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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발질 인턴 정책 예고된 실업 대란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헛발질 인턴 정책 예고된 실업 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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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만둘 날이 정말 얼마 안 남았네요. 그것만 생각하면 막막합니다. 당장 추석 때 친척들 얼굴을 어떻게 볼지…. 이모 삼촌들이 ‘멀쩡한 대학 나온 애가 왜 저러고 있느냐’고 수군거릴 거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답답해요.” A은행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하는 K씨는 인터뷰 간간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헛발질 인턴 정책 예고된 실업 대란
K씨는 4월 A은행에 인턴사원으로 취업했다. 계약기간은 9월 말까지. 이후엔 다시 ‘백수’가 된다. 인턴 채용 공고에는 ‘인턴십 우수자 정규직 채용시 우대’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정작 별다른 ‘우대’ 정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다른 지원자들과 똑같이 원서를 쓰고,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K씨는 “인턴 기간 내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윗분들 눈치 보며 자리를 지켰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일찌감치 그만두고 취직 준비에만 매달린 친구들이 더 똑똑했던 것 같다”고 했다.

올가을, K씨 외에도 많은 청년이 우울한 추석을 맞게 될 것 같다. 상반기에 시작된 각종 인턴 프로그램이 하나 둘 마무리되면서 ‘돌아온 백수’가 사회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추석이 무서운 청년들

4월 한국전력이 채용한 인턴사원은 525명. 이 가운데 6개월 계약기간을 채운 439명이 9월 말 전원 ‘백수’가 된다. 한전이 인턴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인 20개 대형 공공기관 가운데 청년인턴의 정규직 전환이나 계약 연장을 검토하는 곳은 한국도로공사 한국농어촌공사 수출입은행 인천국제공항공사 4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16개 기관의 인턴들은 계약 만료와 동시에 취업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관공서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일하는 행정인턴 역시 줄줄이 실업자 신세다. 정부가 2월 행정인턴 및 공기업 인턴제를 시작하며 채용한 인턴은 공공기관 1만 2000여 명, 중앙 및 지방정부 1만 700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짧게는 3개월부터 길게는 9개월까지 계약을 맺었다. 역시 늦가을이 지나기 전 모두 기간이 만료되는 셈이다.

국무총리실은 8월 공보비서관실에서 근무하던 행정인턴 1명을 문화체육관광부 별정직 공무원으로 채용했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인턴은 정규직 전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채용 전’ 상황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서울 시내 한 관공서에서 행정인턴으로 일해온 Y씨는 “시작할 때만 해도 관공서에서 일한 경험이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인정해줄 곳이 없을 것 같다. 그동안 실무를 배운 게 아니라 그저 구경만 했다. 내년 초 나올 새로운 졸업생들과 취업전선에서 경쟁할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고 했다.

‘88만원 세대’ 저자인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는 “원래 인턴은 채용을 전제로 한 개념인데, 정부는 개념 자체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 이런 인턴 정책 때문에 비정규직만도 못한 초단기 일자리가 양산되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기업 등에) 인턴이 정규직에 응시할 경우 인센티브를 부여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채용 계획이 없으면 할 수 없다. 또 인턴 모두를 정규직으로 뽑으면 역차별의 문제가 발생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올 초부터 최근까지 정부와 지자체, 중소기업 등에서 각종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마련한 일자리는 6만6000여 개. 여기에 채용된 이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올 것으로 예상되면서 고용시장에는 태풍 전야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계약 만료를 앞둔 인턴들이 ‘인턴 경력’이라는 유리한 ‘스펙’을 갖고도 신규 졸업생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인턴 기간에 사실상 실무경험을 전혀 쌓지 못했기 때문. 채용을 전제로 한 인턴십이 아니다보니 기업체나 관공서에서 이들에게 정식 업무를 맡기지 않은 것이다. Y씨는 “주사님에게 일을 좀 달라고 하니 ‘네가 업무를 처리하면 나중에 인턴을 그만뒀을 때 책임 소재가 문제된다. 미안하지만 시킬 게 없으니 알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금융기관의 경우도 현금이 오가는 업무 특성상 몇 개월 뒤 그만둘 인턴에게 제대로 된 일을 주기 어렵다. 결국 인턴들은 민원인 안내나 복사 같은 허드렛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나 소속감이 생길 리 만무하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개설된 청년인턴 관련 카페를 보면 “오늘도 하루 종일 인터넷 서핑만 했다” “이젠 나한테 걸레질까지 시킨다. 그만둘까보다” 따위의 글이 넘쳐난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대졸 미취업자들이 행정조직에서 인턴 업무를 하며 경력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난센스”라며 “그런 잡일을 하는 것보다는 영어, 전문강좌 등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게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년 백수 대란

‘인턴무용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9월 초 행정안전부는 정부기관에서 일한 행정인턴 가운데 3분의 2가 취업에 성공했다고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행정인턴들은 “의미 없는 통계를 발표해 현행 인턴 제도의 문제점을 덮으려 한다”고 반박한다. 문제로 지적하는 부분은 행안부가 올 초부터 8월까지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근무한 행정인턴 1만9242명 가운데 퇴직자 4335명을 대상으로 취업 여부를 조사했다는 점. 행안부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64.7%인 2806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것을 전체 인턴 대비 취업률로 계산하면 14%대에 불과하다.

9월말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는 한 행정인턴은 “행안부 발표 내용을 보고 인턴 모두가 웃었다. 올 초에 행정인턴으로 뽑힌 사람이 8월 전에 퇴직했다면 인턴 기간에 계속 취업을 준비하다 성공한 뒤 그만뒀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나. 그걸 어떻게 ‘행정인턴 경력이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포장하는지 기가 막힌다”며 “정말 제대로 된 통계를 만들려면 9월 이후, 아직 1만5000명이나 남아 있는 행정인턴이 정말 이 경력을 발판으로 취업하는지를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그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체감하는 취업 경기가 최악이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위기감은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통계청의 고용동향에 따르면 7월 청년실업률은 전체 실업률 3.7%의 두 배가 넘는 8.5%다. 여기에 인턴들이 쏟아져 나오고, 내년 초 대학 졸업자들까지 더해지면 청년실업은 한층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기업의 신규 채용 규모가 나날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매출액 상위 30대 그룹 중 공기업을 제외한 23개사의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채용 규모는 19개사 1만5035명. 지난해 하반기보다 3.4%가 줄어들었다. 공공기관 채용은 아예 꽁꽁 얼어붙었다.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인 20개 대형 공공기관 가운데 하반기 직원 채용계획이 있거나 채용 일정을 진행 중인 곳은 기업은행과 한국농어촌공사, 한국수력원자력 3곳뿐. 대한주택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토지공사 5곳은 지난해 이후 신입직원을 한 명도 뽑지 않았다. 정부가 4월 28조4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며 ‘민생 안정을 위한 일자리 추경’이라는 별칭까지 붙였지만, 기대와 달리 고용시장에는 찬바람만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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