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호

남성형 탈모, 호르몬과 유전의 이중주

  • 이동윤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피부과 교수

    입력2005-09-29 16: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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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형 탈모, 호르몬과 유전의 이중주
    방송국 PD인 J씨(33)는 학벌도 좋고,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직업에 집안도 좋아 중매가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맞선을 볼 때마다 문제가 생겼다. 여자들은 그를 딱 한번 본 뒤론 다시는 만나지 않으려 했다. 답답한 마음에 J씨가 중매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한결같이 하는 말이 “다른 건 다 좋은데 대머리가 걸린다”는 것이었다.

    사실 J씨는 앞이마 양쪽에 머리카락이 없는 대머리다. 그러다 얼마 전 정말 마음에 드는 여성을 만났다. 여자도 싫지 않았는지 몇 번 데이트에 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대머리를 치료하면 결혼하겠다는 것. 그녀를 놓치기 싫었던 J씨는 용기를 내 피부과를 찾았다.

    대머리를 의학 용어로는 안드로겐성 탈모증, 즉 ‘남성형 탈모’라고 부른다. 남성형 탈모는 나이가 들면서 머리카락이 독특한 형태로 점점 빠지는 현상. 탈모증 가운데 가장 흔하다.

    남성형 탈모가 생기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유전적 요인과 남성호르몬이 그것이다. 남성호르몬(안드로겐)은 부신피질과 성선(性腺)에서 합성, 분비된다. 그중 가장 강력하고 대표적인 것이 ‘테스토스테론’이고, 그보다 더 농도가 짙은 게 ‘디하드로테스토스테론(DHT)’이다. 테스토스테론이 모발의 모낭(머리털이 자라는 곳) 안에 존재하는 ‘5알파-환원효소’와 결합해 DHT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DHT가 앞이마나 정수리 탈모를 유발한다.

    그러나 아무리 DHT가 분비된다 하더라도 무조건 탈모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DHT를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 환경이 바로 유전적 요인이다. 아버지나 어머니에게서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경우에 대머리가 되는 것이다. 고환을 없앤 내시나 ‘파리넬리’에게 대머리가 발견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소갈머리’ 없는 사람, ‘주변머리’ 없는 사람

    남성형 탈모증이 처음 나타나는 시기는 사춘기다. 유전적 요인을 가진 사람이 사춘기 때 남성호르몬이 증가하게 되면 모낭에 영향을 끼쳐 모발이 점차 가늘어지고 쉽게 빠진다. 이때는 앞머리와 윗머리, 정수리 부위의 모낭에만 영향을 준다. 그러나 옆머리와 뒷머리의 모낭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아 탈모가 일어나지 않는다. 즉 앞머리와 윗머리, 정수리 부위의 머리카락은 빠지지만, 옆머리와 뒷머리는 잘 빠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남성형 탈모증의 유형은 몇 가지로 나뉜다. 이른바 ‘주변머리’가 없는 M자형은 이마 양쪽부터 시작해 점점 안쪽으로 탈모가 진행된다. 이마부터 넓어지는 것이다. 할리우드 스타인 브루스 윌리스가 대표적인 M자형이다.

    레닌이나 고르바초프 같은 ‘소갈머리’ 없는 O자형도 있다. 이 경우는 정수리부터 모발이 빠지기 시작한다. 알파벳 모양 그대로인 것이다. 또한 앞머리선은 그대로 있으면서 앞머리부터 정수리에 걸쳐 점차 모발이 가늘어지고 빠지는 경우도 있다.

    머리가 빠지는 데 그치지 않고 피지 분비가 왕성해지면서 비듬이 많이 생길 수도 있다. 남성형 탈모증은 대개 30세 전후에 시작되지만 10대 초반이나 20대 초반에도 시작된다. 최근엔 사춘기가 빨라지고 스트레스가 증가하면서 과거보다 탈모 시기가 더 앞당겨지는 추세다.

    남성형 탈모증의 또 다른 특징은 사람에 따라 진행 속도와 양상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심하지 않은 상태로 오래 가기도 하고, 몇 달 만에 빠르게 진행되기도 한다.

    약물치료 중단하면 다시 빠져

    남성형 탈모, 호르몬과 유전의 이중주

    프로페시아(왼쪽)와 미녹시딜 성분의 탈모치료제들.

    지구상 어느 나라든 탈모를 치료하는 약이 한두 가지는 반드시 있다고 한다. 이는 그만큼 탈모 치료에 대한 욕구와 역사가 오래됐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하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효과를 공인한 탈모 치료제는 프로페시아와 미녹시딜뿐이다. 다른 치료 방법으로는 모발 이식이 있다.

    ▼ 프로페시아

    수년 전부터 탈모 증상이 있던 O씨(23)가 피부과를 찾았다. 최근 들어 전보다 머리카락이 더 많이 빠지면서 정수리까지 탈모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두피 및 모발 검사를 해보니 앞머리 이마선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었으나 앞머리에서부터 정수리까지 모발이 빠져 있었다. 게다가 모발이 가늘어져 있었다. 진단 결과는 남성형 탈모증. O씨는 모발 이식을 원했지만, 일단 프로페시아를 복용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10개월 뒤, 치료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프로페시아는 5알파-환원효소를 억제해 탈모를 막는다. 탈모가 막 시작되는 초기에 효과적이지만, 점차 진행되면 효과가 떨어진다. 대개 남성형 탈모의 진행을 억제하여 치료 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남성형 탈모증은 진행성 질환이다. 따라서 약물을 중단하면 탈모가 다시 시작된다. 이 때문에 치료효과를 유지하려면 약물을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한다. 그런데 프로페시아에는 약간의 부작용이 있다. 성욕 감퇴, 발기부전 등 성적인 부작용이 복용 환자의 1∼2%에서 나타나는 것. 복용을 중단하면 이런 부작용은 대개 1주일 내에 없어진다.

    ▼ 미녹시딜

    미녹시딜은 원래 먹는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된 약물인데 강력한 혈관 확장제다. 그런데 이 약물을 장기 복용한 고혈압 환자의 대부분에서 몸에 털이 많아졌다. 이에 힌트를 얻어 연구한 결과 미녹시딜이 모발 성장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탈모증 치료제로 개발됐다.

    미녹시딜 역시 탈모 초기에 효과적인데, 하루 두 번 탈모 부위에 바른다. 부작용이 거의 없는 안전한 약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피부가 예민한 사람은 두피에 염증이 일어나거나 얼굴의 솜털이 굵어지기도 한다.

    미녹시딜은 남성호르몬과 관계없이 모발을 자라게 하므로 원형 탈모증 같은 남성형 탈모증과 유형이 전혀 다른 탈모증에도 널리 사용된다. 남성형 탈모증에는 프로페시아와 같이 사용하면 효과가 더 좋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진행된 탈모엔 별 효과가 없다. 프로페시아와 마찬가지로 약을 바르다 중단하면 다시 탈모가 시작되는 한계가 있다. 또한 두피에 염증이 있을 때 미녹시딜을 바르면 염증이 더 심해진다. 따라서 오히려 탈모가 악화될 수 있다. 이럴 때는 먼저 두피를 치료한 뒤 미녹시딜을 발라야 한다.



    ▼ 모발 이식

    남성형 탈모가 초기단계를 넘어섰거나 앞머리선이 변한 경우엔 모발 이식을 권한다. 모발 이식은 자기의 모발을 탈모 부위에 심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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