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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의 세상읽기

‘그놈의 情’때문에

‘그놈의 情’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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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그 내부의 파괴적 요소들을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다고 느껴 자기 자신의 생명을 저버리는 수가 있다. 죽음으로 파괴적 요소들을 떨쳐버림으로써 살아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죄의식과 당혹감을 갖게 만든다. 그는 순화되고 이상화된 자신의 이미지가 남아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죽은 뒤에는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다시 살아남으리라는 믿음, 즉 일종의 사후재생(死後再生)의 의식이다(알프레드 알바레즈의 ‘자살의 연구’에서).

그랬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하며 재생을 꿈꾸었을까?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그의 간결한 유서에서 사후재생의 의식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나로 말미암은 고통’과 ‘여생의 짐’, 그리고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건강’의 파괴적 요소들은 삶과 죽음에 대한 초월과 해원(解寃)의 당부로 구원되고 ‘운명과 오래된 생각’으로 종결될 뿐이다. 그러나 그는 재생했다. 최소한 500만 조문객의 기억 속에 살아남았다. 사람들은 “미안하다”고 했다. “기억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놀라운 감성의 물결로도 당혹감을 온전히 씻어내기는 어렵다. 불과 1년 반 전만 해도 “모든 잘못은 노무현 탓”이라던 사람들이, 그래서 500만표라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이명박 대통령을 탄생시키고 한나라당에 몰표를 주었던 사람들이, 단지 그의 충격적인 죽음으로 변한 것인가? ‘노무현의 가치’를 그가 죽고 나서야 발견한 것인가? 아니면 한국적 정서인 망자(亡者)에 대한 집단적 애도의 표출인가?

그것에 대한 해석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 내내 현안(懸案)이 될 것이다.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고인의 뜻대로 이번 비극을 화해와 통합의 계기로 삼자는 슬로건은 노제(路祭)의 만장 아래 초라했다. 우파-좌파, 보수-진보의 이분법적 대립구도에서는 그 어떤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도 소통되지 못한다는 것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그 불신과 차단의 벽은 청와대와 봉하마을 간의 거리보다 길며, 부엉이바위의 높이보다 높을지 모른다.

서울대 교수(124명)의 발표 이후 봇물이 터지듯 쏟아져 나온 시국선언문들은 한결같이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이 훼손되고,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에 상처를 입혔다는 등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인식은 이들의 우려와는 전혀 다르다. 그는 제 22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6·10 민주항쟁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누구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확고하게 뿌리내렸다.”

다만 민주주의의 제도적 외형적 틀은 갖춰져 있지만 운용과 의식은 아직도 미흡한 부분이 많으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법을 어기고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도 우리가 애써 이룩한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확고하게 뿌린내린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후퇴’ 사이의 간극은 한강에서 낙동강까지의 거리보다 멀다. 문제는 오늘의 한국사회에 이 간극을 메워줄 권력의 리더십도, 정치의 조정 능력도, 지성의 권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시민사회, 종교계, 문화계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분열되어 있다. 이럴 경우 양비론(兩非論)은 무난하나 무책임하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집권세력, 그리고 정권을 뒷받침하는 이른바 우파세력에 더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먼저 이 대통령은 여권에서조차 지적하는 소통의 부재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모두들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을 비판하고 염려하는데 “이럴 때일수록 중심을 잡고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식으로는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이 말 저 말에 귀 기울이고, 비판을 위한 비판에 휘둘리며 시간을 낭비하다가 언제 경제를 살리느냐는 선의(善意)의 인식이라 할지라도 곤란하다. ‘노무현 신드롬’을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에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좌파적 성향의 영향 정도로 파악한다면 비록 경제를 살린다 해도 국민통합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경제만 살리면 모든 게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시대착오적이다.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겠지만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몰려든 조문 행렬은 경제 외의 가치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헤아려야 한다. 그것을 굳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복원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면 우리식대로 ‘정(情)의 복원’으로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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