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호

검은 하늘을 이고 잠들다

  • 글: 김도연

    입력2003-11-28 14: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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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하늘을 이고 잠들다
    어둠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박종포는 신발 밑에서 이를 가는 자갈 소리를 들으며 주머니란 주머니는 모두 뒤졌지만 불을 찾지 못했다. 서늘한 기운이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어디선가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도 들려왔다. 두 발은 쉽게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너무 지독한 어둠이라 마치 장님이 된 것만 같았다. 침 넘어가는 소리가 너무 커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바람 한 점 볼을 스치고 가지 않았다.

    “여기…누구 없소?”

    간신히 내뱉은 그의 작은 목소리는 웅웅거렸다. 제풀에 놀라 뒷걸음질치는 그의 발 밑에서 다시 자갈이 이를 갈았다. 그는 조심조심 두 팔을 어둠 속으로 내밀었다. 몇 번의 헛손질 끝에 무언가가 만져졌다. 손바닥으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갱목이었다. 이번에는 한쪽 발로 바닥을 더듬거리다가 곧 멈췄다. 엉거주춤 쪼그려 앉아 발이 걸린 곳으로 손을 가져갔다. 차가운 쇠의 감촉에 감전이라도 된 듯 흠칫 놀란 손이 퉁겨졌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어둠 속에 있는지 분명하게 눈치챘다.

    “나 박종포야! 아무도 없는가? 내 목소리 안 들려?”



    쩌렁쩌렁한 그의 목소리가 만든 메아리만 놀란 박쥐처럼 갱도의 어둠 속으로 흩어졌을 뿐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탄덩이로 레일을 두드렸다. 쇠를 울리는 소리가 검은 뱀처럼 어딘가로 계속해서 흘러갔지만 싸늘한 레일에 붙인 귓바퀴 속으로 들어오는 답신은 없었다.

    “뭐야! 나만 두고 모두 어디로 간 거야?”

    그러나 대상을 찾지 못한 고함소리는 고스란히 그의 귓속으로 되돌아와 아우성을 쳤다. 그는 두 손으로 어둠을 휘저으며 일어나 방향을 가늠했다. 한 방향은 막장일 것이고 다른 방향은 지상으로 연결되는, 빛 한 점 없는 가혹한 갱도 위에 그가 있었다. 손길은 점자책을 읽는 맹인처럼 어둠 속을 짚어나갔지만 곧 힘을 잃고 호주머니 속으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박종포는 오른손과 왼손으로 양편의 어둠을 한 줌씩 끌어모아 번갈아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왼손에게 부여한 특혜에 만족한다는 끄덕임이었다. 신뢰할 만한 후광을 업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젊은 날들을 고스란히 보낸 갱도였지만 걸음은 순탄하지 않았다. 몇 걸음 못 가 침목에 걸려 비틀거렸고 방향을 잘못 잡아 하리(천장에 대는 갱목)를 받치는 아시(벽면에 대는 갱목)에 이마를 찧었다. 탄좌의 수많은 갱도 중에서 어느 지점을 걷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발 밑의 철로가 막장 아니면 지상으로 연결돼 있다는 기억뿐이었다. 그러나……기억은 그것뿐이었다. 아무도 없는 탄광 속에 왜 들어와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도. 매캐한 다이너마이트 냄새와 눈을 뜰 수 없게 만드는 탄진, 쉴새없이 흘러내리는 땀방울도 언제 감쪽같이 사라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보이는 것은 어둠이 전부였다. 기억도 그 어둠 속에 묻혀 빛을 발하지 못했다.

    침목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비틀거릴 때마다 몸 속의 기운이 양동이에 담긴 물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박종포는 언제 마지막 밥을 먹었는지 떠올려보았지만 역시 감감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려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호흡이 가빠지지 않는 걸 보니 공기는 충분한 것 같았다. 술과 담배 생각을 하자 오른손이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빛 한 점 없는 땅속이었지만 몸은 잊어버린 게 없는 모양이다. 졸음도 마찬가지였다. 박종포는 좀더 편안하게 갱목에 몸을 기댔다. 눈을 뜨고 있어도 무엇 하나 볼 게 없는 눈은 눈꺼풀을 슬며시 닫고 있었다.

    “컹!”

    잠은 박종포의 몸을 갱목에 기대앉은 자리로부터 수천 미터 아래로 더 끌어내리는 중이었다. 마치 새로운 갱을 뚫어나가는 것 같았다. 용암이 들끓고 있다는 지구의 저 깊은 속까지.

    “컹-!”

    볼 것 하나 없는 밖을 향해 박종포는 간신히 눈꺼풀을 삼분의 일쯤 밀어 올렸다. 개가 짖다니. 캄캄한 막장을 더듬고 있는 존재가 또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것도 사람이 아닌 개가. 박종포는 허물어지고 있는 몸을 갱목에 의지해 일으켜 세웠다. 가느다란 현이 울리듯 어둠을 건너오는 개의 울음을 따라 휘청거리는 걸음을 옮겼다. 두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소리쳤다.

    “멍멍아?”

    “컹-!”

    막장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당연하다고 박종포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산부부터 시작해서 선탄부까지 다다른 광부 인생의 갑방, 을방, 병방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살아온 지난 몇 년은 과도한 빛에 노출된 현기증의 날들뿐이었다. 흘러간 젊음을 막장에 남겨놓고 바깥으로 나왔지만 짙은 선글라스도 그의 휘청거림을 막아주진 못했다. 폐에 탄가루가 쌓이더라도 그가 살 곳은, 돌아갈 곳은 어쩔 수 없이 막장이었다. 달리 막장 인생이라고 했던가. 쓰러지더라도 갱목을 지고 사갱을 기어오르는 게 낫지 고층 아파트의 수위실에서 까딱까딱 조는 일은 도무지 못해먹을 일이었다. 졸았다고, 술을 마셨다고, 피둥피둥 살이 찐 부녀회장의 구박을 들으며 산 세월은 지울 수 있다면 차라리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지장산 속 깊고 깊은 막장으로의 귀환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가족조차도. 박종포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개 짖는 소리는 점점 더 분명하게 들려왔다. 주인을 잃고 떠돌던 개가 비를 피해 폐광으로 들어왔다가 길을 잃은 게 틀림없었다. 갈림길이 많은 폐광의 미로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다면 개는 아마 장님이 되거나 굶어 죽을 것이다. 박종포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불어넣으며 소리를 따라 방향을 바꿨다. 그를 발견한 개가 굶주림으로 인해 달려들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없진 않았지만 호기심을 누를 정도는 아니었다. 개 짖는 소리는 바로 앞에 있는 어둠을 밀어낼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한 마리가 짖어대는 것이 아니었다. 박종포는 입 속의 침이란 침은 모두 긁어모아 삼키곤 조심스럽게 모퉁이를 돌았다.

    빛은, 조명탑에서 초록의 잔디 구장으로 일시에 내리꽂히는 것처럼 박종포의 부릅떴던 눈을 향해 몰려들었다. 침을 흘리며 덤벼드는 사나운 개떼와 맞닥뜨린 것처럼 박종포는 뒷걸음 한번 못 치고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온몸이 갈가리 뜯겨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눈을 감았지만 하얗게 타버린 시야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힘을 주어 감아도.

    “자자, 일어들 나요! 강씨 아저씨, 일어나라니까! 여기가 여관인 줄 알아!”

    박종포는 실눈을 뜬 채 바깥을 살폈다. 젊은 역무원이 만만해 보이는 강(姜)을 흔들어 깨우곤 대합실을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하지만 긴 나무의자를 하나씩 차지하고 누운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눈만 겨우 가느다랗게 뜨고 있을 뿐이었다. 유리창 너머 역전에는 변함 없는 폭염이 아스팔트를 하얗게 변색시키고 있었다. 박종포는 다시 눈을 감으려다가 곧 포기했다. 이글거리는 지열을 내뿜는 역전의 아스팔트로 한 마리씩 모습을 드러내는 개들을 보고 몇 번이나 눈을 비비고 머리를 흔들었다. 머리를 맞대고 누워 있는 황(黃)의 땀에 절어 뒤엉킨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소주 냄새가 진동했다.

    “저것 좀 보라구!”

    “……끙, 자는 건 개도 안 깨운다고 공잔가 맹잔가가 말했을 텐데 형님은 또 왜 그러슈?”

    황이 얼굴을 돌려 투덜거리자 소주 냄새와 안주로 먹은 고등어 통조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잘려나간 무릎 아래를 감싸던 바지가 힘을 잃고 의자 아래로 축 늘어졌다. 언제 보아도 마음 한구석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었다. 박종포는 유리창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개들 좀 봐!”

    “‥…개 첨 보우? 찌는 날씨니 형님도 강가 모양 오락가락 하는 모양이네.”

    “자세히 좀 봐봐!”

    “……어라? 저게 웬 조화냐!”

    박종포와 황은 의자에서 일어나 앉아 맨손으로 얼굴을 씻고 멍한 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개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저것들이 단체로 미친 모양이네!”

    어디선가 들려오는 뽕짝을 들으며 두 사람은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허옇게 말라붙은 침을 턱에 붙이고 있는 강이 일어났고 젖무덤이 다 보이는 헐렁한 옷을 걸친 정선댁도 부스스한 머리를 다듬었다. 폭염을 건너온 뽕짝은 대합실의 나른함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다. 정선댁과 강은 다시 누워버렸다. 개들도 더운지 역사의 그늘 속으로 모여들었다. 황은 미처 눈치채지 못한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박종포의 귀를 끌어당겨 속삭였다.

    “종포 형님? 지금 우리가 헛것을 보는 모양입니다.”

    “헛것이 아닌 것 같은데…….”

    “헛것이 아니면, 대명천지에 개새끼들이 만 원짜리 지폘, 그것도 단체로 물고 다니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돈이다아!”

    다시 잠든 줄 알았던 강이 어느새 일어나 침을 흘리며 개들을 향해 걸어갔다. 큰 엉덩이를 흔들며 정선댁도 그 뒤를 따라 뛰었다. 목발을 움켜쥔 황이 망설이다가 박종포의 의중을 물었지만 박종포는 대답하지 않았다. 뽕짝 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끙! 소리와 함께 때에 전 붕대가 감긴 황의 목발이 대합실 바닥을 딱딱 두드렸다. 박종포는 새우처럼 어깨를 구부리고 앉아 역전의 ‘지폐 수거 작전’을 눈으로 좇았다.

    정선댁은 말과 손짓으로 개를 어르고 달래는 전술을 썼으나 번번이 코앞에서 놓쳤고 강도 어슬렁거리는 개의 꽁무니만 쫓아다닐 뿐 실속이 없었다. 그에 비하면 황은 단연 달랐다.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 정선댁과 강이 놓친 개가 옆을 지나치면 벼락치듯 목발로 후려갈겼고 그때마다 만 원짜리 지폐는 나비처럼 팔랑거리다가 바닥에 내려앉았다. 목발에 일격을 당한 개는 깨갱거리며 역전을 빠져나가거나 성질 사나운 놈은 저만치에서 어금니를 드러낸 채 짖어댔다. 초반 실적에서 황이 앞섰다면 중반부터는 강의 독무대였다. 목발을 의식한 개들의 몸놀림이 빨라지자 황은 번번이 허탕을 쳤고 제 동작에 말려 넘어지면서 힘을 잃었다. 강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안주용 오징어는 단번에 개들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녀석들은 당연하게 땀에 절은 오징어다리 하나와 만 원짜리 지폐를 교환했다. 일종의 상거래인 셈이었다. 실적이 저조한 정선댁은 어쩔 수 없이 어부지리 전술로 몇 장을 건졌다. 황에게 으르렁거리는 개들이 흘린 지폐를 줍는 게 그것이었다. 그러나 후반부는 어느새 냄새를 맡고 달려온 역전 조무래기들의 독무대였다. 빠른 기동력과 두세 명이 한 조가 돼 포위하는 전술로 몰아쳤기에 황과 강, 정선댁은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그저 고개만 돌리느라 바빴다. 대합실의 박종포는 그 모든 상황을 낱낱이 살피면서 때론 고개를 끄덕이고 때론 한숨을 토했다. 포장을 친 용달차 한 대가 안경다리 쪽에서 올라오자 역전 일대의 모든 아우성은 뽕짝의 가락 속으로 한꺼번에 빨려들었다. 개들과 사람들은 한데 어울려 즐거운 운동회를 치르는 것 같았다.

    “존경하는 사북 노동자 시민 여러분! 이제 바야흐로 노동자 세상이 도래할 첫 불꽃을 피워 올렸습니다. 누가 뭐래도 사북은 광산 노동자들 땅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 위대한 장정에 들어선 지금 우리 사북 전직 노동자 동맹, 즉 사노맹도 투쟁의 선봉에 서겠다는 각오로 이렇게 삭발식에 참여했습니다. 저 캄캄한 막장을 헤쳐나온 역전의 용사임을 자부하며 살아온 우리에게 정부가 해준 게 대체 뭐란 말입니까? 그것도 모자라 이젠 아예 도시 자체를 말살하겠다는 만행을 시도하고 있는데 어찌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 있습니까! 우리는 저 80년의 사북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뼈아픈 실패를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사북을 떠나간 그 많은 광원과 그들의 가족들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아직도 고통받는 진폐환자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노맹 대표인 저 박종포도 기꺼이 혈서를 쓰겠다고 이 자리에서 맹세하는 바입니다. 사북 만세!”

    “광부 만세!”

    옆에 있던 황도 한쪽 목발을 치켜들며 박종포를 지지했다. 군중들은 위령탑 시위 때처럼 박수와 웃음을 함께 보냈다. 박종포는 짧게 자른 머리에 다시 붉은 띠를 둘렀다. 군중 틈에 있던 사노맹원들은 옆 사람의 피켓을 뺏어 허공을 찌르며 열렬히 환호했다.

    태양은 여전히 사북의 하늘에서, 박종포의 붉디붉은 손끝에서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3. 늙은 광부의 노래

    급조한 꽃상여를 실은 트럭이 과속방지턱을 넘으면서 출렁하더니 주변으로 무수한 조화가 떨어졌다. 동원탄좌를 한 바퀴 돈 시위 군중들은 땀을 흘리면서 꽃상여를 따라 가두행진의 긴 강을 만들었다. 박종포와 맹원들은 그 대열의 앞에 서서 시위 열기를 고조시키느라 바빴다. 어느새 무장한 경찰 병력은 안경다리 입구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더 이상의 진입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방송을 계속해서 내보냈다. 조금씩 험악해지는 분위기를 재빨리 간파한 박종포는 비밀리에 맹원들을 후미로 집결시켰다.

    “이건 사북사태랑 상황이 똑같잖아!”

    “위원장님, 선두에 나가 싸워야지 왜 뒤로 빠진 거요?”

    잔뜩 화난 황이 맹호부대 김의 탄식에 이어 박종포에게 따졌다. 부족한 에너지를 보충하듯 박종포는 병나발만 불 뿐 대답을 미뤘다. 겁을 먹은 듯 정선댁의 목소리는 떨렸다.

    “이러다 예전처럼 누가 죽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죽을 땐 죽더라도 비겁하게 도망치다 죽진 말아야지. 안 그렇습니까, 위원장님?”

    황은 박종포의 결단을 촉구했다. 박종포는 손에 든 술병을 주머니에 넣고 차분한 표정에 미소까지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 전투는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아. 길고 지루한 소모전이 계속될 거야. 우리 맹원들은 끝까지 살아남아 적들의 기만을 밝혀내야 하고 그 기만전술에 시민과 광원노조가 속지 않도록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해. 지금 욱해서 바리케이드를 향해 달려가면 거기서 끝나는 거야. 그 일 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 춘천집에서도 말했지만 우린 보다 큰 일을 하려고 조직을 결성했다는 사실을 제발 잊지들 말라구!”

    박종포와 황은 껴안은 채 빡빡 깎은 머리를 서로 비비는 행동으로 단결을 과시했다. 철길 아래 안경다리에서 대치한 경찰 병력과 시위 군중들의 신경전은 조금씩 수위를 높여갔다. 최루탄과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에 대항하여 선두의 광원노조원들은 쇠파이프와 폐석으로 맞서는 형국이었다. 박종포는 언덕 위에서 작전관처럼 정세를 파악했다. 인원과 지형 조건을 보면 단연 시위 군중이 우위를 차지했지만 경찰은 시위에 단련된 전문가들이었다. 선봉대 격인 광원노조만의 힘으로는 무리였다. 어떤 계기가 필요했다. 작은 불씨 하나가 광야를 불붙게 한다고 어느 시인이 외치지 않았던가. 박종포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선 황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황은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겠다는 뜻으로 한쪽 목발을 들어 한 곳을 가리킨 뒤 건네받은 물건을 옷 속에 감추고 군중들 속으로 들어갔다. 박종포는 최루탄 연기와 허공을 날아가는 폐석을 바라보며 남은 소주를 모두 비웠다.

    꽃상여를 실은 트럭은 시위 군중 속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다. 박종포의 예리한 시력과 판단력이 그것을 놓칠 까닭이 없었다. 맹원들은 한쪽 다리가 없는 황이 그 위에 올라간 것만 가지고도 환호를 아끼지 않았다. 황은 꽃상여를 실은 트럭의 짐칸에 우뚝 서서 시위 군중과 경찰을 번갈아 내려다보며 같은 구호를 세 번 외쳤다.

    “광산촌 생존권을 쟁취하자!”

    황의 오른손에 들린 화염병에 불이 붙었다. 침묵은 꽃상여를 중심으로 동심원처럼 서서히 퍼져나갔다. 양측은 힘을 견줘보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던 터라 화염병의 출현에 잠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박종포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들고 있던 오른손을 내리자 황의 손에 들렸던 화염병도 허공에서 내려와 꽃상여 위로 내려앉았다. 황은 다시 외쳤다.

    “광산촌을 살려내라! 살려내라!”

    동심원으로 퍼져갔던 침묵은 일시에 깨지고 황의 구호를 복창하는 함성이 꽃상여를 향해 해일처럼 몰려들었다. 어느 누구도 그 노도와 같은 물결을 막을 수가 없었다. 박종포는 비로소 안경다리의 바리케이드를 밀어뜨리고 물꼬를 잡은 성난 강을 향해 흡족한 얼굴로 박수를 보냈다. 꽃상여는 그동안 탄광의 막장에서 숨져간 수많은 이들의 영혼처럼 타올랐다.

    “이건 너무 과격한 방법이야!”

    시위 군중들이 안경다리를 모두 빠져나간 뒤 사노맹원들은 사북역 대합실에 따로 모였다. 맹호부대 김의 반론에 다른 맹원들은 박종포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박종포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김의 소시민적 사상이 언젠가는 발을 걸고 들어오리라는 것을. 맹호부대원이었다는 김의 전직은 낡은 종이쪼가리로 변한 지 오래였다. 김은 박종포의 침묵이 이어지자 설명을 보탰다.

    “위원장, 생각해 봐요. 처음부터 이렇게 밀어붙이는 게 능사가 아니라 일단 교섭은 해보는 게 순서 아닙니까? 이러다 더 큰 손실을 입게 되면 누가 책임집니까! 군중심리도 이용할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는 법입니다. 안타까운 희생자가 나와선 안 된다 이겁니다.”

    “뭐 틀린 말도 아닌 것 같고…….”

    정선댁은 박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 생각이나 하니 만날 당하고 사는 거야, 이 사람들아!”

    황의 성난 목소리를 지운 것은 느릿느릿 역을 빠져나가는 하행선 열차였다. 객실의 승객들은 먼 나라의 여행자들처럼 편안해 보였다. 박종포는 그 기차를 눈으로 쫓다가 돌아와 소주 한 컵을 더 마셨다. 생각 같아선 폐사택으로 돌아가 술독을 껴안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대신 황의 술병을 낚아채 마저 비웠다.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신물의 씁쓸한 냄새를 지울 수 있는 것은 담배밖에 없었다. 박종포는 맹호부대 김의 술잔을 담배연기로 덮으며 입을 열었다.

    “우린 지금……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방법으로 싸우는 거야. 이 방법이 못마땅하다면 사노맹에서 나가면 돼. 노동자들의 역사는 희생의 역사야. 투쟁은 더 이상의 희생을 막으려는 투쟁이고. 앞으론 이런 고리타분한 얘기로 술맛 버리지 말자구.”

    “백 번 맞는 얘기요! 자, 여기서 시간 끌지 말고 다음 행동을 개시합시다. 위원장, 명령만 내리쇼. 내가 선두에 설 테니까!”

    목발 소리를 규칙적으로 내며 대합실을 오가는 황은 든든한 포도대장 같았다.

    “이번엔 파출솔 불태워버리는 게 어떻습니까?”

    맹호부대 김과 정선댁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황은 목소리를 높였다. 두 사람은 눈을 내리깔았다.

    “이재몰 잡아야지.”

    “이재모요? 이재모라면 사북사태 때 어용으로 노조위원장 해먹던 그놈 말입니까?”

    황이 박종포에게 사실을 요구했다. 단풍처럼 붉은 눈을 뜬 박종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북 어딘가에 아직 숨어 있을 거야. 지금부터 그 자를 잡으러 가는 거야.”

    “세월이 한참 흘렀는데 그 양반 잡아서 뭐할 겁니까?”

    맹호부대 김은 불만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여긴 변한 게 없어. 그 자는 대단히 영리해. 이번 사탤 틈타 분명 다시 등장할 거야. 우리 사노맹은 그 전에 놈을 잡아 제거해야 돼. 역사가 이십 년 전으로 되돌아가게 만들 순 없어.”

    “정말 아직 사북에 있을까요?”

    의심 가득한 정선댁의 목소리였다.

    “이십 년이나 지났으니 할아버지가 됐을 텐데.”

    “능히 숨어 있을 놈이지! 능히!”

    들고 있던 술병을 휴지통에 정확하게 골인시킨 강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맹원들을 독려했다.

    “이재몰 잡으러 갑시다!”

    술에 취해 땡볕 속을 걷는 일은 쉽지 않았다. 현기증과 진땀이 온몸을 휘감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이십 년 전 사북으로 가는 길이 간단하지 않단 말이지.’ 박종포는 시장 골목으로 맹원들을 들여보내며 중얼거렸다. 시위대가 휩쓸고 간 한적한 거리에는 깨진 보도블록과 찢어지고 밟힌 전단지들만이 햇살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있었다. 각목을 든(정선댁은 어디서 구했는지 연탄집게를 들었다) 맹원들은 비틀거리며 좁고 컴컴한 골목길을 뒤져나갔다. 대문이 열린 집이면 얼굴을 디밀고 혹시 이재모 일당을 봤냐고 물으면서. 하지만 대문들은 대부분 잠겨 있었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노인들과 어린아이들뿐이었다. 박종포는 그 자리에서 의식이 투철한 조무래기들을 골라 맹원으로 가입시켰다. 덕분에 골목 하나를 빠져나올 때마다 사노맹원들의 수효는 급속하게 늘어났다. 구불구불 돌아나가는 골목 끝에는 작은 개 한 마리가 앉아 있는 허름한 여인숙과 폐갱에서 흘러나온 누런 녹물이 흐르는 지장천이 있었다. 최루탄과 돌멩이가 난무하는 읍사무소와 만나는 곳에선 황급히 되돌아가기도 했다. 이재모의 행방은 묘연했다. 노인 몇이 이재모를 기억했지만 치매 증세가 심해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려웠다. 박종포는 먼지가 내려앉은 평상에 맹원들을 집결시켰다. 교활한 전직 어용 노조위원장이 눈치를 채고 몸을 웅크리고 있다면 다른 전술을 구사해야 할 시점이었다. 더욱이 늘어난 맹원들의 열화와 같은 힘을 한 번쯤 밖으로 쏟아낼 필요도 있었다.

    “쥐새끼 같은 이재모가 숨어버렸어. 하지만 쥐새끼들 심리란 뻔하지. 언젠가는 구멍 밖으로 머리를 내밀게 돼 있어. 기다리면 돼. 그동안 우리 맹원들은 시위대에게 집중된 경찰 배후에서 행동을 개시하는 거야.”

    박종포는 골목의 평상 위에 앉아 맹원들을 돌아보았다. 조무래기들은 그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꼴깍꼴깍 침을 삼켰다.

    “바로 석탄회관을 점거하는 거야. 이재모가 자기 최대 치적이라고 떠들었던 바로 그곳!”

    “경계가 만만찮을 텐데…….”

    맹호부대 김이 멀리서 들려오는 경찰차의 경보음에 흠칫 놀라며 말끝을 흐렸다.

    “읍사무소에 몰려 있는 시위대 다음 목표가 석탄회관이야. 경찰이 예전처럼 호락호락 읍사무솔 내줄 것 같아? 천만에! 지금 석탄회관을 점거하지 않으면 시위댄 갈 곳이 없어. 시위대가 읍사무솔 포기하고 석탄회관으로 이동하면 경찰도 따라 이동하지. 그럼 저들 힘으론 석탄회관도 불가능하단 얘기야. 그때, 우리 사노맹의 뛰어난 선견지명과 힘을 모두에게 과시한다 이 말이지.”

    박종포는 다시 입을 굳게 다문 채 눈으로 맹원들을 훑었다. 이번엔 어른들도 침을 삼켰다. 정선댁은 핏줄이 불거져 나올 정도로 연탄집게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이재몰 막다른 골목으로 모는 방법이기도 하지.”

    사노맹원들이 골목을 빠져나와 땡볕의 지장천길로 들어서자 온통 최루탄 연기로 가득했다. 읍사무소 쪽에서 바람이 불어온 탓이었다. 끊임없이 재채기가 쏟아지고 콧물이 흘러나왔다. 따가운 햇살도 최루탄 편이었다. 맹원들은 상소리와 가래를 뱉어내며 뜀박질로 지장천 다리를 건넜다. 발 없고 날개 없는 것들의 공습에 각목이나 연탄집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후미에 선 박종포는 길게 매달린 콧물을 닦으며 멀리 읍사무소 부근의 부연 허공을 바라보았다. 대량의 최루탄 가스가 뜨거운 햇살을 등에 업고 먹구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그 회색 가스에 사북의 허름한 건물들은 속수무책으로 지워졌다. 박종포는 벌겋게 달아오른 눈두덩을 손등으로 쓱쓱 문지르곤 한쪽 귀퉁이가 뭉툭 잘려나가는 풍경에서 돌아섰다. 한 걸음 옮기기 무섭게 재채기가 찾아와 뱃속에서 채 소화되지 않은 소주를 뒤흔들었다. 할 수 없이 콧물과 땀에 절어 냄새를 풍기는 손수건을 마스크 대용으로 사용했다. 그 모습은 마치 폭발 사고로 폐허가 된 탄광의 막장에서 살아 나온, 불굴의 의지를 지닌 진짜 광부 같았다.

    3층의 석탄회관은 햇살의 적막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노맹원들은 제각각의 자세로 마당에 우두커니 서서 그 따가운 적막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간혹 재채기를 뱉어내며. 회관을 지키는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에 멈춰 있는 몇 대의 자가용도 석탄회관이 지어지기 전부터 그곳에 있던 유물처럼 보였다. 출구를 찾아 미로 같은 땅속의 갱도를 헤매다 갑자기 맞닥뜨린 납득하기 힘든 열대의 무인도 같은 석탄회관 앞에서 사노맹원들은 각목으로 신발 바닥과 아스팔트를 툭툭 두드리며 다시 박종포를 바라보았다. 박종포는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으며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행복 예식장’과 ‘석탄회관 사우나’라고 씌어진 간판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자, 목욕이나 하자구!”

    “함정이 아닐까?”

    맹호부대 김이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지만 이미 사우나에 고정된 맹원들의 시선을 떼어내긴 역부족이었다. 김은 텅 빈 현관을 둘러보다가 다시 중얼거렸다.

    “관리인도 없다니……. 베트콩 애들 전술이랑 너무 흡사해.”

    하지만 더위는 김의 의혹마저 지하 사우나로 밀고 있었다.

    황과 박종포는 마지막에 남아 셔터를 내리고 출입문을 잠갔다. 사우나로 내려간 맹원들과 조무래기들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일층에 자리한 예식장부터 차례로 점검에 들어갔다. 얼마간 허전한 감정은 있지만 앞만 바라보고 있는 경찰의 뒤통수를 멋지게 가격했다는 자부심이 박종포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얼마 있지 않아 시위대는 패주에 패주를 거듭하다 결국 석탄회관으로 밀려올 것이다. 그 전에 이미 경찰은 석탄회관을 봉쇄할 것이고. 삼층 관리사무실까지 올라간 박종포는 창문을 열고 사북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최루탄 연기는 여전히 사북의 남쪽에서 북서쪽으로 이동하며 낮은 시가지를 덮고 있었다. 동원탄좌로 올라가는 입구 격인 안경다리는 지워졌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그 너머 거대한 폐석산은 태양 아래서도 검은 장막으로 펼쳐져 있었다. 폐석산 군데군데에 붙어 있는 초록의 나무들은 차라리 상처의 딱지처럼 보였다. 수많은 광부들과 무연탄을 지하세계로 실어 나르고 끄집어내는 중추인 케이지타워는 탄좌의 한가운데서 변함 없이 자리를 지켰다. 그 뒤편, 폐석산과 지장산 사이에 자리한 카지노 건물은 머리만 살짝 내민 채 폭염과 최루탄 가스가 뒤섞여 흐르는 사북을 몰래 엿보는 중이었다.

    “혁명을 일으키는 것도 어렵지만 지켜나가는 건 더 힘든 일이야.”

    술병을 비운 박종포는 혁명군 대장 같은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혁명군 대장을 끝까지 보위한 참모 같은 모습의 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은 박종포에게 담배를 권하고 불을 붙여주었다. 박종포는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황에게 최루탄 연기 위의 폐석산을 가리켰다.

    “우리가 저 거대한 산을 땅속에서 꺼냈지. 안 그런가?”

    “저걸 꺼내느라 이놈의 다리까지 잃었습니다!”

    황은 목발로 속이 없는 바짓가랑이를 찔렀다. 박종포는 폐석산을 바라보다가 기침을 토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간신히 기침을 달랜 박종포는 담배를 발로 비벼 끄곤 입을 열었다.

    “저 검은 산을 볼 때마다 무덤 같단 생각이 들어. 살아 있거나 이미 죽은 모든 광부들의 무덤.”

    “내 다린 이미 저 속에 묻혀 있습니다.”

    박종포와 황의 모습을 밖에서 본다면 어떻게 보일까. 혁명에 성공해 대통령궁으로 무혈 입성해 발코니에 서서 환호하는 연도의 군중들에게 답례하는 그런 모습일까. 두 사람은 먼 곳을 보는 데 정신이 팔려 석탄회관 마당으로 자가용 한 대가 들어와 멈추고 한 사내가 내리는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사내는 내려진 셔터를 확인하고 다시 마당으로 나와 주변을 살피다가 삼층 창에 있는 두 사람을 찾아냈다.

    “이봐, 당신들 누구야?”

    사내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허공을 향해 재채기를 쏟아냈다.

    “그러는 당신은 누군데?”

    창틀에 올려놓은 손으로 턱을 괸 황이 느긋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여기 관리인이지 누구야! 당신들 누군데 함부로 셔털 내리고 문까지 걸었어?”

    “우리? 우린 사노맹원들이야. 석탄회관은 우리가 접수했으니까 당신은 다른 데 가서 놀아.”

    “뭐? 당신들 미쳤어? 빨리 내려와 문 열어!”

    “말귀를 못 알아듣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황은 빈 술병을 들어 마당의 사내에게 던졌다. 천천히 날아간 술병은 사내에게 충분히 피할 시간을 준 뒤 바닥과 부딪쳐 부서졌다. 사내는 저만큼 뒤로 물러났다. 시내를 뒤덮은 최루탄 연기는 더 짙어졌고 군중들의 함성이 밀물처럼 솟구쳤다가 가라앉길 거듭하고 있었다. 사내는 문이 없는 정문의 벽돌 기둥에 몸을 감춘 채 소리쳤다.

    “이봐, 차는 가지고 가면 안 될까?”

    이번에는 유리로 된 재떨이가 반원을 그으며 날아갔다. 박종포는 깨어진 술병과 재떨이의 조각 조각에서 퉁겨 나오는 햇살을 보았다. 그 유리조각들이 혈서를 쓴 손가락에 박힌 듯 아린 통증이 번져왔다. 태양은 남북으로 펼쳐진 지장산의 북쪽 자락을 넘어가고 있었다.

    “저 인간 분명 짭새들한테 가겠지.”

    힐끔힐끔 뒤돌아보며 천변길을 달려가는 사내를 가리키며 황이 말했다.

    “한판 붙을 텐데 맹원들 불러오겠습니다.”

    구름을 보고 날씨를 예측하듯 박종포는 낮은 지붕들을 덮어버리는 최루탄 연기의 위치만 가지고도 시위대의 현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경찰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팔짱을 낀 채 시내를 내려다보는 박종포의 얼굴에 쓴 미소가 번졌다. 처음부터 예상했던 일이었다. 몇몇의 삭발이나 혈서만 써 가지고 탄광촌을 되살리겠다니! 산더미 같은 저탄장에 불을 싸질러도 시원찮을 판에 피켓이나 플래카드, 각목으로 벌이는 시위는 소꿉장난과 다름없었다. 박종포는 새 술병을 땄다. 시내 모처에 숨어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어용 노조위원장 이재모는 쾌재를 부르고 있겠지. 마누라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흥얼거리겠지. 최루탄 연기는 석탄회관까지 밀려들었다. 지장천 둑방길과 시내 도로가 만나는 삼거리엔 마스크로 입과 코를 가린 시위대들이 속속 집결하고 있었지만 멀리서 보아도 패색이 완연했다. 박종포는 긴 한숨을 뱉어놓았다. 감당하기 힘든 분노를 짊어진 시위대들은 경찰에 밀려 조금씩 석탄회관으로 이어진 도로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사우나에서 사무실로 올라온 사노맹원들은 그 뒷걸음질을 착잡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출입문을 열어야죠?”

    얼굴이 뽀얗게 변한 맹호부대 김이 물었다.

    “그보다 먼저…….”

    박종포는 옥상으로 옮겨놓아야 할 물건들을 일러주었다. 조무래기들은 빈 술병을 맡았고 맹원들은 횃불을 제작할 도구를 찾았다. 경찰에 맞서 탄광촌의 검은 밤을 건너가려면 인내와 분노말고도 다른 많은 게 필요했다. 시위대는 지장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경계로 경찰 병력과 다시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깨어진 보도블록이 한 차례 날아가면 길바닥에서 회색 연기를 내뿜는 최루탄이 여기저기서 맴을 돌았다. 구경꾼 하나 없는 싸움이 오후의 폭염 속에서 지루하게 이어졌다. 서로에게 보내는 일방적인 통고만이 스피커를 통해 건너가고 건너올 뿐이었다.

    어둠이 깔리면서 양측은 인원을 보강하기 시작했다. 시위대엔 근무를 끝낸 광부들이 합세했고 조무래기들은 부모 손에 모두 끌려갔다. 타 지역에서 급파된 경찰 병력은 서울로 가는 국도를 봉쇄한 뒤 석탄회관을 조여왔다. 시위대가 집결한 석탄회관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경찰은 전기와 물 공급을 끊은 채 협상을 종용하는 회유책을 끊임없이 폈다.

    박종포는 사노맹 위원장 자격으로 대책회의에 참석했다가 도중에 자리를 박차고 옥상으로 올라왔다. 일렁거리는 횃불에 비친 표정은 쇠처럼 굳어 있었다. 대세가 협상으로 굳어진 것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그는 병나발을 불었다.

    “어떻게 할 겁니까?”

    황이 그 술병을 받아 마신 뒤 물었다.

    “염병할! 현역이란 놈들이 저렇게 나약하니. 협상이라니! 사북사태 때 그렇게 기만당하고 또 협상이야, 협상! 이놈의 세상, 되도 않는 협상만 하다 가는 거야. 협상이 뭐야? 금방 죽지 않을 만큼 모르핀만 투입받는 게 협상인데, 왜 그걸 모르지? 황씨? 협상하면 잃어버린 다리가 돌아오나? 협상하면 풍비박산이 난 가족이 다시 만나나? 응? 위령탑에 갇힌 광부들이 다시 살아나나?”

    박종포는 위태롭게 난간에 기대 절반을 흘리면서 술병을 비웠다. 힘이 풀린 손에서 술병이 떨어져나가 마당에서 깨어지고 뱃속으로 들어간 술마저 되 올라와 힘없는 소 오줌발처럼 길게 늘어졌다. 경찰의 탐조등이 빛 기둥을 몇 번 뒤틀더니 그런 박종포의 모습을 이내 가뒀다. 황이 재빨리 박종포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빛 기둥은 몇 번 더 기웃거리다가 사라졌다. 박종포는 황의 몸을 끌어안고 중얼거렸다.

    “이봐, 황씨? 황씨, 이번 협상이 뭔지 알아? 탄광촌 사람들을 모조리 석탄 박물관에다 집어넣겠다는 협상이야. 우린 전시물이 되는 거야. 살아 있는 전시물!”

    “그건 또 뭔 소립니까? 전시물이라니?”

    박종포의 얼굴은 하얗게 변했다. 다섯 명의 사노맹원들은 한자리에 둘러앉아 침울한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횃불은 종이잔 속 술 위에 작은 별처럼 떠 있었다. 횃불을 보고 날아온 무수한 날벌레들이 술잔 속으로 낙엽처럼 떨어졌다.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탈출을 시도했지만 성공하는 날벌레는 없었다. 아무도 그 날벌레들을 술잔 속에서 건져내지 않았다. 술잔만 비울 뿐이었다.

    “자넨 탄 캐다 사고로 다리 잃은 광부 역을 맡는 거고……난 진폐증에 걸린 알코올 중독자 역이지. 정선댁도 어떤 역인지 알 겁니다. 열 받는 건, 이재모 그 새끼가 맡는 역이야! 그 새낀 계속 어용 노조위원장을 맡을 거란 말이지. 박물관에 들어가서도 광부들 피땀을 빨아먹으며 호위호식할 거란 말이야!”

    박종포의 손을 떠난 술병이 난간 너머로 날아갔다. 퍽, 하는 소리는 마치 누군가의 두개골이 깨지는 소리로 들렸다.

    “그럼 난 바람난 광부 마누라 역이란 말이죠? 나 원, 남사스러워서.”

    “난 마등광부겠군!”

    “마등광부가 뭐야?”

    황이 맹호부대 김에게 물었다.

    “마누라 등쳐먹고 사는 전직 광부.”

    “근데……설마 그런 박물관이 생기겠어요?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들을 전시물로 쓰겠어요!”

    미심쩍다는 표정을 정선댁은 감추지 않았다.

    “두고만 봐! 고원 관광개발 그 보따리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뭐 생각해보니 지금보다 나쁠 것도 없네. 그 짓도 월급은 줄 거 아녜요? 좀 창피하겠지만.”

    “에라이. 정선댁은 태평한 소리 좀 그만 하쇼! 동물원 원숭이가 그렇게 부러워요?”

    황은 박스 속에 숨겨놓은 화염병을 꺼내들고 박종포를 채근했다.

    “위원장님, 이렇게 앉아 술이나 마시지 말고 계획대로 한번 대차게 싸웁시다. 현역 애들 상관없이 우리끼리 싸우는 겁니다. 이 화염병 한번 써 봐야죠?”

    사북의 여름밤이 깊어갔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었던 공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작은 화염병 하나 불붙이지 못했다. 박종포는 맹원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다섯 명의 인원으로 치를 수 있는 싸움은 사실 많지 않았다. 석탄회관을 에워싼 경찰 병력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협상은커녕 시위대의 투항만을 기다리는 듯했다. 박종포가 먼 하늘 저편으로 떨어지는 별똥을 쫓다가 다시 옥상으로 돌아오자 맹원들은 졸음의 옷을 한 벌 두 벌 껴입고 있었다. 횃불도 조금씩 힘을 잃어갔다. 박종포는 졸고 있는 황이 움켜쥔 화염병을 가져와 불을 붙였다. 기름에 젖은 헝겊 심지는 이내 기세 좋게 타올랐다. 그 불꽃 속으로 곧 빨려 들어갈 것처럼 쪼그려 앉아 흔들거리는 박종포의 자세는 자못 위태로웠다. 불꽃 속으로 들어갈 듯 들어가지 않는 박종포의 모습은 마치 한 마리 벌처럼 보였다. 무척 긴요한 이야기를 불꽃과 나누는 듯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박종포의 오른손이 꽃대를 잡듯 화염병으로 다가갔고 불꽃은 파닥거리며 옥상 바닥에서 조금씩 허공으로 치솟았다. 졸다가 그 모습을 목격한 정선댁은,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이 떠올랐다고 후일 주변 사람들에게 전했다. 허공으로 떠오른 불꽃이 어떻게 잠자는 무연탄의 골짜기를 불살랐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경찰이 작성해 발표한 기록에 의하면 새벽 무렵 석탄회관을 시위대로부터 탈환할 때까지 격렬한 시위가 계속되었고 양측 모두 많은 부상자들이 속출했다고 한다.

    태양은 다시 지장산 위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무사히 사북을 빠져나온 낡은 봉고차는 털털거리며 만항재를 올라갔다. 맹원들 모두 간밤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더구나 한 사람도 경찰에 연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고무돼 있었다. 운전을 맡은 맹호부대 김의 두 손바닥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핸들을 규칙적으로 두드렸다. 그러나 고갯마루에 서 있는 경찰차 옆을 지날 때에는 모두 긴장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경찰이 먼저 인사까지 건넸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어떻게 될까요?”

    계속 뒤를 돌아보며 강이 박종포에게 물었다.

    “수배 떨어진 건 아닐까요?”

    “강씨, 우리가 요즘 경찰에 한두 번 끌려갔나! 사람이 겁은 많아 가지고.”

    목발을 창 밖으로 반쯤 내놓은 황의 대꾸였다.

    “우린 대의를 위해 싸우는 거야. 노동사 세상!”

    “노동자 세상이란 게 있었나…….”

    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초록의 산야는 먼 소백산을 향해 내리달리고 있었다. 박종포는 쓰린 배를 손으로 움켜쥔 채 광대한 초록 바다의 꿈틀거림에 시선을 실어 보냈다가 되돌아왔다. 당분간 시위는 팽팽한 긴장을 유지할 것이다. 대의를 떠나 상대편에 대한 현실의 사소한 악감정은 쉽게 삭지 않는 법이니까. 어쩌면 그런 사소한 문제들이 대의를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박종포는 간밤 자신이 피워 올린 불꽃이 그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루하고 계속되는 협상만 하다가 박물관 속으로 내몰릴 수는 없었다. 대안이라곤 박물관 지어주는 것밖에 모르는 자들과 무슨 협상을 한단 말인가. 고작해야 박물관 벽면을 페인트에서 대리석으로 교체하는 정도의 협상을. 차라리 깊고 어두운 막장으로 돌아가 탄을 캐는 게 더 뱃속 편한 일이었다. 하지만……이젠 아무도 무연탄으로 구들장을 데우려고 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박종포는 쓰린 속으로 소주를 흘려보냈다. 봉고는 잠든 사노맹원들을 태우고 석탄 박물관을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 우회전을 했다.

    “탄광보다 훨 깨끗하네!”

    “아 그럼 박물관인데 탄광 모양 시커멓겠소!”

    맹호부대 김이 취해 비틀거리는 강에게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헌데 좀 싱겁구만! 이런 걸 전시물이라고 갔다 놨으니. 탄에 고사리 찍힌 거야 늘 보던 거잖아.”

    고생대의 땅속에서 나온 화석들이 진열된 전시실을 사노맹원들은 건성으로 지나쳤다. 박종포와 황만 뒤처져 광물 속에 갇혀 있는 곤충들과 식물, 새의 마지막 발자국을 들여다보았다. 급격한 지각 변동이나 조산 운동, 화산 폭발의 여파로 오랜 시간 광물 속에 갇혔다가 불을 찾아 땅속을 파 들어간 인간들에 의해 지상으로 나온 것들이었다. 물론 맹호부대 김의 말대로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유리 상자에 갇혀 박물관의 조명을 뒤집어쓴 화석들은 묘한 빛을 내뿜었다.

    “저 속에 갇혀 있음 어떤 기분일까요?”

    “생매장 당한 기분이겠지.”

    황의 물음에 박종포는 덤덤한 말투로 대답하곤 화석 전시실을 떠났다. 박물관 전시실은 계단을 따라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도록 설계돼 있었다. 박과 황이 왁자하게 떠들고 있는 맹원들을 발견한 곳은 탄광촌 주거생활 전시실이었다. 마네킹 광부는 톱을 맨 채 작은 마루에 앉아 출근 준비를 하는 중이고 그의 아내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도시락을 들고 그 옆에 서 있었다. 단칸방에 부엌이 딸린 초라한 판잣집이었다. 옆집 부부의 사랑하는 소리까지 들릴 듯한.

    “그러니까 저 긴 밤을 혼자서 무슨 수로 보내란 얘기예요?”

    정선댁이 여자 뒤편의 방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병방 근무 들어간 남편 걱정도 되고 잠도 안 오니 미칠 지경 아녜요? 마침 먹다 남은 소주가 있길래 한 고뿌 마셔보니, 야, 기막히데요! 그거 야금야금 다 비우고 가게 가서 한 병 더 사왔다 아닙니까.”

    “신혼 시절이니 오죽했겠수!”

    맹호부대 김이 능글능글 웃음을 굴렸다.

    “술 바람이 춤바람으로 옮겨 붙는 거 금방이더라구요!”

    박종포는 마루에 걸터앉은 사내가 매고 있는 톱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도 막장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면 넓은 달력을 뒤집어 방바닥에 깔아놓고 톱부터 갈았다. 줄이 소리를 지르며 톱날을 오갈 때마다 분말의 쇳가루가 달력에 떨어졌다. 톱만큼은 중요한 개인 물품이었기에 술집에서 아무리 만취해도 잃어버리는 법이 없었다. 지그재그로 날이 잘 선 톱을 가진 광부는 게으를 수 없었고 그 톱은 남에게 빌려줄 수 없는 연장 중 하나였다. 생과 사의 경계가 지척인 탄광촌을 떠도는 많은 미신들 가운데 하나가 톱에도 깃들여 있었다. 아내 역의 마네킹도 남편 뒤에 서 있었다. 아내는 막장으로 향하는 남편 앞을 결코 지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우리가 관광객들 앞에서 저 마네킹을 대신한다 이 얘깁니까, 위원장님?”

    황의 목소리가 앞서 걷는 박종포의 뒷덜미에 매달렸다.

    “난 벤또만 들고 하루종일 꼼짝 않고 서 있어야 하네!”

    “아 산 사람이 꼼짝 않고 어떻게 있나? 광산촌 생활을 연기하는 거라니까, 연기!” 맹호부대 김이 가슴을 두드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연속극 탤런트 모양?”

    땅속을 오르내리는 케이지타워의 승강기는 실제로 지하 수 천 미터의 막장으로 내려가는 것처럼 굉장한 소음을 내뱉었다. 붉은 빛이 계속해서 깜박거리고 심하게 흔들렸다. 옆 사람의 목소리마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박종포는 맹원들을 이끌고 석탄 박물관을 찾아온 것을 조금씩 후회했다. 소풍 온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승강기 문이 열리자 어둡고 컴컴한 갱도에서 서늘한 기운이 몰려들었다.

    “옛날 생각나는구만!”

    한쪽 목발로 갱목을 두드려보며 황은 감회가 새로운 듯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잘려나간 다리가 어디 있을까나…….”

    한쪽 바짓가랑이를 휘날리며 성큼성큼 갱도로 들어가는 황의 뒷모습을 맹원들은 묵묵히 바라보았다.

    구부러진 갱도 곳곳에는 탄을 캐기 위한 시설물들이 부문 별로 나누어 전시되어 있었다. 음향 효과도 만만찮았다. 발파 소리나 갱도가 붕괴되는 소리에 파묻히는 광부들의 비명과 착암기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이어졌다. 재채기를 불러오는 화약 냄새도 사라지지 않았다. 말을 잃은 맹원들의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어느 지점에서는 바닥이 가라앉을 듯 흔들렸다. 박종포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끔찍했던 기억이 박물관 갱도의 외나무다리에서 극심한 동요를 일으킬 줄은. 무너져내려 출구가 막힌 갱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숨을 헉헉거리며 구조를 기다리던 그 악몽이 점점 거대하게 부풀어올랐다.

    “으아아!”

    두 귀를 감싼 채 강이 전시실 안으로 뛰어든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곡괭이를 든 마네킹 광부를 끌어안은 강의 얼굴은 공포 그 자체였다.

    “빨리 업고 나가!”

    강은 계속해서 나머지 광부들을 전시실 밖으로 내보냈다.

    “뛰어, 뛰라니까!”

    강의 외침에 호응이라도 하듯 갱도로 비상벨 소리가 울렸다. 맹원들은 강이 내보낸 광부들을 업거나 끌고 갱도를 달렸다. 거품을 내뿜는 강을 부축한 박종포도 길고 구불구불한 갱을 돌아갔다. 막장에서의 눈물은 전염성이 강했다. 박종포의 볼에도 어느새 그치지 않는 눈물이 깊은 고랑을 만들었다.

    폭염과 최루탄, 재채기, 콧물, 가래의 날들이 흘러갔다. 꽃 한 송이 제 빛깔로 피어 있지 못했다. 먼지와 돌멩이, 찢어진 현수막, 최루탄 껍데기가 시내의 꽃밭이란 꽃밭을 죄다 덮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구석구석에 쌓여 있던 최루탄 분말이 다시 되살아나 거리를 쏘다녔다. 모두들 비를 기다렸지만 짧은 소나기도 내리지 않았다.

    “위원장님, 일이 벌어졌습니다!”

    ‘정든 님’의 마등광부인 맹호부대 김이었다.

    곰팡내가 선풍기 바람에 실려오는 ‘정든 님’에서 박종포는 폐광 반대 대책위원회 사무국장과 함께 있었다. 저녁까지 계속된 시위의 고단함을 소주로 달래며.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김은 박종포의 귀에 입을 대고 작은 소리로 맹원들의 소식을 전했다. 박종포의 표정이 잠시 일그러졌다가 되돌아왔다. 30분 안으로 가겠다는 대답을 듣고서야 김은 ‘정든 님’을 나갔다.

    “그래, 나한테 하고 싶은 얘기 골자가 뭡니까?”

    박종포는 사무국장을 다그쳤다.

    “대책위원회와 보폭을 맞춰달란 거지요. 꽃상여 화형이며 석탄회관 점거 같이 중요한 일은 우리와 사전에 의논했어야죠. 전체적으로 사노맹은 너무 과격합니다. 며칠 전 석탄 박물관 마네킹 건도 그렇고.”

    “따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요?”

    “……갈라설 수밖에 없습니다.”

    사무국장은 박종포의 핏발 선 눈을 마주보았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는데……당신은 사북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 같소?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답을 들읍시다.”

    가로등만 드문드문 켜진 밤길을 박종포는 비틀거리며 걸었다. 대부분의 상가는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박종포는 길어졌다가 짧아지는 그림자를 어두운 골목으로 들이밀고 뒤를 돌아보았다. 미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골목길은 지장천과 만나는 곳에서부터 붉은 불빛을 유리문 틈새로 내보냈다. 박종포가 들어간 곳은 붉은 불빛들 사이에 자리한 작은 구멍가게였다. 맹원들은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고등어통조림을 따놓은 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정선댁은 당연히 그 자리에 없었다.

    “어느 집이오?”

    박종포의 물음에 맹원들은 민망한 듯 헛기침을 내뱉었다.

    “이건 우리 사노맹의 위신과 관련된 문젭니다. 전직 산업 전사들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맹호부대 김의 안내로 박종포는 지장천 물소리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한 집으로 들어갔다. 때가 때인지라 붉은 불빛을 내보내는 천변의 판잣집은 조명을 최대한 낮춘 채 엎드려 있는 것 같았다. 박종포는 주인을 불렀다. 맹호부대 김의 얼굴을 확인한 여주인은 지겹다는 표정을 억지로 돌려놓으려 애를 쓰며 박종포의 눈치를 살폈다.

    “소주 한 병 주시오.”

    “우리 집은 맥주나 양주밖에 안 파는데……. 얘, 여기 소주 한 병 가져와라!”

    “요즘 사북이 왜 뒤숭숭한지 아시오?”

    박종포는 여주인이 내민 잔 대신 물 컵으로 소주를 받아 단숨에 마시고 다시 내밀었다.

    “그야……나라에서 더 이상 탄을 사주지 않겠다고 해서…….”

    “아는구만. 그럼 우리 노동자들이 늦은 밤까지 싸우는 이유가 뭔지 아시오?”

    다시 물 컵이 비었다.

    “그야……탄광촌을 살리려고.”

    “아는구만. 그럼 요즘 같은 땡볕에 우리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도 알겠네?”

    “그야……알지요.”

    “잘 아는 사람이 왜 오입 한번 하겠다는 노동자들을 내쫓았소?”

    “그야…‥아가씨들이 싫다고 하니……심한 냄새도 나고……불구자고.”

    순간 탁자를 떠난 빈 술병은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 벽에 걸린 달력 속 반라의 여자와 부딪쳤다. 그 옆방에서 고개만 내밀고 바깥 동정을 살피던 아가씨들의 외마디 비명이 전광석화처럼 피었다가 졌다.

    “니 년들은 정상이냐?”

    길거리로 나온 박종포와 맹호부대 김은 화를 달래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박종포는 김을 먼저 구멍가게로 보내고 길바닥에 버려진 깨진 술병을 든 채 다시 붉은 불빛이 가느다랗게 새어나오는 문을 열었다. 다 끝난 줄 알고 있던 주인 여자가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났다. 박종포는 소리나지 않게 문을 닫았다.

    “자꾸 이러면 ……우리도 사람 부를 거야.”

    여주인은 박종포의 손에 들린, 붉게 물든 병 조각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박종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여주인에게 다가가 아가씨들이 듣지 못하도록 나직하게 말했다.

    “당신 힘이면 불쌍한 우리 맹원들 오입 한번 시켜줄 수 있잖아?”

    권태로운 시위의 날들이 흘러갔다. 지장산을 넘어온 먹구름이 몇 번 소나기를 뿌리고 갔지만 더위를 보내버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까맣던 박종포의 얼굴은 점점 무연탄 빛으로 변해갔다. 갈라터진 입술에선 진물과 피가 흘러내리기 예사였다. 동원탄좌에서 쏟아버린 폐석이 수시로 굴러 내리는 골짜기에 자리잡은 폐사택촌에서 사노맹원들은 하루의 고단한 일정을 시작하고 마치는 데에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그동안 맹원들을 더 확보하려고 옛 동료들인 사북병원 진폐환자들을 찾아가 설득했지만 성과는 그다지 없었다. 물기 없는 웃음과 고생한다며 건네주는 몇 푼의 후원금이 고작이었다. 그들의 몸은 병상의 침대 위에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오래 전에 다른 곳으로 떠난 뒤였다. 그렇다고 위령탑을 부숴버리고 순직 광부의 영혼들을 응원군으로 불러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기존의 맹원들도 갈수록 투쟁 의지를 잃어갔다. 가장 급진적 성향을 지닌 사노맹의 현실을 고려할 때 좀더 많은 떡고물이나 원하는 다른 단체와 조직들은 아예 둘러볼 여지조차 없었다. 한마디로 패전일을 기다리는 정세였다. 술에서 깨어날 때마다 박종포는 황과 함께 대책위원회를 찾아가 사북의 앞날에 대해 토로했지만 그들은 애써 사노맹의 주장을 무시했다. 개울과 붙어 있는 서울 가는 길에는 녹슨 물보다 빨리 달리는 이삿짐 트럭이 심심찮게 보이는 날들이었다. 먼 장밋빛 청사진이 텔레비전에서 방영될 때 폐사택촌에는 흉흉한 소문의 먹구름이 밀려들고 있었다.

    소문의 먹구름이 현실의 폭우로 변한 건 단 하루 만이었다. 사노맹원 중 폐사택촌에서 살지 않는 이는 맹호부대 김밖에 없었다. 철거를 위해 중장비까지 동원했다는 정보를 가져온 이도 맹호부대 김이었다. 소유주인 동원탄좌는 골짜기를 매립해 지장산 자락의 카지노와 연계해 콘도를 지을 계획이라고 했다. 철길과 가까운 골짜기 입구에선 벌써 철거작업이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노맹을 땅속에 산 채로 매장하겠다는 의도야!”

    황은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기세였다.

    “위원장님. 이대로 앉아서 당할 겁니까? 어이, 맹호부대? 저 아래 새끼들 반응은 뭐야?”

    폐광 반대 대책위원회를 두고 한 말이었다.

    “공식적인 언급은 없지만 대체로 반기는 분위깁니다. 도시 미관상 문제와 청소년 탈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합니다만…….”

    “개새끼들, 완전히 짜고 치는구만!”

    “위원장님, 그럼 우린 이제 어데로 간대요?”

    정선댁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렸다.

    촛불 하나가 일렁거리는 방에서 박종포는 낡고 더러운 이불을 등받이 삼아 벽에 기댄 채 담배를 피웠다. 치우지 않은 술자리로 파리떼가 몰렸지만 성가실 정도는 아니었다. 혼자 살기엔 필요 이상 넓은 방이었다. 가구라곤 다른 폐가에서 들고 온 앉은뱅이 책상이 전부였다. 벽에 걸린 옷 몇 벌,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라면 박스, 식기와 냄비가 다였다. 그 대부분을 담고도 남을 몸통만한 가방을 선반에서 내린 박종포는 비틀비틀 방안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담았다.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게 더 많았다. 그러나 곧 그 일을 포기하곤 술자리로 돌아왔다. 촛불은 술잔을 가져오는 약한 바람에도 위태롭게 춤을 췄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온 날벌레들은 그 춤사위에 홀려 달려들었다가 날개를 태워버리곤 방바닥에서 맴을 돌았다. 박종포는 곤충학자처럼 엎드려 날벌레를 들여다보다가 입 바람으로 촛불을 껐다. 파라핀 냄새가 어두운 방에서 꽃을 피웠다. 달빛이 창을 넘어와 방을 정리할 때를 기다리며 박종포는 이불에 기댄 채 오른손에 든 술병을 조금씩 기울였다. 지난 세월의 막장에선 달빛마저도 없었다. 그것은 과분한 작업환경이었다. 설령 막장에 달이 뜬다 하더라도 단 며칠이면 탄가루를 뒤집어쓴 폐처럼 변할 것이다. 박종포는 검은 입을 벌리고 있는 가방으로 기어가서 사북으로 돌아올 때 입었던 낡은 양복을 꺼냈다. 어둠 속에서 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 양복바지에 다리를 넣다가 넘어질 뻔했지만 이내 자세를 바로잡았다. 와이셔츠에선 곰팡내가 났다. 누가 매어줬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넥타이 구멍으로 머리를 디밀었다. 윗도리까지 모두 걸친 뒤 다시 술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새로 갈 곳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침내 창으로 들어온 달빛이 술자리를 향해 구부러진 박종포의 등을 가만히 어루만져 주고 있을 뿐이었다.

    “죽여라, 죽여!”

    동원탄좌에서 내려온 철거반원들은 경찰까지 동원했다. 그 뒤편엔 공룡 같은 포크레인이 금방이라도 삼켜버릴 듯 허공에다 버킷을 올려놓은 채 대기했다. 아침 햇살이 막 골짜기로 내려오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마신 모든 술병이 철거반을 향해 날아갔지만 사노맹원들은 조금씩 골짜기 속으로 밀려났다. 포크레인의 무한궤도에 깔리는 모든 것들은 먼지를 뿜어내며 초토화되고 있었다. 동원탄좌로 올라가는 언덕길엔 구경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박종포는 돌팔매질을 멈춘 채 언덕 위 구경꾼들의 무관심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아예 여기서 죽어버립시다!”

    불붙은 화염병을 박종포에게 건네주며 황이 말했다. 박종포의 손을 떠난 화염병은 촛불 하나로 밤을 견디던 방으로 들어가 이불 위에서 터졌다. 사노맹원들은 검은 연기를 내뿜는 불길을 배수진으로 삼은 채 포크레인과 맞섰다. 훗날 술자리에 모여 앉은 언덕 위의 구경꾼들은 사노맹의 마지막 투쟁을 빗대어 이렇게 말했다.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고.

    박종포는 눈을 뜨지 않았다. 몸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줌보에 가득 찬 오줌이 넘칠 듯 출렁거렸지만 이를 악문 채 속으로 외쳤다. 됐다! 이제 그만 울고 가거라! 여긴 왜 왔어! 흐느낌을 멈추지 않는 처녀는 유치장 밖에서 그렇게 돌아누운 채 입을 악다문 박종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갈게요…….”

    유치장을 떠나는 처녀의 구둣발 소리에 맞춰 박종포의 바지도 젖어갔다.

    사북 사람들의 탄원에 힘입어 사노맹원들 중 마지막으로 박종포가 경찰서에서 풀려날 때 정보과 형사가 찾아왔다. 몸매는 가늘었지만 정보과답게 눈매가 날카로운 형사였다. 그는 뻐끔 담배를 피우듯 연기만 뱉어내더니 박종포에게 물었다.

    “니가 박노해야?”

    “방노해가 뭐요?”

    박종포는 형사가 뱉어낸 연기를 입 바람으로 되돌려보낸 뒤 물었다.

    “너, 한 번만 더 사노맹인지 뭔지 떠들고 다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

    어두워질 무렵 낡은 완행버스가 사북에 도착했지만 박종포는 내리지 않았다. 내릴 곳이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버스는 석탄회관을 지나 안경다리와 사북역, 태양 다방 아래의 룸살롱 모나코, 회생당 한약방, 사북 종합 시장을 차례로 통과했지만 박종포는 벨을 누르지 못했다. 시내가 끝나는 곳에 있는 ‘정든 님’도 지나쳤다. 생전 처음 지나치는 풍경처럼 낯설었다. 안 내릴 거냐고 거울 속에서 묻는 운전기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석탄박물관을 떠올렸지만 이내 머리를 저었다. 버스는 어둠이 내린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스님? 스님 계십니까?”

    박종포는 한자리에 제대로 서 있지 못한 채 절 마당에서 비틀거렸다.

    “일광 스님 계십니까?”

    비틀거릴 때마다 구두 밑에서 자갈이 개구리 울음을 질러댔다.

    “누구요?”

    창호지 가득 환한 불빛을 머금은 문이 열리고 눈썹이 하얀 일광 스님이 얼굴을 내밀었다.

    “스님……이곳에서 하룻밤 묵을 수 없을까요?”

    정암사 주지인 일광 스님은 두 눈썹을 곧추세우고 박종포를 뚫어져라 살폈다. 그동안에도 박종포의 구두 밑에선 쉬지 않고 개구리가 울고 있었다. 일광 스님의 오른손은 문고리로 이동했다.

    “여기가 취한 놈 재우는 여관인가?”

    닫힌 문 앞에서 박종포는 오래 서 있었다. 개구리 울음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박종포는 닫힌 문을 향해 머리 숙여 인사하곤 전나무 숲이 만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레일을 울리는 곡괭이질 소리에 박종포는 잠에서 깨어났다. 폐광 속은 시간을 알려줄 만한 무엇도 없었다. 어둠이 전부였다. 깜빡거리는 라이터 불로 박종포는 빈 술병에 꽂혀 있는 초를 찾았다. 갱도와 붙어 있는 광원 휴게실이 흐릿한 불빛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군대 내무반과 비슷한 휴게실이었다. 예상대로 청년의 침상은 비어 있었다.

    “미련퉁이 곰 같은 놈!”

    송판으로 대충 만든 탁자에는 간단한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박종포는 아직 식지 않은 찌개를 들여다보곤 밥 대신 소주를 찾았다. 물 컵 가득 술을 따라 한입에 들이켰다. 곡괭이질 소리에 촛불은 미세하게 흔들렸다. 뿜어낸 담배연기도 그 진동에 파르르 떠는 것 같았다. 박종포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촛불이 밝히는 좁은 휴게실은 사노맹원들과 함께 본 석탄박물관의 호박(琥泊) 속 같았다.

    박종포는 호박에 갇힌 모기나 개미를 떠올렸다. 호박 속에 웅크리고 앉아 술을 마시다 화석이 된 자신을 훗날 누군가가 들여다보고 웃음을 터뜨릴 거란 생각이 들자 기분이 우울해졌다.

    탄을 캐는 곡괭이질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박종포는 희미한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갱도를 걸었다. 불빛 너머는 캄캄한 나라였다. 절에서 쫓겨난 밤 사북역 대합실을 포기하고 지장산 중턱의 폐광 속으로 후들거리는 몸뚱이를 들이민 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내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한 칸 한 칸 바늘이 움직이는 시계가 폐광 어디에 걸려 있었다면 더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더불어 박종포는 폐광에서 만난 청년도 곤혹스러운 눈으로 바라봐야만 했다. 모두가 떠나간 폐광에서 홀로 탄을 캐다니. 개들이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돌아다닌 날 사북역에서 만나 담배 한 대 얻어 피운 인연치곤 묘한 인연이었다. 손전등 불빛에 모습을 드러내는 갱도는 끝을 알 수 없는 검은 입 속으로 박종포를 끌어들였다. 청년의 곡괭이질 소리는 검은 입 속의 내장쯤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담배 한 대 피우고 하게.”

    온몸이 땀으로 젖은 막장의 청년은 촛불에 의지해 탄을 캐고 있었다. 박종포는 손전등을 껐다. 뿌옇게 피어올랐던 탄진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박종포는 청년에게 담배와 불을 권했다.

    “이제 그만 바깥 세상으로 나가게.”

    검은 얼굴의 청년은 말없이 담배만 피웠다.

    “앞날이 창창한 사람이 폐광 속에서 뭐 하는 겐가!”

    검은 얼굴의 청년은 흰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지금 많이 캐 놓으면 나중에 쓸데가 생기겠죠 뭐.”

    “앞뒤가 꽉 막혔구만!”

    박종포는 주머니에서 술을 꺼내 마셨다.

    “아저씨, 술 좀 줄이세요. 아침 식사는 하셨어요?”

    “내 걱정 할 때가 아냐.”

    젊은 날의 거울을 보듯 박종포는 청년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작은 촛불 하나를 켜놓고 지장산이 품고 있는 탄을 모두 캐낼 듯이 곡괭이질을 하는 청년과의 우스꽝스런 동거였다. 박종포는 청년에게 막장 위를 가리켰다.

    “이 산꼭대기에 들어선 카지노에 가 봤나?”

    고개를 가로저은 청년은 입을 다문 채 물끄러미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술은 동이 났다. 박종포는 알고 있었다. 청년이 쉽게 폐광을 빠져나가지 않으리란 사실을. 박종포 또한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임을.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곡괭이를 잡았다.

    “쉬엄쉬엄 하시게.”

    건전지가 닳은 손전등과 촛불은 폐광의 막막한 어둠과 맞서는 반딧불 같았다. 박종포는 커다란 그림자를 데리고 탄을 캐는 청년의 구부러진 등을 마지막으로 일별하고 돌아섰다. 청년의 소원대로 그가 캐어낸 탄이 훗날의 불이 될 것이라고 고개를 끄떡이며.

    잠에서 깨어나면서 마신 술이 다시 졸음을 불러왔다. 도중에 잠들지 않고 광원 휴게실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청년의 곡괭이질 소리마저 가물가물하게 들렸다. 박종포는 흐린 손전등의 빛 기둥으로 어둠 저편의 휴게실을 찾았다. 마음이 조금씩 들뜨기 시작했다. 이제 잠들면 깨어나지 않고 아주 오래 잠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온몸이 훈훈하게 달아올랐다. 사노맹원들의 얼굴이 하나씩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어디선가에서 개 짖는 소리도 희미하게 피어났다. 박종포는 미소를 지었다. 하품을 하자 눈물까지 흘러내렸다. 손전등 불빛은 마침내 흰색 페인트로 씌어진 광원 휴게실을 찾았다. 박종포는 다시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스티로폼이 깔린 침상에 누운 박종포는 벽에 걸린 ‘광원의 각오’란 낡은 게시판을 비추는 손전등을 껐다.



    “대체……저 개떼가 다 어디서 온 거야?”

    대합실로 나온 젊은 역무원이 팔짱을 끼고 바깥을 내다보다가 던져놓은 말이었다. 박종포는 대합실 출입문을 닫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역무원의 뒤에 대고 중얼거렸다.

    “저 개들이 어디서 왔는지 니 놈이 알 턱이 없지.”

    안개처럼 피어나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돌아가는 역전을 박종포는 전황판을 들여다보듯 세심하게 살폈다. 뽕짝을 틀어놓은 용달차 기사는 반쯤 내린 차창에 턱을 괸 채 구경을 하고 있었다. 특별한 규칙이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도망가는 개를 향해 먼지를 일으키며 우르르 쫓아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뽕짝과 웃음소리, 함성이 화기애애한 삼박자를 이루며 흘러갔다. 대합실에 있는 박종포의 표정만 끝까지 엄숙함을 잃지 않았다. 경기가 끝날 때까진 결코 웃음 한 점 흘릴 수 없다는 철학을 지닌 감독 같았다. 박종포는 철로 건너편 변변한 나무 한 그루 없는 검은 지장산 자락에 서 있는 동원탄좌의 케이지타워를 뒤돌아보며 입 속의 어금니를 앙다물었다. 케이지타워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한껏 발기한 거인의 무지막지한 성기 같았다. 호주머니에서 소주를 꺼내 병나발을 분 박종포는 트림을 뱉으며 케이지타워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선전포고를 하듯.

    “곧 널 접수하러 가마!”

    물고 있던 지폐를 빼앗긴 개들은 긴 혀를 늘어뜨린 채 역전을 떠났다. 남아 있는 개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황이 먼저 손을 털었고 강과 정선댁이 그 뒤를 따라 화장실을 찾아갔다. 역전파라 부르는 조무래기들만 남아서 개들의 꽁무니를 쫓았다. 뽕짝을 내보내던 용달차는 시내로 내려갔다.

    박종포는 시선을 개찰구에 걸어놓고 나무의자에 누웠다. 개찰구는 닫혀 있었다. 녹슨 철로와 자갈, 플랫폼도 뜨거운 햇살에 하얗게 색이 바래갔다. 홍익 매장 뒤편에 정차해 있는 기관차도 마찬가지였다. 끌고 갈 무개차를 오래 전에 잃어버린 채 탈진해서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박종포는 매표소 상단에 걸려 있는 시간표와 시간을 확인했다. 열차가 도착할 시간이었다.

    “종포 형님, 오랜만에 공돈 생겼는데 한잔 빨러 갑시다?”

    “어디로 갈 건데?”

    개찰구를 보며 박종포가 물었다. 황이 목발로 허공에다 가슴과 엉덩이의 볼륨을 맘껏 부풀린 여자를 그렸다.

    “정든 님?”

    누런 이를 드러내며 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가 있어. 조금 있다가 따라갈 테니.”

    “누굴 기다립니까?”

    고개를 끄덕인 박종포는 수전증으로 떨리는 손에서 피어난 라이터 불을 입으로 가져갔다.

    “나 같은 놈…….”

    미세하게 진동하던 대합실이 잠잠해졌다. 플랫폼에 정차한 영동선 무궁화호 열차에서 승객들이 내렸다. 박종포는 나무의자에 앉아 소주를 마시며 열린 개찰구를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사북역에 내린 손님은 많지 않았다. 변변한 그늘조차 없는 건널목을 건너오는 손님들을 살피던 박종포는 어깨에 국방색 가방을 맨 청년을 발견하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대합실을 빠져나간 청년은 가방을 고쳐 맨 뒤 역전 아래편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회색 지붕들을 내려다보았다. 호기심과 두려움이 절반씩 섞인 표정으로. 박종포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청년이 사북이란 탄광촌에 처음 발을 내디뎠다는 것을. 얼마 있지 않아 저 깊고 어두운 막장으로 들어갈 거라는 사실을. 또 얼마 있지 않아 남겨둔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올 것임을. 역전의 땡볕 속에 청년은 우람한 어깨를 지니고 있었지만 쉽게 걸음을 떼어놓지 못했다. 박종포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청년에게 다가갔다. 팔을 건드리자 덩치에 걸맞지 않게 깜짝 놀랐다.

    “담배 가진 거 있소?”

    “예? 아, 예.”

    청년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건네고 불까지 붙여주었다.

    “동탄에 가려고?”

    “예?”

    “동원탄좌 말이야.”

    “아, 예.”

    박종포는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운 손으로 사북역 뒤편을 가리켰다. 변변한 나무 한 그루 없는 폐석산을. 청년은 한참 그 산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꼬라지 되기 싫으면 지금 그냥 돌아가는 게 나을 텐데?”

    청년은 잠깐 병나발을 부는 박종포를 바라보더니 한숨 같은 웃음을 흘리며 대꾸했다.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돌아갈 곳이 없다……죽이는 팔자군.”

    “그럼, 이만.”

    청년은 가방을 고쳐 매고 동원탄좌로 통하는 안경다리를 향했다. 그 사이에 우람했던 어깨는 힘을 잃고 많이 꺼져 있었다. 술 한잔 걸치고 내일 일을 보라는 박종포의 갈라진 목소리가 뙤약볕을 건너갔지만 청년은 돌아보지 않았다. 박종포는 땀을 흘리며 반대편 언덕길을 비틀비틀 내려갔다.

    “저 때 되돌아갔어야 했는데……. 박종포 이 바보 같은 놈!”

    검은 하늘을 이고 잠들다
    폭염의 거리는 엿가락처럼 녹아 흘렀다. 가끔 먼지를 매달고 구부러진 도로를 돌아가는 커피 배달 자가용만 보일 뿐 인적은 찾기 힘들었다. 상가의 외벽과 전신주에 붙어 있는 똑같은 내용의 전단지들과 도로를 가로질러 걸어놓은 플래카드 행렬이 애타게 사람들을 찾고 있었지만 폭염 아래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보였다. 회생당 한약방 옆 골목을 빠져나온 박종포는 허공에 걸린 붉은 글씨를 쳐다보았다. 돌멩이에 깨진 유리창처럼 번져간 두 눈의 실핏줄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검게 그을린 박종포의 볼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을 감았지만 허사였다. 흘러내리기 시작한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다 늙어 눈물이 다 뭐야!”

    주머니로 들어간 박종포의 손에 어김없이 소주병이 달려나왔다. 한약방 처마 밑 그늘에 앉아 박종포는 소주를 마셨다. 주머니에서 이번엔 마른 오징어다리가 나왔다. 오징어다리를 돌돌 말아 입에 넣자 한쪽 볼이 불룩해졌다. 하지만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한약방 주인이 못마땅한 얼굴로 박의 옆모습을 쏘아보았다. 박종포는 침을 끌어모아 오징어다리를 녹였다. 볼은 번갈아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한약방 주인은 박종포에게 한마디 하려고 나왔다가 순식간에 폭염이 달라붙자 포기하곤 도로 들어갔다. 마침내 박종포의 목 울대가 움찔하며 오징어를 삼켰다. 가슴 근처에 붙어 있는 주머니를 뒤져 꽁초를 찾아냈다. 불을 찾느라 잠시 손이 분주해졌다. 담배연기를 뱉어내며 주머니 밖으로 나왔던 소주병과 남은 오징어다리를 다시 거둬들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박종포가 비로소 한약방 주인과 눈길이 마주쳤지만 주인은 재빨리 텔레비전으로 얼굴을 돌려버렸다.

    길은 하얗게 타 들어갔다. 박종포는 고개를 숙인 채 걸었다. 생각 같아선 눈까지 감고 걷고 싶었다. 눈을 감는다고 해서 못 걸을 까닭은 없었다. 어디부터 오르막이고 어디쯤에서 꺾어져야 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십여 미터 간격을 두고 걸려 있는 플래카드 밑을 박종포는 갈지 자 보법으로 조금씩 이동했다. 멀리서 보면 뒤로 걷는지, 앞으로 걷는지, 제자리걸음을 걷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의 양은 줄었지만 완전히 마르지 않았는지 찔끔찔끔 새고 있었다.

    “형님, 빨랑 들어오시오! 지금 준 난리가 났어요, 난리!”

    대낮인데도 어두운 ‘정든 님’에 들어서자마자 황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선풍기 바람이 싣고 온 곰팡내를 맡으며 박종포는 실내를 두리번거렸다. 너무 크게 틀어놓은 텔레비전 소리가 어둠 속에서 왕왕거렸다. 역전 사람들은 ‘정든 님’의 이름만 주인인 맹호부대 김(金)과 함께 홀에 둘러앉아 그 좋아하는 술잔을 잡고 있는 게 아니라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 평소 보기 힘들었던 진지한 얼굴로. 날이 더우니 모두들 조금씩 어떻게 된 것 같았다.

    “뭔 난리가 났다고 호들갑이야?”

    “조용히 하고 테레빌 보시오. 저 속에서 난리가 났으니.”

    “……어디서 많이 보던 데네. 가만……이 동네잖아?”

    텔레비전은 방금 전 박종포가 고개를 숙인 채 비틀거리며 걸어온 사북 거리를 보여주고 있었다. 1980년 4월의 사북을. 컬러로 틀어도 여전히 흑백인 사북을. 이십여 년 전의 그 사북이 천천히 복기되는 것을 박종포는 몸을 떨면서 바라보았다. 안경다리와 사북 지서, 어용 노조위원장의 처가 숨어 있던 주택을 지나 ‘사북 사태’ 최대 격전지인 동원탄좌로 가는 언덕길을 화면은 끈적거리는 땀을 흘리며 올라갔다. 마치 억울하고 원통해 북망산 가는 길에 주저앉은 상여처럼. 박종포는 신음을 삼키며 술병을 움켜잡았다. 선풍기 바람은 뜨끈하게 달아오른 뒷덜미를 식혀주지 못했다.

    “세상이 변하긴 변한 모양이네. 테레비에 나와 저런 얘길 막 해도 안 잡혀가는 걸 보면.”

    “강씨 아저씨, 변한 거 하나도 없어요. 저 양반들 방송 탔으니 이제 잽혀가는 건 시간 문제예요, 시간 문제!”

    “설마……근데 바람 피는 게 전문인 아줌씨가 저쪽 분얄 어찌 그리 잘 압니까?”

    “이 양반이 막장에서 탄덩일 맞더니 정말 몰라도 도통 모르네. 바람을 피워도 정치 경제 문활 알아야 제대로 피울 수 있는 겁니다. 저러다 시대가 변하면 저게 다 빌미가 돼요, 빌미! 지금 이불 쓰고 엎드려 있는 놈들이 뭐할 거 같아요? 잡기장에다 저걸 다 적고 있어요. 나중에 복수하려고.”

    “……형님, 정말입니까?”

    강이 겁먹은 얼굴로 박종포에게 물었다. 박종포는 텔레비전만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술병이 비면 이내 손만 휘저어 다른 맥주병을 움켜잡으면서. 연행되었던 부녀자들과 광부들은 늙은 얼굴로 변해 경찰과 보안대에서 당한 욕설과 고문을 조목조목 말했다. 간혹 눈물을 글썽이며. 옷을 벗어 상흔을 보여주며. 화면에서 새어나오는 그 빛이 얼굴을 물들일 때마다 박종포는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깜짝깜짝 몸을 들썩거렸다.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한 한 노인이 급기야 욕설을 토해놓자 카메라는 황망히 뒤로 물러났다. 그 거침없는 욕설에 용기를 얻었는지 할머니 한 분이 벌떡 일어나 웃옷을 벗어부치다가 저지를 당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어떻게 성추행을 당했는지 재현하려는 의도였다고 얼굴을 감춘 성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박종포의 손이 움켜쥐고 있던 술병이 어둠침침한 ‘정든 님’의 허공을 순식간에 날아가 벽에서 와장창 깨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텔레비전은 말할 것도 없고 이름만 주인인 맹호부대 김씨도 그 기분을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자 강의 손에서 떨고 있던 술병도 뒤이어 날아가 깨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이 주먹을 허공으로 내지르며 소리쳤다.

    “어용 경찰 깨부수자아! 깨부수자아!”

    “대낮부터 술 처먹고 뭐 하는 짓거리야?”

    내실에서 잠을 자던 ‘정든 님’의 실질적인 여주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앞세우고 나타났다. 그러나 평소에도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강은 흥분에 사로잡혀 정황 파악이 서툴렀다. 손에 쥐고 있던 다른 병을 벽으로 날리며 두 번째 구호를 외쳤다.

    “싸북을 해방시키자아!”

    “싸북을 해방시켜 약속의 땅 이룩하자! 이룩하자!”

    발악에 가까운 여주인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예사롭지 않은 눈빛들이 보내는 박수 소리가 ‘정든 님’을 가득 채웠다. 특히 박종포의 눈빛이 그러했다.

    2. 석탄기에서 온 손님들

    태양은 위령탑 위에서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대형 화환이 긴 띠를 매단 채 속속 들어왔다. 국회의원과 각급 기관장들이 보낸 것들이었다. 현직 광부, 시민들은 대부분 일찍 도착해 땡볕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앞자리는 대부분 비어 있었다. 앞자리의 주인들이 도착해야 위령제가 시작될 터였다. 박종포 일행은 위령탑 오른편 숲속에 숨어 행사를 기다렸다. 애당초 객석 끄트머리에라도 앉으려고 했던 계획은 주최측의 강력한 제지로 무산되었다.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대의를 염두에 둔 박종포의 만류로 순순히 물러난 것이었다. 화가 덜 풀린 황이 목발로 행사장을 가리키며 불만을 토했다.

    “내가 형님 아니었으면 아까 다 때려부쉈을 것이오. 개자식들, 이 다리가 왜 이 모양인데!”

    박종포는 황의 잘려나간 다리를 힘없이 덮고 있는 바짓가랑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종포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힘이 있었다.

    “잘 참은 거야.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우리 존재를 온 탄광촌에 각인시킬 사건이 일어나는 거지. 지금까지 소외와 천대의 세월이었다면 이제부턴 진짜 노동자 세상을 건설하는 거야. 천민 자본주의의 쇠사슬에서 벗어나는 첫 사건으로 훗날 역사에 기록될 거야. 그러니 모두들 맡은 바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한 뒤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 축배를 들자구.”

    “경찰에 잡히면 뭐라고 말해요?”

    “아따, 정선댁? 대체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들을 거요? 묵비권, 아니면 술 취한 척하라니까!”

    “그러면 정말 풀어줄까요?”

    “안 풀어주면 우리가 떼거리로 지서에 몰려간다니까 그러네!”

    “쉿! 행사가 시작될 모양이야. 자 준비들 해.”

    비었던 앞자리가 모두 채워졌다. 탄광촌 국회의원과 군수, 경찰서장, 동원탄좌 사장의 양편으로 서열에 맞게 검은 양복들이 흰 장갑을 낀 채 도열했다. 땡볕은 안중에도 없다는 근엄한 표정을 지은 채. 그러나 국민의례가 모두 끝나기도 전에 앞자리의 검은 양복들은 수건을 꺼내 이마와 목을 닦느라 바빴다. 담배를 피우며 그들을 노려보는 박종포의 눈매가 매섭게 빛났다. 정선댁과 강은 이미 두 손에 계란을 들고 있었다. 단상 왼편의 사회자가 마침내 국회의원을 소개하자 박종포의 오른손이 천천히 허공으로 올라갔다. 정선댁의 침 삼키는 소리가 국회의원이 걸어나가는 짧은 침묵을 깨뜨리기 무섭게 박종포의 손과 명령은 일제히 위령탑을 가리켰다.

    “돌겨억!”

    절뚝거리며, 뒤뚱거리며, 지그재그로, 물밀 듯이 숲을 통과한 박종포 일행은 아직 단상에 오르지 못한 국회의원과 앞자리에 도열한 검은 양복을 겨냥해 무차별 계란 폭격을 가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공격에 검은 양복들은 속수무책으로 깨진 계란을 뒤집어썼다. 젊은 행사 요원 몇이 뛰어왔지만 황의 목발과 월남전 맹호부대 용사인 김의 각목을 뚫고 단상으로 올라올 수 없었다. 검은 양복들은 뒷걸음질을 치다 넘어지거나 뒷자리의 사람들 속으로 숨는 게 고작이었다. 얼굴에 계란을 정통으로 맞고 불끈한 경찰서장은 습관적으로 오른쪽 바지춤을 뒤졌으나 권총을 지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기 무섭게 웃옷을 벗어 방패로 사용하며 부하 직원을 찾았다. 반면 앞자리의 검은 양복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긴 했지만 곧 단상을 점령한 사람들이 박종포 일행이라는 것을 확인하곤 웃음을 흘리거나 어이없다는 얼굴로, 날아가는 계란의 궤적을 살피느라 눈동자를 바쁘게 움직였다.

    박종포의 오른손이 다시 허공으로 올라가자 거짓말처럼 허공은 이내 조용해졌다. 미처 눈치채지 못한 강의 계란 하나만 외롭게 날아가서 쓰러진 의자의 다리에 맞고 깨졌다. 사람들은 모두 박종포의 오른손 끝을 주시했다. 고한 정암사의 일광 스님만 손가락이 가리키는, 작열하는 태양을 보느라 손 차양을 만들었다. 술에 취해 붉게 상기된 얼굴의 박종포는 폈던 오른손을 지그시 뭉쳐 주먹으로 만든 뒤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으로 시선을 천천히 이동시킨 뒤 선사가 일갈을 하듯 소리쳤다.

    “싸북은 노동자 땅이다아!”

    열광하는 함성과 박수가 박종포의 뒤편에서 일당백으로 쏟아졌고 앞쪽에선 우레와 같은 웃음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태양은 변함 없이 희고 높은 위령탑 위에서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점심 무렵이 되었지만 계속 같은 굵기로 역전의 아스팔트를 두드렸다. 역전에 내린 비는 고이지 않았다. 내리기 무섭게 언덕길을 타고 내려갔다. 대합실 입구에 놓인 텔레비전에서는 게릴라성 폭우를 동반한 구름이 전국을 쏘다니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언제 그칠지, 그쳐도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비였다. 박종포는 나무의자에 누워 눈을 감은 채 텔레비전 소리를 들었다. 술을 마시는 일행들은 순직 광부 위령탑 점거 시위의 흥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틀이 지났는데도. 그러나 박종포의 마음은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 좋아하는 술까지 한나절이나 참아가며 앞으로의 계획을 짜는 데 골몰했지만 일목요연하게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위령탑 점거 시위는 첫 포성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게릴라성 폭우도 가뭄의 땅을 예측하지 못하면 그저 흔하게 쓸려 가버리고 마는 물일 뿐이라는 게 박종포의 지론이었다. 뚜렷한 대의와 명분의 구축, 일사불란하게 행동할 수 있는 조직력, 온갖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의연하게 버틸 수 있는 정신력, 이 세 가지 튼튼한 기반이 전제돼야만 사북을 노동자 세상으로 만들 수 있었다.

    박종포는 결연한 얼굴로 눈을 떴다.

    굵은 빗발은 역전과 역전 아래편 건물들 사이사이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의 붉은 글씨들을 장중하게 적시고 있었다. 눈을 뜨길 잘했다고 박종포는 고개를 끄덕였다. 플래카드에서 떨어지는 빗물은 마치 깊고 어두운 막장에서 스러져간 동료들의 핏방울 같았다. 박종포는 뜨거워지는 눈을 지긋이 누른 뒤 시국토론에 열중해 있는 동료들을 둘러보았다. 한 면에 걸쳐 폐광 후 사북의 흉흉한 운명을 강원일보는 소주병과 일회용 술잔, 과자 부스러기에 아무렇게나 깔려 있었다. 비록 술에 취해 있었지만 녹슨 철길을 적시는 빗줄기와 빗소리를 배후 세력으로 두고 사북의 어두운 앞날을 걱정하는 표정들은 사뭇 진지했다. 술잔을 비운 박종포는 동료들의 시선과 일일이 눈을 맞춘 뒤 입을 열었다.

    “동지들!”

    난데없이 튀어나온 ‘동지들’이란 말에 박종포는 목이 메어오는 것을 느꼈다. 두 눈으로 뜨거운 무엇이 차 올랐다. 박종포를 바라보는 눈동자들도 감격에 젖어가고 있었다.

    “우리 동지들은 이틀 동안 유치장에 갇혀 갖은 고초를 당했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고 꿋꿋하게 저항한 결과 이렇게 다시 만나 시국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하늘도 동지들의 투쟁에 감격했는지 비를 내려주고 있습니다. 저 또한 다시 한번 동지들의 혁혁한 전과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냅니다! (박종포를 따라 빗소리보다 묵직한 박수가 대합실에 퍼졌다) 바야흐로 이곳 탄광촌은 지금 절명의 위기 속으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습니다. 동지들! 지난 시절 우리가 갑방 을방 병방이라는 세 개의 막장에 갇혀 이 나라의 에너지를 캐내었던 게 마치 어제 일인 듯 생생한데 저들 극악무도한 어용 세력들은 탄광 폐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아예 탄광촌 자체를 없애려는 계획을 수립했고 이미 도처에서 그 계획을 실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위기 속에서 우리 전직 광부 동지들은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어떻게 행동해야 우리 후배들에게…….”

    상행선 화물열차가 빗발을 뚫고 사북역을 통과하고 있었다. 박종포는 목소리를 더 높였지만 기차 소리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잠시 연설을 멈췄다. 빗물에 번들거리는, 차창 하나 없는 검은 화물열차는 마치 저승으로 가는 기차처럼 보였다. 우산도 없이 플랫폼에 서서 붉은 깃발을 흔드는 역무원의 모습도 망자를 배웅하는 침통한 문상객 같았다. 박종포의 연설을 듣던 대합실의 사람들은 그 틈을 이용해 재빠르게 술잔을 비우고 안주를 씹었다.

    “저쪽 분위기도 심상찮아. 곧 뭔가 터질 것처럼 아슬아슬해.”

    ‘정든 님’의 맹호부대 김이 미안한지 박종포에게 술잔을 건네며 동원탄좌 분위기를 전했다. 황이 거들었다.

    “겉으로 내색은 못하지만 다들 위령탑 점거 시위를 통쾌해 하더라구. 특히 계란 투척 건은 대 히트작이야! 나태한 기관장들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사건이지.”

    박종포는 트림을 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화물열차의 꼬리가 역을 빠져나갔다. 젊은 역무원은 근엄했던 자세를 풀고 비 맞은 개처럼 역사로 뛰어왔다.

    “동지들! 튼튼한 조직력만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동지들도 눈치챘다시피 얼마 있지 않아 제2의 사북사태가 일어나리란 것은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우리는 그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저 80년처럼 또다시 어용 세력들에게 당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조직력과 정신력, 뚜렷한 이념으로 무장해야 하는 겁니다.”

    “방법이 있나요?”

    알록달록한 몸뻬를 입은 정선댁이 엉덩이에 붙은 옷을 떼어내며 물었다. 강은 그녀의 엉덩이를 거슴츠레한 눈으로 훔쳐보았다. 정선댁은 사북사태가 끝난 뒤 경찰에게 끌려가 입에 담지도 못할 봉변을 당한 터였다. 길바닥으로 나서게 된 그녀의 모든 불행은 그곳이 출발선이었다. 박종포는 망설이지 않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강한 투쟁만이 그 방법이지요. 저 비가 그치면 곧바로 행동에 들어갈 겁니다. 보안 관계상 지금 알려드리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형님, 그나저나 우리도 조직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짭새들이 부랑자 부랑자 하는데 듣기에 영 안 좋습디다.”

    “옳소! 조직 이름이 있어야 경찰 새끼들이 깔보지 않지. 강씨도 이제 보니 제법이야!”

    황이 목발로 바닥을 두드리며 찬성했다. 박종포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좌중을 돌아본 뒤 합당한 이름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채근하자 모두들 이름짓기의 장고에 들어갔다. 짙은 회색 구름이 철길 건너편 지장산 자락의 저탄장까지 내려와 있었다. 저탄장에서 시작된 검은 물줄기가 역사의 철길로 폭포가 되어 떨어졌다. 박종포는 연설로 칼칼해진 목을 소주로 풀었다.

    “광부 동맹이 좋겠어.”

    “사북 광부 동맹!”

    “현직이 아니니까, 사북 전직 광부 동맹!”

    “여자는 왜 빼요?”

    대합실 안이 시끄러워졌다. 젊은 역무원이 주의를 주었지만 허사였다. 역무원은 소주 한잔 얻어 마시고는 귀찮은지 이내 돌아갔다. 박종포는 그들이 꺼내놓은 이름들이 한 방향으로 길을 트도록 도움만 주었다. 미래의 조직원들 모두의 마음에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지상의 모든 것들과 부딪쳐 깨어지는 소리를 지르는 빗소리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조직의 이름이 지어졌다. 준비한 술이 동난 뒤였다. 그들은 피곤했지만 자부심이 넘치는 얼굴로 박종포가 신문지에 커다랗게 쓴 이름을 들여다보았다.

    ‘사북 전직 노동자 동맹’

    박종포는 그 옆에다 근래 약칭 사용의 흐름을 따라 화살표를 긋고 다시 썼다. 그리고 이해하기 쉽도록 ‘사북 전직 노동자 동맹’의 첫 번째, 다섯 번째, 아홉 번째 글자를 동그라미에 가두자 모두들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박수와 함성이 빗소리를 물리치고 대합실을 가득 메웠다. 이름하여 ‘사노맹’의 탄생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동원탄좌 사택이 있던 지장산 자락을 향해 뚫린 길은 아스팔트로 새롭게 포장되었지만 걷기에는 쉽지 않았다. 사북 시내에서 올려다보면 검은 폐석산에 가려 보이지조차 않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지나가는 차량을 세울 수도 없었다. 세워도 멈추지 않을 테지만. 다행히 보름달에 가까운 달이 중천에 떠서 어렴풋하게나마 길을 밝혔다. 가로등조차 없었다. 새롭게 들어선 메인 카지노로 가는 주도로는 고한에서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동원탄좌 본 갱 입구를 지나면서부터 조직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숨을 헉헉거렸다. 가래침 뱉는 소리가 밤새의 울음마저 잠재울 정도였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체력 문제였다. 박종포는 제일 뒤편에 서서 조직원들의 산악 행군을 독려했다. 젊은 시절에는 시내에서 사택까지 이십 분이면 족했는데 세월은 어느새 그 자리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야아, 저놈아들이 왜 산꼭대기에다 건물을 때려 짓는가 했더니 이제 알겠네! 모두 쉬었다 갑시다!”

    목발을 팽개친 황이 아스팔트에 드러누웠다. 며칠 전 사북을 적셨던 비가 간절하게 생각나는 밤이었다. 박종포는 술병에 담아온 물을 황에게 권했다. 불편한 다리를 감안해 사북에 남아 후방 지원을 권고했지만 황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것이다. 자기를 장애인 취급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다며 권고를 잘라버렸다.

    “형님, 별이 많소!”

    박종포는 황의 말이 가리키는 별들을 훑으며 소주 몇 모금을 들이켰다. 별은 많을 뿐더러 영롱하게 반짝거렸다. 몸 속으로 퍼지기 시작한 소주는 숯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집채만한 탄더미가 이 다릴 덮칠 때도 저렇게 많은 별이 떴었지…….”

    “에이, 막장에 무슨 별이 뜬다고 그래!”

    “강가야, 니 정신이 갈 땐 별이 안 뜨디?”

    “별은 무슨 별! 시커먼 죽탄에서 빠져나오기 바빴는데.”

    “강가야, 별은 하늘에도 뜨지만 마음에도 뜨는 거다. 니가 그 조활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조환지 괴변인진 모르겠지만 아직 그런 별은 못 봤소.”

    가쁜 숨과 손 떨림을 달래려고 사노맹 조직원들은 술을 택했다. 거사를 코앞에 두고 있었지만 적당량의 알코올은 감초와 같은 거라고 박종포는 결론지었다. 폐 속에 검은 탄가루를 한 움큼씩 담은 채 살아가려면 알코올은 독이 아니라 약인 셈이다. 들끓는 숨소리가 조금씩 가라앉을수록 밤하늘의 별들은 더 초롱초롱해졌다. 낮 동안 달아올랐던 아스팔트는 별의 온기인 양 따스했다. 황은 오래 전에 잘라버린 한쪽 다리의 장례식 상황을 별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몇몇 별들은 숨이 막히는지 황의 얘기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하늘 저편으로 짧은 섬광만 남기고 사라졌다. 황도 손에 들고 있던 빈 술병을 놓아버렸다. 경사가 심한 아스팔트길로 빈 병이 자갈 구르는 소리를 지르며 굴러갔다. 그 소리가 사라지자 황의 손때 묻은 목발이 검은 지장산 자락을 가리켰다.

    “자, 갑시다!”

    조직원들은 어둠보다 깊은 침묵에 잠긴 채 황의 흥얼거리는 노래를 들으며 언덕길을 올라갔다. 저 아래 사북은 시냇물처럼 낮게 엎드려 자잘한 개망초꽃 같은 불빛을 띄워놓고 있었다. 대열의 끝에 선 박종포는 산자락이 마련해준 어둠 속에서 흐르는 눈물을 남몰래 닦았다. 둥근 달도 산등성이 너머로 잠깐 숨어 주었다.

    검은 하늘을 이고 잠들다
    “불야성이구만!”

    황야의 무법자처럼 일렬 횡대로 아스팔트 언덕 위에 선 다섯 사람은 지장산 자락에 또 하나의 산으로 우뚝 서 있는 이십여 층 높이의 휘황찬란한 카지노 건물을 바라보았다. 달빛과 별빛은 카지노에서 뿜어 나오는 불빛의 위세에 눌려 하늘 저만치로 밀려나 있었다. 산아래 사북의 불빛들도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촛불처럼 가랑가랑 떨었다. 황이 목발로 아스팔트를 두드리곤 입을 열었다.

    “저놈의 도깨비 같은 노름판을 세우려고 우리가 두더지처럼 땅속을 파 들어갔단 말이지!”

    “형님, 집 나간 내 아들놈이 저 자리에서 태어났소.”

    맹호부대 김이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지장산 사택 터의 180도 달라진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박종포는 소주로 타는 목을 축였다. 얼마 남지 않은 술은 정선댁의 입에서 동이 났다. 사래가 들린 듯 기침을 쏟아놓던 정선댁이 카지노 오른편을 가리켰다.

    “아마 저쯤이 내가 신방을 차렸던 곳이지…. 한겨울에 정선 읍내서 시집 왔는데, 아닌 말로 오라지게 추웠지. 다 왔나 했더니 신랑이란 작자가 눈이 허연 산꼭대길 가리키드라고. 내 인생 새끼줄 모양 꼬이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지.”

    “아, 말은 바로 합시다. 정선댁 인생 꼬인 건 바람 피우다 들통난 뒤겠지.”

    “황씨 아저씨, 함부로 남 인생 재단하지 마시우. 그 인간이, 자기는 탄 캐는 광부가 아니라 낮에만 일하는 기술자라고 속인 게 발단이우. 땅속에서 나오질 않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 긴긴 밤 나더러 뭘 하란 얘기우? 그 인간도 원인 제공을 했다 이 얘깁니다!”

    “남편은 돈 벌려고 막장에서 몸이 부서져라 탄 캐는데 밤이 길다고 집 나간 게 지금 옳다고 우긴다?”

    “황씨 아저씨? 내가 지금 그 작자 고생 안 했다고 우기는 게 아니오. 사람이란, 아니 사람 맴 조화란 본인도 어쩌지 못하는 데가 있다 그거요. 사정이 그러하니, 결론은 그 작자도 불행이지만 나도 똑같이 불행이다, 이 말이오.”

    호주머니에서 새 술병을 꺼내 몇 모금 들이켠 박종포는 두 사람의 말다툼을 제지했다. 조직원들은 박종포의 지시에 따라 도로 주변에 널려 있는 폐석을 양껏 호주머니와 가방에 담았다. 카지노까지는 300m가 될까말까한 거리였다. 더군다나 건물 앞쪽은 자작나무들이 있는 공원이어서 접근이 더 용이했다. 박종포는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산에 오르기 전 수차 설명하고 시범을 보인 행동 요령을 간략하게 줄여 다시 숙지시켰다. 조직원들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엄숙했다.

    “동지들! 우리 광원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묻혀 있는 곳에 쳐들어온 저 거대한 도깨비를 더 이상 두고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지금 우리는 부패하고 이기적인 자본주의의 심장을 향해 정의의 폭탄을 투척하려 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한 장면 속으로 바야흐로 들어가려는 순간입니다. 동지들!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고 다시 만납시다. 우리 사노맹의 힘찬 투쟁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합니다. 노동자 세상이 되는 그 날까지 기필코 함께 갑시다!”

    “사노맹 만세!”

    묵직한 저음의 구호와 함께 사노맹 조직원들은 하나둘 공원의 나무 그림자 속으로 속속 흩어졌다. 박종포의 오른편을 맡은 황씨는 목발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저만치 앞서 있었다. 첫 투척의 영예를 자신에게 달라고 황씨는 거듭 요구했던 것이다. 뜨거운 무엇이 목젖을 치밀고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박종포는 오른손에 쥔 폐석이 으스러질 정도로 세차게 움켜잡았다. 젊은 시절 막장에서 모두 잃어버린 힘이 어느새 되돌아온 것만 같았다.

    “카지노는 물러가라!”

    황씨의 첫 고함이 마침내 지장산의 여름밤을 뒤흔들었다. 허공을 가로질러간 폐석은 목표로 삼은 대형 유리창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그러나 유리창은 금이 가거나 깨어지지 않았다. 제2, 제3의 폐석이 날아갔지만 역시 허사였다. 유리창은 스프링처럼 폐석을 퉁겨냈다. 출입문 근처에서 있던 검은 양복이 소리를 지르며 황씨에게로 달려왔다. 어디선가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끈적끈적한 공기를 갈랐다. 막 공원을 빠져나온 맹호부대 김과 박종포가 연이어 폐석을 던졌지만 유리창이 일시에 금이 가거나 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출입문을 빠져나오는 검은 양복들이 점점 많아졌다. 강과 정선댁도 폐석을 던지기 시작했다. 강의 고함은 호루라기 소리처럼 카랑카랑했다.

    “카지노는 자폭하라아!”

    정선댁이 그 뒤를 이었지만 흥분해서 엉뚱한 구호를 내뱉었다.

    “꼬인 내 인생 보상하라아!”

    조직원 한 명당 세 명의 검은 양복들이 달려들었다. 딱딱한 구둣발이 날아왔다. 검은 양복들은 모두 건장한 청년들이었다. 준비한 폐석을 반도 투척하기 전에 벌어진 상황에 박종포는 당황했다. 주머니에서 꺼낸 소주병을 날렸지만 검은 양복은 간단하게 피했다. 황만이 유일하게 목발을 장검처럼 휘두르며 카지노를 향해 조금씩 나아갔다. 검은 양복 한 명은 황의 목발에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 당해 일어나지 못했다. 박종포도 마침내 시멘트 바닥에 쓰러졌다. 검은 구둣발들이 몸의 곳곳을 밟고 있어 꼼짝할 수 없었다. 주변은 일시에 노랗고 까맣게 변하기를 반복했다. 경찰차의 경보음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한쪽 볼을 시멘트 바닥에 붙인 채 박종포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사전에 계획이 누설된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어디서부터 잘못됐단 말인가. 대형 유리창은 단단한 폐석에 맞고도 왜 깨어지지 않는 것일까……. 박종포는 한쪽 눈으로 거대한 카지노 건물을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저편에서 유리창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겨울 밤 마을 개천의 얼음장이 쩍 갈라지던 그 소리가. 기어코 황이 해낸 것이었다. 이번 카지노 전투는 황의 승리라고 마음에 새긴 뒤 박종포는 힘을 풀었다.

    더위는 경찰서 안이라고 해서 비껴가지 않았다. 땀에 전 하룻밤을 유치장에서 보낸 사노맹 조직원들은 잠이 덜 깬 얼굴로 유치장을 나왔다. 지난 번 일로 이미 경험을 쌓은 터라 표정들은 무덤덤했다. 다만 검은 양복들에게 얻어맞은 데가 욱신거릴 뿐이었다. 검은 양복들은 피 안 흘리고 사람을 패는 데 능수능란한 인간들이었다. 박종포를 선두로 조사실에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카지노 사장이 목덜미의 땀 닦기를 중단하고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 있던 형사도 덩달아 일어났다. 뒤편에 서 있는 검은 양복의 비서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이구, 이거 날씨도 더운데 밤새 고생하셨습니다!”

    “…….”

    사장이 직접 나타난 것은 의외였다. 사장은 형사의 양해를 구한 뒤 사노맹 조직원들에게 담배를 돌리고 일일이 불을 붙여주었다.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담배 맛은 달았지만 사장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알려고 박종포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형사가 입을 열었다.

    “정식으로 하면 당신들 모두 영창감이야. 카지노 사장님 배려로 훈방되는 거니 이 은혜 잊지들 말라구.”

    “조금 전 형사 선생으로부터 여러분의 불만 사항을 모두 들었습니다. 저희가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카지노에선 단계적인 폐광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을 이미 세워놓고 있습니다. 일일이 다 열거하기가 힘들 정돕니다. 조금 더 인내를 가지고 지켜봐 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왕년의 산업전사 아닙니까. 여러분을 위한 지원 사업도 곧 마련하겠습니다. 이곳 폐광 지역은 이제 새로운 고원 문화 단지로 탈바꿈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정말이지 여러분 같은 지역민들의 성원이 절실합니다. 도와 주십시오. 어젯밤은 미처 상황 파악을 못한 저희 직원들이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제가 이미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시말서를 받아 놓았습니다. 다시 한번 카지노를 대표해서 제가 사과 드리겠습니다.”

    사장은 형사와 악수를 나누고 비서와 함께 나갔다.

    “이봐, 황씨 아저씨? 당신이 깬 유리창 값이 얼만지나 알아? 카지노 사장님께서 없던 일로 해주셨으니 마음에 새겨두라고. 그리고 박종포씨? 당신 자꾸만 엉뚱한 일 벌이는데 앞으로 조심해요. 봐주는 것도 한두 번입니다. 모두 잘 들어요. 싸노맹? 그 개뼉다구 같은 거, 나라에서 허가한 조직이야? 앞으로 주시할 테니 처신들 잘하라구! 이게 뭐야, 애들 장난도 아니구.”

    경찰서 밖은 그늘 한 점 없었다. 다섯 사람은 갈 곳을 잃은 듯 땡볕 속에 서 있었다. 그때 저편 나무 그늘 아래 서 있던 검은 자가용에서 내린 검은 양복의 사내가 그들에게 뛰어왔다. 카지노 사장의 비서였다. 비서는 사장님께서 장소가 장소인지라 전해주지 못했다면서 안주머니에서 꺼낸 흰 봉투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정선에서 사북으로 돌아갈 차비와 식대라고 하였다. 다섯 사람은 그 봉투를 손에 든 채 모퉁이를 돌아가는 검은 자가용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입 바람으로 봉투를 열고 그 안을 들여다본 황이 중얼거렸다.

    “한 장 더 깨면 하룻밤 오입비 정돈 모으겠네…….”

    “비싸기두 해라! 나한테 오면 사흘 밤이유!”

    정선댁의 항변에 모두들 헉헉거리는 웃음을 풀어놓았다. 땡볕은 그들의 머리 위에서 육중한 부처처럼 앉아 있었다.

    사북으로 돌아온 이후 박종포는 동원탄좌로 올라가는 언덕길 아래 폐사택촌에서 꼬박 사흘을 두문불출했다. 물론 그 사흘을 여자와 뒹굴었을 리는 만무했다. 그 사이사이 사노맹원들이 입수한 동향을 분석하며 다음 전투를 치를 작전을 짜느라 바빴던 것이다. 카지노 사장에게서 받은 돈으로 술을 마시며. 폐사택촌은 갈 곳 없고 방황하는 사람들과 짐승들의 보금자리였다. 전기와 수도는 끊긴 지 오래됐지만 나름대로 흥취도 머물러 있는 곳이었다. 허물어진 미로 같은 좁은 골목골목과 다닥다닥 붙은 집들에는 그곳을 떠나간 탄광 사람들이 남기고 간 수많은 사연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박종포가 자신의 거처를 폐사택촌으로 정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였다. 정통성 확보 면에서 단연 으뜸인 장소였다. 비록 술에 취해 사흘을 건넜지만 박종포는 분명하게 감지했다.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술렁거리는 사북의 공기를. 카지노 사장의 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고서는 자신들의 적인 사노맹원들에게 봉투를 건넬 까닭이 없었다. 온몸이 근질거리는 인고의 사흘이 지나가자 맹원들이 찾아왔고 비로소 박종포는 오래 전에 쓰러진 대문을 밟고 밖으로 나왔다.

    사북을 내려다보는 지장산 위에서 태양이 붉게 타오르는 늦은 오전이었다. 플래카드와 현수막은 거리를 온통 덮어버릴 것 같았고 대부분의 상점들은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태양만이 작열했다. 박종포는 맹원들과 함께 사북 성당 급식소로 가지 않고 회생당 앞 하얗게 타 들어가는 거리를 건너 사북 시장 귀퉁이, 돼지 내장 냄새가 진동하는 춘천집으로 몰려가 해장국을 시켰다. 속을 든든하게 채워야 긴 전투를 치를 수 있는 법이었다. 사흘 간의 휴식을 취한 맹원들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급식소를 택하지 않은 것은 백번 잘한 일이었다. 전투에 있어 사기 진작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춘천집에서 박종포는 지난 사흘 동안의 구상을 다시 하나하나 설명했다. 질문과 끄덕임, 결의가 물처럼 흘러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여러분들 임무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우리가, 고독한 다섯이 아니라 시민과 노동자들을 이끄는 주역이 되느냐 못 되느냐는 이번 일에 달려 있습니다.”

    낮지만 단호한 말로 마무리한 뒤 박종포는 술잔을 들어 건배를 제의했다.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마저 비장하게 들렸다. 춘천집의 퉁퉁한 여주인은 미닫이문에 기대 졸고 있었다.

    그들은 지붕에서 내려온 긴 전선줄에 매달린 백열등이 낮인데도 빛을 발하는 좁고 침침한 사북 시장을 걸었다. 바깥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확성기 소리를 따라. 시장 골목은 막장으로 이어져 있는 갱도를 연상시켰다. 맹원들의 모습은 병방 근무(24:00∼08:00)를 마치고 다시 지상의 전투지를 향해 이동하는 현역 광부들 같았다. 저 끝 입구에서 그들의 또 다른 하늘에서 내려온 강렬한 햇살이 시야를 가렸지만 겁낼 일은 아니었다. 확성기 소리는 막장의 전사들인 그들의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빛이 망막을 태워버려 지상의 하늘을 잃어도 상관없었다. 그들에게는 다른 하늘이 존재하고 있으므로.

    마침내 다섯 사람은 밖으로 나와 폭염의 거리에 우뚝 섰다.

    “야, 분위기 나네!”

    언제 준비했는지 선글라스를 쓴 맹호부대 김이 거리의 인파를 훑어보며 말했다. 피켓을 들거나 띠를 두르고 걸친 시민들은 사북역을 향해 삼삼오오 이동하고 있었다. 집회를 알리는 확성기는 트럭 위에 매달려 벌린 입을 다물지 않은 채 반복해서 참여를 호소했다. 황은 띠를 들고 뛰어가는 청년을 불러 다섯 개를 확보했다. 어떤 청년은 호외를 뿌리듯 구경꾼들에게 전단을 나눠줬다. 어떤 이들은 벌써부터 폐광촌을 살려내라고 고함을 쳤다. 박종포와 맹원들도 띠를 두른 채 사방을 예의주시하며 사북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유명 약국 앞에 서 있는 경찰은 무전기에 대고 무엇인가를 전하느라 바빴다. 박종포가 재빨리 신호를 보내자 맹원들은 곧 인파 속으로 흩어졌다. 태양은 무성한 플래카드 위에서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박종포는 전단지로 햇살을 가리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드디어 사북 해방 운동에 불이 붙는군…….”

    걸음 걸음에 힘을 실은 박종포의 모습은 사뭇 위엄을 내뿜었다. 술에 취해 사북역 대합실에서 잠들고 바지를 오줌으로 적시던 날들과는 영 딴판이었다.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사북역 광장에 마련된 연단을 노려보며 기회를 기다렸다. 노래와 함성, 날이 시퍼런 구호, 박수 소리가 번갈아 광장을 메웠다. 폐광의 위기로부터 사북을 살려야 한다는 분노의 눈빛들이 폭염 속에서 타올랐다. 연단의 대책 위원장이 쉰 목소리로 그동안의 경과 보고를 마친 뒤 즉흥적으로 집단 삭발식을 하자고 제의했다. 사북 시민 모두가 머리를 깎는 일관된 행동으로 저들에게 우리의 분노를 보여주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잠시 광장이 술렁거렸다. 모두가 삭발을 하다니. 바리캉이 재려가기나 할까. 남자들은 모르지만 여자들은 무리가 아니겠는가. 지원자만 받는 게 옳을 듯싶다. 집행부가 먼저 시범을 보이고 나머지는 지원을 받는 게 낫지 않을까. 하루 종일 머리만 깎다가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닐까……. 이런 소리들이 피어나고 있을 때 박종포의 위엄스럽고 단호한 걸음이 연단을 향해 곧바로 나아갔다. 의심과 회의를 하나하나 밟아버리며. 그 뒤를 목발에 몸을 의지한 황이 따랐다.

    “내가 먼저 깎겠소!”

    “두 번째는 내 차례요!”

    이곳저곳에서 옹달샘처럼 솟아나던 박수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광장을 모두 덮어버렸다. 몇 사람이 더 삭발을 신청했다. 집행부는 부랴부랴 연단에 의자를 준비하는 한편 이발 도구를 가지러 갈 사람을 급히 보냈다. 박종포는 가운데 의자에 앉아 광장을 가득 메운 읍민들의 존경 어린 시선을 훑어보았다. 사진기자들의 카메라도 일제히 박종포를 향했다. 짧은 대책회의를 마친 집행부는 사회자를 통해 궐기대회 일정을 고려해 지금 나온 사람들과 집행부만 삭발식을 거행하겠다고 공표했다. 박종포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연단으로 올라오는 무수한 소리들에 귀를 기울였다. 선구자는 언제나 외로움과 타인의 시기심을 감수해야 하는 법이었다. 박종포는 자신이 집채만한 파도가 일렁이는 망망대해에 외로이 떠 있다고 여겼다. 작은 의자 하나에 의지해. 하지만 길의 방향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사북 읍내 대부분의 이발사가 동원된 삭발식은 금세 끝이 났다. 박종포는 비로소 감았던 눈을 떴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연단으로 달려왔다. 바닥에 떨어진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잠깐 내려다본 뒤 박종포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잡고 군중들에게 삭발식 해제의 포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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