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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관광통역안내사의 그늘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못하는 ‘관광 한국’의 얼굴

“하루 10시간 뼈 빠지게 일해도 일당 1만2000원, 사고라도 당하면 쫓겨나는 신세”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못하는 ‘관광 한국’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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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11월14일 부산의 한 실내사격장에서 일어난 화재사고는 일본인 관광객과 한국인 등 16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러나 이들의 목숨값은 서로 달랐다. 일본인 관광객이 여행자보험, 사격장 직원들이 산재보험으로 보상을 받는 사이, 일본인을 사격장으로 안내한 여행 가이드들은 치료비와 장례비를 마련하느라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왜 이들은 법과 제도의 보호 밖으로 내몰린 걸까.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못하는 ‘관광 한국’의 얼굴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 사고 현장(왼쪽). 이 사건으로 사망한 일본인들의 시신 운구 현장에서 유가족들이 합장하고 있다.

“저도 투어 나갔다가 사고 당하면 딱 이런 취급을 받겠죠. 모르던 사실도 아닌데 막상 현실로 닥치니 씁쓸해요. 일하다가도 자꾸 그 생각이 나고….”

A씨를 만난 건 2009년 12월 초 서울 명동에서였다. 가로수마다 색전구가 반짝이고 상점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밤이었다. 축제 분위기의 거리를 오가는 행인 셋 중 한 명은 일본인으로 보였다. 지도를 펴들고 쿠폰북을 뒤지며 그들은 떡볶이 포장마차, 삼계탕집, 화장품 가게를 누볐다.

사격장도 외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한 건물 12층에 위치한 실탄 사격장에 들어서니 일본인 서너 명이 총 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 TV에서 한국 사격장에 대한 보도를 보고 호기심에 찾아왔다고 했다. 사격장 입구에는 ‘후지TV에 방영된 곳’이라는 소개 문구가 일어로 쓰여 있었다. 명동 거리의 관광객들 사이에서 11월 중순 일어난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 참사는 이미 까맣게 잊힌 듯했다.

그러나 A씨는 여전히 그 충격 속에서 산다. 그의 직업은 관광통역안내사. 흔히 ‘가이드’라고 한다. 기자를 만난 날도 막 한 팀의 관광객들을 호텔에 ‘모셔드리고’ 오는 길이었다. 그러면서 계속 ‘사고’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부산 사고 이후 날마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고민한다”고 털어놓았다.

“소처럼 일하다 개처럼 죽었다”

부산 사격장 사고 당시 현장에는 일본인 관광객뿐 아니라 한국인 가이드 2명도 함께 있었다. 이명숙(40)씨는 현장에서, 문민자(66)씨는 나흘간 화상 치료를 받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각각 세상을 떠났다. A씨를 힘들게 한 건 그 후 벌어진 상황이다. 언론이 일본인 관광객의 죽음을 떠들썩하게 보도할 때, 가이드 2명의 유가족들은 장례비를 구하러 뛰어다녀야 했다(이후 장례비는 부산시가 일단 선지급했다). 외국인 사망 사고로 국내 관광산업이 위축될까 우려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가이드의 죽음을 애도하는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여행사 역시 이들을 외면했다. 문씨는 1989년부터, 이씨는 2007년부터 줄곧 한 회사에 근무했다. 하지만 이들의 ‘사후(死後)’를 돌봐줄 장치는 없었다. 일본인 관광객은 여행자보험, 사격장 직원은 산재보험으로 각각 피해를 보상받게 됐지만 가이드들이 받은 보상은 현재까지 전무하다. 고용돼 있되 고용인은 아닌 가이드 직군의 특수성 때문이다.

“고용계약만 없을 뿐 가이드들은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일하며 회사 돈을 벌어줍니다. 관광객이 많을 때는 한 달 내내 투어를 나가요. 가라는 코스, 가라는 업소, 하라는 옵션을 하죠. 그런데 사고를 당하면 졸지에 프리랜서가 됩니다. 퇴직금 산재보험 아무것도 못 받는 ‘개죽음’이죠. 이번 사건을 보고 우리끼리 그랬습니다.

소처럼 일만 하다 개처럼 죽었다고요.”

인터뷰를 익명으로 진행한 건 그가 앞으로 여행업계에서 일하는 데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후 만난 가이드들도 한결같이 실명과 업체명은 비밀에 부쳐주기를 바랐다. 전국에서 활동 중인 4000여 명의 관광통역안내사 가운데 1400여 명이 가입해 있는 한국관광통역안내사협회(이하 안내사협회) 강영만(39) 사무국장은 “처음엔 협회 가입조차 꺼리는 분이 많았다. 회원들의 권익을 얘기하다 괜히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회원들이 큰 충격을 받고 어떻게든 문제를 삼아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협회가 생긴 이래 이렇게 전화가 쏟아진 건 처음이에요. 두 분 소식이 알려진 뒤 수많은 회원이 전화를 걸어와 우리라도 뭐든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난리였어요.”

안내사협회가 유족들을 돕기 위한 모금 활동을 제안하자 순식간에 2500만원에 달하는 성금이 모였다. 협회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지금도 “가슴속에 담아 두어야 할 슬픔과 애통함이 너무 커서 무어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로 시작하는 모금 안내문이 떠 있다. 강 사무국장은 “원래는 12월6일까지만 돈을 받아 유족에게 전달하려 했는데 입금이 이어져 계좌를 열어두고 있다”고 했다.

기본급 10만원짜리 노동자

관광통역안내사는 1962년 생긴 국가자격증. 연 1회 실시되는 시험에 합격하면 관광진흥법상 ‘관광종사원’으로 일할 수 있다. 여행사에 취업해 ‘가이드’가 되는 것이다. 같은 일을 하지만 이들의 신분은 제각각이다. 강 사무국장에 따르면 가이드의 고용 형태는 크게 세 가지. 정규직과 전속파트, 프리랜서로 나뉜다. 전체 가이드의 5% 안팎인 정규직 가이드는 회사와 고용계약을 맺고 매달 일정액의 급여와 4대 보험 혜택을 받는다. 이들 외에 상당수는 ‘전속파트’라는 이름으로 일한다. 특정 회사에 소속된 점은 정규직과 같지만 직원은 아닌 그룹이다. 월급과 4대 보험이 없고 관광 안내를 나갈 때마다 일당만 받는다. 프리랜서는 말 그대로 자유직이다. 어느 회사 일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반면 일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사망한 가이드 2명은 모두 전속파트였다. 한 회사 일을 꾸준히 했음에도 퇴직금과 산재보험을 받을 수 없었던 이유다.

“사고를 당한 가이드가 정규직이었다면 최소한 법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은 됐겠죠. 하지만 손에 쥔 액수는 형편없었을 겁니다. 가이드 월급이라는 게 20만원이 채 안 되거든요. 그동안 밖에 말하기 창피해서 쉬쉬하고 있던 사람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이드 인권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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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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