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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사건 후 65년, 91세 나치 전범에 종신형 선고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에게 평화를 주는 것은 진실뿐”

  • 김재영│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redfoot@donga.com│

학살사건 후 65년, 91세 나치 전범에 종신형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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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이, 아들이 죽으면 손자가 대를 이어 증거를 모으고 사건을 복원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의 이탈리아 토스카나, 전쟁의 광기 속에서 벌어진 참혹한 민간인 집단학살은 그렇게 긴 시간의 터널을 넘었다. 26세의 청년 나치 장교가 백발의 91세 할아버지가 되어 받은 심판이었다.
학살사건 후 65년, 91세 나치 전범에 종신형 선고

8월11일 독일 뮌헨 지방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요제프 쇼잉그라버 전 나치 독일군 소위.

8월11일 독일 뮌헨 지방법원 101호 법정. 문이 열리자 뮌헨 전통양식의 잿빛 재킷을 차려입은 백발의 90대 노인이 천천히 들어섰다.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힘겹게 피고석으로 발걸음을 옮긴 그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듯 보청기를 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자리에 앉았다.

그를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지역 주민들은 피고석에 앉은 그의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다. 뮌헨 인근 오토브룬에서 가구점을 운영하며 성실하게 살아왔다. 20년 동안 지역 의회에서 활동했고 오랫동안 자치소방대장으로 봉사했다. 2005년에는 지역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지역 의회로부터 시민메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노인을 바라보는 방청객의 시선은 싸늘했다. 법원 앞에서는 연일 노인의 유죄를 주장하는 피켓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이 무력한 노인은 얼마나 큰 죄를 지은 것일까.

판사가 판결문을 읽기 시작하자 법정에는 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1944년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한 마을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혐의를 인정해 피고에게 종신형을 선고합니다.”

눈을 감은 노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방청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희생자 가족들은 주저앉아 기쁨과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전 나치 장교 요제프 쇼잉그라버(91)는 65년 만에 역사의 단죄를 받았다. 그가 26세 젊은 나이에 저지른 일이었다. ‘유죄’라는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또 아들로 대를 이어온 가족들의 기나긴 싸움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고 AP통신과 슈피겔 등 언론은 상세하게 보도했다.

학살의 기억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6월. 전쟁과는 무관하게 평온하던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작은 마을‘팔자노 디 코르토나’는 한순간에 피로 붉게 물들었다. 독일군이 병사 2명이 숨진 데 대한 앙갚음으로 마을 주민들에게 무차별 보복을 벌인 것.

상황은 이렇다. 쇼잉그라버 소위는 토스카나 주둔 독일 818산악공병대대의 소대장이었다. 부대의 주요 임무는 연합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도로와 교량을 파괴하거나 이탈리아에서 퇴각하려던 독일군의 퇴로를 복구하는 것. 6월26일 그는 부하 3명을 인근 마을로 보내 수레와 말, 식량을 징발토록 했는데 이들이 이동 중 계곡에서 빨치산의 공격을 받고 2명이 숨졌다. 분노한 쇼잉그라버는 사단에 보고하고‘잔혹행위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보복은 신속했다. 그는 부하들에게 현장 주변을 수색해 의심스러운 자들을 체포하고 불응하면 사살하라고 명령했다. 부하들은 거리에서 74세의 노파를 붙잡아 ‘빨치산을 숨겨줬다’며 총살한 뒤 집을 불태웠다. 다음 날인 27일 아침 남성 3명을 역시 같은 이유로 살해했다. 빨치산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어 마을을 샅샅이 뒤져 남자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다. 10대 소년에서 60대 노인까지 나이에 관계없이 끌려 나왔다. 독일군은 체포한 남성 11명을 인근 농가에 몰아넣고 밖에서 문을 잠갔다.

죽은 동료들 장례식을 치른 독일 병사들은 이른 오후에 보복을 결행했다. 하나하나 죽이는 것도 귀찮았던 것일까. 그들은 다이너마이트로 집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방식을 택했다. 몇 명은 폭발 직후 즉사했지만 잔해더미 속에서는 몇 분 동안 고통스러운 비명과 신음이 새어 나왔다.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애원했지만, 독일 병사들은 잿더미 위에 총을 난사하며 확인 사살했다.

이 지옥 같은 현장에서 당시 15세 소년이던 지노 마세티(80)씨는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폭발과 함께 대들보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두 명이 쓰러지면서 그의 몸을 덮었다. 덕분에 파편과 총알이 빗발치는 속에서도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 온몸에 화상을 입고 생사의 기로를 헤매던 그는 6시간 만에 이웃주민에게 발견됐다. 기적이었다.

하지만 홀로 살아남은 것은 고통이었다. 마세티씨는 훗날 “괴로운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라며 “차라리 그때 나도 죽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학살은 마을 사람들의 삶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가족을 잃은 아픔과 분노, 이웃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나려 사람들은 하나 둘씩 마을을 떠나갔다.

이제 마을에는 단 여섯 가구만 남았다. 아버지와 오빠를 잃은 젤라시아 트라세니씨는 “짐승 같은 삶을 살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가장을 잃고 난 뒤 생계는 늘 힘겨웠고 어머니는 끝내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해 글도 못 깨쳤다”고 말했다. 한 유족은 “아직도 누군가 독일어로 말하는 것을 들으면 두려움에 숨이 막힌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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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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