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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재해를 극복한다

제3장 전원 복구로 사고 수습에 성공하다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재해를 극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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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재해를 극복한다

이 비석 밑으로는 ‘집을 짓지 마라’는 글귀가 새겨진 아네요시 마을 앞의 쓰나미 경고 비석(작은사진). 오른쪽은 쓰나미 피해를 잊지 말라는 뜻에서 큰 비석을 세운 경우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은 누구나 다 아는 말이지만 이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은 시련을 겪은 후 한결 똑똑해진다. 반면 평온함이 이어지면 항상 평온할 줄 알고 편하게 지내면서 어리석어진다. 그러다 엄청난 시련을 당한 후 다시 똑똑해지는 과정으로 들어간다.

시련을 겪고 그에 대응하면서 역사는 발전한다. 시련이라는 도전에 응전하는 사람과 사회와 국가는 발전한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를 일으킨 제1 원인은 거대한 쓰나미였다. 쓰나미 피해와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를 당한 후 사람들은 일본 기상청의 통계를 의심했다. 과연 이번 쓰나미가 전례가 없는 천재지변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쓰나미 발생 9일째 3월 20일자 ‘뉴욕타임스’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쓰나미 피해를 크게 당한 이와테현 등 일본 동북부 해안에는 쓰나미에 대한 위험을 적어놓은 비석이 수백 기가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이 비석 아래로는 집을 짓지 마라”

대지진 당일 이와테현 미야코(宮古)시의 아네요시(姉吉) 마을은 지형 조건 때문에 무려 38.9m까지 치솟은 쓰나미가 덮쳐 주목을 끌었다. 그런데도 아네요시 마을은 큰 인명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아네요시 마을 어귀에 이 비석 아래로는 집을 짓지 말라는 내용의 글귀가 새겨진 비석이 서 있는데, 3월 11일 몰려온 쓰나미는 이 비석에서 40m 떨어진 지점까지 물을 몰고 왔다. 이 마을의 다미시게 기무라 촌장은 “선조들이 쓰나미의 공포를 알았기에 후손에게 경고하기 위해 이 비석을 세웠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쓰나미를 경고한 일본의 비석 중에는 600년이 넘은 것이 있다. 경고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인지 높이가 3m에 달하는 거대한 것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비석들 가운데 하나인 아네요시 마을의 비석은 ‘집을 어느 높이에 지어야 할지’를 적시한 거의 유일한 경우라고 했다.

아네요시 마을의 주민들은 바다를 무대로 생업을 이어가야 하니 해안을 떠나 살 수가 없다. 따라서 쓰나미 피해를 누구보다도 심하게 당했다. 1896년 대지진 후의 쓰나미 때는 이 마을에서 두 명의 주민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생계를 위해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또 불행을 맞았다.

1930년 쓰나미로 네 명만 살아남은 것이다. 이 사고를 겪은 후 주민들은 비로소 해안이 아닌 언덕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비석이 있는 곳 아래로는 집을 짓지 말라’는 내용의 쓰나미 경고 비석을 세운 것은 그 직후였다.

1.2m 높이의 이 경고 비석 덕분에 1960년 쓰나미에서는 피해가 없었다. 그러나 2011년 3월 11일 일어난 쓰나미 때는 학교로 세 명의 자녀를 데리고 간 어머니가 자녀들과 함께 희생되었다. 하지만 경고 비석보다 높은 곳에 동네를 형성했기에 마을에 있던 주민들과 집은 피해를 보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흥미로운 충고를 했다. 쓰나미 경고 비석이 있는 마을들도, 제2차 세계대전 후 인구가 늘어나고 마을 규모가 커지자 선조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해안으로 거주지를 넓혀가는 바람에 피해가 컸다고 지적한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해안가 사람들은 쓰나미 피해를 영원히 잊지 말자며 ‘히로시마 원폭돔(Dome)’처럼 쓰나미 피해 현장 일부를 영구히 보존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고 보도했다.

일본 기상청이 지진과 쓰나미 등을 과학적으로 관측한 지는 15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래되는 일본의 역사는 아네요시 마을의 비석처럼 더 많은 관측 자료를 품고 있다.

일본의 교도(共同)통신은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 후 ‘문화재 기획-유적으로부터 경고, 지진고고학’시리즈를 연재했다. 이 시리즈에는 자연과 역사 속에서 살필 수 있는 자연재해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이 정리돼 있다. 이것과 기타 자료를 엮어 역사 속의 일본 자연재해를 살펴본다.

일본 역사에서 헤이안(平安) 시대는 우리의 통일신라와 고려 초기에 해당한다. 헤이안 시대에는 교토(京都)를 수도로 삼았다. 그때의 일본인들은 ‘속일본후기(續日本後紀, 서기 869년 간행)’라는 역사서를 남겼다.

이 책에는 서기 841년 2월 시나노(信濃)국을 담당하는 ‘시나노구니시’란 관리가 ‘천둥 번개가 떨어진 것 같은 격진(激震)과 진동소리가 들리고 하룻밤새 14차례나 흔들렸다. 건물과 돌담이 무너졌다’고 조정에 보고했다는 내용이 있다.

서기 841년 2월 지진을 당했다는 지역은 어디일까? 시나노국 지역은 지금의 나가노(長野)현이다. 1989년 나가노(長野)현 연구팀은 나가노 시를 가로지르는 지쿠마(千曲) 강의 자연제방 위에 있는 시노노이(篠ノ井) 유적지를 발굴했다.

그리고 이 유적지가 841년 시나노구니시가 큰 지진을 당했다고 조정에 보고한 지역으로 판단했다. 이 유적지에는 땅바닥이 갈라지면서 땅속에 있던 물과 모래가 순간 분수처럼 솟아오른 ‘액상화(液狀化) 현상’흔적이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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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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