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호

리비아 군사개입과 석유 패권

검은 대륙 향한 미국·유럽·중국의 세력다툼 결정판

  • 김중관│동국대 교수·국제통상학 marcojk@hanmail.net

    입력2011-04-20 1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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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비아 군사개입과 석유 패권

    3월19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리비아 관련 주요국 회의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유엔의 비행금지구역 설정부터 공습에 이르기까지 양국은 리비아에 대한 군사작전을 시종일관 주도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10년, 이라크 전쟁 8년 만에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리비아에 대한 공습을 단행했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으로부터 시작된 중동의 민주화 바람은 이제 리비아 사태에 서방국가들이 개입하면서 상황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석유개발의 기존 계약관계가 붕괴된 리비아의 유전에서 자국의 지분을 확대하기 위해 리비아의 분할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2003년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침공했던 과정과도 유사하다. 다만 이라크의 경우는 수년에 걸쳐 미국이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정보를 조작해가며 개입의 명분과 상황을 만들어왔지만, 리비아에는 일단 자생적으로 상황이 발생한 후에 워게임 시뮬레이션을 적용했다는 점이 차이일 것이다. 또한 이번 서방의 군사개입은 해당 국가 무기산업의 재고 처리 시점과도 관계가 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군사작전에는 이렇듯 명확한 목표와 전략이 있고 공습만으로는 리비아 사태의 장악이 어렵기 때문에, 다국적군은 앞으로도 지상군 투입과 리비아 점령 시도를 포함해 개입을 이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의 이면에는 석유를 둘러싼 패권을 놓고 각국이 벌이는 줄다리기가 숨어 있다. 이미 중국은 미국이 달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전세계에 인플레이션과 정치 혼란을 조장하고 있으며 리비아에서 국제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 글에서는 리비아 개입과 석유, 무기산업의 상관관계를 포함해 이번 군사작전에 얽힌 서방의 이해관계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 연장선 위에서 다국적군과 카다피의 힘겨루기를 해부함으로써 향후 리비아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접근해보겠다.

    단기 수급안정을 넘어



    내란이 일어나기 전 리비아 내의 석유 개발에 참여하고 있던 외국계 석유기업으로는 영국의 석유 메이저 BP(British Petroleum), 프랑스의 토탈(Total), 이탈리아 ENI, 중국석유연합(CNPC), 스페인 석유연합(REPSOL), 미국의 엑손모빌(Exxon Mobil), 쉐브론(Chevron), 옥시덴탈석유(Occidental Petroleum), 헤스(Hess), 코노코필립(Conoco Phillips)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미국계인 쉐브론과 옥시덴탈석유는 이미 2010년 10월에 리비아의 석유, 가스개발권을 갱신하지 않고 떠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반면 독일계 석유자본은 리비아 석유공사(NOC)와 석유개발 및 생산 공유에 대한 광범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유럽의 정유공장은 리비아 경질유 수입에 크게 의존해왔다. 리비아 석유의 85%가 유럽 국가들에 공급되고 있는 것이다. 리비아 사태가 심각해지면 유럽 국가의 석유공급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심각한 영향을 피할 수 없다. 이탈리아 석유수요의 30%와 천연가스의 10%가 리비아에서 수입되기 때문이다. 리비아산(産) 가스는 지중해의 그린스트림(Green stream)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럽으로 운송된다.

    이러한 배경을 들어 그간에는 이번 군사작전의 핵심목표가 리비아 석유생산의 안정화에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을 돌이켜보면 이러한 틀은 현재 상황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다국적군이 군사적 지원으로 조속한 안정화를 이뤄 석유수급을 정상화하길 원한다는 논리만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카다피 정권 역시 지난 수년 동안 강대국 석유자본에 협조적이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노르웨이의 석유회사들은 그간 카다피 정부와 협력하면서 리비아 석유산업에 참여해왔다. 물론 리비아에 유전이 없었다면 다국적군의 적극 개입도 없었겠지만, 이는 안정적인 석유수급을 넘어 ‘유전과 연계된 패권의 장악’이라는 틀로 설명해야만 이해가 가능하다. 우선은 리비아의 석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지만, 다음으로는 반정부군이 집권하도록 유도한 뒤 현재 리비아의 국영 석유체제를 와해시키는 것이 이들 국가의 장기적인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다.

    리비아 석유공사는 세계 25위 수준의 거대한 석유기업으로, 이를 해체하는 것은 국가 소유의 석유를 민영화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다시 말해 리비아 석유자원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소유권을 이라크에서처럼 해체해 자국의 석유 메이저 기업들이 이에 참여하거나 장악하도록 만드는 것이 서방국가들의 가장 큰 목표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리비아에 대한 군사작전은 2003년 이라크 침공과 마찬가지로 세계 석유재벌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리비아 석유의 80% 가까운 양은 동부의 시르테만에 매장돼 있다. 확인된 보유량만 465억배럴에 달해 이집트의 10배이자 미국의 2배 이상에 해당하는 리비아는 아프리카 대륙을 통틀어 나이지리아와 알제리 다음의 석유경제 대국이다. 이렇듯 거대한 시장에서 벌어진 내부분쟁은 다국적 석유자본에는 중요한 기회다.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기록하는 가운데, 이라크 침공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프랑스와 영국이 부족한 원유지분을 리비아에서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더욱이 리비아의 석유생산 비용은 이라크보다도 저렴하다.

    협력을 통한 견제

    이렇듯 영국과 프랑스에 이번 군사작전은 자국의 석유패권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리비아를 비롯한 지중해 남부지역에 식민지를 경영했던 두 나라는 사회심리적으로도 이 지역에 강한 집착을 갖고 있다. 특히 최근 북아프리카 지역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중국의 존재를 약화시킬 필요도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 인도주의를 명분으로 삼은 NATO의 군사개입은 장기적으로 프랑스에, 단기적으로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입김이 강했던 북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유럽의 패권을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또한 미국으로서는 이 상황에 함께 개입함으로써 단순히 석유자원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는 것을 벗어나 북아프리카에서 미국 주도의 군사패권을 새롭게 형성하는 계기로 만들어낼 수 있다.

    미국이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을 통해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기존의 이권(利權)질서를 새롭게 재편할 수 있다면 이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포함해 과거 이 지역의 식민지 종주국들이 행사해온 영향력을 약화시켜 미국의 대(對)유럽연합(EU) 지배권을 유지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 그동안 미국은 리비아, 튀니지, 모로코, 알제리 등이 과거 식민종주국인 유럽 국가와의 정치적 연계를 약화시키고 친미 정권을 수립할 수 있도록 유도해왔다. 이에 대응해 프랑스는 지난 10년간 지중해 남부 연안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적 연대를 확대했고, EU 경제권이 북아프리카를 넘어 아라비아 반도까지 확대되도록 도모해왔다.

    결국 이번 군사개입에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지정학적 이해관계는 미묘하게 충돌하는 모양새다. 미국으로서는 북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EU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군사개입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마다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미국과 NATO가 벌이는 군사작전의 잠재적 최대 수혜자는 BP나 쉐브론 같은 다국적 석유자본이 될 것이다. 이들은 북아프리카의 석유 지배권이 새롭게 분배되는 과정에서 식민지 분할에 준하는 이권을 배정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1884년 베를린 회의(Berlin Conference)를 통해 설정된 이 지역 국가들의 경계를 새로운 형태로 대체하려는 시도로 비견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영국과 프랑스, 미국이 서로를 견제하는 가운데 새로운 아프리카 지배전략을 모색하려는 것이야말로 이번 군사작전의 핵심목적인 셈이다.

    패권 띠의 연결고리

    더욱 큰 그림을 엿보기 위해 지도를 펼쳐보자. 리비아는 알제리, 튀니지, 니제르, 차드 등 여러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특히 차드는 풍부한 석유자원을 가진 잠재력이 큰 나라다. 엑손모빌과 쉐브론은 송유관 개발계획을 포함해 차드 남부의 석유자원에 관심이 많다. 특히 이 지역은 수단 다르푸르 지역으로 향하는 통로이며, 이미 수단에는 홍해로 연결되는 1600㎞의 파이프라인이 완성돼 있다. 석유자원 전략 차원에서 이 지역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다.

    이 때문에 중국 역시 차드와 수단의 석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난 10년 동안 협력을 강화해왔다. 이른바 중국의 ‘아프리카 경제식민지 건설계획’이다. 중국 국영석유회사(CNPC)는 2007년 차드 정부와 중장기 석유개발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니제르는 막대한 우라늄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미국에 매우 중요한 곳이다. 현재 니제르의 우라늄 산업은 프랑스의 원자력기업 아베라(Avera)가 지배적으로 관리하고 있지만, 중국 역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렇듯 북아프리카에서 중앙아프리카, 서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범위한 프랑스어권 국가들은 자원전략 차원에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앞서 본 것처럼 리비아의 남부 국경은 이들 지역을 향하는 통로다. 리비아에 얽힌 미국과 유럽의 미묘한 이해관계 충돌은 단순히 북아프리카를 넘어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아우르며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보자면 리비아가 유럽의 잠정적 지배 대신 자국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 되는 이유다.

    더욱이 리비아는 미국에 세계 전체 석유, 천연가스의 60%가 넘는 분량이 매장돼 있는 아프리카와 중동, 중앙아시아를 잇는 중장기 에너지 전략 패권 띠의 주요 연결고리에 해당한다. 북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라크 전쟁에서 석유자원에 대한 미국의 경쟁상대가 러시아와 프랑스였다면, 리비아 군사개입에서는 중국이 경쟁국이다.

    그간 리비아뿐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에 대한 경제식민지 정책을 차근차근 추진해온 중국은 자국민 노동인력 3만명 이상을 상주시키며 리비아 석유의 11%를 수입해왔다. CNPC가 수행한 생산 및 개발 프로젝트는 리비아를 통틀어 가장 거대한 규모였다.

    달러화 가치와 전쟁의 관계

    이는 석유를 벗어나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세계패권을 유지하는 또 하나의 핵심기둥이 달러화의 독점적 지위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간 미국은 달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제유가와 전쟁을 적절히 활용해왔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악성자산과 높은 실업률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아 달러화 가치가 계속 하락하면서 미국이 겪는 어려움은 국제적인 혼란이나 전쟁을 통해 상당부분 완화될 수 있다. 이는 그간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도 유추할 수 있는 교훈이다.

    1973년 1차 석유파동 당시 유가가 4배 폭등하자 달러화 수요가 크게 늘었고, 미국은 이 과정에서 달러의 가치하락을 막을 수 있었다. 유로화 탄생 직후의 달러 가치 하락은 코소보 전쟁을 통해 저지됐고, 2001년 인터넷 거품경제가 붕괴한 후에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때맞춰 발생했다. 그리고 2011년 3월, 달러화는 장기적 안정선이 붕괴하는 상황을 맞았고 투매와 급속한 평가절하의 위기를 맞고 있다. 국제정세 긴장을 이용해 구매력과 달러화의 가치를 보호하는 일이 미국에 또 다른 카드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지하다시피 과거 리비아는 미국 영향력 밖에 있는 국가로 미국과는 적대적 관계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워싱턴은 상대적으로 쉽게 이번 군사작전을 결정할 수 있었다. 미국의 중동 패권전략에서 리비아는 시리아, 레바논, 이란과 함께 군사작전 대상에 속한다. 2003년의 이라크 침공이 이들 국가로 줄줄이 이어지는 중동-아프리카 에너지 패권의 띠를 잇는 첫 단추였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또한 카스피해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방식의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전선을 더 확대하기는 부담스러운 워싱턴의 입장에 비추어 이러한 중동패권 전략이 추가적인 군사개입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큰 전선이 형성돼 있고 이로 인한 정치적, 경제적 부담은 적신호를 깜빡이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을 치러야 하는 오바마 행정부에 추가 전선확대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이렇듯 이번 군사개입에 얽힌 각국의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공습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 역시 엇갈리고 있다. 군사행동을 주도한 미국, 영국, 프랑스는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러시아 외무부는 성급하게 채택된 유엔 결의에 따른 군사개입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성명을 냈다. 중국 외교부 역시 다국적군의 군사작전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민간인 희생을 늘릴 수 있다며 유감을 표명한 바 있다.

    국내 정치의 그림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이집트 외교부 역시 파리 회의 직후 “군사적 형식의 행동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유엔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찬성했던 아랍연맹(AL)이나 아프리카연합(OAU)도 리비아에 대한 공격을 비난하고 나섰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미국과 유럽이 석유패권을 노리고 리비아를 공격했다고 비판했다.

    이렇듯 비판적인 견해를 공공연히 표출하고 있는 러시아와 독일, 중국의 행동에도 경제적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 러시아는 리비아에 대한 무기수출 비중이 상당히 크고, 독일은 리비아산(産)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뿐더러 리비아 대외교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순위를 차지할 정도로 통상 경제적 측면에서 긴밀하다. 중국이 리비아에서 확보해온 이권은 앞서 설명한 것 외에도 사하라 횡단철도 등 각종 건설사업을 포함해 400억달러 규모에 달한다.

    반면 영국과 프랑스에는 옛 식민지 국가들에 대한 질서 재편이라는 측면 못지않게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도 만만치 않다. 영국은 금융위기가 야기한 부담을 노동계층과 분담하려던 보수정권이 정치적 난관에 봉착해 있는데, 특히 2014년까지 고등교육 예산을 40% 삭감하겠다는 정부에 맞서 학생뿐 아니라 교수들까지 시위와 파업으로 대응하고 있다. 보수적 개혁작업을 밀어붙여온 프랑스 정부 역시 학생과 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혀 코너에 몰려 있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카다피의 대선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에 휘말린 사르코지 대통령으로서는 인기를 회복할 지렛대로 이번 군사개입을 활용해야 할 이유가 있다.

    이렇듯 최근 유럽 보수정권들이 처한 정치적인 난맥을 고려하면,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은 사회적 관심을 국외문제로 돌리고 과거 식민지 경영의 향수를 국민에게 제시해 지지를 확보하려는 정치적 노림수로 해석할 수 있다. 과거 이들 국가에서 미사일과 방공시스템, 시위진압 장비 등 엄청난 양의 군수물자를 카다피 정권에 제공해왔던 것에 비추어보면 가히 격세지감이라 할 만하다.

    비극의 재발

    다국적군의 집중 공습 이후, 4월 첫 주의 고비를 넘긴 리비아 정부군은 당분간 군사적 균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주력부대를 반정부군 거점인 벵가지로부터 철수시킨 뒤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이제 다국적군은 단계적으로 정부군에 대해 직접 공습을 할 것이고, 군사작전의 범위도 점차 확대할 것이다. 카다피가 이렇듯 전선을 소강상태로 이끌면서 사태를 장기화하고, 영국과 프랑스는 지상군을 투입하는 대신 반정부군에게 무기 공급을 지속하면서 이들을 독립국가로 인정한다면, 결국 리비아는 양분된 채로 휴전을 맞을 공산이 크다.

    유엔 인도주의 개입의 첫 사례인 1992년 소말리아, 1990년대 내내 이어진 이라크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경제봉쇄, 1999년 NATO의 코소보 전쟁 등에서 적잖은 민간인이 미국과 유럽의 ‘인도주의적’ 폭탄과 총탄에 의해 희생됐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코소보 전쟁에서 미국과 NATO는 세르비아 밀로셰비치 정부의 알바니아계 인종청소를 명분 삼아 인위적인 국경분할을 단행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질적인 인종청소는 오히려 공습 후에 벌어졌다. NATO의 폭격으로 양측의 증오가 증폭된 후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 거주민 수십만 명이 각기 상대편 지역에서 난민으로 전락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서방국가들이 정부 수뇌부를 제거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전히 부족 상호 간의 학살이 지속되고 있다.

    리비아 군사개입과 석유 패권
    金重寬

    1957년 출생

    튀니스 엘-마나르대, 동국대 박사(경영학) 現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중동문제포럼 대표 한국중동학회 편집위원 KDI 경제모니터위원

    저서 및 논문 : ‘21세기전쟁’ ‘이슬람’‘중동경제의 이해’ ‘이라크 전쟁 이후의 세계경제 분석’ ‘걸프지역의 석유자원 지배권 중심의 국제경쟁에 대한 분석’ 외


    리비아가 섣불리 양분된다면 이런 끔찍한 상황이 재발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인도주의를 명분으로 삼은 군사개입이 더 큰 인도주의적 재앙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엄청난 민간인 사상자로 인해 아랍권이 이들 전쟁을 자신들에 대한 서구의 공격으로 기억하게 될 공산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러한 흐름이 그간 제도권 안에 묶여 있던 이슬람 원리주의의 기반이 중동 전체에서 장기적으로 확대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은 가장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이들이야말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그토록 경계하는 극단주의 무장 세력의 온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수혜자, 군수산업

    생중계되는 첨단무기 전시장의 홍보효과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만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전쟁 그 자체가 엄청난 전리품이 되기도 한다. ‘전쟁은 큰 사업 기회’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과 NATO가 주도하는 이번 군사작전은 리비아의 모든 재정기구를 해체하고 자국 은행에 예치돼 있는 수십억 달러의 리비아 자산을 압류할 수 있는 배경이 되며, 자국의 무기를 판매하기 위해서도 직접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이들 국가에 무기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다.

    지난 수년간 카다피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산 전투기와 헬기, 전차를 수입했고, 부시 행정부의 국방정책자문위원장이었던 리처드 펄은 세계적 군사컨설팅기업 모니터그룹 소속으로 연간 300만달러를 받는 카다피의 자문팀에 참여해 왔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까지 이어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10년 말 카다피와 무기수출 계약을 추진한 바 있다.

    영국도 다르지 않다. 중동을 순방하며 무기 판매회담을 진행하기도 했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아랍 정상들에게 무기를 판매하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같은 시간 전세계로 퍼져나간 리비아 사태 관련 동영상에서는 영국제 장갑차가 리비아 대중의 시위 진압에 앞장서는 모습이 담겼다.

    이렇듯 그간 리비아를 수출 시장으로 활용해왔던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무기산업은 이번 군사개입을 통해 다시 한 번 특수를 누리게 될 것이다. 고가의 재고 미사일을 소진하고 신무기의 성능을 잠재적 소비자에게 보여줄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다국적군의 리비아 공습에 최첨단 무기들이 총동원되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미국에서는 B-2 스텔스기와 사정거리 1600㎞의 순항미사일 토마호크, F-15, F-16, F-18 전투기, 미 해군의 스텔스 구축함과 핵잠수함, 수륙양용 공격함이 작전에 참여하고 있다. 프랑스는 최신예 전투기 미라주2000과 차세대전투기 라팔, 최초의 유럽전투기 토네이도, 공중조기경보통제기, 항공모함 샤를드골호를 투입했다.

    가히 걸프전과 이라크전을 뛰어넘는 이 최첨단무기의 전시장은 BBC와 CNN, 알자지라를 통해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중계돼 엄청난 홍보효과를 누리고 있다. 서방의 군수회사들이 리비아 군사작전의 또 다른 수혜자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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