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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언어가 끝났을 때, 발레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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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 이은경 국민일보 문화부장 eklee@kmib.co.kr

모든 언어가 끝났을 때, 발레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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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언어가 끝났을 때, 발레가 시작됐다

프티파가 안무한 ‘레이몬다’의 한 장면

프랑스에서 발레가 시들해질 즈음 한 천재가 러시아로 건너갔다. ‘고전발레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리우스 프티파(1819~1910)다.

낭만주의가 시들해지면서 유럽 발레가 쇠퇴기에 접어들자 러시아 황실은 유럽의 위대한 안무가와 발레교사들을 러시아로 불러들였다. 루이 디드로(1767~1837), 쥘 페로(1810~92), 아서 생 레옹(1821~70) 등 유럽의 쟁쟁한 안무가, 발레교사들에 이어 프티파도 1847년 러시아 군단에 가세했다. 이후 50여 년을 러시아에서 산 프티파는 처음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극장의 무용수로 이름을 날리다가 약 20년 동안 페로와 생 레옹의 보조 안무자를 거친 뒤, 1867년 드디어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극장(마린스키극장에서 키로프를 거쳐 다시 마린스키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름)의 수석 발레마스터가 된다. 이후 그가 황실극장과 모스크바의 볼쇼이를 무대로 이룩한 업적은 발레사(史)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공적으로 기록될 만하다. 프티파는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돈키호테’ ‘잠자는 숲속의 미녀’ ‘라 바야데르(La Bayadere)’ ‘파키타(Paquita)’ ‘레이몬다(Raymonda)’ 등 무려 57편의 장막 발레를 비롯 숱한 소품과 리바이벌 작품을 남겼다. 마린스키극장과 발레단이 세계 발레예술의 보고(寶庫)로 일컬어지게 된 데는 프티파의 이런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프티파는 특히 클래식 발레의 양식을 확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2~4개의 독립된 막으로 구성돼 있으면서 줄거리를 전개하는 부분과 춤 자체를 보여주기 위한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 장면이 확실히 구분되는 것이 프티파 형식의 특징이며, 이는 오늘날까지 고전 발레의 안무 공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전 발레에서 결혼식이나 왕궁의 축제 등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 디베르티스망을 넣기 위해서다. ‘백조의 호수’ 1막에서 각국의 축하사절이 펼치는 춤이나 ‘호두까기 인형’에서 어린 관객들의 박수를 많이 받는 과자왕국 장면에 등장하는 캐릭터 댄스들이 대표적인 예다.

발레 공연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그랑 파 드 되(Grand Pas de Deux) 역시 프티파가 정립한 발레 양식이다. 그랑 파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우선 도입부에 해당하는 아다주(Adagio)가 있다. 남녀 무용수가 느리고 감미로운 선율에 맞춰 등장해 우아한 춤을 펼친다. 이때 눈여겨볼 것은 두 사람의 호흡,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선과 밸런스, 발레리노(남성 무용수)의 세련미 등이다. 이어 바리아시옹(Variation)이라고 부르는 남녀의 솔로가 각각 진행된다. 각자 기량을 마음껏 과시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발레리노는 높고 탄력 넘치는 도약과 빠른 회전으로 탄성을 자아내기 마련이며, 발레리나는 포인트슈즈의 매력을 한껏 과시한다. 마지막 부분은 클라이맥스 중의 클라이맥스인 코다(Coda). 대개 빠른 동작과 현란한 테크닉을 구사하며 객석을 환호의 도가니로 몰아간다. ‘백조의 호수’에서 흑조가 32번의 푸에테(Fouett· 한쪽 다리로 다른쪽 다리를 채찍질하듯 차면서 회전하는)를 선보이는 것도 바로 이때다.

오늘날 공연되는 클래식 발레의 상당수는 바로 프티파의 손길을 거친 작품들이며 대부분 프티파 양식을 따르고 있어 프티파만 제대로 알면 고전 발레가 보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잡해 보이는 수학문제도 공식을 알면 쉽게 풀 수 있듯이 발레에도 양식화된 특징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발레를 이해하는 지름길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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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은경 국민일보 문화부장 ek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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