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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인류 최후의 모습이란 말인가?

제1장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라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정녕 인류 최후의 모습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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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인류 최후의 모습이란 말인가?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28초부터 46초까지의 18초 사이 일본은 크게 흔들렸다. 이 지진은 ‘도호쿠(東北)’로 불리는 일본 본토 동북 지역에서 특히 강하게 일어났다. 피해 또한 이 지역에 집중됐다. 도쿄를 비롯한 여타 지역도 심하게 흔들렸지만, 이 지역만큼 심각한 해를 입진 않았다.

이날 일본이 당한 지진은 인류가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강한 것이었다고 한다. 도호쿠 지방은 6개 현으로 구성되는데, 중심 도시는 태평양에 면해 있는 미야기(宮城)현의 현청 소재지인 센다이(仙台)시다. 진앙은 센다이시에서 동쪽으로 130㎞쯤 떨어진 태평양 해저의 24㎞ 깊이쯤이었다. 좌표로 말하면 북위 38도 32분 2초, 동경 142도 36분 9초2쯤이었다(그림 1 참조).

천만다행인 것은 규모 9.0의 강진이 육지가 아닌 바다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강한 지진이 일본 땅에서 일어났다면 일본은 상상할 수도 없는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을 맞아 잿더미가 된 히로시마(廣島)와 같은 처지가 되는 것이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이렇게 강력한 지진은 육지에서 일어나기 어렵다. 대개 바다에서 일어난다.

진앙에서부터 130여㎞ 떨어져 있어 도호쿠 지방은 규모 8.0 내외의 지진을 맞은 것으로 추정됐다.

일본에서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지진을 늘상 만난다. 이따금 일본으로 출장 가는 기자도 호텔에서 자다가 큰 진동에 놀라 깨어나 뛰쳐나온 적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옆방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일본 TV는 간밤에 규모 4의 지진이 있었다고 짤막히 보도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일본에서의 지진은, 태풍이 오고 폭설이 내리는 것만큼이나 일상화된 사건이다.

3·11대지진을 맞을 당시 주일 한국대사는 권철현 대사였다. 1983년부터 3년 6개월간 쓰쿠바(筑波) 대학에서 유학하며 도시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권 대사는 2008년 4월 주일대사로 부임해, 만 3년을 보내고 있었으니, 지진에는 익숙할 대로 익숙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도 그날 일어난 지진에는 아찔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대사가 겪은 충격

3·11대지진이 18초만 진행된 것으로 보는 것은 오해다. 18초는 가장 강력한 지진이 일어나서 진행된 시간이다. 그 이후 버금가는 지진이 이어졌다. 강력한 지진 다음에 오는 지진을 여진(餘震)이라고 하는데, 그날은 여진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대사 퇴임 후 그는 ‘간 큰 대사, 당당한 외교’라는 회고록을 냈다. 그는 이 책 1장 1절의 제목을 ‘3·11대지진, 정녕 이것이 인류 최후의 모습인가’라고 달았다. 권 대사는 그날 롯폰기(六本木)에 있는 한국 음식점에서 일본 정부의 실세인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관방장관과 점심을 하고 대사관으로 돌아와 업무를 보다 강력한 소리와 함께 건물이 무너질 것처럼 심하게 흔들리는 진동을 느꼈다며 이렇게 적었다.

‘지진이 나면 우선 책상 밑으로 숨는 것이 가장 안전한 대피 요령이다. 다른 때 같으면 조금 지나 진동이 멈추는데,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책상 밑이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집무실을 빠져나와 비상계단으로 달려갔다. 이미 엘리베이터는 다 멈춰 있었다. 직원들과 함께 간신히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지진이 계속되면서 대사관 앞에 있는 큰 건물들이 휘청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소방대원들의 인도에 따라 근처에 있는 ‘신주쿠 어원(御苑)’이라는 구일본 왕실 정원으로 대피했다. 지진이 나면 건물이 무너지거나 불이 나고 간판 등이 떨어지는 일이 많기 때문에 공원이나 운동장처럼 넓은 곳으로 몸을 피해야 한다.…’

외교관을 가리켜 ‘영국 신사 같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국가를 대표하니 어떤 경우에도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점잖게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곁불을 쬐거나 비를 피한다고 달려가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 최후의 날이 닥쳐온다면…. 그날 지진으로 도쿄의 상징인 도쿄타워 꼭대기의 철탑이 약간 꺾어졌다. 2011년 8월 도쿄를 갔던 기자는 여전히 꺾어진 채로 있는 이 철탑을 보았다.

그날 도쿄의 통신망과 교통망은 대부분 두절됐다. 아시아 최고의 도시라는 도쿄의 문명이 중단된 것이다. 권 대사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버스나 지하철 등 모든 교통수단이 끊겼기에 사람들은 모두 도로에 나와 걸어서 피난을 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대도시이자 경제대국 일본의 심장부인 도쿄, 이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자랑하는 휘황찬란한 도시에서 사람들이 하염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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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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