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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이 경쟁력이다

한 번 간 길은 다시 가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 소리까지도

  • 글: 김현준 재즈비평가 artaylor@hanmail.net

한 번 간 길은 다시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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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스로 찾고자 하는 이에게만 자신의 매력을, 마치 옷자락 살짝 들어올리듯 아쉽게 보여주는 음악 재즈. 가까이 갈수록 멀어지지만 한편으로는 강한 중독성으로 우리를 끌어들이는 그 역설의 미학을 만난다.
재즈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지난 1990년대 초와 마찬가지로, 주로 20·30대의 젊은층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는 새로운 음악적 패러다임에 대한 갈구와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재즈는 이미 100년의 역사를 지닌 서양문화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새로움을 안겨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그렇듯 재즈는 언제나 가까운 듯 멀게만 느껴진다.

재즈처럼 그 매력과 특성을 만끽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하는 음악이 또 있을까. 재즈는 첫눈에 빠져 정신 차릴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타오르는 사랑이라기보다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문득 깨닫게 되는 그것처럼 깊고 넓고 복합적이다.

대한민국에서 재즈를 듣는다는 것

재즈가 멀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애초 우리 문화 속에 재즈가 온전히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우리나라에 유입된 재즈는, 그러나 1970년대가 지나도록 클래식이나 팝 음악처럼 대중을 위한 음악으로 재정립되지 못한 채 부유를 거듭했다. 지금도 서울, 대구, 인천, 부산 등지에 재즈를 듣는 이들이 더 많은 이유는 그곳이 미군 주둔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도시 중심의 문화 편중 현상도 한몫했겠지만, 적어도 재즈가 ‘우리의’ 음악이 아닌 ‘그들의’ 음악인 시절이 훨씬 더 길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1970년대 후반 들어 음악인들 사이에 새롭게 부각된 재즈의 중요성은 10여 년의 세월을 거쳐 1990년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뒤늦게나마 공연문화나 연주생활에 있어 나름의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기에 이른 것이다.

재즈를 흔히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생각하지만 막상 속을 들여다보면 그 대중성이란 극히 일부의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대중적으로 널리 회자될 수 있는 스타일의 재즈는 전체의 10~20%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 재즈에 대한 관심을 갖는 이가 10이라면 1년 뒤에는 3으로 줄고, 다시 1년 뒤에는 채 1도 못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가까스로 그 곁에 머물러 있게 된다. 재즈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들을수록 어려운 것이 또 재즈인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재즈에 대한 관심을 쉽게 접어버릴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재즈의 역사, 그리고 재즈 이해를 위한 세 가지 코드를 설명하는 것으로 나름의 답을 대신한다.

장르의 변천으로 살펴본 재즈의 역사

① 초기 재즈(Early Jazz)

재즈는 멕시코 만과 연해 있는 미국 남부의 항구도시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다. 흑인 노예 후손들의 정서를 담고 있는 블루스(Blues)가 그 모태가 됐다. 뉴올리언스는 식민지 시절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군대 유입이 빈번했고 이들을 맞기 위한 군악대도 발전해 있었다. 군악대를 형성하는 주 악기는 관악기다. 주로 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기존의 블루스와 달리, 관악기로 연주하는 블루스는 190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약 20년간 변형, 발전하여서 초기 재즈가 되었다. 최초의 재즈 녹음은 1917년, 백인 음악인들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학자들은 이미 1910년대 초반에 초기 형태의 재즈가 연주되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흑인과 백인 연주자들이 함께 연주한 초기 재즈를 발생지의 지명에 따라 ‘뉴올리언스 재즈’라 부른다.

유흥가인 스토리빌에서 주로 연주된 뉴올리언스 재즈는 반복적이고 짧게 끊어지는 아주 단순한 리듬 패턴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군부가 지역의 퇴폐문화 일소를 명분으로 스토리빌을 강제 폐쇄하면서 뉴올리언스 재즈는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게 됐다. 처음 미국 북부 시카고로 옮겨갔던 본거지는 다시 1920년대 후반에 이르러 뉴욕으로 건너갔다. 재즈는 1930년대 초까지의 대공황으로 말미암은 문화 암흑기를 이겨낸 뒤 스윙(Swing)이라 불리는 안정된 스타일을 갖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재즈의 근간이라 일컬어지는 스윙의 독특한 느낌(Swing Feel)은 여러 중요한 음악적 현상들을 불러일으키며 발전을 거듭했다. 네 박자를 기준으로 해서 첫 번째와 세번째 박자에 박수를 치게 되는 다른 음악과 달리 두번째와 네 번째에 박수를 쳐서 엇박자의 효과를 내는 리듬 패턴은 바로 이때 정착된 것이다.

스윙은 재즈의 한 장르이자 리듬 패턴의 근간이며 매우 흥겨운 느낌을 전해주기 때문에, 처음 재즈를 듣는 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금도 처음 재즈를 들으며 그 매력을 느끼게 되는 대상이 스윙인 경우가 많은데, 초기 재즈가 미국 전역에서 연주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스윙을 통해서였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재즈는 당시의 전형적 대중음악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라디오 방송의 발달과 더불어, 주로 댄스홀에서 연주되던 스윙은 현대적 의미에서 미국이 낳은 여러 춤곡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뉴올리언스 재즈를 연주했던 대부분의 음악인들이 스윙을 일구어낸 주인공이며,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루이 암스트롱,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지, 글렌 밀러가 모두 이러한 스윙의 거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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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현준 재즈비평가 artayl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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