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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리포트

한국경제 위협하는 보호주의 두 얼굴

겉으론 공정·자유무역, 실제론 자국 이익 챙기기

  • 홍석빈│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hsblys@dreamwiz.com│

한국경제 위협하는 보호주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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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이 공정무역의 옷을 입고 자유무역을 부르짖지만 그 이면을 보면 보호무역주의 색채가 짙게 깔려 있다. 일본 EU 중국도 마찬가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마다 자국 보호에 나섰다. 우리 경제와 기업의 활로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분명한 것은 지금의 위기와 보호주의가 기회와 자유주의의 길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금융발 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조짐이 완연한 가운데 위기의 전개 양상은 국가 간 교역부문에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전세계 경기가 침체되면서 세계 수입수요가 감소하고 이에 따라 무역에서 성장세가 꺾이자 각국은 자국 몫의 파이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결과 국제 통상거래에서 두드러진 현상이 최근 들어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보호무역조치다.

미국은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급전직하하면서 씨티그룹, AIG 등 유수의 금융기관들이 파산위기에 몰렸다. 11월 들어서는 금융부문의 신용경색 위기가 실물부문으로 전이돼 미국 자동차 ‘Big3(포드·GM·크라이슬러)’가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등 위기가 본격화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기존 통상정책의 기조를 자유무역에서 보호무역으로 전환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상징적인 조치를 하나 취했다.

공공부문에서 정부조달 물품에 대해 자국산 물품의 의무 사용을 강제하는 소위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n)’ 조항이 그것이다. 이 조치는 지난 수십년간 자유무역의 혜택을 받아오던 세계 경제에 대공황 당시 무역전쟁의 기억을 상기시켜주었다. 당시 자국 산업과 일자리 보호를 위해 취한 각국의 보호무역 조치들은 이른바 인근 궁핍화(Beggar-my-neighbor) 효과를 유발, 국가 간 무역전쟁을 유발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국을 맞는다.

꼭 이런 어두운 기억 때문만은 아닐지라도 자유무역을 통한 자국 경제의 성장과 그 혜택을 입어왔던 각국은 세계 교역의 보호주의화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컸다. 이에 세계 경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권역별 20개 대표 국가의 정상회담(G-20)이 11월15일 워싱턴에서 열렸다. 여기서 각국은 세계무역기구(WTO) 다자간 무역협상인 도하라운드(DDA)의 조속한 합의 도출에 힘쓰고, 향후 12개월 동안 어떠한 무역장벽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임을 공식 천명했다.

하지만 며칠도 지나지 않아 러시아와 인도가 각각 수입 자동차 및 철강 제품에 고율의 관세 인상조치를 취하고, 이에 대응해 다른 나라들이 연이은 무역규제 조치들을 쏟아내면서 G-20의 굳은 맹세는 말뿐인 합의에 그치고 말았다. 당초 자유무역의 수호천사 역할을 자임하려던 유럽연합(EU) 또한 프랑스의 자동차산업 지원을 필두로 연이은 보호무역 조치들을 발동함으로써 보호무역주의의 서막을 올리는 데 가세했다. 이처럼 실물 부문으로 세계 경제위기가 전염되고 있는 초기 각국의 정책공조는 실패한 상황이다.

되풀이되는 과오

기실 국제 통상 환경은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과도 같은 곳이다. 국익 차원의 명분이라면 말 바꾸기가 뭐 대수냐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고는 하나 사인(私人)도 아니고 지명도와 책임 있는 대표 국가들 정상 간의 합의조차 이토록 쉽게 깨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세계 경제위기의 심각성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흔히 과거 세계대전 발발 원인을 파시즘, 나치즘 등 이데올로기적 대결에서 찾는다. 사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야 그랬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더 깊은 원인은 정치군사적인 면보다도 경제사회적인 면에 있었다.

19세기 말 세계는 급격한 생산력 팽창의 시대로 진입한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가 상징하는 대량생산체제로의 이행이 본격화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생산·소비되는 상품의 양이 늘어났으니 경제적 후생 관점에서 볼 때는 인류가 이전보다 후생 수준 향상의 혜택을 누릴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국가도 개인도,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빈자는 더 빈자가 되는 어두운 상황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국가 간 빈부격차 심화현상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종합적으로 볼 때 나라마다 처한 경제사회적 편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널리 알려진 리카도(D. Ricardo)의 비교우위론에 기초한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각국은 생산의 비교우위가 있는 부문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교역을 통해 거래함으로써 경제적 후생수준 향상과 성장을 도모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당시 세계 여러 나라 간에는 경제 발전 즉, 산업화의 단계가 상이했다. 이는 균형 잡히고 잘 안분된 비교우위 산업부문들이 각국에 골고루 퍼져 있지 못했었음을 의미한다. 비교우위가 있는 산업부문들이 당시 선진국들에만 상대적으로 몰려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후발국들은 일정한 조건하에서 외국 상품수입으로부터 자국 경쟁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적 규제조치들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높은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 물량 자체를 제한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자국 기업에 다양한 명목으로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자국 유치산업 보호를 위해 열을 올렸다. 소위 보호무역주의의 불길이 타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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