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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해군은 왜 ‘뱃놈’을 걷어차는가

한국형 이지스함 명명(命名) 유감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해군은 왜 ‘뱃놈’을 걷어차는가

10여년을 준비해온 한국형 이지스 구축함(KDX-Ⅲ) 제1번함이 드디어 진수(進水)한다. 이 구축함이 깃들일 제주기지도 제주 도민들의 자발적인 유치 결정으로 순조롭게 결정됐다. 그러나 한 가지 크게 아쉬운 점이 있다.

해군이 갑자기 이 배 이름을 ‘안용복함’에서 ‘세종대왕함’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해군 관계자는 “1번함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안용복보다는 더 유명한 세종대왕으로 바꿨다”고 해명했다.

훈민정음을 만들고 6진과 4군을 개척한 세종은 문무에서 활약한 명군(名君)이다. 세종 원년 조선은 쓰시마를 정벌했다. 그러나 아무리 뜯어봐도 세종은 뱃사람이 아니다. 역시 문필 세계의 성군이다. 쓰시마 정벌도 세종이 아니라 부친인 태종이 추진한 것이다.

한국이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 된 것은 해양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해양화에 박차를 가하려면 바다 영웅이 있어야 하는데, 바다 영웅을 찾아내 기리는 일은 해군이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수천년 동안 대륙화를 추구해왔기에 이순신말고는 눈에 띄는 바다 영웅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1992년 해군은 첫 잠수함을 ‘장보고’로 명명하는 파격을 택했다. 장보고는 두 번이나 쿠데타를 도모한 인물이다. 첫 번째 쿠데타에서는 신라의 민애왕을 죽이고 신무왕을 즉위시키는 데 성공했다. 신무왕이 죽고 문성왕이 즉위하자 자기 딸을 문성왕의 비로 보내려다 실패해 또다시 군대를 일으켰으나 조정이 보낸 자객에게 살해됐다.

이러한 장보고를 한국이 도입한 첫 번째 잠수함명으로 결정하자 장보고를 전과 다른 시각으로 보는 작업이 시작됐다. 해군은 몇 차례 세미나를 열어 장보고의 직함을 ‘대사(大使)’로 결정했다. 일찍이 라이샤워 교수는 장보고를 동아시아의 해상왕으로 평가했는데 그쪽으로도 시선이 옮겨갔다.

그리하여 일본 3대 사찰인 엔랴쿠지(延曆寺)를 중흥한 엔닌(圓仁) 스님이 장보고의 도움으로 바다 건너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온 것에 감사해 ‘신라명신’을 모신 신사를 지은 것과 중국 산동성 적산촌에 장보고가 세운 법화원이 주목을 받았다. 최인호씨는 소설 ‘해신’을 썼고 같은 제목의 TV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잠수함 이름 되면서 재평가된 장보고

장보고의 도전정신을 전파하기 위해 ‘해상왕 장보고 기념사업회’가 결성됐고, 완도에서는 청해진 복원작업이 시작됐다. 엔랴쿠지와 법화원을 순례하는 관광상품이 등장하고 ‘해양부’라는 정부 조직이 생겨났다. 한국사와 문화의 지평이 넓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후 해군은 KDX-Ⅰ,Ⅱ라는 9척의 구축함을 건조하며 충무공 이순신함을 제외한 8척에 육지 영웅의 이름을 붙였다. 이러한 때인 2005년 일본 시마네현은 독도를 그들의 영토로 편입한 지 100년이 됐다며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대대적으로 열었다. 이에 자극 받은 많은 한국인이 “대마도는 한국 땅”을 외치며 독도 지키기 운동을 펼치자, 해군은 제1번 한국형 이지스 구축함의 이름을 안용복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안용복은 선조와 후손이 누군지도 모르는 전형적인 평민이다. 그는 동래 수군에서 노를 젓는 병사인 ‘능노군(能櫓軍)’으로 활동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함정 기관부에서 수병으로 복무한 것이다. 그리고 동래 근처에 있는 왜관(倭館)에 드나들며 일본어를 익혔다. 어부로 돌아온 그는 임진왜란 발발 101년이 되던 해(1693년) 울릉도로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울릉도에 상륙해 있는 왜인들을 보고 분개해 싸움을 벌이다 붙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

일본은 160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통일됐다. 그에 앞서 일시적으로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1592년)한 바 있으므로 조선은 도쿠가와 막부가 통일한 일본을 조심스레 대하기 위해 통신사를 파견했다. 이러한 때인데도 끌려간 안용복은 거침없이 “울릉도는 조선 땅”이라고 외쳤고, 마침내 도쿠가와 막부의 5대 쇼군(將軍)인 도쿠가와 쓰나요시를 만나 ‘울릉도는 조선 땅’이라고 쓴 서계를 받아냈다.

안용복은 이 서계를 쓰시마 도주(島主)에게 빼앗긴 후 돌아왔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동해로 나가 ‘울릉·우산 양도 감세관’을 자처하며 울릉도와 독도로 오는 일본 어선을 막았다. 이에 일본이 불만을 표시하자 조선 정부는 외교를 어지럽힌다며 그를 처형하려 했으나, 영의정인 남구만의 반대로 귀양을 보냈다. 그리고 1696년 쓰시마 도주가 ‘울릉도는 조선 땅’이라는 서계를 보내옴으로써 조선과 일본은 영토 분쟁을 끝내게 됐다.

함정에 왕족, 귀족 이름 붙인 해군

지금까지 해군은 왕족과 귀족 이름만 골라 함정 이름으로 정해왔다. 장보고는 평민 출신이지만 당나라에서 돌아온 다음부터는 어엿한 귀족이 됐다. 지금은 국민국가 시대다.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말로 국민국가 시대임을 밝히고 있다.

이런 시대에는 왕족, 귀족과 함께 평민도 영웅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한국형 구축함 제1번함이라는 상징성이 중요하다면 오히려 애국적인 행동을 한 평민 이름을 붙여야 진정으로 국민국가 시대에 부합한다.

2005년 해군은 안용복과 함께 윤영하, 지덕칠을 KDX-Ⅲ 함명으로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안용복뿐만 아니라 윤영하, 지덕칠도 내쳐버렸다.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윤영하 대위는 고속정 정장이었다는 이유로 차기 고속정에 그의 이름을 붙이겠다고 물러섰고, 하사인 지덕칠은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송영무 해군참모총장을 비롯한 제독들이 보기에 두 사람의 계급은 너무 낮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국가를 위해 바친 그들의 생명은 제독의 별보다 더 고귀한 것일 수 있다. 왕족과 귀족과 제독은 명예를 누릴 만큼 누린 사람이다. 살아 있을 때의 신분과 계급이 죽은 후에도 고착되는 나라는 국민국가가 아니다.

역사 속에서 찬사를 받은 영웅의 이름을 함명(艦名)으로 정하면 국민은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장삼이사에 지나지 않는 이등병과 일등병 이름을 함명으로 정하면 국민은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해군에서는 의병이 나오기 힘든데 의병 이름을 함명에 붙였다면 국민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금방 깨우치게 된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작지만 의미 있는 바다 영웅을 갖고 있다. 수나라가 쳐들어 왔을 때 고건무는 패수(대동강)에서 수나라 수군을 몰살시켰다. 고건무의 승리가 있은 후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 있었다. 이에 대해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고건무가 초전에서 이겼기 때문에 을지문덕이 이길 수 있었는데, 사람들은 을지문덕의 승리에만 주목한다”고 한탄했다.

해군은 을지문덕을 KDX-Ⅰ 제2번함 이름으로 정하면서 왜 고건무는 함정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는가. 이러한 한계 때문에 우리의 해양화는 일본보다 늦었던 것이다.

울릉도를 복속시킨 이사부도 잊을 수 없는 바다 사람이다. 이사부함을 만든다면 이 함정은 “신라 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로 이어지는 노래 ‘독도는 우리 땅’을 함정가(歌)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6·25전쟁이 일어난 날 북한은 후방인 부산지역을 교란하기 위해 특수부대원을 태운 함정을 대한해협 쪽으로 우회침투시켰다. 이때 최용남 중령이 이끄는 한국 해군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호가 이 배를 발견하고 공격해 격침시켜버렸다. 이 공격이 없었다면 북한군 특수부대는 부산에 상륙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 한국은 커다란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개전 첫날 육군은 6사단 7연대를 제외하고는 방어전에 실패해 전부 무너졌는데, 해군은 괄목할 승리를 거둔 것이다. 현대사 속에 묻힌 이 승리야말로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찾아내 복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함정 이름을 최용남으로 명명하는 것이 좋은데 해군은 생각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국민이 해군을 걷어찰지도

한일 간의 독도 영유권 다툼에 대해서는 수많은 학설과 이론이 등장하지만, 실효지배만큼 확실한 것이 없다. 1954년 일본은 독도를 그들의 영토로 가져가려고 상륙을 시도했다. 이때 육군 중사로 제대한 홍순칠이 울릉도의 제대군인들을 이끌고 독도에 들어가 2년간 확실하게 지켜내고 경찰에 넘겨주었다. ‘마지막 의병’인 홍순칠도 함정 이름이 될 수 있다.

이곳저곳에 숨은 바다 영웅을 찾아내 복원하고 재평가하는 것이 해군이 할 일이다. 그러나 해군은 ‘뱃놈’을 걷어차고 있다. 뱃놈을 걷어차고 평민을 걷어차는 해군이 과연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군대가 될 수 있을까. 그러한 해군이 거꾸로 국민으로부터 걷어차이는 날은 생각 밖으로 빨리 올지도 모른다.

신동아 2007년 6월 호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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