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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의 세상읽기

손학규와 ‘진보 다툼’

손학규와 ‘진보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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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부자(父子) 세습에 이어 3대 세습을 공식화했다. 봉건왕조시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21세기에 버젓이 재현됐다.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무색할 지경이다. 체제의 성격이야 어쨌든 시대를 역행하는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행태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주노동당의 판단이며 선택”이라고 했다. “보수정당과 대다수 언론이 (북한이) 비이성적인 국가라는 여론을 만들어내기 위해 경쟁적으로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판에 진보정당까지 북은 비이성적인 행동을 했다는 말을 덧붙여 갈등상황을 더해야 하느냐. 북의 권력구조를 언급하기 시작하면 남북관계가 급격히 악화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민노당은 3대 세습에 대해 “북한 후계구도와 관련해 우리 국민의 눈높이에서 어려운 지점이 있다 하더라도 북한의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라고 논평했다. 1980년대 재독(在獨) 학자 송두율이 주창했던 ‘내재적 접근법’(남쪽의 잣대로 북쪽을 재지 말고 그들의 체제를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자)의 맥락이다.

소수정당인 민노당이 어떤 입장을 보이느냐는 그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대뜸 ‘친북좌파’로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민노당이 ‘진보정당’이어서 3대 세습에 대한 비판을 삼가야 한다는 얘기는 논리적이지 않다. 진보라면 오히려 비이성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왕조식 세습을 강하게 비판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진보의 본래 개념마저 헷갈리게 하는 ‘진보정당’ 소리는 하지 말았어야 한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진보로 좌 클릭했다고 한다. 당의 강령에서 ‘중도 개혁’을 삭제하고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보편적 복지’를 명시함으로써 진보의 정체성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민주당이 제 위상을 찾지 못한 것이 ‘중도 개혁’의 강령 탓이었는가? 민주당이 그동안 죽을 쒀온 까닭은 야당다운 야당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채 당권 다툼이나 한 탓이다. 당 지도부가 사(私)를 버리고 공(公)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빅 스리’라던 손학규 정동영 정세균, 세 사람은 무난히 지도부에 입성했다. 두 정씨야 대표 자리를 한나라당 전력의 손학규씨에게 내준 것이 유감이겠으나 분권형 집단지도체제인 덕에 나름의 지분은 행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7·28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정세균씨가 다시 대표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나, 의원배지를 달기 위해 한때 탈당까지 불사했던 정동영씨가 백의종군은커녕 대표직에 도전한 것이 국민 눈에 어떻게 비쳤겠는가. 두 정씨야 물론 당과 국민을 위한 충정이라고 했으나 말만으로 감동을 줄 수는 없다. 거기에 국민 참여마저 배제했으니 민주당 전당대회가 흥행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빤한 이치다. 결국 민주당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호남 당원들의 ‘전략적 선택’으로 손학규씨가 대표에 선출됐다. 그러나 ‘손학규의 민주당’ 앞날이 핑크 빛은 아니다.

그 중심에 ‘진보 다툼’이 자리하고 있다. 손 대표는 “진보의 가치 실현을 기본으로 하고 중도를 끌어안는 방향으로 당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진보화는 민주당의 필요조건이고 민주당 노선 설정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민주당은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다. 그냥 야당으로만 남겠다고 하면 좌 클릭하는 데서 그칠지 모르지만 거기에 더해 우리는 한나라당을 찍은 우리 지지자들, 중도세력을 끌어안아야 집권이 가능하다. 진보·개혁·중도 삼합(三合) 필승론을 내세운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한국일보 인터뷰).

그러나 정동영 최고위원 측은 ‘손학규 정체성’의 보다 분명한 내용을 요구한다. 정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 대한 공식입장을 정해야 한다”고 선공(先攻)을 취했다. 정동영 천정배 박주선 조배숙 등 쇄신연대 소속 최고위원들은 투자자-국가분쟁제도와 제외품목 열거(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의 서비스 개방조항 등 한미 FTA 협정의 독소조항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재협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재협상 주장에는 민노당 이정희 대표,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등 야 4당 소속의원 32명이 동조했다.

반면 손 대표는 재협상 반대 입장이다. “재협상을 했다가 불리한 것은 내주고 원하는 것은 못 가져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독소조항이 들어 있는 원안을 무조건 찬성하기도 그렇고, 야 4당 연대의 중요성을 감안하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다. 따라서 ‘신중 검토’하는 선으로 물러났지만 자칫 출발도 하기 전에 넘어지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 불과 21%의 지지율로 오른 대표 자리는 쉽게 흔들릴 수 있는 불안정한 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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