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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자력, 일본을 지원하다

제3장 전원 복구로 사고 수습에 성공하다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한국 원자력, 일본을 지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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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자력, 일본을 지원하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나자 일본은 미국에 WC-135 기상관측기(사진)를 띄워, 방사성물질이 어떻게 퍼지고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일본이 처한 위기는 가히 전시 상황이었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 뒤처리는 만만찮았다. 구소련의 체르노빌에서는 1기 원전에서 사고가 일어났으나, 후쿠시마에서는 4기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인 것은 체르노빌에는 격납용기가 없는 상태에서 원자로가 터져나갔지만 후쿠시마에서는 원자로와 격납용기가 손상만 입고 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전 강국 일본, 안전 일본의 신화는 깨졌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따지기엔 사태가 너무 심각했다. 일본은 대지진으로 크게 흔들린 다음이라 대지진의 피해와 방사능 피해를 함께 수습하기 어려웠다. 일본을 지원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나섰다. 가장 큰 부담을 느낀 것은 마크-1 격납용기를 비롯해 후쿠시마 제1발전소 원전의 기본형을 설계한 GE사였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 GE사는 가스터빈 발전기 10대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가스터빈 발전기는 후쿠시마 원전에 설치돼 있던 비상발전기와 비슷한 수준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나중에 GE사가 제공하겠다고 한 것은 디젤발전기로 수정 보도됐다. 디젤발전기를 공급한다는 것은 비상발전기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미국은 한국과 같이 60사이클(60Hz)의 전기를 생산한다. 도쿄전력은 50사이클의 전기를 생산한다. 따라서 GE가 디젤발전기를 보내려면 먼저 60사이클이 아닌 50사이클의 전기를 생산하도록 설계 변환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하는 데 한 달 이상이 걸린다. GE가 디젤발전기를 보내겠다고 한 것이 한국을 움직였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 서술한다.

도쿄전력으로서는 폭발이 일어난 원전 내부 상황을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러나 강한 방사선이 나오고 있어 사람을 들여보낼 수는 없었다. 사람이 입는 방호복으로는 사고가 난 원전에서 나오는 강한 방사선을 막을 수 없다. 방사선을 쬐도 문제가 없는 사람처럼 움직이며 상황을 촬영해 보낼 수 있는 로봇이 필요했다.

일본은 세계적인 로봇 강국이다. 그러나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현장에 로봇을 투입하지 못했다. 이유는 평면에서 움직이는 ‘사람을 닮은’ 휴먼 로봇(인간형 로봇)만 주로 연구 개발해왔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원전 내부는 대지진과 쓰나미, 수소폭발로 뒤죽박죽이 됐기에 도처에서 설비와 내용물이 쏟아지고 넘어져, 평면을 다니는 휴먼 로봇은 활동할 수가 없다.

뒤죽박죽인 곳에서 활동할 로봇은 모든 장애물을 넘어가거나 돌파할 수 있는 전투용이나 건설용으로 개발된 것이어야 한다. 미국 방산업체들이 개발한 전투용 로봇은 장애물이 있으면 밟고 넘어간다. 움푹 파인 곳도 알아서 건너간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프랑스의 로봇 제작사인 알드바랑 로보틱스 사의 로돌프 쥘랭 대표는 “체르노빌 사고 이후 원전 업계에서는 로봇 활용의 필요성이 제기돼왔다”며 “일본은 인간형 로봇 부문에는 많은 투자를 해왔지만 실용 로봇 부문에서는 그렇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 일본은 전투용 로봇을 제작하는 미국 방산업체인 ‘키네틱 노스아메리카(QinetiQ North America, Inc)’에 원격조종할 수 있는 복구장비 지원을 요청했다. 그런데 키네틱 노스아메리카 사는 후쿠시마 제1발전소 상황에는 전투용보다는 건설용 로봇이 낫겠다며 밥캣(Bob Cat) 사의 장비를 지원받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밥캣은 한국의 두산인프라코어 사의 자회사다. 이런 이유로 한국은 일본에 원격조종이 가능한 건설장비도 제공하는데 이것도 뒤에서 상술하기로 한다.

미국의 기상관측기 출격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태도 수습해야 했지만 격납용기 훼손으로 대기 중으로 빠져나간 방사선 피해를 줄이는 것도 시급했다. 그러나 대기 중으로 흩어진 방사능물질을 포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방사능물질의 반감기가 줄 때까지, 그리고 희석될 때까지 방사선이 센 곳에는 사람 출입을 금지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강한 방사선일수록 반감기가 짧으니까.

대기 중으로 나간 방사능물질의 양을 효과적으로 측정하는 장비가 일본에는 없었다. 지상 장비는 그 지역만 측정하지 대기를 따라 오가는 방사능물질의 세기는 측정하지 못한다. 일본은 미 공군에 WC-135 기상관측기의 출격을 요청했다. WC-135는 군사 전문가들도 잘 알지 못하는 특수 목적기다. WC-135는 미국과 소련이 벌인 핵 대결 과정에 탄생했다.

주지하다시피 1945년 7월 미국은 인류 최초의 핵실험에 성공하고 8월 원폭을 투하해 일본을 항복시켜 제2차 세계대전을 끝냈다. 종전 후 승리한 연합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진영과 소련을 주축으로 한 공산진영으로 나뉘어 치열한 냉전에 들어갔다. 이때 소련은 KGB의 전신인 비밀경찰에 원폭을 개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베리야가 이끌던 비밀경찰은 핵 정보 전문기구인 S국을 만들고 미국을 상대로 한 핵 정보 확보에 전력을 기울였다. 미국은 소련의 핵 개발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미 공군은 미 육군의 항공대로 있다가 1947년 독립했다. 미 공군이 육군 항공대에서 독립하지 못했던 1947년 9월 16일, 소련의 움직임을 알고 있던 미 육군참모총장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원수는 미 육군 항공대에 대기권 핵실험 사실 포착을 전문으로 하는 ‘불멸의 불사조(Constant Phoenix)’ 사업을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이로 인해 WB-29라는 기상관측기가 만들어져 작전에 들어갔다.

WB-29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맹활약한 B-29 폭격기에서 폭격에 필요한 시설을 떼어내고 대기관측에 필요한 장비를 첨가해서 만든 것이다. 핵실험을 하면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제논 등 특수 원소가 만들어지는데, WB-29에는 이러한 원소를 채집하는 장비가 탑재돼 있다. 미국은 1950년대 중반이 돼야 소련도 핵실험에 성공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1949년 9월 알래스카에서 일본으로 비행한 WB-29기가 핵실험에서만 나오는 방사성 원소를 채집했다. 미국은 소련이 비밀리에 대기권 핵실험을 했음을 알아낸 것이다.

1965년 미 공군은 이러한 WB-29기를 WC-135로 교체했다. WC-135는 C-135 수송기에 각종 대기관측 장비를 탑재해서 만든 비행기다. 공군 작전은 날씨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태풍에 영향을 받으므로 태풍의 움직임을 정밀 추적해야 한다. 태풍은 이륙과 착륙하는 항공기에는 큰 위협을 주지만, 고도를 높여 순항 비행하는 항공기에는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 태풍이 발생하면 WC-135는 ‘태풍의 눈’으로 날아가 태풍과 함께 움직이며 태풍의 모든 것을 추적해 기상 정보를 제공한다.

기상 관측이 평시 업무라면 누군가가 몰래 핵실험을 하는 것을 추적하는 것은 비상시 업무다. 1962년 10월 쿠바 핵 위기를 겪은 미국과 소련은 1963년 모스크바에서 대기권과 우주공간, 수중에서 핵무기 실험을 금지하는 ‘부분적 핵실험 금지조약(Treaty of Banning Nuclear Weapon Test in the Atmosphere, in Outer Space and Under Water)’을 맺었다.

조약을 맺었으면 조약 내용을 이행하는지 감시해야 한다. 미국은 WC-135를 소련 영공 밖으로 띄워 소련이 이 조약을 어기고 대기 중이나 우주에서 핵실험을 하지 않는지 감시하게 했다. 이러한 WC-135가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일어난 사실을 포착하고 방사능물질이 어떻게 확산되고 있는지 정밀 추적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소련은 체르노빌 사고를 공개하지 않고 단독으로 대응했기에 서방국가들은 이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WC-135의 활약으로 구소련에서 핵 관련 사고나 실험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여기에서 나온 방사성물질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추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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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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