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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 부록|제4회 동아 仁山 문예창작 펠로십 당선작

검은 하늘을 이고 잠들다

  • 글: 김도연

검은 하늘을 이고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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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하늘을 이고 잠들다
어둠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박종포는 신발 밑에서 이를 가는 자갈 소리를 들으며 주머니란 주머니는 모두 뒤졌지만 불을 찾지 못했다. 서늘한 기운이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어디선가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도 들려왔다. 두 발은 쉽게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너무 지독한 어둠이라 마치 장님이 된 것만 같았다. 침 넘어가는 소리가 너무 커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바람 한 점 볼을 스치고 가지 않았다.

“여기…누구 없소?”

간신히 내뱉은 그의 작은 목소리는 웅웅거렸다. 제풀에 놀라 뒷걸음질치는 그의 발 밑에서 다시 자갈이 이를 갈았다. 그는 조심조심 두 팔을 어둠 속으로 내밀었다. 몇 번의 헛손질 끝에 무언가가 만져졌다. 손바닥으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갱목이었다. 이번에는 한쪽 발로 바닥을 더듬거리다가 곧 멈췄다. 엉거주춤 쪼그려 앉아 발이 걸린 곳으로 손을 가져갔다. 차가운 쇠의 감촉에 감전이라도 된 듯 흠칫 놀란 손이 퉁겨졌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어둠 속에 있는지 분명하게 눈치챘다.

“나 박종포야! 아무도 없는가? 내 목소리 안 들려?”

쩌렁쩌렁한 그의 목소리가 만든 메아리만 놀란 박쥐처럼 갱도의 어둠 속으로 흩어졌을 뿐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탄덩이로 레일을 두드렸다. 쇠를 울리는 소리가 검은 뱀처럼 어딘가로 계속해서 흘러갔지만 싸늘한 레일에 붙인 귓바퀴 속으로 들어오는 답신은 없었다.

“뭐야! 나만 두고 모두 어디로 간 거야?”

그러나 대상을 찾지 못한 고함소리는 고스란히 그의 귓속으로 되돌아와 아우성을 쳤다. 그는 두 손으로 어둠을 휘저으며 일어나 방향을 가늠했다. 한 방향은 막장일 것이고 다른 방향은 지상으로 연결되는, 빛 한 점 없는 가혹한 갱도 위에 그가 있었다. 손길은 점자책을 읽는 맹인처럼 어둠 속을 짚어나갔지만 곧 힘을 잃고 호주머니 속으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박종포는 오른손과 왼손으로 양편의 어둠을 한 줌씩 끌어모아 번갈아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왼손에게 부여한 특혜에 만족한다는 끄덕임이었다. 신뢰할 만한 후광을 업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젊은 날들을 고스란히 보낸 갱도였지만 걸음은 순탄하지 않았다. 몇 걸음 못 가 침목에 걸려 비틀거렸고 방향을 잘못 잡아 하리(천장에 대는 갱목)를 받치는 아시(벽면에 대는 갱목)에 이마를 찧었다. 탄좌의 수많은 갱도 중에서 어느 지점을 걷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발 밑의 철로가 막장 아니면 지상으로 연결돼 있다는 기억뿐이었다. 그러나……기억은 그것뿐이었다. 아무도 없는 탄광 속에 왜 들어와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도. 매캐한 다이너마이트 냄새와 눈을 뜰 수 없게 만드는 탄진, 쉴새없이 흘러내리는 땀방울도 언제 감쪽같이 사라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보이는 것은 어둠이 전부였다. 기억도 그 어둠 속에 묻혀 빛을 발하지 못했다.

침목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비틀거릴 때마다 몸 속의 기운이 양동이에 담긴 물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박종포는 언제 마지막 밥을 먹었는지 떠올려보았지만 역시 감감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려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호흡이 가빠지지 않는 걸 보니 공기는 충분한 것 같았다. 술과 담배 생각을 하자 오른손이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빛 한 점 없는 땅속이었지만 몸은 잊어버린 게 없는 모양이다. 졸음도 마찬가지였다. 박종포는 좀더 편안하게 갱목에 몸을 기댔다. 눈을 뜨고 있어도 무엇 하나 볼 게 없는 눈은 눈꺼풀을 슬며시 닫고 있었다.

“컹!”

잠은 박종포의 몸을 갱목에 기대앉은 자리로부터 수천 미터 아래로 더 끌어내리는 중이었다. 마치 새로운 갱을 뚫어나가는 것 같았다. 용암이 들끓고 있다는 지구의 저 깊은 속까지.

“컹-!”

볼 것 하나 없는 밖을 향해 박종포는 간신히 눈꺼풀을 삼분의 일쯤 밀어 올렸다. 개가 짖다니. 캄캄한 막장을 더듬고 있는 존재가 또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것도 사람이 아닌 개가. 박종포는 허물어지고 있는 몸을 갱목에 의지해 일으켜 세웠다. 가느다란 현이 울리듯 어둠을 건너오는 개의 울음을 따라 휘청거리는 걸음을 옮겼다. 두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소리쳤다.

“멍멍아?”

“컹-!”

막장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당연하다고 박종포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산부부터 시작해서 선탄부까지 다다른 광부 인생의 갑방, 을방, 병방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살아온 지난 몇 년은 과도한 빛에 노출된 현기증의 날들뿐이었다. 흘러간 젊음을 막장에 남겨놓고 바깥으로 나왔지만 짙은 선글라스도 그의 휘청거림을 막아주진 못했다. 폐에 탄가루가 쌓이더라도 그가 살 곳은, 돌아갈 곳은 어쩔 수 없이 막장이었다. 달리 막장 인생이라고 했던가. 쓰러지더라도 갱목을 지고 사갱을 기어오르는 게 낫지 고층 아파트의 수위실에서 까딱까딱 조는 일은 도무지 못해먹을 일이었다. 졸았다고, 술을 마셨다고, 피둥피둥 살이 찐 부녀회장의 구박을 들으며 산 세월은 지울 수 있다면 차라리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지장산 속 깊고 깊은 막장으로의 귀환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가족조차도. 박종포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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