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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부록|남성작가 5인의 릴레이 에세이

버리고 떠나기

버리고 떠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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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 헛된 바람들과, 어쩔 수 없는 어둠과, 이길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 찬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은 나. 그 속엔 누구도 쉴 자리가 없다. 이 여름에는 나를 비우리라.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스쳐가는 것들을 붙잡지 않으리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그 무엇에도 붙들리지 않으리라. ‘집착’을 주제로 5인의 작가가 털어놓는 인생 고백. 텅 빈 공간 속에 홀로 선 ‘나’를 돌아본다.
◆ 저기 피어 있는 풀꽃 한 송이 ◆

나는 늘 이렇게 생각했다. 늘 그 때가 좋았다가 아니라 늘 지금이 좋다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는 버릴 수도, 당장 고칠 수도, 그렇다고 비켜가거나 뛰어넘어갈 수가 없다.

◇ 김용택 시인 yt1948@hanmail.net

며칠 전 수업중에 갑자기 한 아이가 “야, 매미다. 매미!” 하고 외치자 공부하던 아이들이 일제히 하던 짓을 멈추고 매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닌게아니라 나도 그 날 매미 소리를 처음 들었다. 매년 처음 듣는 매미 소리, 처음 듣는 소쩍새 소리는 신기하다. 아이들과 나는 매미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학교 뒤뜰이다.

학교 뒤뜰 살구나무에서 매미가 울고 있었다. 학교 뒤에는 작은 뜰이 있고, 그 뜰에는 살구나무 몇 그루와 밤나무, 모과나무 그리고 고욤나무가 무질서하게 자라고 있다. 살구나무 밑에는 지금 개망초꽃이 한참이고, 호박넝쿨이 하루가 다르게 뻗어가고 있다. 호박넝쿨이 손을 내밀어 풀포기를 잡고, 작은 무궁화가지를 잡고 쭉쭉 뻗어간다. 오늘 아침에는 커다란 호박꽃이 노랗게 피어났다. 호박이 달리고 호박 위에 꽃이 핀다. 암꽃이다. 수꽃은 그냥 꽃만 핀다. 살구나무에는 살구들이 노랗게 익어 바람이 없어도 툭툭 떨어진다. 조용한 공부 시간에 툭 소리가 나서 가 보면 노란 살구가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 뜰 바로 뒤는 밭이다. 밭에는 지금 고추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밭가에는 옥수수 잎이 바람 불 때마다 서걱거리는 소리가 교실까지 들린다. 그 작은 뜰을 향해 난 길로 나이 든 농부들이 곡식을 이고지고 이따금 지나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그 작은 뜰로 지나간다. 때로 눈이 오는가 싶으면 비가 오고 억새가 피어 있는가 싶으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어났다가 꽃잎이 날린다. 나는 그 뒤뜰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뜰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한적해지고 차분해진다. 퍼뜩 본래의 나를 찾은 느낌이 든다.

이 글을 쓰다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열어놓은 창문으로 뒤뜰이 보인다. 매미가 울고, 살구나무 잎이 햇살을 받아 환하게 빛난다. 가끔 바람이 지나가는지 살구나무 가지가 흔들리고 해맑은 햇살 속에 흔들리는 잎들이 반짝거린다. 저 작은 숲에서 일어나는 하루, 한달, 1년, 2년…, 그렇게 그 뜰을 바라 본 지 벌써 30여 년이 넘었다.

뒤뜰로 곡식을 이고지고 다니던 젊은 농부가 지금은 흰 머리에 굽은 등으로 곡식을 가져 나른다. 희한한 일은 그 별 볼 일 없는, 사람의 손이 안 간 작은 뜰을 볼 때마다 나는 매번 다른 느낌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작은 뜰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나는 꽤 오래 산 셈인데 한번도 그 뜰이 질리지 않았고 무심하지 않았다. 언제 바라보아도 거긴 평안하다. 나를 찾으면 그렇게 세상이 평화로운가 보다.

아이들과 지내며 아이들이 나를 속상하게 하고, 내가 아이들을 속상하게 했을 때, 때로 글이 안 될 때, 꼬인 삶의 가닥들이 잘 풀리지 않고 나를 괴롭힐 때 나는 유리창에 턱을 괴고, 때론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서서 그 가난한 뒤뜰을 바라보았다. 꽃이 피고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리는 모습이 나를 나에게 데려다 놓아 나의 삶을 안심시켜 주었다. 생활이 나를 속일지라도 그 작은 살구나무 숲은 언제나 나의 삶을 안도로 이끌었던 것이다.

이 작은 뜰과 뒷산뿐 아니라 내 교실 앞 강 건너 앞산 또한 내게 늘 감동을 주었다. 마을 뒤에 있는 그 산에 밭이 있고, 그 밭에 젊은 부부가 들어서서 농사를 짓더니, 어느 해 아이들이 부부와 함께 그 밭에 들더니, 이제 늙은 부부 둘이 밭일을 한다. 어느 해 둘 중에 누가 죽어 그 밭머리에 묻히고, 또 그 다음 그 무덤을 따라 무덤이 하나 더 생기리라. 그 밭에 봄, 빈 땅에서 곡식들이 자라고, 가을이 되어 거두고 나면 눈이 하얗게 내려 밭을 덮는다. 그 밭이 있는 산을 나는 지금껏 바라보며 살았다. 학교 뒤에 있는 산과 강 건너 앞산 사이에 강이 있고 그 강 언덕에 내가 평생을 다닌 학교가 있다. 그 학교에서 나는 내 인생을 다 보낸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았다. 장엄한 자연과 그 속에 있는 작은 학교에 어린 아이들, 그리고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나, 그 세 가지가 내 삶을 지탱시켜 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갑갑하지 않느냐고. 이 가난하고 답답한 산중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물이, 강이, 나무와 꽃이, 그리고 변함없이 가난한 농부들과 철없는 아이들이 질리지도 않느냐고. 생각해 보면 그도 그렇다. 정말 단순하고 지루한 삶이었다.

또 어떤 이들은 말한다. 당신은 정말 복을 다 타고난 사람이라고. 자연과 예술과 그리고 아이들 속에서 평생을 산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그도 그렇다. 다 맞는 이야기들이다. 나는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서 나는 행복했다라고 아무도 큰소리치지 못한다. 누가 그 어느 누가 자기의 삶에게 큰소리치겠는가. 그게 삶이다.

다만 나는 늘 이렇게 생각했다. 늘 그때가 좋았다가 아니라, 늘 지금이 좋다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는 버릴 수도, 당장 고칠 수도, 그렇다고 비켜가거나 뛰어넘어갈 수가 없다. 지금을 내 삶으로 ‘사는’ 일이 가장 나를 행복하게 한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엇을 하면서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내겐 중요했다. 지금도 그렇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오늘, 여기, 지금의 사회현실은, 세계는 참으로 끔찍하다 못해 진저리가 쳐진다. 우리들의 일상은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검은 손길에 쫓기는 것처럼 불안하고 초조하다. 이 불안한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금 내가, 내가 아니다.

내가 남처럼 낯설 때가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정말 내 정신으로 하는 짓인가를 물어 보면 이게 아닌데 하는 불안한 마음이 검은 구름떼처럼 일어난다. 이 불안하고 긴장된 삶을 우린 모면하려 한다. 벗어나려 하고, 떼어내려 하고, 외면하려 한다. 나의 하루를 생각해 보면 그래서 늘 순간을 모면하려는 안간힘의 연속으로 보인다.

순간을 모면하려는 이 찰나주의는 필연적으로 쾌락을 찾아 헤맨다. 쾌락은 퇴폐를 부르고 범죄를 부르고, 스스로 파멸한다. 우리의 현실이 그렇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짓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이 인류에게 진정으로 행할 일인가? 내가 하고 있는 짓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인가. 우리들은 지금 어디를 향해 어떻게 가고 있는가. 한번 진지하게 물어 볼 때가 되었다. 그때가 바로 지금이다.

생각해 보면 복잡하고 넌더리가 나는, 못 말리는 우리의 일상에다가 8월은 정말 짜증나는 더위까지 못살게 한다. 다들 피서를 간다, 해외여행을 간다. 법석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그러나 그 어디로 간들 그대들을 평안함으로 훌륭히 모실 곳은 그리 많지 않음을 알라. 산으로 가 보아라. 산에는 그대들과 같은 인간들로 법석대고 생난리를 치고 있다. 바다로 간들, 강으로 간들, 그 어디로 간들 휴대폰은 그대들을 따라다닐 것이고, 잘못하면 당신 같은 사람들로 인해 당신은 전혀 다른 무거운 짐을 하나 더 짊어지게 될 것이다.

문제는 마음이고 생각이다. 마음을 어디에다가 주고, 마음을 어디에다가 빼앗길 것인가가 문제다. 우리들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내 것으로 하려 한다. 우리들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소유하려고 한다. 끝이 없는 이 탐욕이 실은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사람들은 개화된 문명시대를 산다고 하지만 가만히 우리의 일상을 헤집어 들여다보면 그게 뻥이라는 게 금방 드러난다. 어떤 학자가 말했다. 인류가 생긴 이래 가장 짧게 살다가 지구에서 사라질 종은 인간이라는 동물일 거라고. 나도 동의한다. 인간이라는 종말고 도대체 어떤 동물들이 이렇게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기가 사는 땅을 무자비하고도 야만적으로 파괴하는가. 인간들은 자기가 살고 있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땅을 파괴하면서 동시에 자기들의 마음도 함께 파괴해 왔다.

부서져버리고 메말라버린 오늘날 우리의 이 사막같이 삭막한 정신세계를 보라. 그것은 욕심껏 자기 것을 가지려는 탐욕에서 시작됐다. 가진 것을 늘리려면 남의 것을 빼앗지 않으면 안 된다. 도대체 사람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소유해야 만족하고 행복하단 말인가.

매미가 운다매미 소리에게 내 마음을 준다

개망초 꽃이 피었다꽃에게 내 마음을 준다

살구나무에 바람이 분다바람에게 내 마음을 준다

날아가는 나비에게가만히 서 있는 나무에게 마음을 주면마음이 편안해 진다이 세상 처음이었던 내가 보인다.(나의 시 ‘마음’ 전문)



말 없이 피어 있는 풀꽃 한 송이에게 내 마음을 주면 나를 찾는다. 나는 누구일까? 혹 내가 저렇게 산길 들길에 핀 꽃 한 송이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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