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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의 세상읽기

유인촌 장관의 행로(行路)

유인촌 장관의 행로(行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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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인가 연산인가, 아니면 ‘햄릿적 연산’인가. 법원으로부터 해임효력정지 결정을 받아낸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화예술위) 위원장의 ‘출근 투쟁’으로 ‘한 지붕 두 위원장’ 사태가 빚어진 데 대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 장관이 했다는 말, “그렇게도 한번 해보고… 재미있지 않겠어”를 신문기사로 읽으며 문득 떠올린 이미지다. 신문기사로 그 말을 하는 유 장관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다. ‘냉소적’이라는 기자의 주관적 코멘트 외에는.

유 장관은 유명한 연극배우 출신이다. 영화배우도 하고 TV탤런트도 했지만 ‘유인촌’ 하면 역시 무대체질이다. 그중에서도 햄릿과 연산 역을 잘했다. 1995년의 ‘문제적 인간 연산’(이윤택 작·연출)에서는 햄릿적 연산을 연기해 그해 최고의 연극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연극배우 유인촌은 모성(母性) 결핍과 혁명아적 기질이 복합된 연산의 이미지를 혼신의 연기로 그려냈다. 그러나 “그렇게도 한번 해보고… 재미있지 않겠어”라는 말에서는 어떤 이미지도 떠올릴 수 없다. 그저 유인촌이 연극배우로 다시 무대에 설 수는 없겠다는 불명확한 느낌이 떠올랐을 뿐.

불명확한 느낌의 이면에 ‘인간에 대한 예의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음을 인식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은 배우가 하는 연기에서 무슨 감동을 얻을 수 있겠는가. 물론 “그렇게도 한번 해보고… 재미있지 않겠어”는 배우 유인촌의 말이 아니라 장관 유인촌의 발언이다. 그러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은 ‘배우 따로 장관 따로’일 수 없다. 하물며 한 나라의 문화를 관장하는 문화부 장관의 격(格)을 생각한다면.

2008년 12월 유인촌 장관은 김정헌 문화예술위 위원장을 잘랐다. 문화부는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물러나야 한다”는 장관의 방침에 저항하는 김 위원장의 문화예술위를 표적 감사했고, 여러 이유를 들어 김 위원장을 해임했다. 강제 해임된 김 위원장은 문화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년이 지난 2009년 12월1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서태환 부장판사)는 “문화부가 2008년 12월5일 김 전 위원장에 대해 한 해임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김 전 위원장이 문화예술기금을 C등급 금융기관에 예탁해 손실을 입혔다”는 문화부 주장에 대해 “C등급 기관에 자금을 맡긴 것은 잘못이지만 자금을 예탁하는 것은 담당실무자가 선정기준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탓이 크며, 최종 결재권자인 김 전 위원장에게까지 실무자 수준의 규정 숙지를 요구하는 것은 다소 지나치다. 5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지만 이는 2008년 세계적으로 발발한 경제위기 등 상황이 열악한 점을 감안할 때 자금예탁 때문만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문화부는 김 전 위원장을 해임하기 전 사전에 통지하거나 소명기회도 부여하지 않았고 예술국장이 전화통화로 알려주었을 뿐 해임절차를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위법이니 해임은 무효라는 얘기다. 김 전 위원장이 해임되고 1주일 만에 해임됐던 박명학 사무처장에 대해서도 법원은 지난해 9월 ‘해임 무효’라고 판결했다. 명백한 위법이라는 것이다.

2010년 1월2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장상균 부장판사)는 김 전 위원장이 문화부를 상대로 낸 해임처분 집행정지 신청에서 “해임처분에 대한 본안소송의 판결 확정까지 해임처분 집행을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김 전 위원장에게 생길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고 집행정지 때문에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법원으로부터 해임처분 취소에 해임처분 효력정지 결정까지 받은 김 전 위원장은 2월1일 문화예술위에 출근을 강행했다. “이 정부가 하도 법치, 법치 하니까 자신도 법원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것이다. ‘한 지붕 두 기관장’이란 코미디 아닌 코미디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이런 판에 문화부 장관은 “그렇게도 한번 해보고… 재미있지 않겠어”라고 했지만 과연 유 장관말고 누가 그렇게 재미있어 할까.

정권이 바뀌면 파워엘리트도 바뀌게 마련이다. 김대중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으로 권력 재창출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김대중 사람’은 ‘노무현 사람’으로 교체됐다. 그러니 이른바 좌파정권에서 우파정권으로 바뀐 판에 옛 정권에서 임명된 자리가 온전할 리 없다. 과거 한나라당이 발의해 만든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권이 바뀌더라도 공공기관장 임기(3년)를 보장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새 정부와 생각이 전혀 다른 기관장들이 버티고 있어서야 국정운영이 제대로 될 수 있겠느냐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법대로 기관장의 임기를 보장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해 균형 있는 국정을 운영하면 좋겠지만, 그건 말하기는 쉬워도 현실에는 맞지 않은 소리다. 당장 정권을 이루어낸 공신들에게 나누어줄 자리가 부족하다. 유인촌 장관이 총대를 메고 나선 산하 기관장 물갈이 이후 새로 들어선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대체로 ‘MB맨’이거나 친(親)정권 성향인 뉴라이트 계열이다. 좌파에서 우파로의 대이동이다. 따라서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단체장들은 물러나야 한다”를 노골적으로 해석하면 우리 편에 나누어줄 자리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이를 당연하다고 옹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승자독식(勝者獨食)의 권력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입으로야 만날 국민통합을 노래한들 쉽게 바뀔 풍토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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