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호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의 긴급 제언

근본주의·경제주의·평등주의 조화시켜 교육갈등 풀어내자

  • 글: 안병영 연세대 교수·행정학, 전 교육부총리 ahnby@yonsei.ac.kr

    입력2005-06-24 13: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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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국무위원 중 최악의 3D 직책으로 꼽히는 자리는 무엇일까. 참여정부 들어 벌써 세 번이나 교체된 교육부 장관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을 듯싶다. 첨예한 이념 갈등과 학벌주의에 발목 잡힌 우리 교육의 여러 문제를 해소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 입시경쟁에 멍들고 상호불신으로 얼룩진 우리 교육을 되살릴 방법은 없을까.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가 퇴임 후 최초로 언론매체에 기고한 ‘한국 교육이 나아갈 길’.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의 긴급 제언
    우리나라의교육과 교육당국은 동네북이다. 입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시도 때도 없이 이에 대해 비판을 일삼는데, 그 내용인즉 한결같이 교육 실패에 대한 질타다. 언필칭 ‘교육위기’ ‘공교육 황폐화’ ‘교실붕괴’이고, 아예 스스럼없이 ‘교육망국’을 논하기도 한다. 이러한 비판의 칼날에는 주체하기 어려운 분노가 묻어 있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 10년 세월 두 번에 걸쳐, 모두 2년8개월 동안 교육부 수장을 맡았던 필자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그 자리에 있을 때나 나와서나 좌불안석이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정부와 교육당국이 책임져야 할 몫이 가장 클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교육 및 교육당국에 대한 불신과 비판이 그치지 않는 데는 다음과 같은 정황적 원인도 함께한다.

    교육이 불신에 휩싸인 까닭

    우리 국민의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다. 전설적인 한국인의 교육열은 우리 교육발전의 원동력인 동시에 감당하기 어려운 큰 짐이 돼 왔다. 1200만명에 육박하는 각급학교 학생들, 50만명에 이르는 교원들, 그 수를 훨씬 뛰어넘는 학부모들, 기타 다양한 교직단체와 시민운동가들, 교육산업 종사자들…. 다양한 교육수요자와 교육공급자의 교육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다. 또한 그 관심이 각자의 이기적 관점과 눈앞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하게 분출되고, 저마다 교육전문가를 자처한다.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누구든 교육과 연관해서 얼마쯤은 한(恨)이 맺혀 있다는 점이다. 사실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못 배운 한’을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더욱이 광복 이후 우리 사회가 급변하는 가운데, 교육이 계층과 신분상승의 선도변수로 인식됐기 때문에 양질의 교육과 인생의 성공을 등식화(等式化)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그러다보니 전 국민이 ‘일류대병(病)’에 감염됐고, 심각한 학벌주의의 노예가 됐다. 그 결과 교육과정에서 빚어진 작은 실패도 당사자는 천추의 한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다시 교육제도와 정책, 그리고 교육당국에 대한 강한 불만과 분노로 투사된다.



    교육당국이 교육정책을 형성하고 관리하는 데서 겪는 어려움의 큰 원천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이념적 갈등이다. 언뜻 보기에 교육문제는 탈(脫)이데올로기의 영역인 듯싶지만 실은 거기에 첨예한 이념적 갈등이 도사린 경우가 많다. 이념의 여울에 빠지면, 만사를 정(正)과 사(邪)의 문제로 인식하게 된다. 문제 해결에 나서면 나설수록 사회적 갈등의 수렁에 깊이 빠져들기 일쑤다. 대부분의 교육 쟁점에선 여론이 반으로 갈라지는 경우가 잦고, 그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현재 쟁점이 된 이른바 3불(不)정책(고교등급제·본고사·기여입학제 금지)이나 교육개방, 사립학교법도 모두 그런 예다.

    일반 국민의 교육 및 교육당국에 대한 이미지가 그리 호의적이지 못한 원인에는 대(對)언론 관계도 포함될 것이다. 교육에 관한 정책은 대체로 언론을 가교로 해서 국민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문, 방송사에서는 교육 관련 기사를 사회부가 맡는다. 이 점에서 교육이라는 독자적 섹션을 갖춘 외국 언론과 차이가 있다. 최근 몇몇 언론사에서 교육팀을 가동하고 있지만 아직 사회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사회부에서 교육을 다루면, 교육문제가 ‘사건’이 될 개연성이 크다. 교육 관련 소식이 사건으로 다뤄질 때 자칫 교육의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이 부각될 가능성이 크고, 기사가 선정적으로 흐르기 쉽다. 교육에 대한 기사가 교육계의 각종 갈등이나 분쟁, 부정이나 비리로 얼룩지는 까닭도 그 때문이 아닐까 한다. 국민의 뇌리에 입시부정이나 촌지, 학원폭력 같은 부정적인 사건이 강하게 부각되면 교육계나 교육당국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고 이는 신뢰의 위기로 번진다.

    이러한 이유로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는 비판과 질타의 표적이 되고, 교육부총리는 국무위원 중에서 최악의 3D 직분으로 정평이 나 있다.

    APEC이 격찬한 한국 교육

    한국 교육은 국내에서는 온갖 비난과 질타의 대상이 되지만, 신기하게도 외국에서는 으레 상찬(賞讚)과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일례로 지난해 4월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교육장관회의에서 다른 나라 교육 수장들은 한국 교육, 특히 한국의 초·중등교육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고 입을 모았다. 까다롭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orld Bank)도 한국을 교육 모범국이라고 지칭한다. 그렇다면 한국 교육의 강점과 잠재력은 무엇이며, 약점과 장애요인은 무엇인가.

    사실 교육이 지난 수십년 사이 한국이 성취한 경이적인 산업화와 민주화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실제로 교육은 한국의 산업화에 필요한 양질의 인력을 공급했고, 시민의식을 고양함으로써 민주화를 견인했다. 만약 우리가 그간 인적자원 개발에 소홀했다면, 오늘날 그토록 자랑하는 경제발전과 민주화, 그 어느 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 교육의 두드러진 성과는 초·중등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서도 드러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비교연구(PISA 2003)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학업성취 소양이 41개국 중에서 문제해결 능력 1위, 읽기 2위, 수학 3위, 과학 4위, 종합성적 2위로 나타났다.

    성적만 뛰어난 게 아니다. 학생간 성취도 격차가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낮고, 학력부진아 비율이 OECD 전체가 21.7%인데 견주어 우리는 6.6%에 불과하는 사실 또한 고무적이다. 또한 중학교 2학년 대상의 국제비교(TIMSS)에서도 46개 참가국 중 수학 2위, 과학 3위라는 발군의 성적을 거두었다. 이러한 결과는 평준화정책이 학력의 하향 평준화로 이어졌다는 우리 사회 일부의 주장을 잠재우기에 충분한 논거가 된다.

    외국이 부러워하는 한국 교육의 또 다른 강점은 세계 최정상의 교육정보화 기반이다. 한국은 이미 2002년 모든 초·중등학교에 세계 최초로 초고속 인터넷을 연결했고, 지난해 4월1일에는 교육방송(EBS)을 통해 역시 세계에서 처음으로 10만명이 동시에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동영상 수능 강의 서비스가 제공됐다. e-러닝 선도 국가로서 한국의 위상을 크게 높인 것이다. 이 밖에도 우리 사회에는 전통적으로 교육과 학습을 중시하는 사회문화적 풍토가 깊이 뿌리내렸고, 다른 나라에 비해 우수한 교원들이 교육현장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한국 교육은 이러한 ‘빛’과 더불어, 오히려 그를 압도하는 어두운 ‘그림자’를 안고 있다.

    우선 삶의 현장에서 가장 치열하게 직면한 교육 문제는 과열 입시경쟁과 이와 연관된 엄청난 사교육비의 무게다. 가계의 사(私)교육비 부담은 해마다 증가해, 2004년 가구당 월평균 자녀교육비는 49만4000원에 달한다. 사교육비에서 비롯된 가계압박 때문에 생활이 쪼들리고, 심지어 가정해체의 위기까지 겪는다. 증가일로의 조기유학 대열과 ‘기러기 아빠’의 양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저출산의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폭발적인 교육열의 빛과 그림자

    입시 위주의 교육은 인성교육과 창의성교육을 뒷전으로 몰아내 학생들의 심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앞서 언급한 PISA 결과를 다시 살펴보면, 우리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매우 높지만 아쉽게도 학업에 대한 흥미는 대체로 낮다. 인생의 한 고비인 대입이라는 험준한 고갯길을 넘기 위해 마지못해 하는 학업이 신명나고 재미있을 리 없다. 인간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명제에 유의할 때, 우리는 PISA 결과에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다. 이들의 학업성취도가 대학까지, 아니 이후의 교육과정까지 계속 이어질지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가 가장 행복한 터전이어야 하는데, 우리의 학교 현장은 어느새 청소년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옥죄는 창살 없는 감옥이 돼버렸다.

    학력의 세습과 가난의 대물림도 한국 교육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다. 입시경쟁이 치열하고 사교육비 부담이 과중할수록, 일류대의 문은 있는 자에게는 넓고 없는 자에게는 좁게 마련이다. 부모의 소득격차가 교육기회의 불균형으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소득격차가 더 벌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계층간·지역간 교육격차는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학력주의와 연계되어 사회통합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의 긴급 제언

    5월7일 오후 서울 세종로에서 열린 ‘상대평가 내신 위주 대학입시제 반대 촛불집회’에 참가한 고교생들.

    아울러 걱정스러운 부문이 고등교육이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국제경쟁력은 그리 높게 평가받지 못한다. 그동안 양적 성장에만 힘을 쏟고, 적절한 투자와 질(質) 관리에 소홀했던 것이 주 원인이다. 무엇보다 산업계 현장의 수요에 대학이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국 교육의 빛과 그림자의 원천은 무엇인가. 바로 우리 국민의 폭발적인 교육열이다. 한국 교육이 토해낸 그간의 성과와 문제점이 모두 여기서 비롯된다고 본다. 한국인의 열화와 같은 교육열은 불과 수십년 만에 전화(戰禍)로 찌든 극빈의 저개발국을 세계 상위권 국가로 끌어올리는 놀라운 신통력을 발휘했지만, 반대로 입시경쟁과 연관된 온갖 개인적·사회적 병리현상을 낳았다.

    대체로 우리는 한국 교육에 대해 자기비하적 내지는 자학적 평가를 해왔다. 그러나 우리 교육, 특히 초·중등학교에서 이뤄지는 보통교육의 수준은 세계 정상급이다. 고등교육도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 이른바 ‘토종’ 학자로 분류되는 황우석 교수가 세계를 놀라게 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좀더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가 할일은 폭발적 교육열의 명암(明暗)을 가려 바르게 관리하는 일이다. 교육과 학습을 존중하는 사회문화 유산과 이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열정은 물꼬를 터주어 바르게 키우고 가꿔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왜곡된 교육관과 공공성, 분수, 절제를 모르고 과잉 분출하는 빗나간 교육열, 그와 연관된 온갖 사회악은 이제 단호하게 그 물꼬를 막고 엄격하게 관리해야 할 것이다.

    교육개혁의 기본 철학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교육개혁사를 개관하면, 교육개혁의 기본 철학은 세 가지 물줄기를 그 원천으로 삼는다. 교육 본연의 목적을 강조하는 근본주의, 시장원리와 경쟁력을 앞세우는 경제주의, 사회적 형평과 통합을 강조하는 평등주의가 그것인데, 이들은 서로 각축하며 3각 구도를 형성한다.

    근본주의는 도야(陶冶)를 목표로 삼고 지덕체(智德體)의 고른 발전을 강조한다. 따라서 인간과 인간의 바른 상호작용과 인간의 가치 있는 변화에 주안점을 둔다. 한마디로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노력으로 집약된다. 교육의 본질을 강조하는 이 주의는 지적 능력이나 학력의 신장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인성의 함양이 전제돼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한다.

    이에 반해 경제주의는 시장주의와 엘리트주의를 전폭적으로 수용하며, 능력 신장과 경쟁력 강화라는 집약된 목표를 지향한다. 따라서 이들은 교육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며, 경쟁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가능한 한 조기에 선발해 세계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천명한다. 대체로 이념적 자유주의자들과 사회의 보수적 지도층, 특히 경제 엘리트들이 이 이론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그런가 하면 평등주의는 대중적 관점에서 교육기회의 평등과 뒤진 자에 대한 교육적 관심을 강조하며, 공동체주의와 교육을 통한 사회통합을 지향한다. 진보적 사회세력과 민중, 그리고 과도한 시장주의의 발호를 우려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는다.

    따지고 보면 근본주의, 경제주의, 그리고 평등주의는 모두 중요한 사회가치들이다. 또 저마다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중 어느 것 하나를 온전히 취하고 다른 것을 통째로 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교육개혁이 균형과 조화를 바탕으로 삼는다면, 모든 교육개혁은 이 세 가치 중 어느 것을 취하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세 가치를 아우르는 조합과 조화의 문제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은 교육단계마다 이 세 가치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에 모아져야 한다.

    그렇다면 근본주의, 경제주의, 평등주의를 어떻게 조화할 것인가. 혹자는 전문가의 식견을 강조하고, 혹자는 대중의 욕구와 정서를 강조한다. 정책 결정자는 양자를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 교육개혁이 지나치게 하향식이거나 상향식이어선 안 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교육개혁 과정에서 교육부문 내외의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고 이들의 끊임없는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다양한 주장을 조정하고 타협을 이끄는 과정에서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조화다. 과도한 이상주의는 적실성(適實性)이 약하고, 눈앞의 현실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개혁의 본지(本旨)가 흐트러진다.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의 긴급 제언

    대학입시 정책은 우리 교육의 가장 첨예한 쟁점이다.

    이와 연관해 생각할 것은 교육이라는 영역의 특색이다. 교육적인 상호작용은 대체로 장기적·질적·내면적이며, 총체적 변화를 목적으로 한다. 교육 투자는 자본의 회임기간이 길고, 사람의 총체적 변화, 특히 그 정신적 영역의 변화를 겨냥하기 때문에 그 결과를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교육개혁은 장기적 관점에서 모색돼야 하며, 극단적인 변화보다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개혁은 어느 정권(正權)의 정치적 수명을 뛰어넘어야 하며, 교육개혁에 정치논리가 개입되는 것을 저지해야 한다.

    아울러 생각해야 할 것은 이제는 교육개혁을 인적자원 개발이라는 큰 틀 안에서 장기적으로 구상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현재 전체 인구 중 0~14세의 비율이 19.1%, 65세 이상이 9.1%인데, 2020년이면 각각 12.6%, 15.7%로 크게 변한다. 그 과정에서 학령인구는 급감하고, 생산가능인구의 구성도 고령화하며 중심 인력이 중년층으로 이동(중위 연령 2005년 34.8세, 2020년 43.7세)해서 2050년에는 세계 최고령국(중위 연령 56.25세)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교육개혁을 인적자원 수급측면과 긴밀하게 연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보육, 유아교육, 학교교육, 평생교육 등 전 생애에 걸친 교육과정을 통해 양질의 근로능력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도록 일관성 있는 인력양성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

    경제주의와 평등주의의 충돌

    다시 세 가치의 배분문제로 돌아가자. 그런데 실제로 세 가치에 대한 접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가 적어도 수사(修辭)적 차원에서 너나할것없이 근본주의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근본주의에 대해서는 별로 쟁론이 없다. 외향적으로는 마치 모두 합의하는 최대공약수인 양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시늉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근본주의적 접근은 말의 성찬(盛饌)으로 끝날 뿐, 실천적 차원에서 이루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시민단체, 정책담당자나 현장 교육자 모두 그런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이들 가치의 선택과 조화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경제주의와 평등주의 간 이념논쟁이 치열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이념적 갈등이 지나치게 치열하고, 그 주장이 교조적이라는 데 있다. 경제주의자들은 격변하는 시대적 조류, 즉 세계화·정보화·지식사회화의 격류 속에서 국가생존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수월성 교육과 교육개방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평등주의자들은 교육이 부(富)와 신분 세습의 사회적 재생산 기제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교육기회의 평등과 대중교육의 내실화가 관건이라고 역설한다.

    교육과 연관된 주제는 대부분 곧장 이념적 쟁점으로 비화한다. 이들 쟁점에 대해 경제주의자들과 평등주의자들은 대척적 지점에서 교조적으로 대응한다. 대체로 찬반(贊反), 가부(可否)로 의사가 분명하게 표현되며, 그 안에서 타협이나 제3의 대안은 고려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독백은 있으되 대화나 타협은 없다. 전형적인 제로섬 게임이 연출된다.

    정치권이나 교직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 언론 등도 그 이념적 지향에 따라 극명하게 갈라지고, 시간과 더불어 일반 시민도 양 진영의 어느 한쪽에 가담하게 된다. 사회적 합의란 처음부터 물 건너간 상황이다. 대체로 이런 상황에서 교육당국은 정책결정을 강요받는다. 어정쩡한 대안을 내놓았다가는 양쪽에서 몰매 맞기 일쑤다.

    정책 결정자는 적어도 중기(中期) 수준의 청사진과 원칙을 세워야 한다. 그렇다면 위의 세 가지 가치, 즉 근본주의·경제주의·평등주의를 어떻게 조합·조화해야 할 것인가.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세 가지 가치의 장점을 적기(適期)에 슬기롭게 조합할 방법은 없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아 및 초등교육의 경우 근본주의적 접근을 우선으로 하며, 중·고등학교 교육에서는 평등주의와 경제주의를 조화롭게 배합하는 데 역점을 두고, 대학교육에서는 경제주의에 우선 가치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평생교육의 경우 워낙 교육형태가 다양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그 방향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그 유형별로 세 가치를 다양하게 조합할 것이나, 대체로 실용주의적 접근이 우세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각 교육과정의 단계별 정책 접근방식을 부연 설명한 것이다.

    초등학생을 위한 ‘방과 후 학교’

    유아교육과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는 근본주의적 접근이 우선돼야 한다. 이 시기에는 무엇보다 인성(人性)교육에 역점을 두고 창의성의 씨앗을 뿌리면 된다. 이 세상을 더욱 인간적인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린 나이 때부터 인간다운 삶의 기초를 바르게 세워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동체 준칙들, 예컨대 정직과 상호신뢰, 질서와 자제, 도움과 나눔을 내면화하고 이를 몸소 실천할 수 있도록 어린이들을 정성껏 가르쳐야 한다.

    인성교육은 언제나 허구에 머물 위험이 뒤따른다. 그러므로 실효성 있는 인성교육의 실천을 위해 학생들이 열린 생각과 창의적 사고, 상상력과 실험정신, 그리고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키울 비옥한 정신적 바탕을 마련해줘야 할 것이다.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학력 위주의 교육을 하거나 과열경쟁을 부추기는 일은 피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러한 근본주의적 방침은 실제로 교육현장에서 어려서부터 학력 위주의 교육을 요구하는 학부모들의 거센 압력과 또 그를 부추기는 사교육시장의 상술과 유혹으로부터 엄청난 도전을 받는다.

    근본주의적 접근을 실천하는 데는 ‘방과 후 학교’가 실효성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학교가 앞장서 근본주의적 맥락에서 고안한 다양하고 창조적인 교육프로그램을 방과 후 개설하고 학생들에게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인성과 사회성을 함양하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과 더불어 특기·적성을 조기에 발굴하고 바르게 키워줄 수 있는 과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강사는 교사 외에 전문직 학부모, 지역사회 인사(시립교향악단 연주자, 지역 인간문화재 등)나 인접 대학교 관계자(교수, 대학원생, 대학생)를 초빙해 학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는 것이 좋다. 실효성 있는 방과 후 학교는 근본주의적 접근에 기여할 뿐 아니라 사교육 수요를 줄이고 방과 후에도 학생들을 가장 교육적이고 인간적인 장소인 학교에 머물게 함으로써 맞벌이 부부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평준화는 개선·보완돼야

    이미 한국의 중등교육은 대중교육의 단계에 접어든 지 오래다. 따라서 모두에게 평등한 보편적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적어도 이 단계부터는 학생들의 지적 능력과 경쟁력을 신장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조직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따라서 평등주의와 경쟁주의의 조화가 이 교육단계의 근본적 정책방향이다.

    중등교육과정에 대한 사회적 쟁점 중 가장 치열한 주제가 이른바 고교평준화다. 대체로 이념적 지향성이 강한 평등주의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평준화는 고수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역시 이념 편향적 경제주의자들은 ‘평준화는 절대적으로 해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모두 이데올로기이지 실사구시(實事求是)에 입각한 정책적 접근이 아니다.

    필자의 젼해는 ‘평준화는 보완·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평준화의 기본 틀은 유지하되, 그 안에서 다양화·특성화·자율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함으로써 내적 역동성과 경쟁력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수준별 이동수업, 선(先) 지원 후(後) 추첨제, 학교별 교육 프로그램의 다양화, 특목고 운영개선, 실업계 특성화, 영재교육 프로그램 등이 주요한 보완책이다. 대중교육의 견실한 보편구조에 수월성 구조를 효과적으로 접목하자는 취지다. 다시 말해 가능한 한 사회통합을 해치지 않으면서 경쟁력을 키우자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출범한 EBS 수능방송과 인터넷 서비스도 사실은 ‘양날의 칼’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엔 나라가 앞장서서 수준별, 최고급 ‘수능 과외’를 실시함으로써 고교 학생들의 전반적 학력신장과 사교육비 경감에 기여하려는 목적과 함께 교육 소외지역 학생들에게 서울 강남에 못지않은 교육기회를 제공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중등교육과정에 경제주의나 평등주의 한 가지 접근법으로 다가간다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양자의 장점을 상호 보완할 수 있는 방도를 강구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다.

    우선순위에서 좀 밀리는 듯하지만, 중등교육과정에서도 근본주의적 접근은 강조돼야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 시기가 학력 신장에 가장 전념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오히려 전인(全人)교육을 지향하는 근본주의적 접근을 강조하여 인간 형성의 균형과 형평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경남의 거창고등학교나 경기도 성남의 도시형 대안학교인 이우학교는 좋은 본보기다.

    여기에서 실업계 고교의 직업교육에 대한 언급이 필요하다. 현재 세계의 직업교육 패러다임은 점차 그 중심축이 중등단계에서 대학단계로 옮겨가고 있다. 따라서 실업고는 단순기능 위주의 직업교육을 지양하고 평생고용 가능성 차원에서 고급 기능인력 양성의 바탕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며, 실업계 고교와 전문대학간 연계교육을 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현재 실업고 졸업자의 71%가 전문대에 진학하고 있다. 실업계 고졸자들이 고교 졸업 직후에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되, 실업계 고교 및 전문대 졸업자의 계속교육 기회를 확대해 ‘선 취업 후 진학’ 유형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학교육 경쟁력, 세계 28위

    고등교육 정책의 근간은 경제주의의 바탕에 서야 한다. 또한 대학은 ‘선택과 집중’ ‘경쟁과 자율’의 기초 위에서 지식 강국으로 이끌어갈 인재양성에 진력하도록 재구조화해야 한다.

    사실 국가경쟁력의 열쇠는 바로 대학의 경쟁력에 있다. 이미 언급한 대로 한국의 고등교육은 그동안 고급인력의 대량공급체제를 구축하여 고등교육의 보편화 단계에 진입했으나, 지나치게 양적 팽창에 주력하여 비대해졌다. 이제 바야흐로 고급인력의 질적 관리가 시급한 시점에 이르렀다.

    참고로 2004년 현재 4년제 대학교가 212개, 2년제 전문대학이 162개에 달하고, 대학 재학생수가 4년제 약 237만명, 전문대 재학생이 약 90만명에 이른다. 2003년 기준으로 볼 때 1970년대에 비해 대학재학생 수가 무려 18배나 증가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일은 2004년 현재 고등교육 진학률이 81.3%로 진학률이 높기로 유명한 미국(2000년 63.3%), 일본(2000년 49.1%)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학의 경쟁력은 세계 28위 수준으로 대체로 한국의 국력에 비해 크게 뒤지는 것으로 평가됐다. 더욱이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어, 적지 않은 지방대학은 입학자원의 고갈로 국제경쟁력 확보는 고사하고 생존에 비상이 걸렸다.

    인적자원 수급이란 면에서 본 대학교육 현황은 심각하다. 1960~70년대는 경제의 양적 성장기로 산업구조가 비교적 단순해 기본적인 대학교육으로도 산업수요를 충족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1980년대 기술집약 산업 및 1990년대 이후 지식기반 산업의 발달로 고급지식, 고급기술의 수요가 크게 늘면서 대학의 교육과정과 산업현장의 수요 사이에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대학생의 과잉배출과 질적 저하 때문에 양적·질적 불균형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전공과 상관없는 일자리를 구하는, 전공과 직무의 불일치 현상도 만만치 않게 대두됐다. 과도한 대학진학으로 고학력 청년실업이 구조화하고, 직업탐색 기간이 길어져 청년층 노동력의 유휴화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서 교육시장과 노동시장을 연계하여 인력수급계획을 수립하고, 교육의 질적 내용을 설정하는 일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체계의 구축이 전제돼야 하고, 정부-대학-산업체간 긴밀한 연계체제 형성이 요구되므로 쉬운 작업이 아니다.

    따라서 현재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대학의 구조개혁과 특성화를 통해 고등교육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수 1인당 학생수를 크게 줄이고, 유사학과(전공)의 통·폐합, 학제간 협력 강화, 대학간 전략적 제휴 및 대학간 통합, 연합체제 구축을 통해 발전할 가능성이 큰 학과 또는 분야를 중심으로 특성화를 추진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교육당국과 대학교의 충분한 교감과 상호협력이 요청된다. 여기서 주요한 것은 구조개혁 재원을 마련하는 일이며, 대학이 자율적으로 내부 혁신을 이뤄 대학간 통·폐합을 추진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유인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대학의 정보 공개 의무화

    여기서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되는 제도는 대학의 정보공개 의무화다. 이는 대학으로 하여금 교수 및 학교 상황, 신입생 충원율, 행·재정 제재 내용, 졸업생 취업률, 재정 상황 등 학교 관련 정보의 공개를 의무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학 지원자와 그 학부모, 지역사회가 해당 대학(학과)에 대한 정확한 정보에 기초하여 학교를 선택할 수 있고 이는 대학이 자발적으로 혁신역량을 기르는 동인(動因)이 될 것이다.

    대학은 특성화와 더불어 산학협력의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 지역 클러스터 조성, 산학협력단, 학교기업제도, 산학협력 전담교수제, 현장실습 학점 및 학기제가 그 주요 방안이나, 아직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교육의 질 관리를 위해서는 신뢰성과 객관성을 갖추고 유지할 수 있는 평가 시스템의 구축이 가장 시급하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 차원의 고등교육평가원(가칭) 설립이 요구된다. 아울러 대학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현행 사립학교법은 적정 수준에서 개정될 필요가 있다.

    국가는 적극적인 연구지원 등을 통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적정한 수의 우수 대학을 육성하는 데 앞장서야 하며, 대학의 국제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가장 절실한 문제는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투자를 늘리는 문제다. OECD 회원국의 대학 투자는 평균 국내총생산(GDP)의 1%를 넘는데 우리의 경우 0.5% 전후에서 맴도는 실정이다. 현 단계에서 대학 경쟁력 제고의 요체는 고등교육 투자 확대에 있다.

    학령인구 중심의 현 대학입학제도 개선돼야 한다. 대학이 언제라도 입학할 수 있는 교육기관으로 탈바꿈하면, 현재의 극심한 대입 경쟁도 완화되고 입학자원 감소 문제도 해결될 뿐만 아니라 취업 후 지망자를 위한 평생교육기관으로 새롭게 위상을 정립할 수 있다. 대학의 평생교육기능 강화는 평등주의의 관점에서도 진일보한 개혁노선이다.

    아울러 대학의 구조조정에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지나친 경제주의적 접근은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학구조 조정이 교육소비자의 수요에만 부응할 때 자칫 인기학과나 실용학문만을 키우고, 인문학과 기초학문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전국적 차원에서 실용학문과 기초학문이 균형적으로 발전하도록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요구된다. 같은 맥락에서 기능주의적 인력수급정책을 추구할 경우에도 동시에 인본주의적 교육을 강화하여 전자를 보완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평생학습 참여율 높여야

    전 생애에 걸쳐 일과 학습을 연계하는 평생학습체제의 구축이 이제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다. 바야흐로 국가경쟁력의 새로운 키워드는 ‘학습하는 국민’이다. 시시각각 새롭고 다양하게 구조화하는 노동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 생애에 걸친 교육과정을 통하여 양질의 근로능력을 장기간 유지·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고용능력’의 확보를 위해 평생교육은 지상과제다.

    우리와 같은 저출산·고령화 사회는 전반적 인력개발의 관점에서 사회 내의 잠재적 가용인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인적자원의 입직(入職) 시기가 일러야 하고, 이들이 뒤늦게 퇴직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과도한 대학진학과 직업교육 인프라 미흡, 군복무 등으로 외국에 비해 입직 시기가 늦고, 반면 퇴직 시기는 유례없이 이르다. 그런가 하면 여성, 노인, 장애인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무척 낮다. 이 문제의 해법을 직업교육의 내실화와 평생교육 강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학교교육 참여율은 매우 높지만 평생학습 참여율은 낮은 수준이다. 2002년 자료에 따르면 미국 51%, 영국이 45%인 데 견주어 한국은 17.2%다. 따라서 평생학습기회 확대, 질적 수준 제고, 평등성 보장은 고령화·지식기반사회의 경쟁력 확보에 필수적인 정책과제다. 또한 평생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대학, 기업, 민간분야 등 다양한 교육주체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된다.

    현재로서는 청년, 중년층, 실업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태부족하고, 개인부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뿐더러, 전반적 질 관리체제의 취약, 평생학습에 대한 정부의 제공 기능 미흡, 평생학습 경험과 그 결과의 연계 및 호환 취약, 평생학습기관간 연계 미흡 등 개선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더불어 전 생애적 e-러닝 학습체제의 구축은 전 국민을 ‘평생학습자’로 재탄생시키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교육개혁과 인프라 구축

    이러한 교육개혁의 정책기조가 제대로 집행되려면 그를 뒷받침할 견고한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

    첫째, 인적자원을 고도로 개발하기 위한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중장기 인적자원정책을 수립하고, 관련 사업을 총괄·조정하는 실효성 있는 협의체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교육부총리가 주재하는 인적자원개발회의는 그 구성이나 권한이 크게 미흡하다. 인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양성하고·관리하기 위해서는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교육 및 인적자원정책을 수립하고 관리함에 있어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유관 기관 사이의 긴밀한 연계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유관기관간 네트워킹과 파트너십이 무척 취약해서 각종 정책사업이 단편화하고 실효성이 떨어진다. 2008학년도 대입개선안을 마련하면서 고교, 대학, 학부모, 시민사회가 두루 참여하는 교육발전협의회를 만들고, 대학 내 입학사정관제의 도입을 권장한 것도 그 때문이다. 고교와 대학간 허심탄회한 대화와 협력 없이 입시개혁이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실업고-전문대학, 대학-정부-산업체, 지역대학-지역기업-지자체, 정부-교직단체, 학교교육-가정교육-사회교육, 제도권교육-대안교육을 잇는 네트워크 형성이 긴요하다. 아울러 인력수급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인력의 생산을 맡은 교육부문과 인력활용을 담당하는 노동부문이 긴밀하게 연계 협력해야 한다.

    셋째, 교사(교수) 양성체제, 연수체제 및 평가체제의 정비와 교육과정의 개혁이 절실하다. 교사는 교육발전의 핵심이다. 대체로 우리나라 교사들의 잠재력은 우수하나 자발적인 동기유발이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수한 교사들을 양성하고, 그들의 전문성과 책무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사양성체제, 연수체제, 그리고 평가체제가 긴밀히 연계되어 최상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야 한다. 현 단계에서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것이 교사평가체제의 구축이다.

    넷째, 교육행정체제를 현장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 학교 현장에서 다양한 교육이 이뤄지려면 단위학교가 많은 권한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초·중등 교육 분야의 자율화와 분권화가 강력히 추진돼야 하며, 대학의 자율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다섯째, 학벌·학력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기업문화의 개선이 시급하다. 치열한 입시경쟁, 일류대학 집중이나 과도한 대학 및 대학원 진학, 전문대학 및 실업계 고교의 쇠퇴 등은 결국 기업의 왜곡된 인사 관행과 직결된다. 따라서 기업문화가 직무와 개인의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대우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교육과 연관된 숱한 난제의 해법은 나오지 않는다.

    교육문제를 정책적으로 풀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여기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대목이 교육관계자 사이에 신뢰가 깨지는 위기다. 정책을 형성·집행하는 과정에서 정부, 학부모, 교사, 학생, 시민사회가 서로 협력하기보다 불신하고, 일이 잘못되면 서로 책임을 미루기에 급급하다. 그러다보면 정책은 표류하고 성과는 변변치 못하다. 정책실패는 또 다른 불신을 낳고 불신은 다시 정책실패로 이어지고…. 이런 식으로 악순환은 계속된다.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함께 변하는 수밖에 없다. 정부도 변하고, 학부모, 교사, 그리고 학생들까지 모두 변해야 한다. 그 변화과정에서 더 깊이 대화하고, 함께 고민하고, 서로 한배를 타고 있다는 절절한 심경을 나눠야 한다. 해법은 대화를 통한 깊은 이해와 진실된 협력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 이제는 모두 한국 교육에 대한 자기비하적·자학적 관점을 버리고, 따뜻한 눈빛으로 한국 교육의 미래를 전망해야 한다. 교육은 따뜻하게 돌보고 힘을 모아 정성껏 가꿀 때 아름답게 꽃피우는 것임을, 기다림과 인내의 연속에서 비로소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매우 힘들고 어려운 과정임을 함께 배워야 한다.



    교육은 희망이다

    교육정책을 보는 눈을 이념적 관점에서 실사구시의 차원으로 옮기면, 독백은 대화로 바뀌고, 서로 함께 이기는 ‘윈-윈’이 된다. 그렇게 되면 교육관계자들 사이의 신뢰도 회복되고 정책실효성도 높아질 수 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교육을 통해 희망을 노래하기보다, 좌절과 실패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제 교육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를 높이고 ‘교육은 희망’이라고 함께 외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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