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호

女배우들이 털어놓은 性접대 실태

“문제 PD들이 방송국 간부, 제작자, 유명 연출자로 활동한다”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

    입력2010-05-18 17: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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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는 내 소유물이니 하라는 대로 해라”
    • 응급 수술 받아야 할 만큼의 성적 요구
    • “그런 장소에서 그런 분들 만나서 쉽게 가는 거죠”
    •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은 인권 유린 범죄
    • “네가 하고 싶은 거 해주고 나는 너의 젊음을 사고”
    女배우들이 털어놓은 性접대 실태
    “녹화 대기하는 중에 사장님에게 스폰서가 전화해 저를 바꿔달라고 했어요. 손짓으로 받기 싫다고 거부했는데도 받아보라고 전화기를 넘겼습니다. OOO으로 오라고 말했어요. 가기 싫다고 했으나 사장님은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대표 처지에선 운영자금을 지원하는 스폰서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게 당연했고, 조금만 더 참자는 제안을 수없이 반복했어요. 그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스폰서의 언어폭력과 성적 학대를 떠안아야 했습니다. 내가 거부하면 기획사 식구가 모두 어려워지고 나의 가족도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스폰서가 ‘나에게 충실하면 성공하도록 키워주겠다’고 약속한 것을 그나마 지켜주면 좋겠다는 자포자기 심경이었어요. 그러나 ‘너는 내 소유물이니 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는 식의 횡포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가 실시한 여성 연기자 인권침해 심층면접에 응한 배우 A씨(20대 후반)의 고백이다.

    인권위는 여성 연기자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벌였다. 조사는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으로 이뤄졌다. 설문조사는 111명을 상대로 이뤄졌다. “여성 연기자 10명 가운데 6명이 유력인사, 방송 관계자로부터 성(性)접대 제안을 받았다”는 게 설문조사 요지. 심층면접은 여성 연예인 16명(연기자 12명, 지망생 4명)과 방송연예산업 관계자 11명을 상대로 이뤄졌다. 소수 인원이 응했다는 점에서 대표성에는 한계가 있으나 국가기관이 처음으로 연예인 인권침해 실태를 심층적으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심층면접에 응한 여성 연기자 연령대는 20대 초반~40대 후반이다.

    “남자를 알아야 한다면서…”

    A씨에 대한 스폰서의 성적 요구는 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아야 할 만큼의 학대로 이어졌다. 배우 B씨(20대 중반)는 기획사 대표의 성적 횡포를 이렇게 털어놓는다.



    “남자를 알아야 한다면서 모텔로 끌고 갔어요.… 그날도 옷 협찬받는다고 디자이너 클럽에 데려가더군요. 거기서 옷을 되게 많이 사줬어요. 자기 돈이 아니라 협찬이라면서요. 마음에 드는 거 다 고르라고 했어요. 옷을 실컷 사주고 집에 데려다 주는데 모텔로 데려가더군요.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이쪽 일을 하려면 네가 세상을 더 알아야 하고, 남자도 알아야 하고.… 그래 가지고 싸웠어요. 거기서. 싫다고 그랬더니 남자를 알아야 한다는 둥 막 그런 식으로 하면서 저를 그러더라고요….”

    지난해 3월 배우 장자연씨가 소속사 대표의 성접대 강요와 폭행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이를 계기로 이뤄진 인권위 조사는 “여성 연기자들이 여전히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밝힌다. 성폭행을 비롯한 범죄행위를 당한 비율이 6.5%에 달했다. 48.4%는 제의를 거부한 뒤 캐스팅이나 광고출연에서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연예인 지망생 C씨(20대 초반)는 심층면접에서 이렇게 밝힌다.

    “이쪽 남자들은 여자들은 몸이라도 팔 수 있으니 좋겠다고( 말해요). 어떤 사람은 이런 게 없어지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그렇게라도 성공하고 싶은 거예요. 스폰 잡아서 성공하고 싶은 사람이 더 많은 거예요. 스폰 같은 사람들은 발이 넓어서 이 사람 저 사람 소개시켜주고 끌어줄 수도 있고.”

    “너 뜰 때까지 다 해주겠다”

    연예계 진입을 갈망하는 일부 지망생은 부도덕한 관행을 적응해야 할 조건으로 여긴다. 연예인이 되고자 유흥업소도 기웃거린다.

    “텐프로(유흥주점) 자체가 얼굴을 보고 뽑는 거고. 돈 많은 감독님이 너 연예인 시켜줄 게 이러면 누가 거절하겠어요. 순수하게 있다가 연예인 되는 경우보다 그런 식으로 입문하는 게 오히려 빠르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냥 있으면 어떻게 알겠어요. 그냥, 그런 장소에서 그런 분들 만나서 쉽게 가는 거죠. 밑바닥부터 막 진짜.”(연예인 지망생 D씨·20대 초반)

    여배우는 선망의 대상이면서 욕망의 대상이다. 가부장 문화는 여성 연예인을 성적 대상으로 간주한다. 욕망으로 소비되며 성적 시선을 벗어나기 어렵다. 카메라는 관음증의 매개다. 렌즈는 남성의 시선으로서 여성의 몸을 객체화한다. ‘너는 내 소유물이니 내가 하라는 대로 하라’는 스폰서 말처럼 여배우를 사적으로 소유하려는 건 가부장적 권력욕의 발현이다. 데뷔가 늦어져 초조한 지망생이나 경제적 곤란을 겪는 신인에게 “데뷔를 시켜주겠다” “뜨게 해 주겠다”는 약속은 거부하기가 쉽지 않은 유혹이다. 거절했을 때 받는 불이익도 고려해야 한다. D씨의 고백을 좀 더 들어보자.

    “내 친구의 경우인데, ‘내가 너를 데뷔시켜주겠다, 너 뜰 때까지 다 해주겠다, 그런데 1년 동안은 주변 사람들 아무도 만나지 말라고, 죽은 듯이 살라고, 죽었다고 생각하라고 (말하더래요). 그래서 그러겠다고 했는데, 그 다음부터 기획사 사장님하고 밥을 먹는데 이제 들이대는 거예요. 뽀뽀도 하고, 살짝살짝 만지고, 너 내 애인 하자….”

    캐스팅부터 투명하지 않다. 설문조사에 응한 연기자와 연기자 지망생 90% 가까이가 공개 오디션보다 비공식 미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연기자 58.7%, 지망생 77.6%가 방송 관계자와의 술자리가 진입 통로로 구실한다고 여긴다.

    심층면접과 개방형 설문에 응한 연기자 4명의 토로를 들어보자.

    “무엇보다도 우리는 약자이기 때문에 성적 수치심을 느끼더라도 겉으로는 웃을 수밖에 없어요. 넌 왜 그렇게 가슴이 작냐, 너 밤에 잘 하겠다는 말을 들어도 뭐라고 항의할 수도 없고, 그렇다면 당장 캐스팅에 불이익이 있을 것이고.… 중요한 건 설문조사에 응해도 바뀌는 게 없다는 거.… 강자인 그들이 생각을 바꾸고 같은 일을 하는 딸이고, 친구이고, 엄마이고 아내라는 마음으로 존중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날이 올까요.”

    “소속사 요구로 식사자리 술자리에 여러 번 불려나갔어요. 결정적으로 사고가 나지는 않았지만, 느끼한….”

    “성상납이나 술자리 응대, 스폰서 제의는 신인인 나에게도 있는 사실이다. 진정으로 내 꿈과 열정을 짓밟아버리는 연예계 현실이 너무 싫다.”

    “인권침해 문제나 성상납 문제, 매니저 사무실의 출연료 강탈 문제로 문의하고 도움을 청해도 해결되는 건 없기에.… 모두 개인 문제로 돌려서 도움 주기 어렵다는 통지.… 다시 반복되는 스트레스.… 저는 크게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병원에서 응급수술 받을 만큼 학대받은 A씨가 스폰서를 문제 삼지 못한 것도 계약 관련 법적 부담 때문이다. 심층면접에 응한 다른 배우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계약서 때문에 참았고요. 7년이나 썼는데, 여기서 내가 욱해버려서 막나가면 7년 동안 묶여 있고, 일을 하나도 못할 거 아니에요. 잘 할 수밖에 없는 거,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는 거….”(배우 E씨·20대 초반)

    “마음대로 해지할 수 없는 10년이라는 전속 계약 속에서 비참한 사건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대로 참고 가다가는 내 인생을 통째로 빼앗길 수도 있다는….”(배우 F씨·20대 후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거예요”

    여성 연예인이 고용 기회를 좌우하는 기획사 관계자를 문제 삼는 건 용기와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기획사가 관여한 성폭력은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에 해당하는 범죄다.

    연예산업에서 갑(甲)은 제작자 집단이다. 신인, 지망생에게 이들은 여탈(與奪)권을 쥔 존재다. 캐스팅은 가능성, 나아가 성공을 의미한다. 공정하지 못한 캐스팅이 접대로 이어진다. 조사에 응한 연기자들의 말을 들어보자.

    “여자 신인배우들이 뜨기 위해선 성접대를 해야 한다는 연예 관계자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여긴다. 성상납 없이도 공정하게 캐스팅이 이뤄지고 공정하게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독하고 밥을 먹는다든지, 평소 여가 시간에 PD들하고 골프를 치는 데 시간을 보낸다는 배우가 많다.”

    “캐스팅에도 돈이 필요하다고 하죠. 작가에게 돈을 싸들고 가 캐스팅 되는 관행도 있어요.”

    여배우 G씨(30대 후반)는 “흔히 좋은 프로는 옛날부터 몸 주고, 돈 준다는 그런 흔히 있는 상투적 말을 하면서 너는 운 좋게 들어와서 그러냐, 미쳤구나, 그러면서 얘기하는데 너무 충격이었어요”라고 했다.

    PD, 작가로선 당혹스러울 고백이다. 조사관에게 이런 말을 한 연예인도 있다.

    “(곡을 내려고 앨범 작업을 하는데) 식사를 하자고 몇 번 그래서.… 그런 데에서도 만나고 이제 다 작업이 되가니까.… 방을 잡아야 한다는 거예요. 몇 년의 공백기가 있다가 그런 기회가, 재기할 수 있는 기회였거든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거예요.”

    G씨의 말도 더 들어보자.

    “(당시에) 제가 나이가 조금 어렸고.… 나이가 좀 있는 남자가 식사하면서 뽀뽀를 하려고 하면 싫잖아요. 아, 너무 사랑하고 어쩌구저쩌구, 그런 걸 농락이라고 하는 거죠. 그렇죠?… 그런데 회식 때 너도 오빠 사무실 알지 놀러와. 다른 얘들은 다 오는데 넌 왜 안 와? 저는 좀 강해요. 성향이. 그게 연예계 생활에선 안 좋아요. 그냥 넘어갔으면 다 잘 됐을 문제였던 거예요. 그 사무실에 찾아가면 되는 거였고, 싱글 앨범 때도 다 되면 자야 하는구나, 그러고 자면 되는 거였고….”

    설문조사에 나타난 성접대 상대는 재력가 25명(43.9%), 연출가 22명(38.6%), 제작사 대표 13명(22.8%), 기업인 9명(15.8%), 광고주 8명(14.0%), 방송사 간부 7명(12.3%), 기획사 대표 7명(12.3%), 정관계 인사 5명(8.8%) 등이었다.

    개방형 설문에 답한 한 연기자는 “내 딸이 연예인 되겠다면 반대할 것”이라면서 이렇게 토로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성 거래는 원로 연기자 때부터 내려오는 악습이다. 과거에 유명 배우와 감독의 결합, 정치인 관여 등 이런 문제는.… 자기의 몸으로 출세하려는 동료 후배 연기자도 많다. 어떤 법으로도 묶을 수 없고. 지금 유명해진 연예인들을 보라. 그들 중 몇 %나 클린 연기자일까. 한 자릿수도 안 될지 모르겠다. 어떠한 방법도 없다. 어릴 때는 나 혼자만 독야청청하리라 했지만 출연 기회도 없어지고 연기력도 떨어지고 카메라도 무섭고 대인기피증이 생긴다. 또 유명 연기자치고 재벌과 추문 안 나고 빌딩을 가지고 있는가.… 과거의 문제 PD들이 지금은 방송국 간부, 제작자, 유명 연출자로 활동한다. 지금 현실과 타협해 유명해진 동료가 부럽고, 왜 과거에 혼자 바보짓 했을까 생각한 적도 꽤 있다.”

    면접조사에 응한 PD들은 “내가 특수한 경우인지는 모르겠으나 세상이 변했으며 캐스팅에 다른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적당한 연기자를 섭외하려면 삼고초려를 해야 하는 게 달라진 현실이라는 거다.

    과시적 소비 대상

    여성 연예인들은 연예산업이 인맥 돈 외모로 돌아간다고 인식한다. 여성 연예인의 경제력은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취약한 예가 많다.

    “연봉 3000만~4000만원 수준이지만 꾸준하지 않고 변동이 심해 안정적이지 못하다.”(경력 27년차 H씨·40대 후반)

    “얼굴은 알려졌고. 아르바이트도 못 하죠. 어떻게 못하고 일이 생기기만 기다리고.”(20대 초반 연기자)

    “연예인 정말 불쌍하다고 생각해요. 아주 뜨지 않는 이상.”(20대 초반 지망생)

    방송이나 영화에 얼굴을 비춘 후엔 이미지 관리 때문에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 게 어렵다고 한다. 이런 틈을 파고드는 게 스폰서다. 파티 참석, 술자리 접대, 스폰서 제안은 지망생이나 신인 시절 집중된다. 연예인이 남성의 욕구를 풀어주는 과시적 소비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아빠 같은 분이 저녁 먹고 나랑 애인 할래 딱 이렇게 묻는 거예요.… 아빠 같은 분하고 겁나는.…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주고 나는 너의 젊음을 사고 이러시는 거예요.…정말 많아요. 그런 일, 그런데 한 번은 혹해요. 부럽기도 해요. 하루 만나서 밥 먹고 얘기해주고 그러면 300만원 받고. 나는 한 달을 일해도 100만원 벌기도 힘들고.”(연기자 I씨·20대 초반)

    “스폰이라던가 이런 거 끼고 있는 애들도 있고, 그것도 하나의 빽인데, 그런 것들이 이 바닥에서 필요하다고 느끼는 얘들도 많이 있고요. 스폰이란 것 자체가 돈을 투자하는 잠자리, 이런 것도 있는 거고 진짜 집을 잡아서.… 대회에도 스폰 잡아서 상 받고 얼굴 알려지고 그런 것들….”(연기자 J씨·20대 중반)

    스폰서를 매개하는 만남은 빈번하고, 일상적이라는 게 심층면접에 응한 이들의 공통된 토로다. “부실한 기획사가 여성 연예인을 매개로 스폰서의 지원을 받아 회사를 운영하는 정황이 상당수 파악됐다”고 인권위는 밝힌다. 연예인들은 면접과정에서 피해의식을 드러냈다.

    “일반 사람들도 여자 연예인 하면 무조건 성상납을 해야만 방송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손해를 보고 있다.”

    “무서운 게 이런 얘기를 (조사관에게) 하면 나중에 쟤가 이런 얘기를 했다더라, 이런 것도 무섭고.”

    “부모님한테도 말할 수 없고, 친구들한테도. 정말 외로운 직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누구한테 말하고 싶어도 무서워요.”

    한 여배우는 “인터뷰(심층면접)하는 것만으로도 정화가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지고 정화가 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이런 말 안 하던가요? 여배우들이 자기 얘기를 할 공간이 없어요. 모두들 이미지에 갇혀 있어야 하고, 또 대인관계에서 쉽게 상처 받기도 해요.”

    인권 유린 범죄

    여배우들은 △몸의 자기 결정권 침해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 △노동권 침해 △사(私)생활권 침해에 시달린다. 한 여배우는 “성상납 같은 일을 하지 않아도 공정하게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다른 배우는 “여배우를 여자가 아닌 말 그대로 배우로 봐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2002년 서울지검 강력부는 조폭 자금의 연예계 유입, 연예기획사의 정관계 로비 의혹, 성 상납 의혹에 대한 수사를 벌었다. 서울지검 강력부장이던 서울고등검찰청 김규헌(56) 검사는 “정관계 실세들과 연예인 성추문 내사 중 인사 조치됐다”고 밝혔다.(‘신동아’ 2009년 5월호 ‘2002년 연예계 비리 수사한 김규헌 검사의 작심 토로’ 제하 기사 참조)

    조사팀은 자정 노력과 법적 규제를 정책 대안으로 제시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은 인권 유린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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