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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연 법제처장

행정수도 이전 위헌 판결 받아낸 헌법 전문가

  • 이종석(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이석연 법제처장

이석연 법제처장
입법 단계에서부터 헌법정신에 입각해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데 기여하겠다.”

3월5일 법제처장에 임명된 이석연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는 “새 정부가 들어선 만큼 정부조직 개편이나 규제완화와 관련된 법령 개정작업이 많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처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3월4일 오후 직접 전화를 걸어와 ‘법제처에 근무한 경험도 있고 하니 도와달라’고 하더라”며 “처음에는 고민이 좀 됐다. 장관급 자리를 제안했으면 거절했을 텐데 차관급 자리여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고 평소 국가에 좀더 봉사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 처장은 1979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이듬해부터 약 1년간 법제처에서 사무관으로 근무하다 정훈장교로 육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인 1985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54년 전북 정읍에서 3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지 7개월 만에 대입 검정고시에 전북 수석으로 합격하고 같은 해 대입 예비고사까지 합격했다. 당시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뭔가를 이뤄보겠다는 생각에 검정고시를 택했다는 것.

그가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하고서도 “독서에 열중해야 한다”며 대학 진학을 미룬 채 스스로 절에 들어가 30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는 얘기는 법조인들 사이에 잘 알려진 얘기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몇 차례 ‘러브콜’을 받았으나 본인이 고사했다. 한나라당이 호남 출신에 깨끗한 시민운동가의 이미지를 갖춘 그를 영입하기 위해 전국구 의원을 제안했으나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처장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경실련 사무총장과 시민단체연대회의 공동운영위원장 등을 맡아 시민운동에 전념했지만 기존의 시민운동 노선과는 차별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진보세력만이 시민운동을 주도하고 보수세력은 반(反)개혁적인 것으로 비치는 것을 못마땅해 하면서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인 시민운동이 진보세력의 독점물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헌법 전문 법률가답게 그동안 180여 건의 헌법소원 사건을 맡아 이 중 50건 정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받아냈다.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 사건 인용률이 평균 4%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다.

이 처장은 2004년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인단 간사를 맡아 헌재의 위헌 결정을 이끌어냈다. 경조사 때 음식물과 주류 접대를 금한 가정의례법과 군필자 채용 가산점 제도의 근거가 됐던 제대군인지원에관한법률의 일부 조항 등 사회적 파급력이 큰 헌법소원 사건에서 위헌 결정을 받아낸 것도 이 처장이다.

李石淵

생년월일 : 1954년 4월25일

출생지 : 전북 정읍

학력 : 전북대 법학과. 서울대 법학박사.

경력 : 제23회 행정고시 합격, 법제처 사무관, 제27회 사법시험 합격, 헌법연구관, 변호사 개업, 경실련 사무총장, 헌법포럼 상임대표,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들 공동대표,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2007년)

저서 : ‘헌법소송의 이론과 실제’ ‘형법총론예해’ ‘헌법재판소 판례 총람’ ‘헌법 등대지기’ ‘헌법의 길 통합의 길’

상훈 : 애산법률문화상, 대통령표창.

취미 : 등산, 인류문화유산 및 풍물 답사여행

신동아 2008년 4월 호

이종석(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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