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호

조계종 첫 비구니 감찰 정현스님의 불가(佛家) 뒷얘기

“중도 사람이요, 체력 유지하려면 ‘단백질’도 섭취해야지”

  • 이은영 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입력2006-07-07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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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전엔 젊은 비구에게 늙은 비구니가 삼배
    • 스님이 보살들과 술집, 노래방 드나든다는 제보도
    • “요즘 신도들, 중이 좀 이상타 싶으면 인터넷에 팍팍 올리는 기라”
    • 피자, 햄버거 찾는 승가대학 비구니 학승들
    • “갑자기 부자 절이 됐다면 의심해봐야”
    • 죽이지 않고 살려 중노릇 잘하게 만드는 게 진짜 감찰
    조계종 첫 비구니 감찰 정현스님의 불가(佛家) 뒷얘기
    “근성이 있어야 되는 기라. 머리 깎았으면 중노릇 바로 하고, 시집갔으면 아줌마 노릇 반듯하게 해야지요. 일을 정성스럽게 해보려는 근성이 있어야지. 대충 하다가 싫다고 관둬버리면 되겠능교? (세상이) 모르는 것 같아도 다 알아요. 근성 없이 대충하는 거, 딱 보면 압니다. 중 같지 않은 중은 (신도가) 알아보고, 딴 짓하고 들어온 어마이 아바이, 자식이 다 압니다.”

    조계종 호법부 상임감찰 정현(正現·52)스님의 말이다. 호기롭고 걸걸하고 기개가 있어 보이는 이 스님은 지난 2월 비구니로는 처음 상임감찰에 임명 됐다.

    호법부 상임감찰이란 속세의 검찰과 흡사한 조직으로 1962년 고(故) 숭산스님이 종단의 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도입했다. 감찰스님이 되면 종단 내 각종 비리를 조사하고 정보를 수집한다. 한마디로 승풍(僧風)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정현스님의 감찰 대상은 비구니 스님에 한해서다.

    정현스님을 만난 건 지방선거가 있던 5월31일. 후끈 달아오른 초여름날, 팔공산 갓바위 능선 끝자락 즈음에 있는 작은 사찰에서였다.

    “들어와보소.”



    무심히 던지는 스님의 말투가 전형적인 경상도 ‘보리문둥이’를 연상케 했다.

    “미안소. 서울에서 만나면 좋았을 텐데…. 딱딱한 사무실에서 얘기하면 뭐가 좋겠소. ‘집에서 편안하게 하는 게 안 낫겠나’ 싶어서 오라 했소. 땅에는 음터가 있고 양터가 있는데, 음터는 죽은 기운이라 묘가 들어서고 양터는 기운이 나는 땅이라 집이 들어서요. 산속 절집은 좋은 양터입니다. 절집에서 참새소리 물소리 들으면 영혼이 맑아지고 편안해지잖아요. 초라하고 누추하지만…. 자, 편안하게 앉아보소.”

    정현스님은 사찰을 ‘집’이라고 표현했다. 규모가 작아 마치 암자처럼 보이는 이 절의 이름은 보현사. 스님은 중앙무대에서 상임감찰로 주5일 근무하고 보현사의 주지스님으로 이틀을 근무한다.

    “불가의 남녀차별, 억수로 심했어요”

    스님은 말투가 시원시원하고 호탕했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눈매는 매서웠다. 뒷모습으로 봐서는 비구 같아 보일 정도로 어깨선이 곧고 당당했다. 걸음걸이가 마치 사관생도 같았다. 소문으로 스님의 성격과 언변을 짐작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막상 만나보니 조금은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스님은 1954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서 1979년 운문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청도 죽림사 주지, 팔공산 내원암 주지, 운문사 포교국장, 총무국장을 지냈다.

    승려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사찰 담장 안에서 독경과 명상에 잠겨 수행에만 몰두하는 이판승(理判僧)과 포교에 앞장서거나 사찰의 행정을 담당하는 사판승(事判僧)이 있는데 정현스님은 사판승에 가깝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이판사판’이란 말의 어원이 바로 불교에서 비롯된 셈이다. 이판승의 말씀이 모범답안이라면 사판승의 말씀은 해설서에 가깝다.

    “(법문할 때) 거룩하고 우아한 얘기만 해보소. (바닥을 향해) 꾸벅꾸벅 절하는 사람이 많습디다. ‘니만 아나, 나도 안다’는 식으로 우습게 생각해버려요. 좋은 말은 참 지루한 법이라. 책에 다 나오거든. 예전에 은사스님이 욕을 참 잘했어요. 연세가 많은 노스님이셨어요. 이를테면 내가 ‘비구스님이 법회 하는 데 가봅시다’ 하면 ‘야, 이놈아. 어떤 놈하고 눈맞았노’ 하고 노발대발하시는 겁니다. 거 참… 허파 뒤비는 소리 아닙니까. 기가 차서 눈물이 다 나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그 말씀이 나의 아상(我相)을 꺾어줬던 것 같아요. ‘무의식 속에서 자아의 실체를 바로 보고 고집하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알라’는 가르침이었어요. 기(氣)를 딱 꺾어버린 거죠. 애비가 딸한테 ‘니 머슴아한테 관심 있제? 공부 때려치워뿌라’고 소리친다고 생각해봐요. 억지소리에 기가 찰 거 아닙니까. 억울하면서도 ‘알았심더. 공부할게요’라고 대답하거든요. 택도 아닌 말을 삼키면서 ‘두고 봐라. (아니란 걸) 꼭 보여줘야지’ 하는 근성이 생기는 거라요. 책 100권보다 따끔한 말 한마디가 더 중요합디다.”

    조계종 첫 비구니 감찰 정현스님의 불가(佛家) 뒷얘기

    조계종 첫 비구니 상임감찰인 정현스님은 “죽이지 말고 살려 중노릇 잘하게 만드는 게 진짜 감찰”이라고 강조했다.노경섭 사진작가

    -감찰스님으로 갑자기 발령이 났다면서요.

    “내가 어떻게 뽑혔는지 모르겠어요. 임명되기 몇 달 전에 총무원에서 ‘(상임감찰로) 부르면 올 수 있겠느냐’고 언질을 주데요. 처음에는 ‘남을 조사하는 일을 과연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거라요. 한편으론 ‘비구니 최초라니 의미가 있겠다’ 싶었고요. (총무원에서) 비구니를 감찰로 써본다니까 ‘인연이 된다면 한번 해볼 만하다. 비구니의 권익을 위해서 일하자’는 욕심이 생깁디더.”

    -지난 세월, 비구니가 상임감찰이 될 수 없었던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요.

    “남녀차별이 억수로 심했던 거라. 비구 중심이었으니까요. (비구니들은) 대단한 인고의 세월을 살아왔어요. 늙은 비구니라도 갓 수계를 받은 젊은 비구를 맞을 땐 장삼가사를 입고 마땅히 일어서서 삼배를 올리라고 했을 정도였어요. 종교 속성상 신행(信行) 부분에서 여자가 더 두드러지게 활동했는데 역사 속에선 비구니가 폄하돼왔는 거라요. 또 비구니들은 드러나는 것을 꺼렸지요.”

    현재 조계종에는 비구니 스님의 수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총무원장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비구니는 몇 안 된다. 전국의 대표 비구니 10인에게만 선거권이 주어진다. 아직도 비구니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는 얘기다. 또 비구니 숫자에 비해 절이 부족하다. 조계종 전국 사찰 2200개 중 비구니 스님이 거주하는 사찰은 30%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총무원은 비구니 원로회의를 구성하고, 총무원 내 비구니부 신설, 호법국장 임용 등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특히 비구니 스님을 포교, 문화, 복지, 감찰 등 전문분야에 적극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으로 제보가 딱딱 들어와요”

    호법부엔 10명의 감찰스님이 있다. 호법부장을 정점으로 호법국장과 과장, 조사국장과 과장이 포진해 있고, 정현스님과 같은 상임감찰이 5명 있다. 이들 상임감찰 스님 5명은 조계종에 속한 1만2000여 명의 스님에 대해 지역별 성별로 감찰활동을 벌인다.

    -비구니 스님들이 편안해할 것 같아요.

    “그래요. 비구니 감찰이 비구니를 조사하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잖아요. (여성이라) 비구한테 털어놓기가 곤란한 얘기가 좀 많겠습니까?”

    -비구니 숫자를 감안해 비구니 상임감찰의 수를 늘려야겠네요.

    “맞아요. (비구니들은) 모성애가 뛰어난 거라. 보살피려는 마음이 본성인 거죠. 좋도록 하는 능력이 비구 스님보다 탁월할 거라고 생각해요.”

    -감찰의 본분이 있는데 감싸기만 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아입니다. 법에도 눈물이 있는 기라요. 무턱대고 자르면 안 돼요. (저도) 호법부 감찰스님을 ‘옷 벗기는’ 스님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닙디다. 죽이지 말고 살려 중노릇 잘하게 만드는 게 진짜 감찰이 아니겠습니까? (감찰이) 너무 몰아치면 안 돼요.”

    한마디로 ‘생(生)의 칼자루를 쥐고 있어야 진짜 감찰’이라는 얘기다.

    -비구니 스님들 사이에 골치 아픈 사건이 많은가요.

    “거의 사소한 문제들이지요. (비구니들이) 법을 잘 몰라서 실수할 수 있어요. 절을 짓는다고 가정하면, 행정을 잘 몰라서 문제가 터질 수 있거든요.”

    -사찰이 대부분 산 속에 있는데 이들의 정보를 수집하기가 힘들지 않습니까.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세상입디다. (옛날에는) 일일이 찾아다녔는데 요즘은 인터넷으로 제보가 딱딱 들어와요. 요즘 신도들요, 중이 좀 이상타 싶으면 인터넷에 팍팍 올려버리는 거라. (일반인에겐) 사소한 시비에도 상대가 스님이니까 ‘중이 뭐 저러노’ 하고 욕할 수 있잖아요. 우리가 들어보고 ‘행동에 조심하라’고 경고해요. 혹여 절 운영이라도 조금 이상하게 해보세요. (감찰) 귀에 금방 들어와요.”

    정현스님에 따르면 감찰에 접수되는 스님의 비리 유형은 다음과 같다. 이 가운데는 근거 없는 음해도 많다고 한다.

    ▲조계종단 규정을 어기고 사사로이 절을 사고팔다가 사기에 휘말림 ▲정식 등록되지 않은 스님이 사찰을 지어 스님 행세를 함 ▲천도재나 49재가 아닌 기복성 기도(예컨대 진급을 시켜준다거나 아이를 낳게 해준다며)를 해주고 신도들에게 큰돈을 받음 ▲절 운영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하다가 적발됨(횡령) ▲절 운영은 뒤로하고 허구한 날 정치인 등 지역의 유력인사와 만나거나 지역의 이권사업에 개입함 ▲공양보살들과 삼각관계에 빠져 윤리적인 문제를 야기하거나 연애설이 나돎 ▲보살들과 노래방이나 술집에 자주 드나든다고 인근 주민들이 제보 ▲주지와 상좌(제자) 스님이 서로 마음에 안 맞아 싸우고 이은(離恩·은사와 헤어짐)을 시도(최근 젊은 승려들 사이에서 이런 사례가 부쩍 늘고 있음) ▲스님이 대중식당에서 식사하다가 손님들과 사소한 시비가 붙어(고기를 먹네 마네 하면서) 손님 중 한 사람이 스님을 비방하는 글을 종단의 홈페이지에 올림….

    사실 세속을 떠난 스님이라고 할지라도 일상생활에서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는 것은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다. 휴대전화기에 자가용 몰고 다니고, 인터넷 접속하고, 대중식당에서 식사하고…. 정현스님은 스님이 고기 먹는 문제에 대해 유연한 시각을 드러냈다.

    “세상 사람들은 지금이 21세기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조선시대 사고로만 스님을 바라보는 기라요. 간혹 체력유지를 위해 고기를 조금 먹기도 해요. 하지만 평소 고기를 입에 안 대는 습성 때문에 (고기를 먹고 난 후) 설사나 구토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요. 다만 수행 중에는 절대 먹지 않아요. 육류를 먹으면 피가 탁해지고 소화가 안 되고 정신이 맑지 않기 때문인 기라. 또 젊은 스님이 단백질을 과다 섭취하면 성적 욕구를 강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수행에 지장을 줘요. 하지만 어느 정도 공부가 끝나면 체력유지 차원에서 단백질을 섭취하는 게 좋다고 해요.”

    정현스님에 따르면 실제로 공부하면서 빈혈을 호소하는 스님이 적지 않다고 한다. 스님이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기를 먹는다니, 불가의 삶도 속세의 이치와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더욱이 요즘 승가대학의 비구니 학승들은 피자나 햄버거를 찾는다니….

    -얼마 전 MBC ‘PD수첩’에서 예언을 잘하기로 유명한 혜안스님의 비리행각을 고발해 파장이 큰데요. 감찰은 그런 사이비 스님을 찾아내 단죄하는 일을 맡겠네요.

    “그럼요. 그 사람, 우리 종단 쪽이 아닙니다만, 엄연히 따지면 스님이 아니라 무당인 기라요.”

    참고로 한국 불교에는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을 비롯해 100여 개의 종단이 있다. 전체 종단에 소속된 스님은 4만여 명에 이른다.

    문제의 혜안스님은 1990년대 중반 내림굿을 받았던 무속인 정정희씨. 정씨는 경기도 일산에 본원을 둔 황룡사 주지스님으로 둔갑, 암을 낫게 해주고 부자를 만들어준다고 해서 천도재, 구병시식(귀신에게 베푸는 공양) 등 행사 비용으로 최소 300만원에서 최고 수천만원을 챙겼다. 심지어 시신에서 나오는 물을 각종 병에 효험이 있는 약으로 팔아 월 10억원이 넘는 이익을 남겼는데, 최근 피해를 본 신도들이 경찰에 고발했다.

    -최근 법당에서 점을 봐주는 스님이 늘고 있다면서요.

    “(크게 한숨 쉬며) 문제가 참 많은 거라요. 갑자기 부자 절이 되었다면 의심해봐야 해요. 중이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이끌 생각은 안 하고 점을 봐주는 거라요.”

    -스님에게 미래를 묻는 신도가 많지요.

    “올바른 중이라면 대답하기 참 곤란해요. 만약 국회의원 출마할 사람이 와서 ‘당선되겠냐’고 물으면 ‘열심히 하시면 되겠습니다. (당선되시면) 백성을 위해 힘 쓰시이소’ 하겠지요.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는 거라요. 바르게 일러줘야지, 신도가 기분 좋으라고 지어내서 말할 수는 없잖아요.”

    “어디, 중하고 연애합니까”

    -항간에서는 ‘사찰이 수지맞는 사업’이라고까지 하는데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사찰은) 신도들의 보시(기부금)로 운영돼요. (다 합쳐) 한 해 1000만원이 채 안 되는 절이 수두룩해요. 말사(末寺·본사에 딸린 작은 절)의 경우 평균 5000만∼1억원 들어옵니다. 1억이라 해도, 주지와 기도스님을 비롯한 절 식구들 먹고 살고 급여와 바깥활동비, 공양보살 월급, 생활비, 사회봉사비로… 정말 빠듯해요.”

    -기부금이 많이 들어오는 절이 있잖습니까.

    “(기부금도) 요즘은 예전 같지 않아요. (불공드리러) 쌀 머리에 이고 올라오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돈 놓는 시대지만 요즘은 법당문화도 바뀌고 있어요. ‘내 마음 잘 쓰면 되지, 부처님한테 꼭 가야 하나’ 하는 시대가 온 거라요. 절하는 거,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현재 조계종 사찰은 전국적으로 2200여 개에 달한다.

    -호법부 상임감찰의 월급은 얼마나 됩니까.

    “178만원 주데요. 세금을 포함하면 190만원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부족하지 않나요.

    “월급을 받아 좋은 걸요. (웃음) 서울-대구간 차비로 쓰고, 상좌(제자)들한테 생활비 주고, 교도소 교화활동비로 쓰면 딱 맞아요. 아침에 1000원짜리 라면을 먹다가 얼마 전부터 600원짜리로 바꿨어요. 바쁘고 배고플 때 라면이 참 맛있어요.”

    조계종 첫 비구니 감찰 정현스님의 불가(佛家) 뒷얘기

    행자승 시절. 앞줄 한가운데 앉아 있는 머리 긴 소녀가 정현스님이다.

    -호법부에서 승려를 징계하는 경우 주로 어떤 이유에서인가요.

    “절 운영을 잘못했거나, 중노릇을 잘못했을 때라요. 속세와 마찬가지로 절에서도 사기, 횡령 등의 사건이 있는 거라요. 감찰은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알아서 경고하고 징계하는 역할을 해요.”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떠도는 소문으로는 애인을 둔 스님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지난해 어떤 승려가, 애인이 결별을 요구하자 격분해서 애인을 납치해 감금하고 수차례 성폭행한 후 나체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 사건도 있지 않습니까.

    “(눈을 부릅뜨고는) 진짜 올바른 중이 아닌 거라…. 언론도 문제가 있어요. 승복을 입었다고 다 스님이 아닌데 그렇게 보도한단 말입니다. 조계종의 정식 스님이 여자를 가까이 하면 다 때려치워야 합니다. 내한테 바로 이야기해주소. 이유를 불문하고 바로 제적할 수 있어요. 여자도 그렇지, 어디, 중하고 연애합니까. 중 같지 않은 중을 만나보이소. 같이 망해요.”

    정현스님은 “스님을 다 똑같은 스님으로 봐선 안 된다”면서 “종단마다 수행체계와 계율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가령 태고종에선 출가해도 속세와 인연을 끊지 않아요. 결혼해 가정을 꾸릴 수도 있습니다. 입고 다니는 승복이 같아 겉만 봐서는 태고종 스님인지, 조계종 스님인지 구분할 수 없어요. 그래서 종종 오해가 생기지요. 남편이 절에 근무하면 더운 여름에 자가용 몰고 절 앞까지 와서 태워갈 수 있겠지요. 그걸 누가 보면 ‘뭐 저런 스님이 있노’ 하고 난리가 나는 거라.”

    -조계종에선 왜 결혼을 금했나요.

    “사람이 인연을 맺어놓으면 물질과 인연에 끝없이 끌려 다니는 법. 부처님께서도 여자를 끊고 출가했잖아요. 조계종에서는 중노릇 바로 하기 위해서는 애정을 농하지 말라 했어요.”

    흔히 결혼한 스님을 대처승이라 한다. 이는 ‘허리에 부인을 매달고 다니는 스님’이라는 뜻. 조계종과 태고종이 치열하게 대립하던 이승만 정권 시절, 언론에서 태고종 스님을 비하해 사용하던 단어다. 사찰의 개인 소유와 결혼을 허락하는 태고종은 외환위기 이후 승려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현재 5000여 명에 달하고 사찰은 등록된 것만 2500여 개다.

    하루 두세 시간 자며 공부해야

    정현스님은 “나를 욕하는 사람을 스승으로 삼고, 칭찬하는 사람을 도끼로 삼아야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면서 “말이 많아 분쟁으로 치닫게 되는 건 사찰이라고 예외가 아니다”라고 했다. 상좌(제자)가 많으면 가마솥이 깨진다는 옛말이 있듯이. 스님은 “(중 생활이) 세상살이와 다를 바 없다는 걸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감찰로 올라오는 사건들 중에는 상좌(제자)하고 의견이 안 맞아 발생하는 이은 사건이 많아요. 부부간 이혼처럼 스님도 상좌와 이은할 때 서류에 도장 찍죠. 그래야 서로 떠날 수 있거든요. 특히 비구니 스님의 이은사건이 많아요. 아무래도 여성이라 비구 스님보다 감정이 예민하거든요.”

    -비구니 스님이 얼마나 되나요.

    “종단 전체를 보면 2만여 명 돼요. 조계종만 해도 승가대학을 찾는 여학승이 1년에 100여 명 됩니다.”

    -비구니 스님들 중에는 곡절이 있는 분이 많지요?

    “그거야말로 세상 사람들의 오해입니다. (비구니가) 남자한테 실연당해서 출가한 중이라고 생각해요. 드라마와 영화, 소설에서 비구니를 다 그렇게 그려놨어요. 중노릇 하다가도 남자하고 눈맞으면 도망가는 것으로 그려놓는단 말입니다. 옛날에는 가난해서 절에 온다던가, 명(命)을 때우려고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래서) 파계하는 비구니도 있었고요. 그렇지만 요즘은 다 알고 들어와요. 또 좋아서 옵니다. 중노릇 30년에 병으로 죽는 비구니는 봤어도 남자문제 때문에 파계하는 비구니는 한 번도 못 봤어요.”

    조선왕조실록에는 한국의 비구니에 대해 이런 기록이 있다.

    ‘연산군이 한양성 안팎의 여승방 23개를 헐어버리면서 비구니들을 환속시키고 승려가 되는 것을 금한 이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산골의 여승방들이 깨지고 승려의 신분이 천민으로 전락하면서 씨가 말랐다. 잡초와도 같은 자생력을 가지고 비구니의 명맥을 이어온 사람들은 의지할 데 없는 과부, 열녀지도를 지킬 수 없었던 아낙, 옥사가 난 집안의 아녀자, 도망친 관비나 사비들이었다. 산골 절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여인들의 해방구였다. 스스로 삭발 염의하고 비구승들이 사는 절에 기생하거나 그 옆에 초막을 치고 살았다.’(한국비구니연구소, ‘비구니와 여성불교’에서 재인용)

    정현스님은 “비구니의 위상을 올리는 데는 높은 교육수준이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스님이 되려면) 억수로 많이 공부해야 해요. 출가해서 6개월간 힘든 행자생활을 마치고 5급 승가고시에 합격해야 사미니계(沙彌尼戒)를 받거든요. 정식 스님으로 활동하려면 구족계(具足戒·비구계 비구니계)를 받아야 하는데, 비구니 스님은 비구 스님보다 98가지가 더 많은 348계를 받아요. 지켜야 할 계율이 98가지 더 많아요.(구족계를 받으려면) 조계종 종립학교인 승가대학을 나와서 4급 승가고시에 합격해야 합니다.”

    비구니를 배출하는 승가대학이 있는 절로는 운문사를 비롯해 김천 청암사, 대전 동학사, 수원 봉녕사가 있다. 운문사의 경우 학승만 220여 명. 비구니 상주 인원이 해인사의 두 배다. 비구니 승가대학은 ‘농가대학’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경전 공부를 하면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잡초 제거, 설거지, 밭농사, 화초 가꾸기 등에 몰두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른바 5대 총림(叢林)으로 불리는 유명 승가대학 5곳은 비구만 입학이 허용된다. 경남 합천의 해인사, 경남 양산의 통도사, 전남 순천의 송광사, 충남 예산의 수덕사, 전남 장성의 백양사가 이에 해당한다.

    -승가대학 생활이 엄하고 힘들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한 철 중에 반 철은 잠을 안 잔다고 보면 돼요. 운문사 승가대학 여학승들은 밤 11시에 취침해서 새벽 2시에 일어나야 해요. 매일같이 잠을 2∼3시간밖에 못 잔다고 생각해봐요. 머리가 띵한 상태에서 염불까지 외워야 해요. 공부를 싫어하는 사람, 스님 되기 정말 힘들어요. 반년 중에 석 달 열흘간 눈뜨고 책봐야 하는데 견디겠습니까?”

    스님은 “고령의 출가자가 어려운 승가교육 때문에 (스님 되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쇠를 녹여 뜨거운 물을 붓고 금을 걸러내는 곳이 대장간인데 절집이야말로 대장간”이라고 설명했다.

    승려의 제한연령은 남녀 모두 50세. 조계종은 지난해 고령자의 출가가 급증하는 것을 감안해 ‘15∼40세’이던 수학 자격을 ‘15∼50세로 조정했다. 이에 대해 실직·이혼 등에 따른 도피성 출가가 늘어나 승가의 질이 낮아졌다는 비판도 따른다. 반면 인생의 황혼기에 뒤늦게 깨달은 ‘발심(發心) 출가가 늘고, 사회 유력인사나 전문직 출신 고급 인재의 출가가 가능해졌다는 긍정적인 견해도 있다.

    -우리나라 비구니 스님은 바깥세상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드물지요.

    “그런 편이라요. 한계가 있는 형편입니다. 대만의 비구니 스님처럼 조직적으로 하진 못해요. 병원이나 장애인복지재단, 양로원, 고아원 등의 대외봉사에 비구니 스님이 조직적으로 참여해야 해요. 비구니 스님의 정체성을 찾아야 할 시점입니다.”

    승가대학은 대표적인 사회복지사 배출기관 중 하나.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의 경우 역대 졸업생 360명 중 비구니가 238명으로 비구의 2배에 이른다.

    “꽃은 피어도 곧 지고”

    정현스님은 어쩌다가 승려의 길을 걷게 됐을까. 스님이 심중에 묻어뒀던 출가의 내력을 털어놓았다.

    “고2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할머니를 묻으러 산에 갔는데 낙엽이 떨어지는 겁니다. 그 순간 ‘꽃은 피어도 곧 지고 사람은 나도 이윽고 죽는다. 이 허무한 법칙은 생명이 있는 것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라는 시가 떠올랐어요. 그 순간 ‘출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라요. 저는 2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났는데 그길로 가출해 출가했죠. 전생에 불가와 인연이 있었던 겁니다. 이걸 논리적으로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정현스님은 그날 이후 마치 쇠붙이가 자석에 이끌리듯 절로 향했다고 표현했다. 열여덟에 들어간 곳은 대구 동화사 내원암. 장일스님을 은사스님으로 모시고 행자생활을 시작해 3년 후 월하스님의 계사로 사미니계를 받았고 다시 그로부터 5년 후 구족계를 받았다. 행자승에서 스님이 되기까지 8년이 걸린 셈이다.

    정현스님의 포교활동은 특이하다. 주로 재소자 교화를 위한 포교. 1986년 대구교도소 종교위원으로 위촉되면서 전국 수천명의 수형자와 자매결연을 해 영치금을 지원하는가 하면, 10년 이상 된 장기수,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 사형수를 돌보았다.

    호법부 감찰스님이 된 뒤에도 교도소 포교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6월1일엔 총무원장 지관스님과 함께 서울구치소를 방문, 사형수를 모아놓고 직접 법회를 집전했는데, 그 자리에서 5명의 사형수가 계(戒)를 받았다.

    -교도소에서 포교활동을 많이 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출가한 지 12년째 되던 해에 울진 불영사에서 ‘간염으로 두 달밖에 못 산다’는 판정을 받았어요. 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량석(道場釋)을 지원했어요. (도량석은) 사찰에서 새벽 예불을 하기 전에 치르는 의식입니다. 서너 달 지나니까 몸이 점점 괜찮아지데요. 그때 저는 부처님 앞에서 ‘제 목숨은 덤으로 얻어진 것입니다. 남은 생을 어둡고 힘든 곳에 가서 일하겠습니다’ 하고 다짐했어요. 교도소 사람들이 죽은 목숨들이잖아요.”

    -사형수에 대한 정이 각별하다고 들었습니다.

    “‘도둑놈 인권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하겠지만, 중요해요. 나라가 잘되려면 붙들려 있는 사람을 무시하면 안 돼요. 비록 몸은 구속돼 있지만 마음까진 붙들려 있진 않거든요. (사형수에게) 희망을 줘야 합니다. 깨끗한 영혼으로 가게 해야지, 한을 품고 가도록 하면 안 돼요. 한 많은 국민이 많으면 국운이 안 좋아져요.”

    -교화의 첫 번째 길은 무엇입니까.

    “선입관을 버리는 것입니다. ‘니는 도둑놈이다’라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허난설헌보다 신사임당이 많아져야”

    -스님께선 처음부터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까.

    “아니죠. 처음에는 ‘저 놈은 도둑놈이고 나는 스님이네’하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어요. 10년쯤 지나고 나니까 ‘내가 저 사람들을 위해 진정으로 법문을 했나’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부끄러워서 그만두려다 생각을 고쳤어요. ‘순이 누나가 되자’ 싶데요. (재소자들에게) 경(經)을 읽어주는 것보다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따끔한 말 한마디로 다가갔어요. 마음을 바꾸니까 도둑놈이 형제로 보이기 시작하데요.”

    정현스님은 “승려는 아무래도 세상 감각이 떨어지지 않을까요” 하는 기자의 지적에 “오히려 피부에 더 와 닿는다”고 대답했다. 신도들의 하소연으로 일반인보다 세상의 궂은 일을 더 많이 알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하소연을 하나요.

    “(요즘에는) 남자들이 절에 와서 하소연을 해요. 세상이 그만큼 많이 변한 거라요. ‘마누라가 집구석을 안 지키네’ ‘마누라가 안 살라 하네’…. (그런데) 한 놈도 지 잘못했다는 놈이 없어요. (남자들은) 대우만 받았지 희생하면서 살아보지 않았잖아요. 마누라에 대해 ‘불쌍하다’ ‘고생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 아니면 니가 되나’ 하는 오만함이 자리잡고 있는 거라요. 그러니까 더 마누라가 괘씸한 거지요.”

    그렇다고 해서 정현스님이 여성 신도의 하소연에 무조건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스님은 “허난설헌이 아니라 신사임당 같은 여성이 많아져야 한다”며 세태를 개탄했다.

    “(어머니의) 본분을 잃어버린 여성이 많아요. (남편을) 싫다고 차버리는 여성이 많대요. (자식은) 반듯하게 자리 지키는 어머니한테 많은 걸 배우거든요. 허난설헌이 많아지면 세상이 시끄러워져요. 신사임당처럼 끌어안고 따뜻하게 맞아야지요. 요즘 부쩍 ‘내 인생을 찾아야겠다’고 상담하러 오는 주부가 많아요. ‘찾아야 할 니 인생이 뭐꼬?’라고 되물어보고 싶어요. 시집을 갔으면 애 키우고 남편 잘 거두는 것도 인생입니다. 주부 때려치운다고 인생이 찾아지나요. 큰 착각입니다.”

    -남자한테 무시당하면서 산다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상하는 거겠죠.

    “자존심이 뭡니까? 더 잘해보려는 마음입니다. 버리고 던지는 게 아니라.”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여풍(女風)이 강하게 불고 있습니다.

    “세상이란 본래 우리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 법입니다. 한이 풀리고 있는 겁니다. 공부 못한 게 한이 되어 딸자식도 공부시켰잖아요. 이집 저집 딸이 다 커리어우먼이 된 거라요. 또 가장에게는 ‘남자만 뼈 빠지게 돈 벌어야 하나, 여자도 같이 벌자’ 하는 마음이 왜 없었겠어요. (그러니까) 돈 벌겠다고 이집 저집 아줌마가 다 나온 기라요. 너도나도 ‘돈 돈 돈’ 했으니 돈밖에 모르는 세상이 됐잖아요. 아이들한테 ‘짚신이든 백만원짜리 구두든 신는 건 똑같다’고 교육했다면, 명품 안 좋아할 거예요. 세상 원망하고 탓할 이유가 없어요.”

    정현스님은 이날 투표하기 위해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왔다. 투표결과가 어떻게 될 것 같냐고 슬쩍 물어봤다.

    “(이번 선거에선) 밀어붙이는 우리나라 민족성이 나타날 겁니다. (우리 민족은) 어렵고 힘들 때면 뭉치잖아요. 잘못되었다 싶으면 딱 고치고 봐요. (이번 선거에서) 백성이 위정자를 심판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겁니다. 그 결과가 표로 나타나겠지요. 위정자들은 백성을 무서워해야 해요. 반대의 뜻이 옳을 수 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해요.”

    “메주는 메주로 그려야”

    스님은 “위정자는 백성을 받들고 백성은 나라 잘되기를 기도해야 한다”며 월드컵을 화제에 올렸다.

    “월드컵 16강 진출을 기원하듯이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나라 잘되기를 기원하면 기가 상승해 국운이 좋아져요. 나라에 한 맺힌 사람이 많으면 나라가 잘되는 데 지장을 줘요. 그래서 어둡고 그늘진 곳을 챙겨야 하는 겁니다.”

    -스님 보시기에 어떤 사람이 성공하고 돈 벌고 잘 되던가요.

    “닉닉한 사람요. 음식도 짜면 건강에 해롭잖아요. 닉닉해야 좋아요. 각박한 세상에 빨리빨리 가야 하고 대박이 터져야겠지만, 사람이 화끈하고 불 같으면 꼭 사고가 나요. 닉닉한 사람이 많아야 세상에 희망이 있고 건강해져요.”

    -닉닉한 사람이란 걸 어떻게 알아보나요.

    “잘 볼 줄 아는 사람한테는 딱 보여요. 반듯한 사람 눈에는 보이는 거죠. 짭고 맵고 단물나는 사람, 안 좋아요.”

    -서울엔 닉닉한 사람이 별로 없지요?

    “(서울사람들) 펄펄 끓고 차갑고 맵고 달고 쓰고… (웃음) 너무 바쁩디다. 죽을 때 죽더라도 내일이 없는 기라요. 돌다리를 두들겨서 건너야 하는데 한 번에 두 개 세 개씩 건너잖아요. 잘되는 놈은 억수로 잘되지만, 망조가 들어서 하루아침에 망하는 놈, 정말 수두룩해요.”

    스님은 기자에게 “기사를 반듯하게 써 달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반듯하게 놓고 보소. 삐딱하게 놓으면 삐딱하고, 뒤집어놓으면 뒤집어지는 기라요. 맛도 잘 보란 말이요. 남 좋다고 좋고, 남 싫다고 싫다 하지 말고요. (나는) 메주 같은 사람이요. 생긴 것 좀 보소. ‘순이 누나’같이 생겼잖아요. (이런 나를) 메주로 그려줘야지, 장미꽃으로 그리면 안 돼요. ‘가라(거짓말)’가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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