직이는 ‘제4의 결사체’다. 이들은 이슈와 규모와 소통 구조에 제약이 없다는 특징을 보인다. 유연하고 자발적인 집단이다.

    이 결사체가 경제·사회·정치적 영역에서 중요한 지표가 됐는데, 이는 새로운 질서로 봐야 한다. 기존의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문제점을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하는 것이다. 현재 대의 민주주의는 복잡한 현대사회적 요건을 끌어안기에 부족한 측면이 있다. 인터넷이 참여 민주주의의 폭을 넓혀 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다. 다만, 참여 민주주의를 확장시키는 한편 대의 민주주의를 병행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볼 수 있다.”(조대엽·고려대·사회학)

    “한국인은 인터넷을 통해 대세를 알리는 단서를 찾고, 자신의 생각이 다른 이와 얼마나 유사한지 확인하는 행태를 보인다. 이것을 여론 형성이라고 한다면, 한국의 인터넷은 대세를 형성하는 데 폭발적인 힘을 보인다.

    촛불시위를 ‘직접 민주주의의 출현’과 ‘위험한 포퓰리즘’으로 보는 것은 실제 현상과 관계없이 진보와 보수를 대변하는 표현인 것 같다. 촛불집회는 마치 티핑(tipping) 현상처럼 대중이 유행에 동참하는 양상을 보였다. 처음 참여하는 사람조차 뚜렷한 의도나 목적, 또는 이슈가 있었던 건 아니다. 미국 쇠고기 수입이 단서가 됐지만 결국은 집권세력에 대한 불만,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불만, 그리고 호기심 때문에 다양한 군중이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집단 속에서 사람들은 군집행동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할 단서를 열심히 찾았다. 의식적인 측면에서는 미국 쇠고기 수입에 대한 반대가, 비의식적인 측면에서는 이명박 개인이나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구체적인 사회적 이슈로 드러난 것이다.

    이런 경우 직접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그 ‘민주주의’는 대중의 모임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힘들다. 분명한 사실은 촛불집회는 대중의 모임이 현실에서 다양하고 예측불가능한 행태로 움직인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사회는 대중을 아우르는 핵심 가치나 틀이 없는 상태다. 마치 촛불집회는 태풍의 형성과 진화, 그리고 소멸의 과정과 같다.”(황상민)

    새로운 민주주의

    “촛불집회는 한국 민주주의 정치구조 속에 나타난 대의제도의 기능 약화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근대 민주주의 정치제도는 대의제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정당과 정당을 통해 선출된 의회가 대의제도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는 과정에서 지역분할구도에 근거한 정당체제가 나타났다. 3김 시대가 그 시작이었다. 지역분할구도에 근거한 정당체제에서 정당은 민심(民心)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후보에 상관없이 특정 지역에는 특정 정당 깃발만 내걸면 당선된다. 이러한 체제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굳으면서 국민은 민심을 반영할 대의 메커니즘에 실망했다. 총선 투표율 하락이 이를 방증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촛불집회가 국민의 의사표현 방법으로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IT 강국인 한국에서 인터넷을 통한 여론 형성은 민주주의 제도의 새로운 영역처럼 보인다. 민주주의 제도는 어떤 형태이건 국민 여론을 반영해야 하는데, 언론기관의 파행적 행태로 여론 반영 메커니즘이 실종·약화됐다. 언론기관이 여론 반영보다는 권력의 축으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인터넷을 통한 여론 형성과 오프라인의 촛불집회가 대안으로 탄생했다고 본다.”(김기정·연세대·정치학)

    “‘인터넷 여론이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인터넷 여론의 사회적, 정치적 효과를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이 있다. 오히려 인터넷 여론이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면 어떤 것이고,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면 이는 어떤 것일까를 논의하는 것이 보다 생산적일 듯하다.

    예컨대 인터넷을 통해 개인이 의제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이것이 개인적 네트워크의 범위를 넘어 익명의 대중에게 빠르게 전달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 중 하나인 ‘다른 사람에게 본인의 의견을 알릴 권리(right to be heard)’를 실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이은주)

    Q3 : 인터넷 여론의 형성과정과 관련해, 누리꾼 간 견제를 거친 합리적인 집단지성이라는 긍정적인 견해와 참여의 질과 수준이 낮은 감정적 비합리적인 선전·선동에 불과하다는 부정적인 견해가 엇갈립니다. 인터넷 여론을 형성하는 이른바 ‘집단지성’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인터넷에서 구현되는 집단지성(대중의 지혜)은 시끌벅적한 듯하지만 어딘가 질서가 있고, 늘 신선한 아이디어가 샘솟고, 기발하고 참신한 개성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정말 살맛나는 세상, 마치 고대문명 발상지에나 있을 법한 정치무대, 부족사회와도 같다”(김국현. ‘WEB2.0 경제학’ 중에서)

    집단지성의 사전적 의미는 ‘다수의 개체가 서로 협력 혹은 경쟁을 통하여 얻게 되는 지적 능력이 개개의 개체가 갖는 지적 능력을 넘어서는 현상’이다. 집단지성은 박테리아부터 동·식물까지 거의 모든 범주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예컨대 개미는 지능이 없지만 집단으로 모이면 대형 개미집을 만드는 지적 능력을 발휘한다.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참여해 첨삭할 수 있는 백과사전이다. 내용이 틀렸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접 고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렇게 채워진 내용의 백과사전이 쓸 만할까 싶지만, 위키피디아는 나름의 신뢰성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위키피디아의 성공은 인터넷 집단지성이 발현된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인터넷에서 나타나는 집단 의사결정 과정은 어떨까.

    네티즌 여론, 대중의 지혜?  난폭한 포퓰리즘?

    촛불집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게시판 아고라. 아고라에서 형성된 여론은 신뢰할 만한가.

    “온라인 토론 공간이 진정한 의미의 공론장(public sphere)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솔직한 의견 표현 외에도 이성적·합리적 근거 제시, 상반된 견해에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열린 자세, 충분한 논거가 뒷받침될 경우 기존의 의견을 수정할 줄 아는 유연성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온라인 게시판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다른 사람의 주장에서 그 근거를 면밀히 검토하기보다는 ‘우리 편’인지 아닌지를 먼저 판단하고, 이를 기반으로 선택적으로 정보를 해석하고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연구논문들에 따르면 컴퓨터로 매개되는 소집단 토론에서 참가자 개개인에 대한 정보가 부재한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기존 성향과 일치하는 다수 의견을 더욱 극단적인 것으로 인식했다. 또, 이에 동조해 자신의 견해 역시 극단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한 연예인은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공공 기물 훼손, 무질서한 행동에 대해 언급했다가 수많은 누리꾼의 반발을 사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끝내 하차했다. 그녀의 발언이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시민의 기본적인 덕목에 대한 것이었음을 생각하면 이 같은 결과는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이은주)

    “촛불집회 군중은 수십만이 모였는데도 불구, 도로를 정리하고 (경찰 측 강경대응을 고려하면) 비교적 평화적으로 시위했다. 조직의 핵심부에 의해 동원된 군중이나 충동적으로 나온 개인이 아니라, 상호성찰의 과정을 거쳐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나온 대중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군중은 ‘집단지성’보다 ‘이성적 군중’으로 표현하는 게 적합하다고 본다. 일상에서 끊임없이 토론하고, 이슈가 생기면 바로 행동한다. 개체의 지성이 모여 더 높은 수준의 균질적 집단의 특징을 뜻하는 집단지성이나 현장성만을 강조한 스마트몹(smart mob)이라는 개념과는 또 다르다.”(조대엽)

    “우리나라 인터넷에서 집단지성을 찾으려는 노력이나 이것을 언급하는 전문가들의 생각은 실제 일어나는 현상을 간과한 것이다. 외국의 현상을 나타내는 전문용어를 우리의 상황과 조금 유사하다고 해서 무작정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인터넷의 움직임은 ‘대세추종현상’으로 요약된다. 미국의 위키피디아가 집단지성의 예라면, 한국의 네이버 인기 검색어나 지식IN은 대세 추종의 대표적인 예다. 아고라 등 인터넷 토론장은 일방적으로 자기주장을 표현하는 공간이지 토론은 없었다. 이런 행동이 일어나는 것은 사이버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자기 정체성 때문이다.”(황상민)

    Q4 : 이번 촛불시위 및 인터넷 여론 형성과정에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다음(Daum)’이 토론의 장으로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습니다. 다음 아고라광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서구사회에서 ‘링크의 신뢰’를 바탕으로 검색시장 1인자로 군림하고 있는 구글(Google)과 관련지어 생각해볼 때, (익명성을 전제로 개인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는) 국내 포털사이트들의 여론 형성 기능에 개선되어야 할 점은 없을까요?

    촛불집회를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게시판 아고라. 조선일보는 한 인터넷 조사회사의 자료를 근거로 “다음 아고라 게시판은 소수 누리꾼에 의해 주도돼온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촛불집회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4월1일~5월18일 아고라의 게시판 글을 분석한 결과, 상위 10명이 2만1810건의 글을 썼다는 것이었다.

    이에 미디어다음은 즉시 반박에 나섰다. “분석대상의 상위 10%는 내용 없는 도배글이 많아 정성적 분석을 뺀 정량적 분석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아고라의 글들은 신뢰할 만하며, 논쟁적인 토론이 이뤄진다는 주장도 나왔다. 시시각각 올라오는 아고라의 글들은 ‘댓글수’ ‘조회수’ ‘추천수’가 높은 순으로 노출되는데, 이런 장치가 게시글의 신뢰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아고라에서 형성된 여론은 신뢰할 만한가.

    “그리스 폴리스에서는 토론을 거쳐 의사결정을 하는 직접 민주주의가 이뤄졌다. 그것을 상징화해서 다음 인터넷 토론게시판을 아고라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폴리스의 토론은 공개된, 열린 토론이었다. 또 토론에 참여하던 이들은 노예제를 바탕으로 한 유한계층이었고, 그들은 소수 의견에 대한 관용과 토론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인정했다.

    아고라의 정치

    네티즌 여론, 대중의 지혜?  난폭한 포퓰리즘?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를 창립한 지미 웨일스. 위키피디아는 집단지성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다음의 아고라에서는 이런 미덕이 보이지 않는다. 익명의 가면 속에 이견에 대한 배척과 축출이 있을 뿐이다. 반대 의견에 “너 알바지?” 등의 리플을 달고, 글 앞에 ‘명박퇴진’이라는 문구를 붙이는 건 이런 기본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걸 방증한다. 민주주의에서는 타자와의 차이에 대한 인정이 중요하다.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불신을 협력으로 바꿔 공공문제에 대처하는 게 정상적인 민주주의다. 그렇지 않으면 인터넷은 평소에 소강 상태에 있다가 이슈가 있을 때마다 투쟁 상태로 돌입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으로 활용될 뿐이다.”(김민기·숭실대·신문방송학)

    “대체로 이번 촛불집회는 정부 측의 대응보다 집회 참가자들의 집단지성이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독창적인 생각과 행동을 많이 생산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누리꾼들이 수많은 눈을 통해 목격한 현실 경험을 아고라에 제공하고, 이들의 발언과 생각은 적절한 토론을 거치면서 대체로 정부나 언론보다 뛰어난 수준을 보였다. 그리고 적절한 정보는 아고라를 통해 적시에 공급된 경우가 많았다. 물론 아고라 광장에 잘못된 정보가 유포되기도 했다. 대중이 이를 쉽게 신뢰하는 부작용도 있었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가 쉽게 유포되고 그것이 신뢰를 얻은 것은 무엇보다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아고라에 대한 신뢰보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크다 보니 잘못된 정보가 쉽게 확산된 것이다.”(강정인)

    “외국과 비교해 한국의 인터넷에서 발견되는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누리꾼 여론이 대규모로 형성될 수 있는 공간이 발달해 있다는 점이다. 다음 아고라는 이 중에서도 가장 넓은 온라인 광장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포털들은 게시판이란 빈 광장만 제공한 반면, 다음 아고라는 주제별 토론방, 누리꾼 청원 등 광장 위에 누리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시설을 마련해줬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신뢰’ 문제에선 구글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구글 검색의 페이지 순위를 높이기 위한 웹사이트 진단 및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컨설팅 업체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구글 검색 결과에서도 얼마든지 의도적 조작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국내 포털도 누리꾼 집단지성을 통해 참 정보와 거짓 정보를 효과적으로 구분해낼 수 있는 평판시스템의 고도화나, 소수 누리꾼의 게시판 도배나 여론조작을 견제할 수 있는 필터링 장치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을 제언한다.” (민경배)

    Q5 : 이번 촛불시위 이전부터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에 대한 규제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대두된 바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포털사이트들의 자의적인 뉴스 선별에 따른 정치적 편향성, 검증되지 않은 루머 유통에 대한 책임 문제 등입니다. 여론 형성 및 유통의 중요한 장으로 등장한 인터넷에 대한 규제의 범위와 한계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포털, 블로그, 홈페이지 등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타율적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 현실적인 실천방안도 없다. 결국 미국 인쇄매체처럼 명예훼손 소송이나 국가안보 차원에서 가하는 강제력 정도가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인터넷 매체 운영자들이 무제한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인터넷 콘텐츠가 신뢰를 얻으려면 운영자의 자율 행위 기준이 지금보다 높아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시장에 의한 퇴출, 명예훼손 등 민사상 배상 책임을 엄격히 물어야 한다. 이번 촛불집회도 그렇고, 허위 게시글이 난무하는 상황을 보면 한국의 인터넷 문화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이재경)

    네티즌 여론, 대중의 지혜?  난폭한 포퓰리즘?

    미국에서는 구글의 검색 순위 조작을 막기 위한 컨설팅이 활발하다.

    “현재 포털이 갖고 있는 엄청난 영향력을 감안하면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 부여는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의 포털 규제 논의에서는 두 가지 문제점이 발견된다. 첫째, 법률적 규제 장치를 통해 포털의 사회적 책임을 강제하는 방법만이 고려되고 있다는 점이다. 법률적 규제보다는 업체의 자율 규제나 누리꾼 이용자 규제 등 다양한 카드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며 바람직한 방법일 될 것이다.

    둘째, 포털 규제 논의가 정치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포털 규제 논의는 늘 선거철이 다가오거나 이번 촛불집회처럼 누리꾼 정치참여가 폭발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급부상하곤 했다. 그리고 규제의 영역과 내용도 정치적 득실 계산에 맞춰 설정되는 경향이 강했다. 포털이 건강한 여론의 장으로 기능해 이용자의 권익을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민경배)

    “우선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다. 인터넷에 대한 규제를 논의할 때 외국에서는 주로 외설물에 대한 미성년자 보호, 개인의 명예 훼손에 대한 방지, 사적 정보에 대한 보호 등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반면, 현재 국내에서 제기되는 포털에 대한 규제는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 원론적인 수준에서 포털은 기사를 직접 작성하지는 않지만 상당 수준의 편집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제한적 책임을 묻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컨대, 뉴스 선별의 기준 등을 공개하도록 의무화함으로써 공중에 대한 최소한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포털 사이트의 정치적 편향성을 인위적으로 없애려는 노력보다는 다양한 종류의 정치적 편향을 보이는 매체들이 공존하는 환경을 만드는 방법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별 매체의 수준이 아닌, 시스템 전체의 수준에서 광범위한 스펙트럼의 의견들이 소통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무수한 개인 이용자가 올리는 글을 포털 운영자들이 엄격히 관리·감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책임을 지우기 어렵다고 본다. 이 경우 기존의 매스 미디어에 적용되는 최소한의 윤리 기준에 어긋나는 글(타인에 대한 욕설, 비방 등)을 반복적으로 게시하는 이용자에 대해서는 아이디를 회수하는 등의 장치를 통해 자율적인 규제를 실시할 수 있겠다.”(이은주)

    Q6 : 인터넷을 통한 여론 형성 및 유통 기능을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한 긍정적인 동력으로 만들기 위한 선생님의 제언을 말씀해주십시오.

    “인터넷의 역할이 급격히 커지면서 그 책임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우선 인터넷 여론을 절대시하는 오류를 벗어나야 한다. 물론 인터넷은 다른 매체에 비해 쌍방향의 특성을 띠고, 따라서 여론 형성이 용이하다. 하지만 인터넷 여론 형성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인구·통계적 특성을 감안한 해석이 필요하다.

    인터넷 포털에 대해 다른 매체와 차별적인 기준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또 인터넷 포털에 제시된 의견에 대한 책임을 포털에 돌리는 것 역시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인터넷 포털이 제한할 수 있는 경우와 내버려두어야 하는 경우를 선별할 기준을 모색하고 합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곽금주·서울대·심리학)

    “인터넷이 사회발전에 긍정적 동력(動力)이 되도록 하는 일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법 제도 등 모든 영역과 관련이 있다. 이번 촛불시위는 사회과학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사례를 던져줬다. 다양한 학문적 성찰이 이어지리라고 기대한다. 그 과정에서 제도적·문화적 대안들이 제시되리라고 보는데, 핵심은 누리꾼 개개인이 책임 있는 시민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의견을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수용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있다. 이는 오프라인 민주 시민의 기본적 자질과 다르지 않다. 기술과 이미지 등에 대한 이해력이 좀 더 필요할 뿐이다. 이는 결국 민주 시민 교육에서 인터넷이라는 변수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건강한 인터넷 문화를 체질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 남을 최대한 배려하고 다른 생각을 포용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더 늦기 전에 이번 일을 계기로 변화가 시작되기를 희망한다.”(이재경)

    “인터넷은 인간 본성에 가장 근접한 매체다. 신문은 글로, TV는 영상과 소리로 표현하지만 인터넷은 모든 것을 동원한 멀티미디어다. 인간은 이성적이면서 쾌락을 추구하고, 사회적이면서 사적이고, 일상과 일탈을 동시에 즐기는 존재다. 인터넷은 이런 인간의 본성을 충족시킨다.

    인간이 그렇듯 인터넷에도 규칙이 필요하다. 한국 인터넷은 의제설정 기능을 가지게 됐다. 그런데 넘쳐나는 정보에 누리꾼은 원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특징을 보인다. 편협하게 형성된 인터넷 여론은 전체 의견이나 신뢰할 만한 의견이라고 볼 수 없다. 인터넷은 원래 정보의 공유를 위한 투명한 관계망이었다. 이러한 인터넷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익명의 바다에서 나타나는 잔인성을 규제로 막아야 한다.”(김민기)

    “인터넷을 포함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교육이 시급하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터넷 보급률, 가용 서비스의 종류, 이용시간 등 테크놀로지와 관련된 측면에서는 세계 제일이다. 그러나 새로운 매체의 성격 및 효과를 이해하고 이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공개적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소통의 수단으로서 인터넷이 담당할 역할에 대해 낙관적인 믿음을 가진다. 그 이유는, 뉴스 기사에 대한 인터넷 댓글에서 기사 내용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동일한 사건에 대한 다른 매체의 보도 내용과의 비교를 통해 매체의 편향을 지적하는 등 높은 수준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종종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예는 (비록 댓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대중 매체에 의해 쉽게 조종당하는 속기 쉬운(gullible) 대중이라는 가정에 기반을 둔 일방통행식 규제 논의가 과연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끝으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인터넷이 마치 모든 문제의 근원인 것처럼 생각하는 기술 결정론적 시각에 대한 경계다. 특히 인터넷을 통한 여론 형성과 관련해, 앞서 제기한 몇 가지 문제점은 인터넷에 국한된 것이라기보다는 성숙한 토론문화의 부재라는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어떠한 기술적 속성이 어떠한 사회적 조건과 만나 특정 결과를 야기하는지에 대한 종합적 이해는, 인터넷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든 현상을 매체의 탓으로 돌리는 환원론적 시각에서 벗어날 때 가능할 것이다.”(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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