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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의 세상읽기

‘궁하면 중도실용’인가

‘궁하면 중도실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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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축구가 청와대와 한나라당에는 지방선거 참패의 쓰라림을 덮어주는 때맞춘 이벤트일 것이다. 한국축구대표팀이 16강 이상의 성적을 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한숨은 돌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한국과 그리스 전이 열린 6월12일, 몇몇 아침신문의 만평이 재미있다. 선거 패배에다가 늑장. 거짓보고에 사실조작까지 서슴지 않은 군의 실상을 드러낸 천안함사건 감사결과, 발목 잡힌 세종시·4대강 사업, 나로호 발사 실패, 국정 쇄신을 요구하는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의 연판장 사태 등으로 만신창이가 된 MB(이명박 대통령)가 ‘대한민국’(한겨레신문) ‘골… 골… 한 골만 더…’(중앙일보)를 외치는 그림이다. 풍자라고는 하지만 국면 전환을 바라는 MB의 간절함이 절절이 묘사되어 있다. 물론 대통령이 월드컵 축구로 시국의 위중함을 모면하려 하겠는가. 그럴 수 없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라도 알 일이거늘.

오히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가슴을 쓸어내렸을지도 모른다. 감사원의 천안함사건 중간감사결과 발표(6월10일)가 지방선거 이전에 나왔더라면 그나마 건진 서울시장, 경기도지사도 야당에 넘겨주었을 위험성이 높았을 테니까.

감사원은 이상의 합참의장이 천안함사건이 발생한 3월26일 밤, 술에 취해 국방부 지휘통제실을 비웠으며, 뒤늦게 복귀해 자신이 제대로 상황을 지휘한 것처럼 문서를 꾸몄다고 했다. 감사원 감사결과에 따르면 해군 2함대사령부는 사건 발생 6분 후인 오후 9시28분 천안함으로부터 1차 보고를 받은 뒤 해군작전사령부에는 3분 후에 보고했지만 합참에는 17분이나 지나 보고했다. 또 어뢰 피격으로 판단된다는 보고를 받고도 상부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특히 천안함 부근에 있던 속초함이 북상하는 물체에 격파사격을 하면서 북한의 신형 잠수함으로 판단된다고 보고했음에도 합참 등에 보고할 때는 ‘새 떼’라고 하도록 보고라인의 담당자들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거짓말을 하기는 상황을 총괄해야 할 국방부도 마찬가지였다. 국방부는 관계규정에 따라 ‘위기관리반’을 소집해야 하는데도 소집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김태영 장관에게는 소집한 것처럼 허위보고를 했다. 사건 직후 침몰원인 규명과 관련된 동영상 공개과정에서는 말 바꾸기를 3차례나 했다.

한마디로 군의 대응은 늑장보고와 거짓보고, 현장보고 묵살 등 ‘종합부실세트’였는 데도 이 대통령은 “초기 대응은 잘했다”고 했으니, 청와대는 군의 거짓보고에 속아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까지 기망한 꼴이 되고 말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군의 초동대처가 엉망이 되면서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침몰이라는 정부의 최종발표까지 일부 의심받는 결과를 초래한 점이다. 국내에서조차 의심받는 결과를 중국이나 러시아가 흔쾌히 받아들일 리 있겠는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결의안을 채택하게 하려는 정부의 외교노력이 장애에 부딪힌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군의 한심한 초기대응에서 빚어진 결과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생때같은 우리 장병 46명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 북한의 소행이 명백한 이상(정부 발표를 의심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사건 발생 초기 신중한 자세를 보였던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북한은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둥 강경한 태도로 돌아선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지방선거 개시일인 5월20일 합동조사단이 조사결과 발표를 하고, 나흘 뒤 대통령이 청와대가 아닌 서울 용산전쟁기념관에서 대(對)국민담화를 한 것 등이 지방선거용 ‘북풍몰이’ 인상을 강하게 풍긴 점이다. 이른바 보수 대집결을 통한 선거압승 기도는 초반에 대단한 위력을 보이는 것 같았다. 한나라당의 압승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듯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는가. 북풍은 정권심판론 앞에 힘을 쓰지 못했다. 오히려 전쟁을 두려워한 젊은층을 야당 지지 쪽으로 결집시켰을 뿐이다. 정권 측은 그 평가야 어떨지라도 우리 사회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자리 잡은 평화의 가치를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천안함 조사결과를 인정하는 사람은 애국시민, 불신하는 사람은 친북좌파’라는 식의 냉전적 이분구도는 더 이상 씨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 결과 한나라당은 참패했고 민주당은 앉아서 횡재를 했다.

‘침묵의 나선형’이란 이론이 있다. 사람들은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속성이 있어 자신의 의견이 소수의견이라고 생각하면 그 의견을 드러내 고립되기보다는 침묵을 지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요 언론의 의견과 다른 자신의 의견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의견은 수면 아래로 잠복한다. ‘숨어있는 민심’이다. ‘소수의 역설(逆說)’이란 이론이 있다. 응집된 소수가 이완된 다수를 이기는 역리(逆理)이다. 즉 똘똘 뭉친 소수의 의견이 흩어지거나 숨어버린 다수의 의견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특정 견해의 과잉(過剩) 대표성이 나타난다.

이번 지방선거 전에 나타난 여론조사 결과는 ‘침묵의 나선형’과 ‘소수의 역설’이 결합된 여론조사의 함정을 보여준다. 즉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여론조사에 응한 반면 그 반대인 사람들은 침묵하거나 숨어버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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