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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참는 자가 이긴다

다시 읽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 이길진 < 일본 평론가 > flute4u@chollian.net

끝까지 참는 자가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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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부
  • 냉철한 현실주의자 무인으로 보는 이에야스
  • 제2부
  • 인간경영의 지혜 정치가로 보는 이에야스
  • 일본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바쿠후(幕府)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내의 달인.
  • 그러나 상대를 쳐야 할 때는 가혹하게 칼을 뽑아들었다. 한때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머리를 숙였고, 이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도 굴복했으나 일본을 평정한 것은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 정치와 경제가 혼미를 거듭하는 지금 한국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냉철한 지혜와 지독한 인내를 배워야 할 것이다.
끝까지 참는 자가 이긴다
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인가. 일본에는 15세기 말부터 약 100년 동안 계속된 전국시대가 있었다. 전국에서 300명에 이르는 군웅이 할거하여 각축을 벌이던 난세가 그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처절한 투쟁의 와중에 도태되어 역사의 그늘로 사라졌다.

가까스로 천하를 노릴 자리에 도달한 무장은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비롯한 6~7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 중에서 노부나가와 히데요시는 한때 천하의 패권을 잡았었다.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이에야스였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었을까.

이에야스는 천재적인 자질을 가진 것도 아니다. 시대가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남이 견디지 못할 일을 참고, 남이 할 수 없는 일을 성취시킨 인내, 고난과 위기 속에서 배양된 지혜, 판단력·행동력·조직력이 그를 천하인(天下人)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승자의 조건이었다.

승자의 조건

작년에 일본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인들이 최고라고 꼽는 역사상 인물 중에서 이에야스가 세 번째로 뽑혔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특히 기업인, 경영자, 변혁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도 신뢰감을 바탕으로 한 그의 인간관계, 강력한 조직력, 그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리더십 등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처세술과도 직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경영의 귀재라는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가 산하에 이에야스를 연구하는 부서를 설치했다는, 얼른 보기에는 기이한 현상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여러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치가 방향을 잃고 경제가 난관에 처해 있으며 사회가 혼미하다. 이것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난세를 이긴 이에야스의 삶은 우리에게도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제1부 냉철한 현실주의자-무인으로 보는 이에야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542년, 지금의 아이치 현(愛知縣) 지방인 미카와(三河)의 오카자키(岡崎) 성주 마쓰다이라 히로타다(松平廣忠)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록에 의하면 그의 조상은 떠돌이 승려이던 도쿠아미(德阿彌)다. 15세기 초 도쿠아미는 마쓰다이라 마을에 들어와, 지방유지인 마쓰다이라 노부시게(信重)의 사위가 되어 정착했다. 이때 그는 이름을 마쓰다이라 다로사에몬 치카우지(太郞左衛門親氏)로 바꾸었다. 이 치카우지의 9세 손이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인데 이에야스의 아명은 다케치요(竹千代)였다.

인질로 출발한 생애

지방 토호로 출발한 마쓰다이라 가문은 전국의 풍운에 편승해 차차 인근 지방을 공략하여 영지를 넓혀갔다. 그러다 7대째인 기요야스(淸康) 대에 이르러 오카자키 성을 본거지로 하여 미카와 일대를 거의 장악하는 세력을 형성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확장은 불가능했다. 동쪽에 있는 이마가와(今川), 서쪽에 있는 오다(織田) 양대세력으로부터 잇따라 공격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존립마저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결국 히로타다 대에 이르러 마쓰다이라 가문은 이마가와 밑에 들어갔다. 히로타다는 영지 보존을 약속받는 대가로 그의 아들인 다케치요를 인질로 보내게 된다.

다케치요(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질 생활은 처음부터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다케치요를 호송하던 히로타다의 가신이 돈에 매수되어 다케치요를 오다 쪽에 넘기고 만 것이다.

오다 쪽에서는 히로타다에게 사자를 보내 이마가와와 관계를 끊지 않으면 다케치요를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히로타다의 대답은 단호했다. 자식에 대한 애정 때문에 이마가와와 맺은 우의를 배신한다면, 미카와 무사로서 체면이 서지 않으니, 다케치요를 죽이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물론 이것은 진심이 아닐 것이다. 무사의 체면이란 표면적인 구실일 뿐, 사실은 아들의 생명을 잃는 두려움보다도 이마가와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다케치요는 아버지 히로타다로부터도 버림을 받았다.

다행히 오다 쪽은 다케치요를 죽이지 않고 연금했다. 그리고 2년 후 이마가와와 인질교환을 하여 그를 석방했다. 그러나 보름 후 다케치요는 다시 이마가와의 거성인 슨푸(駿府)로 끌려가야만 했다. 그 동안 다케치요는 아버지의 변사로 가문을 승계하였으나 성주 신분인 채 12년 동안 인질로 고초를 겪게 된다.

다케치요에게 일대 전환기가 찾아온 것은 19세 때다. 그때까지 그는 이마가와의 노예였다. 그와 그의 가신들은 전투가 있을 때마다 예외없이 가장 위험한 최일선에 투입되어 사투를 강요받았다. 요컨대 그들은 이마가와 군의 외인부대로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싸움터에서 그들은 용감했다. 비록 인질이기는 하나 가능한 한 자신의 강인함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2중 3중으로 묶인 속박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면 반드시 때가 온다고 믿었다. 그가 항상 용감하게 싸운 것은 이마가와 가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였다.

14년에 걸친 인질 생활은 그에게 놀라운 인내력과 언제나 합리적인 판단을 하게 하는 집념을 제2의 천성으로 심어주었다. 강인·용기·검소·침착·극기·결단·신의 등의 덕목을 겸비한 사람은 결코 많지 않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이 모든 것을 소년기의 인질생활을 통해 철저히 체득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절의 이에야스는 반드시 불운했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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