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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이 경쟁력이다

일상을 들쑤시는 ‘불편함’의 미학

보이는 것 그 너머

  • 글: 박신의 경희대 교수·문화예술경영학 / 미술평론가 lunapark@khu.ac.kr

일상을 들쑤시는 ‘불편함’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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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낯익은 매체의 낯선 활용으로 새로운 예술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현대미술. 이를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제도와 질서와 법칙들이 혼란스러워지는 불편을 겪어야 할 것인가.
현대미술의 복잡한 자기 변신과 다양한 형태에 대해 강의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예술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학생들이 그런 복잡다기한 양상들 때문에 혼란스러워할 때는 그 현상에 내재하는 어떤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주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학생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애써 교과서적인 답을 찾거나, 그런 질문을 던진 교수에게 무슨 깊은 뜻이 있으리라 짐작해서인지 아예 입을 다물기도 한다.

학생들은 궁리 끝에 “예술은 정신적인 것”이라거나 “윤리적으로, 미학적으로 올바른 것”이라거나 “숭고미의 체험” 같은, 어려운 미학·철학 서적에나 나올 법한 답을 조심스레 꺼내놓는다. 나름대로 ‘체면’은 살려보려 하지만, 결코 확신에 찬 낯빛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답변은, 거의 쓰레기 같은 재료를 가지고 설치미술을 한다거나 도무지 이해할 길 없는 영상물과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미디어 아트 등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될 수 없음을 학생들도 잘 안다. 결국 멋쩍은 웃음과 함께 논의의 주도권은 교수인 내게로 돌아온다.

그 순간 나는 학생들을 더 애태우지 않으려고 바로 답을 말해버린다. “예술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그러면 학생들은 또다시 의아한 표정을 짓지만, 그 중 몇몇은 짐짓 그 의미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이 말을 듣는 순간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앞서 학생들이 내놓은 답들이 전적으로 틀리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것들은 고대 그리스 철학이나 근대철학에서 만들어진 ‘역사적 답안’이다. 하지만 그 의미와 맥락이 시대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예컨대 “예술은 정신적인 것”이라는 얘기는 육체와 정신의 분리를 전제로 한 그리스 철학의 원리 자체가 아니라, 다시 말해 현실과 일상을 떠난 전혀 다른 정신세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을 반영하고 현실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생각과 가치체계, 이념 등과 관련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평범한 우리를 찜찜하게 만드는 무엇

“윤리적으로, 미학적으로 올바르다”는 것 역시 미적 가치가 반드시 순수미나 절대미의 기준이라는 게 아니라, 옳고 그름을 가르는 가치판단의 문제와 관련해 생각과 가치체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예술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칸트에서 비롯된 “숭고미의 체험”이라는 것도 본래 절대불변의 진리에 대한 체험에서 나온다는 의미지만, 현대사회에서라면 자신의 생각이 바뀌면서 주어지는 변화에 대한 체험과 같은, 어떤 ‘깨달음’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결국 예술은 우리의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것인데, 나는 이 의미를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라 말한다. 쉽게 말해 우리가 이제까지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그저 사실이라고 믿는 것, 너무 익숙해서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해 생각을 바꾸는 일은 실제 아주 불편한 일이다.

그런데 왜 예술은 우리의 생각을 바꿔놓으려 하는가. 예술이 그런 것이라면 없어도 되는 게 아닐까. 예술가는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사실 예술가라는 존재 자체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없으면 얼마나 편하겠는가. 비엔날레라는 거대한 국제 현대미술제를 위해 엄청난 돈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고, 종잡기 어려운 작품들을 놓고서 ‘예술’이라며 감상해야 하는 고역을 치르지 않아도 될 테고, 읽기조차 어려운 미술평론이나 미술이론들로 눈을 피곤하게 하지 않아도 될 것 아닌가. 극단적으로 말해 과연 예술은 필요한 것인가. 과거에 그랬듯이 그저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벽화를 올려다보는 것을,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바라보는 것을 예술이라고 못박아 놓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미켈란젤로와 다 빈치가 살던 시대에도 그들은 많은 사람에게 아주 ‘불편한 존재’였다. 자신들의 새로운 예술적 기준과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늘 교회 세력이며 귀족들과 갈등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관습과 관행, 윤리에서도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내는 바람에 여러모로 불편한 관계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주는 불편함은 기존 세력에 대한 것인 만큼 어떻게 보면 정치적인 맥락을 갖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예술이란 평범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일에서 시작해 한 사회를 불편하게 하고, 위정자들에게도 불편한 존재여서 그들이 마구 권력을 행사하거나 독재를 부리는 일에 제동을 걸 수도 있게 한다. 물론 미켈란젤로와 다 빈치의 그림은 지금에 와서 그 불편함의 의미가 달라져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주지만, 사실 감동을 받는다는 것도 조금 더 생각하면 우리를 ‘부드럽게’ 불편하게 만드는 일 가운데 하나다. 감동이란 우리를 예사롭지 않게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고, 어쨌든 움직이는 일은 불편한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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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신의 경희대 교수·문화예술경영학 / 미술평론가 lunapark@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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