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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연이은 수소폭발 세계를 긴장시키다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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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2일 후쿠시마 발전소를 찾은 기자단 앞에서 설명하는 요시다 마사오 소장.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1호기에 해수를 넣어야 한다는 것은 원자력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도 누구도 결심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이것으로 모든 위험이 사라지면 다행이다. 1호기에서는 노심 용융이 계속 일어나고 있으니 수소는 또 발생한다. 그런데 격납용기가 온전하니, 이 수소는 격납용기 상단에 모여 다시 수소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

격납용기를 비롯한 1호기의 구조물들은 1차 수소폭발로 충격을 받아 약해져 있으므로 2차 폭발이 일어나면 무너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일본은 체르노빌-4호기와 같은 사고를 당하게 된다.

따라서 수소폭발이 일어난 다음에라도 해수를 주입해 추가 폭발을 막는 것이 급선무다. 그런데도 도쿄전력 본사는 침묵했다. 그러자 요시다 마사오 소장이 독단으로 1호기에 해수 주입을 결정해 명령을 내렸다.

그에 따라 후쿠시마 제1발전소 직원들은 12일 오후 7시 4분부터 소화(消火)펌프를 사용해 바닷물을 1호기 원자로 안과 격납용기 안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요시다 소장은 이를 본사에 보고했다. 본사에서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요시다 소장의 결정을 추인해준 것으로 이해됐다. 그런데 이것이 엉뚱한 일로 인해 돌변했다.

간 나오토 총리의 그릇된 판단

도쿄전력은 엄청난 사고를 일으킨 만큼 직원을 총리실에 보내 상황 보고를 하고 있었다. 도쿄전력 측은 이 직원을 통해 추가 수소폭발을 막기 위해 1호기에 해수를 주입하고 있는 상황을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에게 보고하게 했다.

간 나오토 총리는 도쿄(東京)대학 이학부 응용물리학과를 졸업했다. 물리학은 원자력공학과 연결되니 그는 원자력에 대한 이해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쿠시마 제1발전소 1호기 폭발에 대해 그릇된 정보를 갖고 있다면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 1호기가 수소폭발을 한 후 도처에서 해수를 주입해 추가 폭발을 막아야 한다고 하자, 간 나오토 총리는 도쿄대학 교수로 내각의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마다라메 하루키(班目春樹) 위원장에게 “1호기에 해수를 주입할 경우 재임계(再臨界)를 일으킬 수 있느냐”고 물었고, 마다라메 위원장은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다(2011년 5월 22일 도쿄전력 발표 내용으로 요미우리신문 보도에 근거).

해수를 주입할 경우 핵분열을 멈춘 핵연료가 다시 핵분열(재임계)할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하는 쪽으로 존재한다. 반면 과열된 핵연료를 식혀 추가 수소폭발을 막을 가능성은 100%에 수렴하는 쪽으로 존재한다. 마다라메 위원장은 과학자이기에 제로에 수렴하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대답한 것 같은데, 간 나오토 총리는 해수를 넣으면 무조건 핵연료가 다시 핵분열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때 총리실에 나와 있는 도쿄전력 직원이 “해수를 주입했다”고 보고하자, 간 나오토 총리실은 “1호기가 재임계(再臨界·다시 핵분열하는 것)하는 것 아니냐. 왜 해수를 넣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총리 관저에 파견돼 있던 도쿄전력 관계자는 본사에 “총리의 판단이 없으면 해수 주입은 실시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에둘러 전했다. 일본은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는 사회다. ‘그럴 것이다’라고만 해도 그렇게 하는 사회가 일본이다.

이 연락을 받은 도쿄전력 본사는 후쿠시마 제1발전소와 연결된 화상회의 통신망을 통해 오후 7시 25분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 1호기에 대한 해수 주입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강력한 지진에도 불구하고 본사와 발전소 사이의 화상통신망이 연결돼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화상통신을 하는 전원은 가동됐던 모양이다). 이 지시를 받은 요시다 소장은 분노했던 것 같다.

속으로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 본사에 앉아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절규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사의 지시이니 직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직원을 부른 그는 “지금부터 하는 말은 듣지 말라”고 전제한 뒤, “본사에서 해수 주입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라고 말했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듣지 말라’고 전제한 뒤 본사가 내린 ‘해수 주입 중단 지시’를 작업요원들에게 전파한 것이니, 본사의 지시를 어기고 해수 주입을 계속하라고 지시한 것이 된다. 직원들은 본사와 현장 사이에 혼선이 있다는 것을 즉각 알아챘다. 그들도 ‘눈치가 빤한’ 월급쟁이들이니 본사와 소장의 지시를 혼합해, 급히 추진하던 해수 주입을 천천히 했다.

그 사이 간 나오토 총리실은 해수를 넣을 경우 1호기가 재임계할 가능성은 얼마인지 더 알아보게 했다. 저녁 7시 40분 전문가들은 해수를 넣을 경우 1호기가 재임계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정확히 보고했다.

이 보고를 받은 간 나오토 총리는 7시 55분쯤 도쿄전력 직원에게 “1호기에 해수를 주입해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직원으로부터 이 보고를 받은 도쿄전력 본사는 즉각 요시다 소장에게 해수 주입 재개를 지시하지 않았다. 추측건대 본사는 총리의 정확한 진위 파악을 위해 노력한 것 같다. 그리고 총리가 생각을 바꿨다는 것이 확인되자 비로소 요시다 소장에게 해수 주입 재개를 지시했다. 그때가 오후 8시 20분이었다. 총리의 잘못된 판단에 도쿄전력은 25분의 시간을 소모한 것이다.

8시 20분 본사에서 해수 주입 재개 지시가 내려오자 요시다 소장은 담담하게 본사 지시를 직원들에게 전달했다. 직원들은 본사와 소장 간의 문제가 풀렸구나 하면서 하던 해수 주입을 계속했다.

얼마 후 본사는 요시다 소장이 본사의 지시를 묵살하고 계속 해수 주입을 하고 있음을 알고 요시다 소장에게 구두 주의조치를 주었다. 묵살한 것은 사실이기에 요시다 소장은 항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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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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