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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원전 안전 신화 무너뜨린 일본

제2장 연이은 수소폭발 세계를 긴장시키다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자본주의 원전 안전 신화 무너뜨린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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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원이 상실된 SBO 상황을 맞으면 원전에서는 비상용으로 준비해놓은 물로 원자로 냉각을 시도한다. SBO 상황에서 원자로 안에 물을 넣는다고 하면원자로와 연결된 밸브를 열고 외부의 물을 집어넣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가동 중인 비등수로는 80기압, 경수로는 150기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많은 전기를 써서 강력하게 돌아가는 펌프가 있어야 이 압력을 뚫고 외부의 물을 원자로 안으로 넣을 수 있다. SBO 상황은 강력한 펌프를 돌려줄 전기가 없는 것이니 물을 집어넣을 방법이 없다. 밸브를 열면 오히려 안에 있던 물이 높은 압력 때문에 튀어나오므로, 밸브를 열지 말아야 한다.

원전은 원자로 안의 물이 핵분열하는 핵연료의 열을 받아 증기로 변해 터빈을 돌려준 다음 복수기를 지나면서 물로 되돌아와 원자로 안으로 들어가는 무한 순환을 반복한다. 따라서 원자로를 냉각시키기 위해 물을 넣는다는 것은 증기를 식혀 물로 되돌린 다음 다시 원자로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뜻이다. 즉 원자로에서 끓여 증기로 바꿔준 것을 식혀서 다시 물로 돌려받는 것이다.

SBO만큼이나 두려운 LOC

원자로는 두께가 30㎝쯤 되는 특수강으로 만들어져 수백 기압을 가해도 터지지 않는다. 그러나 증기가 흐르는 관은 원자로보다는 약한 재질로 만들어져 증기압이 높아지면 터질 수 있다. 강력한 지진이 일어나면 원자로는 끄떡없지만, 이 관은 터질 수 있다. 관이 터지면 강한 증기압 때문에 터진 곳으로 증기가 모두 빠져나가, 복수기에서 물로 바뀔 증기가 없어진다.

물을 공급받지 못하면 원자로 안의 물이 금방 줄어들어 핵연료 상단부터 빠르게 물 밖으로 나와 녹아내린다. 이것을 원전 세계에서는 ‘LOC(Loss Of Coolant)’라고 한다. 원자로 안에서 열을 받아 나와 터빈을 돌리고 자신은 식혀져 다시 원자로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는 가스를 쓰는 경우도 많았다.

물처럼 원자로 안으로 들어가 핵연료를 식혀주고 핵연료의 열을 받아 터빈을 돌려주는 물질을 ‘냉각재(冷却材, coolant)’라고 통칭한다. 냉각재가 흐르는 관은 완전 밀봉돼 있어야 하는데 어떤 이유로 파손되면 높은 압력 때문에 냉각재는 단숨에 빠져나간다. 이 상태가 ‘냉각재 상실’로 번역되는 LOC다.

핵연료가 녹으면 5등급 이상 사고

LOC 상황이 벌어지면 모든 전원을 상실한 SBO 상황이 아니어도 노심 용융이 일어난다. 따라서 원전 운영자들은 SBO 상황과 함께 LOC 상황을 매우 두려워한다. LOC를 맞지 않으려면 어떠한 경우에도 냉각재(증기 등)가 흐르는 관이 파손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큰 지진이 발생해 SBO와 LOC를 함께 맞았다면 사고를 피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

LOC 상황을 맞아 물 밖으로 나온 핵연료는, 핵분열을 하고 있으면 더 빨리, 그렇지 않았다면 핵분열 때보다는 천천히 과열되면서 스스로 녹아내린다. 녹아내린 핵연료는 원자로 바닥으로 떨어지는데, 녹은 핵연료는 ‘매우매우’ 뜨겁기에 두께 30㎝쯤 되는 원자로 바닥을 녹여 구멍을 내기 시작한다.

그때 원자로에서는 순식간에 물이 증발해 사라지므로, 과열돼서 녹아내리는 핵연료의 양은 더욱 늘어나고, 원자로 바닥은 더 빨리 구멍이 뚫리게 된다. 그리고 구멍이 커져 완전히 뚫리면, 그때까지 남아 있던 물이 다 빠져나오고, 물이 다 증발했다면 증기가 빠져나온다. 녹아내린 핵연료도 이 구멍을 통해 원자로 바닥 아래로 빠져나간다. 이것이 바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규정한 원전 사고 등급 가운데 위험한 5등급의 노심용융이다(표3 참조).

원자로가 뚫리지 않은 상태에서 노심이 녹는 것도 위험한데 원자로가 뚫리면서 노심이 녹았다면 위험한 6등급이 된다. 그리고 격납용기까지 훼손되면 가장 위험한 7등급으로 분류한다.

따라서 원전을 지을 때는 증기가 흐르는 관이 터지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행스럽게도 후쿠시마 제1발전소를 비롯한 도호쿠 지방 원전의 증기관들은 각자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7~8 정도의 지진을 견뎌냈다. 다른 관은 터졌는지 몰라도 이 관들은 건재한 것이다.

이 지역의 원전은 대부분이 2세대인지라, 동일본 대지진 규모보다 내진 설계 기준이 낮았는데도 견뎌낸 것이다. 중요 시설은 내진설계치보다 강하게 짓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에 3·11 대지진의 강한 충격을 이겨낸 것으로 보였다.

터빈 관성력 이용해 보조 급수펌프 가동

지진으로 자동정지한 원자로에서는 계속 증기가 발생한다. 이 증기는 터빈을 돌리지 않고 곧장 관을 따라 흘러와 힘이 있다. 이 증기는 복수기에 열을 뺏겨 다시 물로 돌아온 물을 원자로 안으로 밀어준다. SBO 상황을 맞지 않아 복수기가 정상 가동하고 있다면 원자로 안으로 계속 물이 들어가는 순환이 이뤄지니, 노심 용융은 일어나지 않는다. 원자로가 자동 정지해도 원전은 안전한 것이다.

그러나 SBO 상황을 맞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SBO 상황에서는 해수펌프가 가동되지 못해 복수기가 관 안의 증기를 물로 돌려주지 못한다. 그런데 원자로에서는 계속 증기가 발생하니 원자로와 관 안에는 증기가 팽창해 증기압만 높아지고 물은 줄어든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줄어든 물 때문에 물 밖으로 나온 핵연료의 상단이 녹는 노심용융이 일어난다. 레벨 7의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를 피하려면 바닷물이 아닌 다른 물을 끌고 와 관 안의 증기를 식혀 물로 바꿔주어야 한다. 따라서 SBO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을 식혀줄 물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원전에서는 각종 탱크에 물을 비축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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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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