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호

고용부의 일자리 창출 홍보용? 정부 의존도 높아 자력갱생은 뜬구름

사회적 기업 열풍의 허와 실

  • 김지영 기자│kjy@donga.com

    입력2011-08-23 14: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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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일자리 정책에 매몰돼 숫자 늘리기에 급급
    • 전문가, “인건비 지원 끊기면 망할 곳 많다”
    • 자문기관, “헐렁한 검증, 성급한 인증 아쉬워”
    • 사회적 기업, “관공서와 대기업이 착한 소비 앞장서야”
    • ‘1社 1사회적 기업’의 선두그룹, SK·교보생명·현대차·포스코
    고용부의 일자리 창출 홍보용? 정부 의존도 높아 자력갱생은 뜬구름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목적을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합니다. 비즈니스는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 사회적 기업의 존재이유가 아닙니다.”

    8월1일, 숙명여대 백주년기념관 삼성컨벤션센터. 영국의 사회적 기업 전문가인 클리포드 사우스컴(Clifford Southcombe)이 ‘우리는 왜 사회적 기업을 원하는가’를 주제로 강연을 시작하자 장내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전국 각지에서 온 사회적 기업가들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손놀림은 점점 바빠졌다. 200여 명의 청강 열기는 금세 에어컨 바람이 무색할 정도로 후끈 달아올랐다. 한국의 사회적 기업 열풍을 체감한 연사도 한껏 고무돼 있었다.

    사우스컴은 영국의 사회적 기업 확산 운동을 주도해온 인물. 유럽과 동남아 지역의 사회적 기업 돕기에 앞장서온 소셜엔터프라이즈 유럽(www.socialenterpriseeurope.co.uk)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그는 스페인 축구클럽 ‘FC 바르셀로나’를 한국의 사회적 기업가들이 주목할 만한 성공모델로 꼽았다. FC 바르셀로나는 15만명의 지역민이 공동 소유한 구단으로, 공동 분배 방식으로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고 있다.

    “FC 바르셀로나는 수익금을 시민을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하죠. 선수 유니폼에 대기업 광고를 유치해 엄청난 부가수익을 올리는 여느 구단과 달리 비정부기구인 유니세프를 후원하는 환상적인 기업이에요. 바르셀로나 회원들이 경기 때마다 외치는 ‘우리는 클럽 이상의 클럽이다’라는 구호에는 그런 자부심이 담겨 있죠.”

    그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놓쳐선 안 될 키워드로 평등과 공정성, 공유, 연대의식을 강조하며 “영국의 사회적 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공동체 문화”라고 밝혔다. 런던에 있는 사회적 기업 ‘코인스트리트 빌더스’가 좋은 예다. 코인스트리트 빌더스는 마을 주민이 함께 만들었다. 건물 임대 등으로 벌어들인 수익금을 유치원 놀이터 공원 등을 짓는 데 쓰고, 남은 돈은 주민에게 공동 분배하는 지역 기반 사회적 기업이다. 이밖에도 노숙자가 파는 잡지 ‘빅 이슈’, 불우 청소년을 요리사로 육성하는 ‘피프틴’ 등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많다. 영국을 사회적 기업의 메카라 일컫는 이유다.



    세계 유일의 사회적 기업 인증제

    고용부의 일자리 창출 홍보용? 정부 의존도 높아 자력갱생은 뜬구름

    교보생명이 만든 사회적 기업 숲자라미.

    영국은 어떻게 사회적 기업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가 됐을까. 영국의 사회적 기업은 프리어 스프렉클리((Freer Spreckley)가 1979년 처음 세웠고, 현재 그 수가 5만5000여 개에 달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 기업은 2006년 영국 전체 고용의 5%, 국내총생산(GDP)의 1%를 차지했으며 총 5조원의 매출을 올려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같은 성과를 견인한 한 축은 영국 정부다. 영국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으로도 이상적인 복지국가를 완성하지 못했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사회복지 정책을 추진했는데도 오히려 빈곤층이 늘고, 지역경제가 쇠퇴하고 고용여건은 악화됐다. 영국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사회적 기업 육성을 위한 ‘공동체이익기업(Community Interest Company·CIC)’을 2004년에 창설했다. 시민사회가 사회적 기업을 통해 힘을 모아 빈곤과 실업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CIC는 사회 공익적 활동에 신용을 담보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기업을 간접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영국, 미국 등 선진국의 노하우를 벤치마킹해 사회적 기업을 정책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사회적 기업 육성법이 2007월 7월부터 시행됐다. 사회적 기업 육성법은 정부가 직접 역량을 갖춘 사회적 기업을 발굴해 인건비 등을 지원하도록 보장한 제도다. 정부의 검증 절차를 통과한 기업만이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된다. 고용노동부가 인증한 기관만 ‘사회적 기업’이라는 명칭을 쓸 수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인증제’를 통해 정부가 직접 사회적 기업을 선발하는 유일한 나라다. 사회적 기업 확산을 주도하는 주체도 정부다. 영국 등 유럽에서는 시민사회가 사회적 기업 열풍을 이끌고 있으며, 정부는 제도적 지원을 하는 조연으로 물러나 있다. 미국 정부는 사회적 기업에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사회적 기업을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혁신적인 비즈니스로 이해하는 시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고용부의 일자리 창출 홍보용? 정부 의존도 높아 자력갱생은 뜬구름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으려면 7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사회적 기업 육성법에 따르면 먼저 민법상 법인이나 조합, 상법상 회사 또는 비영리민간단체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조직형태를 갖춰야 한다. 둘째, 유급근로자를 고용해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거나 판매하는 등 영업활동을 해야 한다. 셋째, 취약계층에게 일자리 또는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지역사회에 공헌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 사회적 목적 실현에 조직의 존립 가치를 둬야 한다.

    이 가운데 어느 쪽에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전체 근로자 중 취약계층의 고용 비율이 30% 이상인 조직은 ‘일자리 제공형’, 전체 사회서비스 수혜자 중 취약계층의 비율이 30% 이상이면 ‘사회서비스 제공형’, 전체 근로자 중 취약계층의 고용 비율과 사회서비스를 제공받는 취약계층의 비율이 각각 20% 이상이면 ‘혼합형’, 불특정 다수에게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는 ‘기타형’으로 분류한다.

    법령으로 정한 다른 인증 요건으로는 △서비스 수혜자, 근로자 등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의사결정 구조를 갖출 것 △6개월 동안의 영업활동에 따른 총 수입이 조직에서 지출한 총 노무비의 30% 이상일 것 △정관이나 규약을 구비할 것 △회사인 경우 이윤의 3분의 2 이상을 사회적 목적을 위해 사용할 것 등이 있다. 이상의 요건에 모두 부합해야 사회적 기업 인증 절차(표 참조)를 밟을 수 있다.

    사회적 기업 인증제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 재정, 세제, 경영 등을 집중 지원해 사회적 기업을 단기간에 육성하고자 도입됐다. 여기에는 부적절한 사회적 기업의 출현을 막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따라서 허위나 부정한 방법으로 인증을 받았거나, 인증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인증이 취소될 수 있다.

    고용노동부 인증률 50% 육박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1년 현재까지 사회적 기업 인증을 신청한 기관은 1165곳이다. 이들 가운데 사회적 기업 지원기관의 현장 실사와 인증심사소위원회의 사전 검토, 사회적기업육성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572곳이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다. 4년간 신청 대비 인증 비율은 49%. 신청서류를 접수한 두 곳 중 한 곳은 인증을 받은 셈이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부터 인증률이 껑충 뛴다. 2007년 인증률은 1회차와 2회차를 합쳐 33%였는데 2008년에는 58%, 2009년에 39%, 2010년에는 53%, 2011년엔 54%를 기록했다.

    그동안 인증을 받은 후 인증을 취소·반납하거나 문 닫은 17곳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사회적 기업은 555곳이다. 이들을 다시 사회적 목적의 유형별로 나누면 일자리 제공형은 330곳(59.5%)에 달하고 나머지는 사회서비스 제공형 46곳(8.3%), 혼합형 95곳(17.1%), 기타형 84곳(15.1%) 등이다. 대다수의 사회적 기업이 취약계층 고용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파격적 인건비 지원

    정부가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주목적도 일자리 창출에 있다. 사회적 기업 육성 정책을 보건복지부가 아닌 고용노동부에서 전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사회적 기업에 다양한 혜택을 주는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인건비 지원이다. 인건비 지원은 신규 채용을 전제로 한다. 새로 사람을 썼을 때만 길게는 3년까지 인건비를 보조해주는 것. 1인당 월 인건비는 첫해 93만2000원, 2년차 83만9000원, 3년차 65만8000원이다. 전문 인력을 채용했을 때는 최대 3명까지 1인당 월 150만원의 인건비를 지원한다. 이밖에도 컨설팅 비용을 연간 1000만원, 3년간 2000만원 이내에서 지원하고, 시설비 등 운영자금으로 최대 2억원을 연리 2%로 빌려준다.

    고용노동부는 사회적 기업의 전 단계로 예비 사회적 기업을 지정해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에 활용하고 있다. 예비 사회적 기업이 되려면 조직 형태, 사회적 목적 실현, 유급 근로자 고용과 영업활동 등 사회적 기업 조건 중 3가지를 갖추고, 이윤의 3분의 1을 사회적 목적에 재투자해야 한다. 예비 사회적 기업은 고용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새로 고용한 인력이 있을 때만 최대 2년까지 인건비가 지원된다. 신규 인력은 적게는 5명, 많게는 30명까지 고용할 수 있다. 인건비 지원액은 사회적 기업과 같지만 컨설팅 비용 지원한도는 연간 300만원. 3년간 500만원 이내로 훨씬 적다.

    서울시, 경기도 등 지자체 차원에서 육성하는 사회적 기업도 탄생했다. 모든 지자체가 지난해부터 자체적으로 사회적 기업을 지정해 인건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지자체가 지정하는 사회적 기업은 예비 사회적 기업의 한 맥락이다. 대신 고용노동부보다 자격 요건이 하나가 적어 조직 형태, 사회적 목적 실현, 유급 근로자 고용과 영업활동 등 3가지 조건만 맞으면 된다. 서울시는 시가 지정한 사회적 기업을 ‘서울형 사회적 기업’이라고 이름 붙였다. 서울형 사회적 기업은 지정과 동시에 신규 인력 창출 계획을 실행하는 것을 전제로 인건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지원 기간은 최대 2년이다. 1인당 인건비는 1년차엔 월 98만원, 2년차엔 인건비의 60%이며 전문인력의 경우엔 월 150만원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252곳, 올해 2월과 5월에 각각 57곳과 68곳을 서울형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했다. 총 377개의 예비 사회적 기업을 발굴해 일자리 9031개를 창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반면 고용노동부가 지정한 서울시내 예비 사회적 기업은 25곳으로 330명을 신규 채용했다.

    신규 인력 고용 안정성 우려

    서울시 담당 공무원은 “서울형 사회적 기업의 자격 요건이 고용노동부가 지정하는 지역형 예비 사회적 기업보다 덜 까다로워 더 많이 지원한 것 같다”며 “지역형 예비 사회적 기업은 2년차 인건비가 크게 줄지 않지만 서울형은 2년차 인건비가 60%로 줄기 때문에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불평하는 곳도 많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또 단기간에 높은 고용 창출 효과가 나타난 데 대해 “신규 일자리 창출을 전제로 인건비를 지원하고 인건비 지원 비중이 커서 그럴 것”이라며 “기업이 10명을 새로 들여야 한다고 써낸다고 해서 인건비를 다 지원해주는 건 아니고 심사를 통해 적정인원을 판단해 그만큼만 인건비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시는 올해에만 300여 곳을 서울형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하는 등 2014년까지 그 수를 1800곳으로 늘리고, 5만여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계획이다.

    고용노동부가 인증한 사회적 기업이 창출한 일자리는 현재까지 1만여 개에 달한다. 사회적 기업 수는 2007년 50곳, 2008년 205곳, 2009년 282곳, 2010년 497곳, 2011년 현재까지 555곳으로 늘어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사회적 기업의 매출 총액은 2007년 433억원에서 2008년 1276억원, 2009년 1300여억원으로 급증하며 사회적 기업 수에 비례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말처럼 일자리 창출은 우리 사회가 시급히 풀어야 할 당면 과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 육성 정책에 따른 일자리 창출 성과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일자리 정책에 매몰돼 사회적 기업의 본질은 외면한 채 가시적인 고용 성과를 내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 정부가 사회적 기업을 ‘인증’하는 자체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전문가 A씨는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부가 인증해 사회적 기업의 수를 인위적으로 늘리고 인건비까지 대주는 엽기적인 나라”라며 “일반 기업의 일자리 창출 실적이 저조하니 사회적 기업에 인건비라는 달콤한 사탕을 던져주고 고용 성과 홍보용 숫자 만들기에 국민의 혈세를 퍼붓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전문가 B씨는 “인건비를 지원받으려고 필요 이상으로 일자리를 늘린 사회적 기업이 한두 곳이 아닐 텐데 방만하게 운영하다 지원이 끊기면 잉여 인력은 또다시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경제연구소 출신의 사회적 기업 전문가인 황정은 인클로버재단 연구소장도 사회적 기업의 신규 채용 인력에 대한 안전장치가 미흡한 점을 우려했다. 황 소장은 “정부가 개입해 사회적 기업의 수가 크게 늘긴 했지만 알맹이는 없고 포장지만 번지르르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황 소장의 부연설명은 이렇다.

    자생력에 달렸다

    “경제 전문가들은 인건비 지원이 끊기면 망하는 곳이 많을 것으로 보고 있어요. 재무건전성이 형편없는데 정부의 인건비 지원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데가 적지 않다는 거예요. 사회복지 차원에서 보면 현재는 마이너스라도 사회적 기업의 순기능이 활성화되면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많이 나타날 거예요. 한데 지금은 정부가 고용 창출에 집중하며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인건비 지원이 약이 아니라 독이 되고 있어요. 사회적 기업 스스로 자생력을 키울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인건비 지원을 믿고 나태해진 탓이죠.”

    외국의 사회적 기업들을 보면 시민사회가 필요성을 느껴 자율적으로 설립을 주도해왔고, 구성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있어 참여 열의와 만족도가 높다. 사회적 기업의 유형도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런데 한국은 정부가 사회적 기업의 틀을 만들어 육성하다 보니 기형적 성장이 불가피할 뿐 아니라 인건비 지원 요건을 악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사회적 기업을 연구해온 전문가 C씨의 제보다.

    “사회적 기업 인증제가 도입되면서 도장 같은 것을 만들어 팔던 많은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이 사회적 기업으로 바뀌었어요. 이런 장애인 사업장을 여러 곳 찾아갔었는데 사회적 기업 마인드 같은 건 없었어요. 예비 사회적 기업 기간까지 감안하면 최장 5년 동안 인건비를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더라고요. 인건비 지원이 끝나도 보건복지부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면서요. 애초에 자생력을 키우겠다는 의지도,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이해도 없었던 거죠.”

    C씨의 다음 이야기는 더 씁쓸했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이 100여 개가 있는데 근로자 한 명에게 주는 월급이 30만원 조금 넘는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정부가 그 3배에 가까운 인건비를 새로 고용하는 수만큼 지원하니까 신규 인력을 채용하고 기존에 있던 근로자를 내보내는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어요. 새로 들인 사람이 기존의 근로자보다 업무 숙련도가 떨어지는데 월급은 더 많이 받으니까 내부 갈등이 심화되고, 일손이 달리니 몇 달 후 재고용하고요. 인건비 지원 조건을 신규 인력 채용으로 묶어두니 이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재고용을 막으면 나간 분들은 어떻게 다시 일자리를 구하겠어요. 사회적 기업 인증 후 관리 감독과 자생력을 키우는 데 필요한 지원에는 소홀한 채 숫자 늘리기에만 급급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는 거예요.”

    ‘좋은 어부로 키우려면 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한국의 사회적 기업 열풍이 착한 소비와 사회적 목적을 위한 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거듭하려면 우리 정부가 이 말의 의미를 뼛속 깊이 새겨야 할 듯하다.

    현재 사회적 기업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해소하고 자생력을 키우려면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여러 사회적 기업가와 전문가들은 인건비의 탄력적 운영을 한 방법으로 제시했다. 기존에 지급해온 인건비를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 창출과 판로 개척을 위한 마케팅 등 실질적으로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는 융통성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사회적 기업의 가치를 알리고 공공구매에 앞장서 착한 소비를 권장하는, 보다 능동적인 지원에 힘써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현장의 고충에 귀를 기울여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현재 이러한 협업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곳이 서울 마포구다. 마포구는 일자리 정책 관련 부서 내에 사회적 기업팀을 따로 두고 사회적 기업을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관리한다. 창기황 마포구 일자리진흥과장은 “마포구청 페이스북을 개설해 구내 사회적 기업가와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는 전담 직원이 있을 정도로 관리 감독에 정성을 다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마포구는 착한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사회적 기업 홍보 페스티벌과 일일장터 등을 열고 구보(區報)와 마포구 지역방송을 통해 구내 우수기업을 꾸준히 소개해왔다. 9월부터는 구내 사회적 기업가들이 서로 정보와 노하우를 공유하고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CEO경영스쿨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1부서 1사회적 기업’이라는 자매결연사업도 실시한다. 전 부서가 사회적 기업에 관심을 갖고 공공구매 등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프로보노의 활약

    마포구가 관리하는 사회적 기업은 모두 54곳. 고용노동부 인증 사회적 기업이 13곳, 예비 사회적 기업이 5곳, 서울형 사회적 기업 35곳, 마포구 사회적 기업이 1곳이다. 창기황 과장은 “관리 감독할 곳은 많고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구내에 함께 일하는 재단, 소셜컨설팅그룹(SCG) 등 사회적 기업의 성장을 돕는 협업기관이 많아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SCG는 미국과 영국에 널리 퍼져 있는 프로보노 운동의 개념을 국내에 처음으로 들여온 재능기부 단체. 프로보노(Pro Bono)는 원래 ‘공익을 위하여(pro bono publico·for the public good)’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의 약어로, 전문가가 자신의 전문성을 자발적이고 대가 없이 공공사회를 위해 쓰는 일을 표현하는 말이다. 요즘은 지역사회 공헌 활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한 전문가들을 일컫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2007년 12월 고영 대표가 뜻 맞는 마케터와 변호사, 회계사, 경영컨설턴트 등을 모아 설립한 사회적 기업의 자문기관인 SCG에는 현재 300여 명의 프로보노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수익 모델 창출과 판로 개척, 인재 육성 등에 필요한 컨설팅을 통해 국내 사회적 기업이 정부의 도움 없이도 자립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고영 대표의 말이다.

    스콜포럼 같은 정보 공유의 장 절실

    “현재 컨설팅하고 있는 기업은 8곳이고, 지금까지 42곳을 컨설팅했어요. 주말도 없이 뛰어도 힘든 줄을 모르겠어요. 저희가 컨설팅한 기업이 1년 만에 매출이 10억원으로 껑충 오르고, 조금씩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보람을 느꼈죠.”

    고 대표는 “사회적 기업이 발전하려면 일자리에 치중하기보다는 지속성장이 가능하도록 자금과 기술 지원, 판로개척, 인재육성이 이뤄져야 한다”며 “사업모델에 대한 보다 철저한 검증이 선행돼야 하고, 자생력이 확보된 후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해야 기업이 부작용과 후유증 없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선진국에는 사회적 기업을 돕는 든든한 민간 지원 조직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 MBA에는 사회적 기업가 프로그램이 발달돼 있다. MBA 지원자들을 장학생으로 선발해 사회적 기업에 3~5년간 근무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미국에서는 뛰어난 인재들이 사회혁신형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있으며, 초기 자본금부터 규모가 한국의 10~100배에 달한다. 사회투자펀드가 발달돼 있어서다. 대표적인 예가 아쇼카 재단이다. 세계적인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이 재단은 사회적 기업계의 골드만삭스로 통한다.

    일본은 지역을 중심으로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발달한 사회적 기업이 전체의 80%에 달한다. 지역민들은 지역의 환경과 자원을 밑천 삼아 생활협동조합 형태로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다. 덕분에 의료, 유기농, 재활용 분야의 사회적 기업이 발달했다. 최근 들어 일본에서도 미국처럼 MBA 출신, 대기업 임원, 경영컨설턴트 등 우수한 인재들이 사회적 기업에 뛰어들면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영국은 도시마다 사회적 기업 지원 솔루션 센터를 뒀다. 세계적인 사회적 기업 지원 기관인 스콜재단도 있다. 제프 스콜리아라는 이베이 창립자가 사재 1000억원을 투자해 설립한 재단이다. 이 재단이 주최하는 스콜포럼은 세계 사회적 기업가를 위한 포럼으로 사회적 기업계의 다보스포럼이나 다름없다. 한국에도 스콜포럼처럼 사회적 기업이 양질의 정보와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대기업들이 ‘1사 1사회적 기업’ 운동에 참여해 사회적 기업과의 협업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1사 1사회적 기업 만들기에 열심인 기업으로는 SK와 교보생명, 현대자동차, 포스코가 대표적이다. SK는 그룹 차원에서 사회적기업사업단을 조직해 행복한학교재단과 행복한도서관재단, 행복ICT재단, 행복한농원재단, 행복한뉴라이프재단 등 사회적 기업 5곳을 최근에 만들어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고 있다. 이전에도 SK는 탈북자의 자활을 돕는 메자닌 에코원 등 여러 사회적 기업의 설립자금을 지원했다. 교보생명은 2007년 정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1호 인증을 받은 다솜이재단과 최근 새로 만든 ‘숲자라미’까지 사회적 기업 2곳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나 대기업에 의존해선 안 돼”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해 장애인의 재활을 돕는 보조기구 생산업체인 ‘이지무브’라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다. 포스코는 취약계층에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주기 위해 장애인 표준사업장인 ‘포스위드’를 시작으로 ‘포스코에코하우징’ ‘포스플레이트’ ‘송도SE’등 사회적 기업 4곳을 설립했다. 김인선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대표는 “대기업이 사회적 기업을 직접 설립해 운영하는 것도 좋지만 사회적 기업 제품을 우선 구매해 착한 소비문화 확산에도 앞장섰으면 한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사회적 기업은 이처럼 업계의 다각적인 고민과 해결 노력을 통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 열풍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정부 의존도가 높은 기업 못지않게 혁신적인 성공사례 또한 많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업 인증 조건에 자생력까지 갖췄는데도 좀 더 기반을 다지려는 커피전문점 ‘향기내는 사람들’, 사교육비 절감을 위한 반값 참고서를 펴낸 서울형 사회적 기업 ‘공부의 신’, 소형 가전제품 폐기물처리사업으로 대기업과 협업에 성공한 ‘에코그린’이 대표적이다.

    8월 초 방한해 사회적 기업 강연을 한 사우스컴은 한국의 사회적 기업 열풍을 크게 반기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그의 조언은 일자리 정책에 매몰돼 사회적 기업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만 높이려는 조울증에 걸린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적 기업은 정부나 대기업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적 기업이 발전하려면 사회적 기업의 창의성과 자발성, 사회적 가치가 지속되는 게 중요해요. 사회적 기업은 대기업과 협업이 가능하다는 강점을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 세계 경제의 트렌드가 변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기업은 앞으로 성장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 기업 열풍이 급변하는 세계 경제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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