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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게이트’ 돈 받은 검사들

현직 검찰간부 3~4명 전별금 수백만원,‘떡값’ 1만달러 받아… “파면 불가피”(검찰 고위관계자)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박연차 게이트’ 돈 받은 검사들

  • ● 이상득에게 돈 줬다는 진술은 안 나와
  • ● 박연차와 친분 의혹 두 검사장, 1월 인사 때 불이익
  • ● 1만달러는 사법처리 가능, 전별금은 징계 대상
  • ● 동남아 출장 중 선배검사한테 박연차 소개받아
‘박연차 게이트’ 돈 받은 검사들

집무실로 향하는 임채진 검찰총장(가운데).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한 검찰수사가 종착역을 향해 달리고 있다. 수사의 하이라이트는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을 밝혀내는 것이다. ‘노무현 패밀리’(노건평 정화삼 박연차 정상문 이광재 강금원…)를 정조준한 검찰 수사는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정권 출범 1년 만에 직전 정권을 이 정도로 분쇄한 것은 보기 드문 성과다.

전(前) 정권의 핵심부를 산산조각낸 검찰로서는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을 할 법도 하다. 그래선지 홍만표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은 ‘수사 피로감’을 언급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그런 취지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과거 검찰 지휘부는 정권(국가가 아니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 검찰의 사명이라고 여기곤 했다. 그런 ‘미풍양속’을 해친 것이 노무현 정권의 ‘송광수 검찰’이었다. 안대희 대검 중앙수사부장이 이끄는 대선자금 수사팀은 취임 1년도 안 된 대통령의 심복과 수족을 닥치는 대로 잘라냈다. 야권을 몇 배로 더 치긴 했지만 정권 초기 여권 핵심부를 그 정도로 건드린 것은 과거 검찰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불경(不敬)’이었다. 이로써 ‘검사와의 대화’로 점화된 노무현 정권과 검찰의 불화는 정점으로 치달았다.

수사의 정도(正道)는 아니지만, 정치권을 건드릴 경우 검찰은 형평성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균형감각을 잃어버리면 정치적 수사라고 욕을 듣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검찰이 아무리 수사를 잘해도 강한 쪽을 건드리지 않으면 ‘편파수사’로 간주해 약한 쪽을 동정하는 ‘미풍양속’이 있다.

궁지에 몰린 검찰의 돌파구

‘살아 있는 권력’을 친 2003년의 대선자금 수사와 달리 이번 수사는 ‘죽은 권력’을 파헤치는 것이다. 여권의 몇몇 인사가 조사를 받거나 구속되고 대통령 측근과 여권 실세의 이름이 거론돼 그런대로 구색은 갖춰졌지만 수사의 본류가 그쪽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수사 흐름을 보면 ‘박연차―여권 커넥션’ 수사는 ‘부록’으로 보인다. 그것도 제작 여부가 불투명한 부록이다. 거기에 또 하나의 별책부록이 있다. 박 회장에게 돈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인 검찰간부들에 대한 수사다. ‘노무현 패밀리의 말로(末路)’라는 제목의 영화가 종영되면 관객은 곧바로 두 편의 보너스 영화를 보여달라고 성화를 부릴 것이다.

여권 실세와 검찰 간부들 관련 수사내용을 점검하기 전에 검찰 수사가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을 살펴보자. 지난해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검찰은 사정의 칼날을 휘둘렀으나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야심작으로 벌인 공기업 수사는 번번이 벽에 부딪혔으며 전(前) 정권의 실세들을 노린 표적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대통령의 측근인 강경호 코레일 사장과 이주성 전 국세청장을 구속하고 노 정권의 핵심 실세이던 이강철 전 대통령특보의 혐의를 찾아내는 등 성과가 없지 않았으나 주변의 평가는 인색했다.

노 정권 말기에 임명됐다는 약점이 있는 임채진 검찰총장은 강도 높은 사정수사를 주문하는 법무부 장관과의 불화설에 이어 경질설에 시달려야 했다. 검찰은 여권의 총장 흔들기에 분개하면서도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고, 마침내 찾아냈다. 그 관문이 바로 ‘박연차’였다.

박용석 대검 중수부장이 지휘한 수사팀은 올 1월 인사가 나기 전까지 상당한 수준의 수사를 해놓았다. 단적인 예로 박 회장의 홍콩계좌에서 빠져나가 노건평씨의 사위 연철호씨에게 건너간 500만달러에 대한 수사만 해도 지난해 12월 대검 중수부가 비밀리에 중국 정부에 계좌추적을 요청한 것이 시작이었다.

수사팀은 연씨를 소환 조사한 후 돌려보냈지만 출국금지시켜 계좌추적 결과가 나올 때까지 풀어주지 않았다. 해외에 계좌추적을 의뢰하면 통상 4~5개월이 걸린다. 중국 정부가 500만달러에 대한 계좌추적 결과를 통보한 것은 4월7일이다.

검찰이 박 회장의 정관계 로비의혹에 대해 본격 수사에 나선 건 지난해 10월. 1차 표적은 노건평씨였다. 노씨가 개입한 농협의 세종증권 매각 비리와 휴켐스 헐값 매각 의혹을 수사하면서 검찰은 ‘노 정권 부패’의 상징인 정대근 농협회장과 ‘노무현 패밀리’의 최대 후원자인 박연차 회장을 잡아넣겠다는 의욕에 불타올랐다. 그 과정에 국세청이 박 회장을 탈세혐의로 고발해왔다.

12월 중순 박 회장이 구속된 후 검찰수사의 칼끝은 노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 수사팀은 박 회장의 정관계 로비 정점에 노 전 대통령이 있다고 판단했다. 노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지낸 정상문씨가 박 회장에게서 10억원을 받은 사실도 그때 이미 파악했다.

한직 발령나자 사표

이처럼 검찰 수사에 속도가 붙은 것은 박 회장의 ‘협조’ 덕분이었다. 현금이 오가는 뇌물사건의 경우 줬다는 사람의 진술이 없으면 수사 자체가 힘들다. 박 회장이 순순히 입을 연 것은 재산문제와 자식들에 대한 검찰의 압박 때문이었다는 게 정설. 장사꾼에게 가장 큰 위협은 애써 일궈놓은 재산이 날아가는 것이다. 게다가 박 회장은 재산의 상당 부분을 아들과 딸 명의 계좌로 돌려놓았다. 검찰이 맘먹고 달려들면 자식들이 다칠 수밖에 없었다.

요즘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박 회장의 진술 중 상당수는 지난해 수사팀이 받아놓은 것이다. 이상득·정두언 의원과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이름도 그때 벌써 나왔다. 검찰 수사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박 회장은 이 의원과의 관계를 거론하면서도 돈을 줬다는 진술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살아 있는 권력’과 박 회장의 유착관계를 밝히는 것이 ‘불도저’라는 평을 듣는 현 수사팀의 과제다.

지난 1월 검찰 고위간부 인사 때 박 회장과 친분이 깊다는 의심을 받은 두 검사장이 한직으로 밀리는 불이익을 받았다. 한 사람은 이에 반발해 사표를 냈고, 한 사람은 남았다.

박 회장과 검찰 간부들의 친분 의혹이 제기되면서 검찰과 국정원 주변에서는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가 돌았다. 대체로 박 회장의 연고지인 부산 쪽에 근무했던 전·현직 고위간부들이다. 이 중엔 현직 고검장이 4명이나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들은 박 회장과의 친분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대검 관계자도 “현직 고검장이 없다는 건 분명히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직 검찰 간부들 중에도 억울해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 중 올 초 사직한 고검장 출신의 변호사는 “박 회장과 인사는커녕 얼굴도 본 적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도 “리스트에 언급된 인사들 중 상당수는 박 회장과 친분이 없는 걸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박 회장이 돈을 건넸다고 진술한 현직 검찰 간부는 3~4명. 대부분 부장검사급인데 검사장 한 명이 포함돼 있다. 이 검사장은 박 회장으로부터 ‘떡값’ 1만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나머지 검사들은 전별금으로 수백만원을 받았다는 게 검찰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의 증언이다. 이 중 한 부장검사는 떡값을 받은 검사장과 동남아 출장 중 박 회장을 소개받아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혐의의 근거는 물론 박 회장의 진술이다. ‘노무현 패밀리’와 정치인들에 대한 그의 진술이 대체로 사실이었던 만큼 검찰 간부들의 혐의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검찰 관계자의 예상이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이들의 혐의내용에 대한 정밀 조사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1만달러 수수의 경우 사법처리도 가능하다.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법리논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전별금의 경우 사법처리가 곤란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비록 전별금치고는 금액이 크긴 하지만 대가성을 입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본격 수사가 시작되면 당사자들이 사표를 낼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검찰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그걸로 마무리될 것 같지는 않다. 현직이기 때문에 징계가 불가피한데, 구속된 정치인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파면이나 해임과 같은 고강도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한 고육책으로서 말이다.

신동아 2009년 5월 호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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