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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의 세상읽기

연민(憐憫)에 대하여

연민(憐憫)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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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2월9일(음력), 보국안민(輔國安民·위태로운 나라를 돕고 고통에 빠진 백성을 편안케 함)과 척왜양(斥倭洋·일본과 서양세력을 배척함)의 기치(旗幟) 아래 동학농민군을 이끌다 체포된 전봉준(全琫準)에 대한 1차 심문이 열렸다. 법아관원(法衙官員)이 ‘고부민란(古阜民亂)’을 일으킨 연유를 물었다.

“처음부터 학정(虐政)을 했다면 그 즉시에 난을 일으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일대의 백성이 참고 참다 못해서 끝내는 부득이 난을 일으켰다.”

“너는 피해가 없으면서 어찌하여 난을 일으켰는가?”

“일신의 피해를 면하려고 난을 일으키는 것을 어찌 남아(男兒)의 할일이라 하겠는가. 백성의 원한이 맺혀 있었기에 백성을 위하여 학정을 없애고자 했을 뿐이다.”

전봉준의 공초록(供招錄·진술서)에 따르면 심문관은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이 부임(1892년 4월)한 뒤 줄곧 탐학(貪虐)을 거듭했는데도 뒤늦게 난리를 일으킨 연유가 뭐냐, 너는 ‘아침 밥 저녁 죽’으로 살던 형편이어서 수탈(收奪)당할 것이 없었다면서 왜 난리에 앞장섰느냐, 물은 것이다. 전봉준은 답했다. ‘참고 참다 못해서, 백성을 위하여’라고.

용산 철거민들도 ‘참고 참다 못해서’ 망루에 올라갔을 것이다. 먼저 뉴타운과 재개발, 재건축 등 도심재생사업에서 밀려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이하 경향신문 2009년 2월2일자 ‘철거민 집담회’에서 발췌 인용)

“2002년 결혼하면서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에서 7년째 전세를 살고 있습니다. 이곳은 2003년부터 재개발 바람이 불었습니다. 세입자인 저의 경우 임대아파트 입주가 가능했습니다. 조합 측에서 이사를 가면 이사비용을 주고 아니면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살고 있는데 최근 갑자기 임대아파트 입주를 하려면 2~3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겁니다. 뉴타운이 너무 많이 조성되면서 임대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이 넘쳐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사를 가려 했는데 갈 수도 없게 됐습니다. 방 2칸짜리 집을 2500만원에 전세 살고 있었는데, 주변 전·월세 값이 치솟아 이 규모로 이사를 가려면 보증금 2500만원에 따로 월세를 50만~60만원을 내야 합니다. 반지하에 수평도 맞지 않는 집 전셋값이 1억2000만원이나 합니다. 조합은 집을 비워달라고 하는데 나갈 수가 없는 처지입니다. 지금 보증금으로는 길거리에 나앉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죽나, 나가서 죽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주택세입자 L씨)

“저는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서 10년간 살고 있습니다. 재개발이 시작되자 처음에는 조합에서 1 대 1 맞교환이라고 했습니다.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런데 철거 직전에 조합이 말을 바꾸기 시작하더군요. 대지 2평에 아파트 분양평수가 1평이다, 2 대 1이 안 된다는 둥 말입니다. 게다가 관리처분인가가 나오니 건평 24평짜리 집의 감정평가금액은 고작 1억원이었습니다. 32평형 아파트입주권이 주어졌는데 분양가가 4억2000만원입니다. 3억원이 넘는 돈을 더 내야 내 집을 장만한다니 말이 됩니까.”(주택소유자 L씨)

“저는 서울 성동구 왕십리에서 20년 동안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보증금 1300만원에 월세 100만원으로 25평 규모입니다. 뉴타운이 들어서면 이사를 가야 하는데 주변에는 갈 곳이 없습니다. 마땅한 사업장을 알아보려고 한 달 넘게 다녀봤는데 제일 싼 데가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300만원이었습니다. 왕십리도 용산처럼 그런 사건이 벌어질지도 모르지만 대책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합니다.”(상가세입자 B씨)

“저는 1981년부터 29년째 서울 응암동에서 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4평짜리 작은 구멍가게지만 다섯 식구가 사는 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생계가 막막합니다. 한때 시세가 1억원이 넘었던 가게 보상비가 4600만원입니다. 구입할 때 치른 돈 6000만원에도 모자랍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셈법이 어디 있습니까.”(상가소유자 J씨)

주택이든 상가든, 소유자든 세입자든 말이 되느냐, 죽겠다, 살길이 막막하다는 하소연이다. 그렇다면 뉴타운, 재개발, 재건축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다수 원거주민(이들의 입주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을 몰아내고 힘없는 세입자를 쫓아내는 이른바 도심재생사업을 이대로 계속할 것인가. 이는 원칙, 법치 이전에 생존권의 문제다. 사람을 살게 하면서 원칙도 따지고 법치도 내세워야지, 살려달라는 호소에는 귀를 막은 채 내몰려만 한다면 참고 참다 못한 이들이 ‘난’을 일으킬밖에 더 있겠는가. ‘용산 참사(慘事)’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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