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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 사회의 한계

제1장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라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매뉴얼 사회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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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 사회의 한계

도카이 2발전소에서 해수펌프를 넣어둔 방파벽(왼쪽)과 방파벽에 있던 구멍으로 물이 들어와 침수됐던 해수펌프.

일본은 아시아 최고의 선진국이다. 아시아 나라 가운데에서는 가장 먼저 개화했고, 앞서 과학을 받아들였다. 일본은 태풍과 지진 등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기에 기상 관측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외항선을 모는 선장들은 설사 한국인일지라도, 한국 근해를 지날 때도 하나같이 일본 기상청 자료를 참고한다. 일본 기상청 자료가 한국 기상청 자료보다 정확하기 때문이다.

일본 기상청은 150여 년 전부터 기상관측을 해왔다. 일본 산업계는 이러한 기상 자료를 토대로 안전한 곳을 골라 산업체를 지어왔다. 기상이변에 대비한 안전시설도 해왔다. 일본은 과학을 믿은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과학을 받아들인 역사는 200년을 넘지 못한다. 지구의 나이는 45억 년이 넘는다. 45억 년의 역사 속에는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한 200년 사이에는 도저히 감지할 수 없는 숱한 사건이 숨어 있다.

과학을 믿은 일본

일본은 좀 더 현명했어야 한다. 일본 최고(最古)의 역사서는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인 712년에 나왔다는 ‘고사기(古事記)’다. 고사기는 한국 최고의 역사서인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년 편찬)’보다 먼저 나왔다. 이러한 옛 사서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천재지변을 기록해놓았다. 차이는 150여 년 전 일본이 받아들인 것처럼 과학적인 측정이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일본이 역사서를 뒤적였다면 1000여 년간의 자연재해 데이터를 갖고 원전을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역사에서 배운다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상술한다. 3·11대지진이 일어난 날 일본 기상청이 예상 쓰나미 높이를 세 번이나 수정 발표한 것은 현대 과학의 한계를 보여주는 한 예다. 일본은 현대 과학뿐만 아니라 역사 과학도 살폈어야 한다.

은 도후쿠 지역의 5개 원자력발전소를 지을 때 그곳으로 닥칠 것으로 예상했던 최대 쓰나미 높이와 그 높이를 고려해 원전을 지은 해발고도, 그리고 2011년 3월 11일 그곳으로 몰려온 쓰나미의 최고 높이를 정리한 것이다. 이 표를 보면 원전 설계 시 상정한 쓰나미 높이가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쓰나미 높이보다 훨씬 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고를 당한 후쿠시마 제1발전소를 운영하는 도쿄전력은 그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쓰나미의 최고 높이를 5.7m로 보고, 1~4호기는 해발 10m에, 5~6호기는 해발 13m 위치에 건설했다. 그런데 2011년 3월 11일 그곳으로 몰아친 쓰나미의 최고 높이는 15m 위치였다. 1~4호기 부지는 5m 두께의 물에 덮이고, 5~6호기는 2m 깊이의 물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후쿠시마 제2발전소는 아슬아슬하게 사고를 피했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2발전소로 올 수 있는 최고 쓰나미의 높이를 5.2m로 보고 해발 12m에 원전을 건설했다. 후쿠시마 제2발전소에 몰아친 쓰나미의 높이는 6.7m였는데 부분적으로 15m의 쓰나미가 덮쳤다. 15m의 쓰나미를 맞은 곳은 3m 정도 침수되었다. 하지만 비상발전기가 작동해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80㎝ 차이로 쓰나미 모면한 오나가와 발전소

도호쿠전력은 오나가와 발전소로 밀려올 수 있는 최고 쓰나미 높이를 9.1m로 예상하고 해발 13.8m 위치에 원전을 건설했는데, 2011년 3월 11일 13m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오나가와발전소는 80㎝의 차이로 ‘물폭탄’을 맞지 않은 것이다. 히가시도리 발전소는 원전이 정지해 있었던데다 비상발전기가 가동됐기에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일본원자력발전(약칭 일본원연)은 도카이(東海) 제2발전소를 짓는 곳에 최고 5.7m의 쓰나미가 올 수 있다고 보고 해발 8m 위치에 원전을 지었다. 그리고 복수를 위해 해수를 퍼 올리는 해수펌프는 방파제가 앞에 있는 바닷가에 설치했다 그리고 5.7m의 쓰나미가 와도 해수펌프가 잠기지 않도록 주위에 높이 6.1m의 방파벽을 설치했다.

그날 도카이 제2발전소로 몰려온 쓰나미의 최고 높이는 방파제는 물론이고 방파벽보다 낮은 5.4m였다. 따라서 어느 곳도 바닷물에 잠기지 않았는데, 뜻밖의 곳에서 문제가 일어났다. 해수펌프가 침수된 것이다. 해수펌프에 이상이 있다는 경보는 쓰나미가 몰려간 다음인 오후 7시 26분에 울렸다. 그제야 일본원전은 해수펌프실 안의 공사를 위해 방파벽에 구멍을 내놓았다는 것을 알았다.

일본원연은 해수펌프실 안에서 공사를 하기 위해 방파벽에 구멍을 내놓은 것을 잊고 있었는데, 그 구멍으로 물이 들어가 몇 시간 후 해수펌프를 멈추게 한 것이다. 해수펌프가 멈추면 복수가 되지 않아 원자로가 과열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방파벽에 내놓은 공사용 구멍을 통해 상당히 많은 양의 바닷물이 들어갔다. 물은 방파벽 안에서 해발 4.9m까지 차올라 있었다.

그로 인해 1.8m 높이의 해수펌프 한 대가 정지됐다. 그러나 두 대는 계속 가동됐다. 다행인 것은 도카이 제2발전소의 비상발전기는 침수되지 않아 계속 가동됐다는 사실이다. 일본원전은 도카이 제2발전소에 3대의 비상발전기를 설치해놓았는데, 한 대만 가동을 멈추고 두 대는 정상 가동했다. 전기가 있으면 양수기를 돌려 방파벽 안의 물을 퍼 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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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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