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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의 세상읽기

‘민심의 쓰나미’를 두려워하라

‘민심의 쓰나미’를 두려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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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가 몰려왔다. 죽음의 해일이 뭍의 모든 것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검은 바닷물은 육지를 촘촘히 점령하고, 거추장스러운 모든 것을 휩쓸어버렸다. 지진을 안고 살았기에 세계 최고수준의 내진(耐震) 시스템을 갖춘 일본이었지만 규모 9.0의 강진(强震)과 지진해일을 막을 수는 없었다.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대재앙 앞에서 인간은 바닷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자동차처럼 무력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이란 쓰나미보다 강한 것인지도 모른다. 거칠게 얘기한다면 인간은 욕망으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오욕칠정(五慾七情)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 아니던가.

신묘년(辛卯年) 봄, 한국사회를 시끄럽게 한 ‘상하이 스캔들’은 발가벗은 욕망의 종합판이다. 스캔들의 여주인공은 서른세 살의 중국인 여성 덩신밍씨. 덩씨는 자신이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자’ 덩샤오핑의 손녀라고 말했다지만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덩씨는 2001년 한국인 J씨와 결혼하면서 자신을 ‘홍콩의 몰락한 사업가 딸’이라고 했다고 한다. 2007년에는 “외삼촌이 상하이 당서기로 새로 부임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렇듯 그녀의 정체는 아리송하다. 다만 상하이 한국총영사관에서 그녀가 중국 권부의 실력자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숨은 실세’로 인정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녀는 탈북자 및 국군포로 송환에서부터 한국 고위인사들과 중국 권력실세의 면담은 물론 중국세관에 적발된 우리 공무원의 통관문제 해결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고 한다. 우리 총영사관 측이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전화 한 통으로 척척 해결했다고 하니 영사들이 그녀를 ‘막강한 권력가 출신’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을 만하다. 그런 만큼 총영사관 측이 그녀와의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하려 노력했으리란 정황도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얻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누가 무엇을 어떻게 주었을까(또는 흘렸을까)? 그것이 우리 정부 합동조사단이 밝혀야 할 핵심 사안이다. 그러나 정부조사단이 나선다고 명확한 진상이 밝혀지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 사건의 핵심인물인 덩씨를 조사할 수 있을 텐데 중국 정부는 그럴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밝혀진 내용은 언뜻 식상한 ‘3각 불륜드라마’처럼 보인다. 유부녀 덩씨와 상하이 한국총영사관 K· H· P 전 영사의 부적절한 관계와 치정극. 그 내용이 명확하지는 않다. 덩씨에게 “제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약속을 어기면 한국 돈 6억원과 손가락 하나를 잘라주겠다”는 각서를 써주었던 K 전 영사(42·지식경제부 소속)는 덩씨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부인했다. 덩씨가 자신과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해 그녀가 불러주는 대로 서약서를 써줬을 뿐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아무리 협박을 당했다고 해도 한 나라의 외교관이 별 약점도 없는데 손가락까지 잘라주겠다는 서약서를 쓸 수 있나?

외교부 소속으로 2009년 8월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P 전 영사(48)는 덩씨와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의혹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고 한다. 상하이를 방문하는 한국 고위인사들과 중국 실력자들의 면담을 주선하는 과정에 덩씨의 도움을 빌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법무부 소속이던 H 전 영사(41)는 지난 1월 사표를 내고 퇴직금을 찾아 중국으로 출국했다. 그는 ‘전생의 인연’인 덩씨를 찾아가 함께 살겠다고 했다고 한다. 덩씨와의 불륜 소문이 상하이 교민사회에 알려지면서 지난해 말 조기소환돼 법무부 감찰조사를 받은 그는 덩씨에게 불법으로 비자를 이중발급해준 사실이 드러나자 사표를 제출했는데 법무부는 사표를 수리하는 선에서 사건을 매듭지었다.

그러나 당시 법무부는 덩씨 남편의 제보로 상하이 총영사관의 정보 유출 정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불법 비자발급 혐의에다가 정보유출 정황까지 겹쳐 있는 상황에서 법무부가 H영사의 사표를 받고 끝낸 것은 서둘러 사건을 덮으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았다. 쉬쉬하기는 외교통상부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지난해 11월 상하이 총영사관의 스캔들과 비자 부정발급 문제 등이 불거졌는데도 관련 영사들에 대한 해임, 전보, 본부대기 등 경미한 조치를 취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최고책임자인 총영사는 제대로 문책하지 않았다. 국무총리실의 조사에서도 총영사는 빠져 있었다. 왜 그랬을까? 사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덩신밍씨의 개인금고와 컴퓨터에는 대통령 부인의 휴대전화번호를 비롯해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한 정치인 200여 명의 휴대전화 번호와 상하이 총영사관의 내부 자료들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중 정부여당 정치인의 전화번호는 김정기 전 총영사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김 전 총영사가 기밀자료를 덩씨에게 넘겨주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김 전 총영사는 펄쩍 뛰었다. 그는 “자료를 유출하고 중국 여성과의 사진까지 결부해 나를 모함하려 한 정황으로 볼 때 증명하기는 어렵지만, 나와 불화가 심했던 모 정보기관 인사가 배후일 것”이라며 국내 정보라인의 소행 가능성을 시사했다. 자신과 알력이 있던 상하이 총영사관의 국가정보원 소속 J 부총영사를 지목한 것이다. 그러나 ‘동아일보’ 보도(3월10일자)에 따르면 덩씨가 그 자료를 김 전 총영사에게서 빼냈을 개연성이 높다. 지난해 6월1일 오후 6시56분, 당시 총영사인 김씨와 덩씨가 상하이 힐튼호텔 컨벤션 홀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뒤 두어 시간이 지난 9시19분에 같은 기종의 카메라에 MB 선대위 비상연락망 등 정부 여당 실세 연락처가 줄줄이 찍힌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전 총영사는 사진 정보가 조작됐을 것이라고 둘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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