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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혹은 황해라고 불리는 바다

세상의 지배자를 꿈꾸는 힘과 힘이 부딪칠 때, 부서져 내리는 것은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서해 혹은 황해라고 불리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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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부터였을까, 서해가 이처럼 뜨거운 공간이 된 것은.
  • 그동안 우리가 한반도의 서쪽 뒷마당쯤으로 생각했던 이 탁한 바다는 순식간에 세계와 세계가 충돌하는 굉음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 미국이 지배하던 20세기의 질서가 끝나고 중국이 그리는 21세기의 질서가 시작되는 공간. 어제와 같지만 또 전혀 다른 이 바다가 지금 한반도의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 뻗어나가는 생각의 끝을 다잡으려, 서해를 가로지르는 배에 올랐다.
서해 혹은 황해라고 불리는 바다

인천에서 중국 칭다오를 왕래하는 여객선 위에서 본 일출.

“중국 동부 해안과 한반도 사이에 있는 바다로 한국에서는 서해(西海)라고 부른다. 북쪽의 랴오둥(遼東)반도와 산둥(山東)반도 사이에서 보하이(渤海)만에 이어진다. 동중국해와의 경계는 일반적으로 제주도와 양쯔강(揚子江) 하구를 연결하는 선으로 보고 있다. 보하이만을 제외한 면적은 약 38만㎢, 평균심도는 44m의 얕은 바다다.” - 중국의 인터넷 백과사전 ‘바이두(百度)’의 ‘황해(黃海, Yellow Sea)’ 항목 중 일부

검은 바다는 쇠처럼 무거웠다. 인천을 출발해 칭다오(靑島)를 향해 달리는 골든브릿지5호가 16시간의 여정 가운데 절반을 흘려보낸 새벽 2시, 망망대해로 접어든 배는 연안에 있을 때와는 달리 사정없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보따리 상인들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웃어 보이지만, 초행자는 걸음을 떼기조차 쉽지 않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불빛 하나 찾을 수 없는 바다 위를 홀로 가로지르는 배.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끓는 듯 웅웅대는 엔진소리가 안쓰럽다.

우리는 알지 못했다. 중국인들은 이 바다를 동중국해와 잘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을,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은 ‘동중국해에 속한 황해(Yellow Sea of East China Sea)’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무심해도 좋을 만큼 서해는 충분히 넓었고, 지나간 세기 대부분의 시간 동안 아무런 정치적 의미도 없는 공간에 가까웠다.

눈으로는 아무리 보려 해도 볼 수 없는 힘. 이 어둠의 공간에 팽팽하게 뻗친 힘들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거대한 힘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이 바다 위에서 꿈틀대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급성장하는 중국의 경제는 이 바다를 가로질러 서울을 잇는 온갖 사람과 화물, 정보의 그물망을 구축해놓았고,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 중국의 국제정치는 이 바다를 러일전쟁 이후 처음으로 세상의 지배자들이 행마를 고민하는 체스판으로 바꾸어놓았다. 전자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20여 년, 후자는 이제 막 시작한 변화의 흐름이다.

지금 이 바다는 좁다. 바다가 치열해질수록, 이 공간에 미치는 힘의 크기가 커질수록, 바다 위를 오가는 사람 수가 늘어날수록, 사람과 재화와 정보의 그물망이 두터워질수록 서해는 점점 좁아진다. 세상의 지배자를 꿈꾸는 거대한 힘들이 공존하기에 38만㎢는 너무 비좁은 것이다. 진눈깨비가 하염없이 쏟아지는 어두운 바다를 내려다보는 동안, 생각은 끊임없이 가지를 뻗어나간다.

바다에서 사는 사람들

서해 혹은 황해라고 불리는 바다

칭다오항에 기항한 배에서 출입국 검색대로 이동하는 버스 안.

문미정(가명). 43세. 그녀는 이 바다 위에서 산다. 일주일에 여섯 밤, 96시간을 이 배 위에서 보내며 60㎏짜리 짐 2개를 나르는 보따리 장사다. 중국에 있는 조선족 ‘라오반(老板·사장)’이 연결해준 탁송물을 들고 인천에 왔다가, 시장에서 사 모은 곡물을 들고 칭다오로 간다. 오후 4시에 배에 오르면 반대편 항구에 내려 통관수속까지 마치는 것은 다음날 정오. 네 시간 뒤에는 다시 돌아오는 배에 올라야 하는 일정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샤워도 빨래도 모두 배 위에서 해결하는 문씨는 스스로를 ‘배숙자’라고 부른다. 노숙자에 빗대 자조하듯 쓰는 말이다.

인길환(가명). 역시 43세. 문씨의 조선족 남편이다. 15년 전 처음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던 그는 지난해 1월 강제추방 당했다. 전에 혼인신고까지 했던 한국 여자는 약속했던 영주권 취득절차에 협조하는 대신 전세금 3000만원을 들고 사라졌다. 목재공장에서 공장장을 지낸 그가 지금은 칭다오에서 음식점 설거지를 하고 있다. 수입은 10분의 1로 줄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아내와 지내기 위해 고향인 옌지(延吉)를 떠나 칭다오에 머물고 있다.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남편이 추방을 당했을 때는 이미 함께 산 지 1년이 넘은 시점이었지만, 엉켜있던 인씨의 이전 혼인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법원을 드나드느라 늦어졌다. 신고 1년 뒤에야 영주권이 나오는 규정에 막혀 두 사람은 지금 함께 살 수 없다. 문씨가 월수입 60만원에 불과한 배 위의 삶을 택하게 된 이유다. 사정을 설명해 하루라도 빨리 영주권을 받으려 찾아간 영사관에서 한국인 담당자는 만날 수 없었고, 조선족 출신의 영사부 직원은 “자꾸 이렇게 찾아오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차갑게 말했다.

오늘의 승객 500여 명 가운데 200명 남짓은 상인들이다. 한국인과 중국인이 섞여 있는 250명 규모의 청인상인회(靑仁商人會)는 두 달 이상 배를 타야 파란색 정식회원증을 만들어준다. 한때는 다달이 수백만원씩 버는 시절도 있었다지만, 지금은 잘해야 80만~90만원이 전부다. 돈을 위해 뛰어들었던 사람들은 모두 떠났고 이제는 문씨처럼 양쪽을 오갈 수밖에 없는 이들이 대부분. 중국과 한국의 접촉면이 열린 이래 20여 년 세월 동안, 어떤 식으로든 남모를 사연을 하나씩 품게 된 사람들만 이 바다에 남은 셈이다. 급속도로 두터워진 한중 경제 네트워크가 사람들의 삶에 남긴 부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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