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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이 경쟁력이다

서점 한 구석 고독한 문제작을 찾아

문학, 세계의 반영

  • 글: 이재룡 숭실대 교수·불문학

서점 한 구석 고독한 문제작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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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소설이 출간된 2002년 프랑스.
  • ‘포스트모던한 세상’에 치인 우리를, 혹은 냉소하고 혹은 위로할 자 누구인가. 새로움에 목마른 이들을 위한 프랑스 소설 넓게 보기.
매년 가을이면 프랑스의 서점에는 각종 문학상을 겨냥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2002년 가을에는 소설만 663편이 출간되는 신기록을 세웠다. 1993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숫자다. 그 중 번역소설 221편을 빼면, 프랑스 소설만 1년 동안 442편이 발표된 셈이다. 어디에서나 문학의 위기를 운위하는 시대에 프랑스만 예외인 듯싶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리 밝지만도 않다. 수백편의 소설 중 대부분은 서점에 진열도 되지 못한 채 사라지고, 한 해 동안 베스트셀러에 끼는 책 가운데 프랑스 소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나마 독자의 환심을 산 작품 중에서 문학성을 인정받을 만한 작품도 그만큼 드물다. 풍년인 줄 알고 부푼 마음으로 키질을 했더니 쭉정이만 바람에 날리는 형국이다.

그러나 황량한 들판에서 귀하게 거둔 알곡일수록 미래를 꽃 피우는 씨앗이 되기에 소중한 법이다. 파리에서 출간된 소설은 프랑스를 비롯한 불어권 독자 뿐 아니라, 수십개 언어로 번역돼 전세계로 퍼져나가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번역의 시차가 점차 짧아지면서 의외로 많은 프랑스 소설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문제작으로 대접받는 작품도 번역을 거쳐 바깥으로 나오면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나라마다 문화적 맥락이 다르고 심성이 제각각이니 당연한 노릇이다. 우리네 서점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고독한 소설 중에서는 프랑스 문학의 진풍경을 엿볼 수 있는 문제작도 적지 않다. 물론 좋은 작품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중에는 ‘현대의 고전’이라 보아도 무방한 작품이 있다.

그런 작품을 고르기 위해 독자의 수고를 대신하는 사람들이 이른바 문학상 선정위원이다. 문학상을 중심으로 거론되는 작품은 적어도 인체에 유해한 불량식품은 아닐 것이다. 그 중에서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작품이 소위 ‘노벨리자블’이라 불리는 작가의 작품이다. 우격다짐으로 생긴 용어겠지만 ‘노벨 문학상을 받을 만한 작가’란 뜻의 노벨리자블은 매년 가을 어김없이 프랑스뿐 아니라 전세계 언론에 그 이름이 거론된다.

1986년 클로드 시몽이 노벨상을 받은 이래, 매년 가을이면 프랑스 바깥에서는 미셀 투르니에(1924), 밀란 쿤데라(1929), 이스마엘 카다레(1936), 르 클레지오(1940) 등이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 여기에 프랑스에서 독자와 평론가의 존경을 받는 파트릭 모디아노(1945)와 쥘리앙 그락(1910)을 더하면 현재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거목들의 목록이 완성된다. 각자 한 그루 나무라기보다는 울창한 숲이라 불러야 적절한 거장들이다. 이 정도 무게의 작가들은 우리나라에도 이미 오래 전에 작품이 번역, 소개되었으니 프랑스 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들일 것이다.

사람과 시간의 검열을 견딘 명작들

프랑스 바깥에서 보았을 때 눈에 띄는 작가가 ‘노벨리자블’이라면 ‘공쿠라블’은 일차적으로 내수용 문학이다. 신간 소설이 발표돼 자국 독자와 평론가의 관심을 끈다 싶으면 상투적으로 붙는 딱지가 바로 ‘공쿠르상을 받을 만한 작품’이란 형용사다.

1904년부터 시작된 공쿠르 수상제도는 백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많은 수상자를 낳았다. 국내에 소개되는 프랑스 소설들도 대개 공쿠르 수상작품, 아니면 적어도 과거에 수상 경력이 있는 작가의 작품이란 광고 문구가 빠지지 않는 것에서도 공쿠르상이 얼마큼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공쿠르상 외에도 르노도상, 메치치상, 페미나상, 아카데미상 등을 수상한 작품은 적어도 한 해에 추수한 문학적 성과 중 알곡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앞서 열거한 문학상 외에도 프랑스 내에만 대충 1000개가 넘은 문학상이 있지만 대부분 선별의 의미보다 위기에 빠진 문학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격려와 자축의 의미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제로 전투기’(1996), ‘전투’(1997), ‘비밀을 위한 비밀’(1998), ‘나는 떠난다’(1999). 최근 몇 해 동안, 국내에 번역됐지만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기억에서 사라진 공쿠르 수상작들이다. 아직 번역되지 않았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서술 구조의 ‘잉그리드 카벤’이나 우리에게 생소한 프랑스의 브라질 식민사를 다룬 ‘붉은 브라질’ 또한 비슷한 운명을 겪을 것 같다. 같은 프랑스 작품인 ‘오페라의 유령’이나 ‘개미’‘뇌’를 생각하면 원작자나 역자는 다소 억울한 심정이 들 법도 하다.

문학상 수상작은 몇몇 명망 높은 비평가가 둘러앉아 고심 끝에 고른 작품이기에 시간의 검열을 지난 뒤에도 명작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명작이란 ‘누구나 말하지만 아무나 읽지 않는 작품’을 뜻한다. 사정은 프랑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독자의 호기심은 문학 교수나 평론가의 진지한 추천보다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댄 화제작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각종 문학상에 후보로 선정되었다가 결국 심사위원의 지나친 조심성, 무사안일, 불편부당에 희생되어 오히려 화제가 된 작품에 독자가 손을 들어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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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재룡 숭실대 교수·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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