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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대한항공 테크센터, 항공우주산업 메카로 부상

  • 공종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ong@donga.com│

대한항공 테크센터, 항공우주산업 메카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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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공호’를 기억하는가. 40대라면 대부분 그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1982년. 기자가 중학교 2학년이던 시절이다.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국산 전투기 제공호가 창공을 가르던 순간, 나이 어려서 ‘자주국방’ 등 복잡한 내용은 잘 몰랐지만 괜히 자랑스럽고 가슴이 뿌듯했다.당시 제공호를 대한항공이 제작했다는 사실을 기자가 알게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일반인에게 대한항공은 대체로 항공사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국내 최초로 완제기를 제작했고, 2600여 명의 항공기 제작관련 연구 및 생산인력을 보유한 항공우주산업 선도자이기도 하다.
대한항공 테크센터, 항공우주산업 메카로 부상

대한항공 테크센터.

부산에 있는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 테크센터를 취재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취재 일주일 전에 사진기자가 가지고 가게 될 카메라 기종까지 적어서 제출하라는 연락이 왔다. 국방부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대한항공이 방위산업체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었다.

1976년 설립된 대한항공 테크센터는 부산 김해공항에 인접해 있다. 대지 총 70만7866㎡, 연건평 26만6180㎡ 규모로 항공기 생산에 필요한 각종 시설을 완비하고 있다. 면적이 너무 방대해서 사무실 사이를 이동할 때에는 골프장에서는 카트와 비슷한 차량이나 자전거를 이용해야 했다. 일부 사원들은 급한 일이 있으면 승용차를 타고 이동할 정도로 대지가 넓다.

테크센터는 겉으로 봐서는 방산업체라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았다. 테크센터 곳곳에 계류 중인 대형 비행기들이 없다면 언뜻 봐서는 거대한 물류센터 혹은 할리우드 영화세트장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곳에 처음 공장을 지을 때에는 보안상의 이유 때문에 모두가 ‘새마을 공장’이라고 부르도록 했다. 그리고 외부에서 건물을 봤을 때 방산업체라는 느낌을 주지 않도록 외벽에 특별한 방법을 동원한 위장도색을 했다. 이 때문에 지금도 테크센터를 밖에서 봤을 때에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 수가 없다.” 안내를 맡은 대한항공 송주열 부장의 설명이다. 테크센터에는 지금까지 7300억원이 투자됐다.

송 부장을 따라서 테크센터의 한 군용기 창정비장에 들어갔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헬리콥터 동체가 눈에 띄어 “헬기 뼈대가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부서진 UH-60(일명 블랙호크)를 복원하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대한항공 테크센터, 항공우주산업 메카로 부상
골조에서 헬기를? 대한항공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기술을 갖고 있나? 믿어지지 않아 재차 물어봤더니 송 부장은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나중에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니, 대한항공은 이미 1990년대에 중형헬기인 15인승급 UH-60을 성공적으로 제작해 우리 군에 공급한 경험이 있었다. 이미 완제기 제작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헬기 골조에서 완벽한 UH-60을 재생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대한항공이 항공기 제작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한진그룹 창업자인 고 조중훈 회장이 1975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항공기 생산사업에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같은 해 대한항공은 ‘군용 항공기 정비·조립·생산 군수업체’로 지정됐고, 당시로선 엄청난 액수인 700억원을 투입해 김해공항 인근의 늪지대를 메워 항공기 생산 공장(현 부산 테크센터)을 건설했다. 기술을 이전받아 처음으로 생산한 완제기는 토우미사일 장착이 가능한 헬기인 500MD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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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국산 전투기 제공호.

제공호의 탄생

보통 항공기 제작산업의 기술은 ‘정비 수리 능력 보유→기술 도입을 통한 조립 생산 및 부품 제작기술 습득→기술제휴를 통한 항공기 부품 자체 설계→초기 훈련기의 자체 개발 능력 확보→고급 훈련기 개발→전투기 공동 개발→전투기 자체 개발 능력 확보’의 순으로 발전해나간다.

대한항공은 당시 정비에서 조립생산으로 첫걸음을 내디딘 시점이었다. 그렇다면 조립생산으로 완제기 제작에 첫발을 내디뎠던 대한항공이 몇 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인 1982년 당시 차세대 전투기(F-5E/F 제공호)를 어떻게 해서 생산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당시 국제정세의 흐름을 잘 읽은 경영 판단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수교를 서두르면서 대만에 있던 태평양지역 미군 군용기의 정비기지를 옮겨야 했다. 이 같은 상황을 예상하고 대한항공은 그동안 쌓은 정비 노하우와 500MD 생산 경험을 내세워 대한항공을 새로운 정비기지로 지정해줄 것을 미군 측에 요청했다. 대안을 찾지 못해 고심하던 미군은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미군은 대한항공을 태평양지역의 창급 정비기지로 선정했다. 대한항공은 1979년부터 미국의 주력 기종이던 F-4 팬텀기의 정비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항공기 정비는 분해·결합이 기본이고, 수리를 위해서는 생산하는 것 이상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한항공으로선 항공기 제조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리고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항공에 최신예 전투기 생산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미국 노스럽(Northrop)사의 F-5F가 모델로 결정됐다. 대한항공이 당시 기술전수를 위해 노스럽에 파견한 기술인력만 600여 명에 달했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첫 국산 전투기 제공호가 3년 뒤인 1982년 9월9일 탄생했다. 이로써 한국은 일본과 대만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세 번째로 전투기 생산국이 됐다. 특히 제공호는 고성능 초음속 전투기로 당시 북한 공군의 주력기이던 ‘미그-21’보다 성능이 뛰어났다.

대한항공은 제공호 제작 과정에서 국산화율을 23%로 끌어올리는 한편 기술연구소를 통해 설계기술을 꾸준히 축적해나갔다. 꾸준한 기술 축적 끝에 1985년 순수 독자 기술로 1인승 경비행기 ‘창공-2호’를 개발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어 1988년 2인승 ‘창공-3호’를 개발했고, 1995년에는 5인승 ‘창공-91호’ 개발에 성공했다.

지금까지 대한항공이 생산한 완제기는 500MD, 500D, F-5E/F, UH-60 등 헬기 및 전투기를 비롯해 자체 설계 개발한 5인승 경항공기 창공 91 등 모두 500여 대에 달한다.

1979년부터 미군의 F-4 팬텀기 창정비를 맡았던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는 이후 미국의 전폭기, 수송기, 헬리콥터 등 주요 군용기 정비 및 개조 수리, 창정비 등을 맡아오고 있다.

기자가 부산 테크센터를 방문했을 때에도 A-10, CH-53, F-15, F-16, CH-47 등 미군 항공기들이 줄을 서서 수리 및 정비를 받고 있었다. 특히 이라크전쟁에 투입됐던 헬기들은 본국으로 향하기 전에 대부분 이곳에 들러 수리 및 정비를 마쳤다고 했다.

현재 대한항공은 태평양 전역에서 운용 중인 미군의 전 기종 항공기를 정비 및 수리할 수 있는 유일한 미군 항공기 종합정비 수리창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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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종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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