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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이 경쟁력이다

이야기의 힘, 시스템의 승리

영혼으로 만나는 세상

  • 글: 김성태 서강대 강사·영화학

이야기의 힘, 시스템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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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엔터테이먼트 산업의 지배자, 할리우드. 그러나 외부의 수혈 없이는 영생을 누릴 수 없는 창백한 뱀파이어. 그를 낳은 건 찰리 채플린, 그를 키운 것은 존 웨인이었다.
‘춤을 춘다. 아니, 차라리 곡예를 부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일상적 조건에서, 정상적인 사람이 저렇게 움직일 수는 없다. 게다가 그처럼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경우란 더더욱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절박한 상황에서도 그는 온갖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왜소하고 어정쩡하고 어딘가 덜 떨어진 인물임에도 그는 언제나 최후의 승자가 된다.’

이는 할리우드 슬랩스틱 코미디(무성영화 시대에 특히 인기를 끈 코미디물의 한 형태. 엉덩방아 찧기, 무언극, 우스꽝스런 충돌 같은 필요 이상의 몸동작이 수반된다)의 전형적인 전개방식이다. 여기서 ‘그’는 찰리 채플린일 수도 있고, 버스터 키튼일 수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볼품없는 남자지만 모든 영웅들이 그렇듯 숨겨진 능력의 소유자이며, 무엇보다 선하고 정의롭다. 관객은 그를 찬미할 수밖에 없다. 평범한, 동시에 위대한 영웅의 탄생이다.

할리우드의 영광은 바로 그들과 함께 시작됐다. 물론 요즘 할리우드 영화는 그때와 많이 다르다. 꼭 영웅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늘 해피엔딩도 아니다. 이도저도 아닌 복잡한 줄거리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뿌리에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있다. 지금의 할리우드 영화는 그에 대한 일종의 확대 재생산이라 할 수 있다.

성공적인 자기 확장을 이룸으로써 할리우드는 세계 영화들 위에 여전히 ‘물리적으로’ 군림하고 있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외국영화는 사실상 할리우드 영화이며, 심지어 우리는 그것을 기대하고 기다리기까지 한다. 이 대단한 권력을 행사하는 영화들의 시작은 그러나 이처럼 초라하고 볼품없는 광대의 캐릭터, 그것이었던 것이다.

슬랩스틱 코미디는 1910, 2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장르다. 사실 장르라는 말이 꼭 맞는 것은 아니다. 당시는 아직 장르 개념이 확립되기 전이었고, 영화는 그저 ‘발명품’에 불과한 상태였다. 그 ‘발명품’이 흥행을 위해 찾아낸 최초의 흥미로운 소재가 바로 슬랩스틱 코미디였던 것이다

슬랩스틱 코미디 이전에도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대서사극, 환상극 등을 제작해 영화의 새로운 용도(거대한 스펙터클로서의 영화)를 제시했다. 대표작으로 ‘신데렐라’(1900, 프랑스), ‘달세계 여행’(1901, 프랑스), ‘벤허’(1907, 미국), ‘폼페이 최후의 날’(1908, 이탈리아), ‘엘리자베스 여왕’(1912, 이탈리아) 등이 있다. 이중 영화 미학의 첫 발을 디딘 그리피스의 기념비적 작품 ‘국가의 탄생’ ‘편협’ 등은 국내에도 비디오로 출시돼 있다. 하지만 이 모두가 대중적 인기라는 측면에서는 슬랩스틱 코미디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슬랩스틱, 프랑스에서 시작해 미국을 살찌우다

슬랩스틱 코미디는 프랑스 코미디언 막스 랭데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랭데르는 대략 1905년부터 프랑스에서 슬랩스틱 코미디의 전신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만든 감독이자 배우다(채플린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그를 자신의 영화적 아버지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슬랩스틱이 발전한 곳은 프랑스가 아닌 미국이었다. 당시 관객들에게 영화는 곧 슬랩스틱 코미디일 만큼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슬랩스틱은 가장 미국적인 형식이 돼버렸다.

여기서 할리우드를 이해하기 위해 두 가지 코드를 미리 머리 속에 넣어 두자. 첫째, 미국 영화 스스로 창안한 것은 없다. 둘째 비슷한 구조와 줄거리를 지닌 영화들이 한꺼번에 만들어지고 아주 오랫동안 시장에 군림했다. 그리고 이는 할리우드 영화 제작 시스템의 특징과 정확하게 맞닿아 있다.

슬랩스틱 코미디의 대성공과 약진, 그리고 스펙터클 영화의 대성공은 영화의 발전에 산업화라는 획기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 창고에서 뚝딱거리는 식의 생산으로는 그 엄청난 규모의 흥행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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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성태 서강대 강사·영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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