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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공화국의 겨울나기

창고·꽁지만 배 불리는 도박판 노름빚 ‘산성’에 선수만 죽어나

  • 한상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reenfish@donga.com│

도박공화국의 겨울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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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공화국의 겨울나기
대한민국의 겨울이 도박으로 멍든다.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달하는 판돈이 걸린 노름판이 동네마다 열린다. 1년 내내 뼈 빠지게 일해 번 피 같은 돈은 ‘꽁지’와 ‘창고’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판때기’의 돈은 그저 선수와 꽁지 사이를 돌고 돌 뿐이다. 하룻밤 수백만원을 패죽인 선수는 늘어가는 ‘산성(노름빚)’에 생활이 파탄난다. ‘도박공화국’, 그 현장에 들어가 실태를 들여다봤다.

‘다슬기’는 40대 중반의 가장이다. 다슬기를 잡아서 파는 그를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 중학생인 딸도 키우고 있는 ‘다슬기’는 10년 넘게 다슬기 잡는 일을 해왔다. 겨울 한철을 빼고는 1년 내내 다슬기를 잡으러 다니는데, 새벽에만 3~4시간을 일해 하루 30만~50만원을 번다. 건강식품인 다슬기는 아주 비싼 값에 팔린다. ‘다슬기’는 다슬기를 전기로 지져서 잡는다.

‘다슬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먹고살만했다. 집 두 채가 있었고 통장 잔고도 1억원가량 됐다. 시골 사람치고는 괜찮은 살림. 하지만 그는 얼마 전 재산을 다 날리고 충남 금산의 한 후미진 동네에 4000만원짜리 전세 빌라를 하나 얻어 이사했다. 대도시에서 넉넉한 살림을 살던 가족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이곳으로 쫓겨왔다.

노름빚 때문에 노예생활

‘다슬기’는 지난 1년간 노름을 하다가 전 재산을 날렸다고 했다. 처음에는 동네사람들과 소일거리 고스톱(1점에 500원)을 시작했는데 점점 손이 커지면서 산도박이라 불리는 일명 ‘아도사끼’판에 뛰어들었다가 된통 당하고 알거지가 됐단다. 아도사끼판에 들어간 지 딱 6개월 만이었다. 하지만 그는 요즘도 노름을 계속하고 있다. 다슬기를 잡지 못하는 겨울이 되면서 끼니마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지만 밤이면 밤마다 ‘하우스(노름장)’를 기웃거린다. 빈털터리가 됐지만, 노름빚을 빌려주는 사채업자 ‘꽁지’는 다슬기에게 열심히 ‘산성(노름빚)’을 대준다. 봄이 되면, 다슬기가 잡히면, 돈을 받아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직 4000만원 정도 노름빚이 남았어요. 날 풀리면 다슬기 잡아서 갚아야죠.”

50대인 ‘청룡’은 원래 인삼을 재배했다. 왜 청룡이라 부르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오랫동안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왔다. 한때는 인삼농사를 꽤 크게 짓는 농부였다는데, 그는 현재 종적이 묘연하다. 노름빚 3000만원을 갚을 수 없게 되자 어느 날 밤 갑자기 동네를 떴다. 처자식은 노름에 미쳐 가족을 버린 그를 떠난 지 오래다. ‘청룡’의 집 주변에는 아직도 그가 돌보던 인삼밭 200평이 버려져 있다. 그에게 산성이 물린 꽁지 G씨(30대 후반)는 “잡히면 죽인다”며 오늘도 그를 찾아다닌다.

2명의 ‘용담’은 장사꾼이자 농사꾼이다. 금산의 용담이란 동네에서 매운탕을 파는 식당도 하고 가스집도 하며 작지만 밭농사도 짓는다. 두 사람은 항상 붙어 다녀서 그냥 ‘용담’ 혹은 ‘용담팀’으로 불린다. 같은 판때기에만 앉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이 가족이거나 최소한 ‘절친’이라고 알고 있다. ‘용담’은 노름 실력이 아주 좋아 큰돈을 잃지는 않았다.

부동산업을 하는 K사장과 S사장은 얼마 전 꽁지에게 빌린 노름빚 1000만원가량을 털고 자유를 찾았다. 노름빚이 있을 때는 꽁지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노예생활을 해야 했다. 안 그러면 당장 빚 독촉이 오기 때문이었다. 빚을 갚기 위해 판때기에 앉아야 했고 판때기에 앉으면 또 빚이 느는 악순환이 계속됐지만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자유는 찾았지만 두 사장은 여전히 노름을 그만두지 못했다. 손이 근질거리고 본전이 생각나 언제든 판때기에 앉을 태세다. 또 노름빚이 생길 것을 알지만 어쩔 수가 없다. 결국 두 사장은 자유를 찾은 지 이틀 만에 판때기에 앉았다. 기자가 들어간 판때기가 이들의 복귀무대가 됐다. 기자가 판때기에 뛰어든 날엔 겨울바람이 아주 매섭게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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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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